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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이야기..

ㅠ_ㅠ |2007.08.13 14:38
조회 848 |추천 0

안녕하세요. 24살 남자입니다.

늘 글을 읽기만 하다가다, 오늘 처음 이렇게 용기내서 글을 적어 보려합니다.

 

2002년 7월 1일.. 한참 월드컵의 열기로 온국민이 하나가 되어 있을때의 일입니다.

그때 제 나이는 19살(고3) 이었습니다.

 

그 전날밤 새벽 유난히도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전 새벽녘 까지 잠들지 못 하고 잠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었습니다. 그날 새벽4시쯤 이었을까요?! 아버지께서 잠이 깨시더니 그 새벽에

낚시를 가신다고 하시더군요. 워낙 평소에 낚시 다니시는걸 좋아 하셨던 터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쯤 지났을까요.. 새벽6시쯤에 믿을수 없는 전화한통이 걸려왔습니다.

 

" 네 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아버지 친구분의 목소리였습니다.

" 아저씨.. 무슨말씀 하세요.. 우리 아버지 낚시 하러가셨는데.. 지금 무슨 말씀하세요.."

 

불과 2시간전에 웃으면서 낚시 갔다 오신다던 아버지 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내가 달려간곳은 병원이 아닌.. 어머니가 살고 있던 집이었습니다.

(초등학교6학년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동생과 아버지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식구가 단칸방에서 지내고 있었고, 어머니는 다른집에서 다른분과 재혼하셔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실감이 나질 않아 눈물도 나질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앞에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띵동.. 띵동.."  한참후에... " 누구세요?! "  어머니 목소리 였습니다...

이른새벽 부터 찾아간탓에 어머니께서는 막잠에서 깬듯한 모습으로 저에게 무슨일 있냐며 안으로

들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살짝 열린 현관문 사이로 보인 방안에는 낯선 아저씨께서 계시더군요

전 차마.. 그안으로 들어갈 수 가 없었습니다. 

 

"엄마.. 엄마.... 아빠가.. 아빠가... 돌아 가셨대..."

 

그렇게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가 누워계신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사고현장에서 즉사 하신 아버지는

몸이 차갑게 굳어 있었습니다. " 아빠... 아빠.... 엄마 오셨어요.. 눈좀 떠봐요... 아빠... 아빠...."

그제서야 실감이 좀 나더군요. 어머니와 전 차가워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자리에서 움직일수가 없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 친구분께서 어머니를 부축해 주셨고, 사고현장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새벽에 낚시를 가던도중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이 중앙선 침범을 하면서 아버지가 타고 계시던 차와 정면충돌을 했다고 하더군요. 가해자는 음주운전 상태였고 졸음운전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사고로, 가해자는 물론 아버지가 타고 있던 차안에 3명까지 총4명이 모두 사망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린시절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중학교 까지만 나왔다고 하시면서, 너는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 늘 그러셨던 아버지 였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진학 하는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다음날.. 제가 1차 수시로 썼던 학교에 합격이 되어 집으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또다시 눈물이 나더군요. 그렇게 내가 대학에 입학하는걸 보고 싶어 하셨는데..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습니다. 장례식(3일장)을 치루게 되었고.. 몇년만에 친척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장례식도 끊나지 않았는데 큰 아버지란 사람이 보험금(돈) 이야기 부터 꺼내시더군요, 부모님이 이혼이 되어 있었기에.. 호적에는 아버지,나,동생 이렇게 셋만 올라가 있었습니다. 아버니가 돌아 가셨으니.. 당연히 호주는 내가 되었겠지요.. 1억 이라는 큰 보험금(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호주이긴 하나. 아직 미성년자였고, 호적에 어머니도 없었고, 또 이혼 사실을 친척들이 다 알고있었기에 장례식에 나타난 어머니를 반겨주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 이혼 후에도 어머니를 자주 만났고, 그랬던걸 친척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은 어머니를 못 믿으셨겠지요. 장례식도 끝나지 않았는데 돈 얘기부터 꺼내는 어른들이 미웠습니다. 큰 아버지 저에게 다가와서 공증을 서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성인이 되는 날까지 큰 아버지와 내 이름 공동명의로 아무도 보험금을 손대지 못 하게 하자는 큰아버지의 주장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때부터 워낙 집안 형편이 안좋았던 터라 알고 보니 아버지의 빚이 1억3천이나 되더군요. 근데 아버지께서 빚이 있다는건 친척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만 알고 있었구요. 1차 수시로 대학을 합격했던 터라 수능을 보지않아도 되었기에 그때부터 어머니와 빚을갚으로 여기저기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돈 앞에서는 가족도 없더군요, 보험금에 눈이 먼 친척들은 저희집 근처에 여관을 잡아두고, 몇일씩 투숙 하면서 저를 따라 다니면서 공증을 요구 했고, 심지어 장례식에 왔던 제 친한 친구에게 찾아가, 저를 설득좀 시켜보라고 했다 더군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한달간을 법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어머니와 저는 친척들과 싸우며, 빚을 갚으러 다녔고...

