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법의 손
판사의 바지
그곳은 나무로 된 꽤 커다란 응접실이었다.
판사는 구바루 양복점 종업원 유스타슈 부톨이 가지고 온 조금 헐렁한 바지를 입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슈바슈 판사는 바지 끈을 묶으면서 앉았다 일어났다 해봤다.
가끔 옆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젊은이는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판사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음……. 이 바지도 불쌍하군.
이젠 슬픈 이별이다!"
농담하는 걸 좋아하는 판사는 낡은 바지를 집어들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동전을 몇 게
손에 쥐고 말을 이었다.
"그렇지. 우리 법조계 사람들은 옷을 대단히 오래 입지.
왜냐하면 법관복 때문이야.
그 속에서 날실과 씨실이 서로 의무를 다하는 한 입을 수 있거든.
이렇게 저렇게 다 먹고살게 마련이지.
도둑들도 마찬가지고, 양복점도 마찬가지야.
구바루씨가 나한테 청구한 6에큐는 한푼도 깎을 생각은 없어.
게다가 가게 종업원에게도 기분좋게 번쩍번쩍 빛나는 동전 한 닢도 줄 생각이야." 유스타슈 부
톨은 6에큐하고 1에큐를 아주 정중하게 받았다.
"어이. 젊은 친구.
양복점 일은 좀 익숙해졌나?
치수를 재거나 재단하는 것도 능숙해졌어?
그리고 이젠 적당히 얼버무릴 줄도 알겠지?
전문가에게도 헌 것을 새 거라고 억지를 쓰고.
잘못 다려 새까맣게 된 걸 원래 검은 천이라고 태연하게 떠벌리고…….
말하자면 중앙시장에 늘어선 가게 주인들처럼 상술이 좋다는 평판을 듣고 있냐는 말이야!" 유
스타슈는 이상하다는 듯 판사를 쳐다보다 그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그러나 판사는 단순히 점원을 놀리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장사꾼들 속임수는 아주 싫어해.
도둑들은 훔치기는 하지만 속이진 않거든.
그런데 장사꾼들은 훔치는 데다 속이기까지 한다고.
아무 말 잘하는 어떤 약은 친구가 바지를 하나 산다고 하자구.
그는 바지 값을 깎고 깎아서 결국 6에큐에 샀어.
그리고 다음에는 멍청이가 하나 들어왔어.
어쩌다가 아까 하고 같은 바지를 사기로 했는데 그 주인은 성모 마리아나 종교 이야기를 꺼내
서 자기 성실성을 믿게 하지.
멍청이는 그를 믿고 그 바지를 8에큐에 샀다고 해도 나는 그 멍청이를 동정하진 않아.
그자가 바보니까 말야.
그리고 돈을 받은 주인이 아까 받은 돈과 방금 받은 돈 사이 에 차이 나는 2에큐를 손에 들고
만족해서 싱글벙글 거릴 때 가게 앞을 아주 더러운 차림새를 한 남자가 지나가고 있 어.
그는 구멍 뚫린 낡은 손수건을 한 장 훔친 죄로 형무소로 끌려가는 거야 .
그걸 복 상인이 소리치지.
이 나쁜 놈아!
만약 재판이 정확하게 되면 너 같은 놈은 사형을 당해도 마땅해.
그렇게 되면 나도 가서 기꺼이 봐주지! 하고 말야.
여전히 그 손에는 2에큐를 들고 말야.
유스타슈 어떻게 생각하나?
그 주인이 생각하는 대로 재판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면 말야." 유스타슈 부톨은 이미 웃고 있
지 않았다.
그는 처음 듣는 궤변에 대답도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판사를 바라보고 있었
다.
슈바슈 판사는 젊은이가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멍하게 있는 걸 복 웃음을 띠며 젊은이의 뺨
을 가볍게 꼬집었다.
유스타슈는 깊이 생각에 잠긴 채 돌로 된 난간이 달린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재판소 정원에는 유명한 마술사 가리네트 카리누가 마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장사들이 약을 팔기 위해 묘기를 부리는 걸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오늘은 유스타슈에게 그런 것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중앙시장으로 향하기 위해 파리에서 가장 낡은 다리인 퐁네프로 들어섰다.