(가족이 사망 하면 위로금이 100만원씩 나간다면서요??) 친척들이란 사람들은 그 돈을 받고서야..

자기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이 보다 더한 상황이었지만 차마 글로 표현하기가...) 보험금은 1억.. 빚은 1억3천.. 전 어머니와 3천만원이라는 돈을 벌기 위해.. 학교도 다니지 못 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 2~3개씩 하면서.. 그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뒤에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상속포기를 했으면 됐을텐데.. 왜 그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그렇게 전 대학생이 되었고, 03학번으로 입학한 저는 학교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에만 매달려야 했습니다. (1.2학년 과정 전공과목을 비롯해 거의다 F학점..)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가장 걱정이 되었던건..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였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막내셨고, 손자들 중에는 저랑 제동생이 가장 나이가 어렸기에 할머니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그해 할머니의 연세는 92세..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던 터라 평소에는 별 걱정없이 지냈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할머니마저 쓰러지실까봐 차마 얘기를 못 꺼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친척들이 할머니께 거짓말을한 것 입니다..  아버지가 미국으로 돈 벌러 가셨다고.. 진짜 어이가 없었음에도, 차마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가 물으십니다. " 애비한테 편지 안오냐? ..." 그럼 전 이틀후에 어쩔수 없이 편지가 왔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 할머니 아빠한테 편지 왔어요.. 할머니 건강하게 잘 계시냐고. 약 잘 챙겨드시고, 끼니 거르지 마시래요.. " (할머니께서 눈도 어두우시고, 귀도 어두우셔서 귀에 대고 크게 말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께 거짓 편지를 읽어 드리고 전 방에 가서 한참을 울어야 했습니다.

 

초등학교때 부터 부모님 이혼 하시면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워낙 아프고 힘든것이 생활이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이정도 아픔쯤 쉽게 잊혀질거라 생각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동생과 저만 남게되었고,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3월22일 토요일 오후1시.. 이사를 하던 도중 유난히도 눈에 들어 오던 한 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교회를 다니던 저는....

이사를 하였기에 교회를 옮겨야 했고, 집앞에 있는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을 비롯해 집사님 청년회장님, 저를 모두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습니다.

 

예배가 모두 끝나고... 아무도 없는 성전...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 기도가 끝날때 까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기도 하는동안 어떤 아이가 계속 반주를 해주고 있었더군요

알고 보니.. 어제 이사 하면서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 그 아이.. " 였습니다.

 

그때 부터였던것 같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던 계기가...

 

알고 보니.. 그 교회 대예배 반주자 였고.. 장로님 딸 이었습니다. 나이는 동갑내기 24살..

우연 인지 필연 인지.. 학교도 같은학교 였고, 과 마저 같은과 였고, 동아리도 같은 동아리 였습니다.

제가 학교를 자주 나가지 못해서 몰랐던 것 이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동아리, 같은 교회, 같은동네..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시작했고,

그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커져만 갔습니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라서, 의지 할만한 누군가가 필요 했다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전 처음으로, 그 아이에게.. 저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 놓게 되었고, 아픔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산소도 같이 다니고.. 늘 그아이와 함께 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아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했던가요..?!

 

전 그아이와.. 그렇게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했고, 아픈일 슬픈일이 있으면 같이 나눴습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두달 정도 됐을때.. 그 아이가 저에게 와서 고민을 얘기 하는것 이었습니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남자친구라는 사람과 싸웠는지.. 저에게 상담을요청 하더군요.

저와 그아이는.. " 친구 " 였기에.. 쓰라린 가슴을 억누르며.. 그 아이 얘기를 다 들어 주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Best Friend가 되었고.. 다른 동성 친구들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남자친구 라는 사람도 저희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었고.. 나이는 2살많은 오빠였습니다. 저는 그형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터라.. 정말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남자친구와 화해를 한후에.. 저를 볼때마다..(등하교를 늘 같이하고, 수업이 같았기에..)  남자친구와 어떻게 만났고, 좋았던 일들을 다 말해 주더군요.. 그 아이가 그 남자친구라는 사람을 5년동안 짝사랑 했다고 하더라구요..

 

속으로 생각 했습니다.. " 나도 한 5년쯤 너 짝사랑하면.. 니 옆에 친구가 아닌 남자친구로 옆에 있을수 있을까?! ..."

 

그렇게.. 그 아이와 전.. 1년(365일)동안을.. 학교 안가는 날은 교회에서.. 학교 가는 날은 학교에서 만났고...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질투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그 아이는 남자친구한테, 친한친구인데 그정도도 이해 못하냐고.... 그렇게 하루 이틀.. 점점 싸우기 시작하더라구요.. 처음엔 좋은것만 얘기 하더니.. 어느새 그 사람의 단점과 싸웠던일.. 심지어 뒷담화까지 저에게 얘기 하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러 갔고.. 저는 좋아 하는 마음을 숨긴채.. 그 아이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더라구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막상 상황이 그렇게 되고.. 그 아이가 아파 하는걸 옆에서 지켜 보자니.. 제가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남자친구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평소 너무 친한 형 이었지만... 그 아이와 친한다는 이유로 그 형은 절 미워 하고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그아이가 그렇게 아파 하는걸 보는게 너무 힘들어서.. 그형을 찾아가 말 했습니다. 