퐁네프 다리
유스타슈가 삼각형 도퓌누 광장을 벗어났을 때 기울어 가는 태양이 눈부신 빛을 다리 위로 비
추고 있었다.
다리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유스타슈는 겨우 사람들 물결을 헤치고 나아갔다.
사람들 물결은 다리 입구부터 저편까지 서서히 흔들리듯 사람들 물결은 멈췄다 움직였다 했다.
손을 잔재주를 부리는 묘기술사, 노래하는 사람, 열심히 떠들며 뭔가를 파는 사람, 그 주 위의
무수한 소용돌이와 역류.
갑자기 폭죽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산책하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들 시선을 한 곳으로 모였
다.
뭔가 재미 있는 구경거리가 시작된 것 같았다.
그곳은 반원형 난간이 있는 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 조각을 파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비어 있었다.
그 반원형 난간은 다리 위에 하나씩 있어서 도로에서 강물 쪽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마법사 한 명이 거기에 앉아서 책상을 펴놓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깨끗하게 생긴 원숭이 한 마리가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원숭이는 검정과 빨강색 악마 의상을 입고 꼬리를 내려뜨리고 있었다.
원숭이는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계속해서 폭죽과 불꽃들을 쏘아대고 있었다.
갑자기 몰려든 구경꾼들이 원을 만들어 서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 불똥이 튀기
도 했다.
원숭이 주인은 전형적인 집시였는데 요즘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요즘 집시들은 일반인들과 거의 구분이 안 가는 용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마치 백 년
전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옆얼굴은 도끼날 처럼 가늘고 길었으며 코는 굉장히 높았지만 심한 매부리코였다.
하지만 로마인처럼 잘생긴 매부리코가 아니라 코끝이 위를 향해 있어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얇은 입술은 앞으로 툭 튀어나왔으며 턱은 쑥 들어가서 코가 더욱 튀어나와 보였다.
가늘한 긴 눈은 V자형 눈썹 밑에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길고 검은머리가 전체를 조화있게
했다.
그리고 그의 분위기와 태도는 부드러우면서도 뭐든 해낼 것처럼 자유스러웠다.
손발의 민첩한 움직임과 분위기가 어릴 때부터 잡다한 일을 겪으며 고생해 온 사람이란 걸
느끼게 했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은 낡은 피에로 복장이었다.
그는 그것 역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고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 자 역시 굉장히 낡아서 구겨지고 뒤틀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고난 선생'이라고 불렀다.
교수대에서 죽을 운명이라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마법사는 컵 2∼3개 하는 마술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환호했 다.
이남자가 반원형 가운데 자리를 잡은 것은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안 되도록 한 것처럼 보였
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구경꾼들은 자기 앞쪽으로만 모이게 돼, 뒤쪽에는 아무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처럼 관중들에게 둘러 싸여도 그에겐 손재주를 보일 만한 기술은 처음부터 별 로
없었다.
컵으로 하는 재주를 한 번 마칠 때마다 원숭이는 손님들 앞을 한 바퀴 돌며 꽤 많은 돈을 모
았다.
그리고 돈을 받을 때마다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했고 그럴 때마다 작은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러나 컵 묘기는 전주에 지나지 않았다.
아주 능숙한 어조로 고나 선생은 자기에겐 트럼프, 손금, 피타고라스의 숫자점 등 미래를 예
견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돈을 받고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특별 서비스로 한 번 봐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별점 타로트 카드를 시작했다.
그러자 파코레라고 불리던 그 원숭이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에게 그 카드를 아주 능숙하게 한
장씩 나누어 줬다.
유스타슈 부톨도 역시 카드 한 장을 받았다.
마법사가 그를 부른 건 마지막이었다.
고난 선생은 가늘고 긴 천진난만한 유스타슈의 얼굴을 주의깊게 바라보다가 무게를 잡고 목소
리를 높였다.
"우선 과거를 말하지.
자넨 부모를 잃고 6년 전부터 중앙시장에 있는 양복점 종업원이 되었군.
다음 현재, 주인은 외동딸을 자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지, 자기는 은퇴하고 장사는 자네에게
맡기려고 하고 있지.
자, 다음은 미래인데…….
어디 손을 좀 보여주게."
유스타슈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을 내밀고 말았다.
마법사는 아주 신중하게 손금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다 원숭이를 불러 뭔
가 얘기를 했다.
원숭이는 손을 잡고 한참을 보다가 주인 어깨로 올라가 귓가에 대고 뭔가 속삭이듯 중얼 거렸
다.
동물들이 화가 났을 때 하는 것처럼 파코레는 대단히 빠른 입놀림으로 찍찍거렸다.
"거 참. 묘하군!"
고난 선생이 겨우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해.
성격도 온순하고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이 이처럼 묘한 운명으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가다
니.
어이, 자네는 격식을 깨고 높은,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갈거야.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 돼서 죽을거야." '참 대단한 허풍이군!'
유스타슈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예언을 하지.
그런데 내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알았지?
참 대단해…….
어쩌면 어디선가 내 얘기를 들었는지도 모르지.'
유스타슈는 그렇게 생가하며 판사가 준 동전을 지갑에서 꺼내 주면서 마법사에게 잔돈을 달
라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작았기 때문인지 마법사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사이로 동전을 굴리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내 말을 별로 믿지 않는 걸 잘 알아.
그럼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아까 말한 걸로는 잘 이해가 안 될테니까 말야.
무엇보다도 자네는 다른 사람들처럼 1스만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게 훌륭해.
원래 아까 얘기한 걸로는 이 돈의 1/4이면 되니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이 하얀 주화는 자네에게 더 많은 진실을 알려 줄 테니까 말아.
마법의 거울인 셈이지."
유스타슈가 말했다.
"예? 그러면 내가 높은 데로 올라간다는 당신 말이 정말인가요?" "자네는 내게 운세를 물어 보
았고 나는 그것에 대답했어.
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
그러면 내가 자네의 운명에 대해 말한 것 중에서 높은 곳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내가 생
각하기로는 양복조합의 이사라든가 교회 재산 관리위원이라든가 등..." "참, 엉뚱하게 잘못 생각했
구먼....
아까 얘기한 것 '교수대'와 '징역'이야.
즉 자네는 높게 올라가고 멀리 가게 되는거지.
난 손금을 뚜렷하게 읽어.
자네의 경우는 직각으로 교차하는 손금 선이 가운데를 지나고 있지만 끝까지 이어지지 않은선
과 이 두선 옆으로 교차하는 선이 확실하지 않아..." "교수대!"
유스타슈가 외쳤다.
"자네는 죽을 때 편안하게 누운 채 죽고 싶은가?"
고난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어린애같이...
누구라도 어떻게든 죽어.
그리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죽지.
자네 손에는 분명히 나타나 있어.
교수대 관리인이 목에 올가미를 씌우는 것까지.
그러나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말아.
에, 그런데 벌써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군. 파리 경찰 명령으로 저녁때까지.
우리들이 퐁네프 다리에서 쫓겨나는 시간이야.
그건 그렇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
위험한 지경에 빠졌던가 연애문제라던가, 복수라던가...
예를 들면 주문이나 마법 약을 사용하고 싶으면 말야.
나는 저쪽에 살고 있어.
다리 끝에 있는 샤토 가이얄안에지.
여기에서 잘 보여. 저쪽 탑 안에..."
"제발 한가지만 더!"
유스타슈가 떨면서 말했다.
"결혼해서 나는 행복해질까요?"
"부인을 데리고 오는 게 좋아 그러면 가르쳐 주지.
파코레,이분께 인사해. 악수도 하고."
마법사는 책상을 접어서 팔에 끼웠다.
원숭이를 어깨에 태우고 아주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면 샤토 가이얄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고난과 걱정
유스타슈 부톨이 머지 않아 양복점 딸과 결혼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는 아주 똑똑한 젊은이였고 장삿술도 뛰어났다.
한가할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구슬이나 카드놀이를 하지도 않았고 감정서를 작성하거나 '조합
설명서'를 읽고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파리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스페인 언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알면 장사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 이유로 구바루 씨는 6년 동안 유스타슈를 지켜 보면서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유스타슈는 성실하고 솜씨도 뛰어났다.
게다가 자기 딸과 조심스럽게 사귀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름 성 요한 축제일에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친척들이 살고 있는 피카르드 지방으로 은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양복점 견습생은 마법사의 예언으로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반원형 한가운데 멍하게 서서 정오를 알리는 사바리테누 탐의 시계가 화려한 은빛 종소리 를
내는 것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피리에선 정오 종소리를 한 시간 동안 계속 울렸다.