그 아이 너무 힘들어 한다고.. 다시 잡아 달라고..  그 아이 잘못 없다고.. 내가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게

그렇게 싫으면... 내가 그 아이 안 만날테니까.. 그 아이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바보같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  너.. 그애 많이 좋아구나.. 그랬구나... "

전 바보 같이.. " 그런거 아니에요.. 친한친구가 힘들어 하는데 가만 있어요 형은?! "

이러고 와 버렸습니다.  ㅠ_ㅠ

 

그렇게.. 전 그아이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고.. 그 아이는 다시 그 사람과 사귀더라구요..

마침.. 학교도 방학시기였고.. 교회서 봐도 인사만 하고.. 제가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그 아이.. 저에게 묻더군요. 자기한테 화 났냐고.. 전 그런거 없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 상처받은것 같더군요.. 이럴려고 그랬던건 아닌데.. 그래도..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웃으면서 지내는걸 보니.. 옆에서 잘 지내는걸 지켜 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 하나 아픈것쯤 참아 지더라구요.. 그렇게 2년이란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그 아이와 저는..

저희도 모르게.. 쓰는 말투.. 하는 행동.. 좋아는 음식.. 버릇이.. 다 같아졌더라구요....

 

어느날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자매가 그러더라구요... " 넌 참 OO 랑 많이 닮았어... "

그 아이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근데.. 얼마 못 가서........

그 아이 행동이 이상한겁니다. 알아보니, 그 사람과 다시 헤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 아이가.. 참 많이 좋아 했었는데.. 5년...  나는.. 그 아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 시간만큼 좋아 하려면.. 아직 3년이란 시간을 더 좋아해야 하는데.. 그렇게 그 아이가 힘들어 할 시기.. 다시 학교가 개강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아무말 없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다시 예전 처럼 친하게 지냈습니다.. 2년 반 이란시간동안.. 그 아이를 좋아 하면서.. 그전에 아프고 힘들었던 내 삶들을 잠깐이나마 잊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준 그 아이... 비록 친구지만..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많이 좋아 한다고.. 처음 부터.. 그랬다고.. 다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 알고 있어다는 군요. ( 하긴.. 제가 좀 많이 잘해주긴 했습니다. 친구 이상으로.. 남들은 다 여자친구 아니냐고 할 정도로 잘 챙겨주었기에..) 알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심장이 터질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귀는 사이가 될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 친구 " 라는 관계로.. " 애인 " 같은 사이 처럼 지내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친구 이상으로 잘 해줘도.. 그냥 다 받아주더라구요.(너무 편해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구요.) 저희 집에 동생과 살고 있지만.. 동생은 집에 잘 들어 오지 않아서. 거의 집에 혼자 있거든요, 그래서 집에도 자주 놀러 오고.. 같이 맛있는것도 해먹고.. TV도 보고.. 장난도 치고.. 남들이 보면.. 사귀는 사이 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친구 이니까요.. 제가 그런말도 한 적 있습니다.

 

나  : " 내가 너 좋아 하는데.. 니가 내 첫사랑 인거 알어?! ... "

그 아이 :  " 그러냐?! ㅋㅋㅋ "  (장난식으로 받더라구요.)

 

나 :  " 너 그럼.. 그거 알어?! ..  "

그 아이 : " 응?! "

 

나 : " 내가 너 좋아 하는데.. 니가 내 마지막 사랑인거 알어?! ... "

그 아이 : " 난 결혼 안하고 혼자 살고 싶은데.. 엄마가 30살때 결혼 하라더라ㅋㅋ?! "

 

나 : " 30살?! 음.. 얼마 안남았네 그럼 2013년에 나랑 같이 살면 되겠다.. "

그 아이 :  " 혼자 살거라니깐 ..."

 

나 :  " 그럼 2013년.. 니 생일 4월25일에 내가 프로포즈 할테니까 마음의 준비 해둬라ㅋㅋ"

그 아이 : " 그때 가봐야 알지~~ ㅋㅋ "

 

나 :  " 음.. 2182일 밖에 안남았다.. " 

그 아이 : " ........... "

 

그리곤.. 지금까지... 5년 입니다..  벌써 그렇게.. 5년 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지금껏.. 누구를 사귀어 본적도 없고..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해 본적도.. 그 아이가 처음입니다.

제가 너무 힘들고 아픈시기에 그 아이를 만나긴 했지만.. 그래서 그 아이를 많이 의지 한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제가 그아이를 위해 의지가 되고 나무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친구라는 사이로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서.. 제 진심을 얘기 해도 장난식으로 받아주긴 하지만.. 제 마음은 알고 있을거라 믿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서툰 사랑이지만.. 그 아이 제가 꼭 지켜 주고 싶어요. 저 처럼.. 홀로 남지 않게.. 제가 옆에 있어주고 싶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지만.. 제 처음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가 아직 경험도 없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댓글로 많이 응원해주시면 참고 할게요. ^^

 

재미 없는.. 제 얘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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