루브르 대시계가 울리기 시작하면 다음엔 란조큐스탄 종 그리고 샨토레 종이다.
이윽고 정신이 든 유스타슈는 많은 시간을 허비한 걸 느끼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2,3분 사이에 모네, 볼레르, 티루샤프 거리를 지나자 그제야 유스타슈의 얼굴이 밝아졌다.
거기까지 오면 중앙시장, 야채 직매장, 빨간 천막이나 양판장, 시극단 간판, 죄인을 매다는 교수대
등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광장 그 천막 아래에는 그의 장래 아내인 쟈보트 구바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중앙시장 직매장에 상품을 늘어놓고 집안 누군가에게 가
게를 맡겼다.
일종의 조그만 지점인 셈이다.
쟈보트는 매일 아침 아버지의 작은 가게를 지키러 나왔다.
어떤 때는 상품 한가운데 주저앉아서 진열 상태를 고치고 또 어떤 때는 일어서서 손님들 을 부
러 모으거나 손님을 붙잡아 끈질기게 뭔가 살 때까지 붙들고 늘어질 때도 있었다.
정오에는 항상 유스타슈가 빨간 천막 아래로 교대하러 왔다.
그리고 딸은 가게로 돌아가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유스타슈가 서둘러 가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쟈보트가 그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자보트는 굉장히 침착해 보였다.
물건을 쌓아 둔 더미 위에 앉아서 핸섬한 군인 한 명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니, 군인이 떠들어대는 걸 들어주고 있었다.
군인도 물건 위에 앉아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물건을 사러 온 손님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쪽은 내 미래의 남편이야."
쟈보트는 그 낯선 남자에게 웃으면서 유스타슈를 소개했다.
남자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을 뿐 자세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저 종업원을 이리저리 위에서 아래로 살펴볼 뿐 보기에도 그렇게 높은 신분이 아닌 장사꾼들
에게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이 친구는 우리 부대 나팔수와 구분하기 힘들만큼 닮았군." 군인은 빈정대는 태도로 말했다.
"단지 그 친구는 조금 더 다리 근육이 발달했지.
하지만 말야. 쟈보트. 기병대 나팔수는 말을 탈수 있지만 신분상으론 개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
야. 하하!"
"이쪽은 내 조카야."
유스타슈에게 쟈보트가 말했다.
대단히 만족한 듯 활짝 웃는 얼굴에 커다란 푸른 눈이 반짝거렸다.
"우리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냈대.
아주 잘 됐지.
조카는 기마병이야.
아주 훌륭하지?
당신도 이런 군복을 입으면 어떨까?
하지만 유스타슈 당신은 조카만큼 키가 크지 않고 어깨도 좁으니까....." "그런데 휴가는 언제까
지죠? 파리엔 언제까지 머물 예정이신가요?" 유스타슈는 기분이 좀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
다.
"경우에 따라 다르죠."
조금 사이를 두고 몸을 일으키며 군인이 말했다.
"우리들은 농민들 데모를 진정시키러 루 베리에 파견되었거든.
그것들이 조금 더 얌전하게 있어 주면 한 달 정도 휴가를 받을 수 있는 데.
하지만 어쨌든 11월 11일 성 마르틴 축제에는 듀미에르 각하 연대와 교대하기 위해 파리로 오
니까 말야.
그렇게 되면 싫을 정도로 매일매일 만나게 될 거야." 유스타슈는 될 수 있는 한 눈을 마주치지
않게끔 기마병을 다시 한번 보았다.
그리고 확실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조카라고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앙, 매일은 아니군."
군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목요일은 매주 대사열식이 있으니까...
하지만 밤에는 시간이 비니까. 그러니까 실은 목요일도, 저녁 식사는 항상 같이 먹을 수 있어."
'그럼 다른 날에는 점심도 먹으러 오겠다는 건가?'
유스타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쟈보트, 들어본 적이 없네요.
당신에게 이렇게 까지..."
"이렇게까지 핸섬하다고요?
응, 그렇지. 꽤 노력을 많이 했나봐요.
난 조제프를 못 만난 지 7년쯤 됐으니까요.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그런데 이 친구는 포도주라도 마신 모양이야.'
유스타슈는 장래 자기 조카가 도리 그 환한 얼굴을 눈이 부신 듯 바라보며 생각했다.
'적포도주론 얼굴이 저렇게 빨개지지 않을 텐데. 구바루 아저씨 술병은 결혼식 전 제사 에
쓸 거라고 했는데....'
"자아! 점심 먹으러 갑시다.
아버지가 기다리다 지치셨겠어요."
쟈보트는 가게에서 걸어나가며 말했다.
"자, 내가 팔짱을 껴 줄게. 죠제프!
옛날에 내가 열두 살이고 죠제프가 열 살이었을 때 내가 요만큼 더 커서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도 했잖아.
하지만 지금은 장교와 팔짱을 끼게 되니까 으쓱해지네! 자, 산책이라도 같이 해줘.
나는 거의 외출을 안 하거든.
혼자선 나갈 수도 없고, 하지만 일요일 저녁때는 성찬식에 나가지 않으면 안 돼. 상지노샹 성모
마리아회에 들어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기수의 리본을 달지."
젊은 아기씨가 조잘거리는 말소리와 기병의 규칙적인 발소리가 조화를 이루면 걸어가고 있었
다.
그 춤추는 듯 가볍고 사랑스러운 뒷모습이 무게가 있고 늠름한 모습과 어우러져 두 사람은 서
서히 트네루리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 그림자 사이로 사라져 갔다.
남겨진 유스타슈의 눈은 뿌옇게 변했고 귀에선 멍한 울림이 가득했다.
고난은 이어지고
하지만 유스타슈는 곧 약혼자 쟈보트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쟈보트는 어릴 때 추억의 달콤한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쟈보트같이 평탄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겐 그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기마병은 쟈보트에게 놀이 상대가 되었다.
쟈보트는 유쾌하고 발랄한 소년으로만 알았던 그가 크게 자라 여러 가지 다른 태도와 모습을
지닌 것을 보고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은 자신의 젊은 미모에 대해 조금도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3일 동안은 쟈보트에게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져녁때에는 쿨라레누
거 리로 뚱뚱한 조수 한 명과 쟈보트를 데리고 나가 유스타슈를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결국 쟈보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싫증났는지 하루 종일 혼자 외출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 지만 기막히게 식사시간은 맞춰 돌아왔다.
유스타슈가 걱정하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이 친척이 완전히 이 집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었다.
쟈보트와 결혼하면 집은 자연스럽게 유스타슈 것이 되는데 이 조카란 작자는 이곳에 계속 눌
러앉을 작정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쟈보트의 조카라곤 하지만 직접 혈연관계는 없었다.
죽은 구바루 아저씨 전 부인의 전 남편과 사이에 있던 딸의 자식이니까.
그런 대로 결혼식은 원만하게 끝났다.
하지만 기마병의 생활습관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농민들이 동요가 전혀 일어나지 않자, 자기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파리에서 기다 려도
좋다는 허가까지 받았다며 즐거워했다.
유스타슈는 상점을 호텔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빈정거렸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부인이나 장인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용기도 없었다.
결혼은 했지만 모든 것을 다 처가에 의지하고 있는 처지라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군인과 함께 있는 건 재미없었다.
군인 입에선 늘 변함없이 수다스러운 이야기만 흘러나왔다.
그것도 반은 결투에 관한 것들이었고, 나머지 반은 농민을 상대로 한 무용담들이었다.
그렇지만 선량한 유스타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군인이 사람들을 어린애 취급 하며 듣기에 불
쾌한 소리를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보트 앞에서 기회만 있으면 유스타슈를 놀리곤 했다.
이제 막 가게 주인이 된 신참 유스타슈는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유스타슈도 장인처럼 양복업 동업자 야경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은퇴한 구바루 아저씨처럼 일반 복장으로 마을에서 빌려주는 낡은 창을 들고 경비를 나
가기는 싫었다.
젊은인데 좀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비록 망가지긴 했지만 날이 잘 선 칼과 투구, 거기다 동으로 된 끝을 박아 만든 갑옷
을 준비했다.
금방이라도 고물상에나 보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3일 동안 열심히 닦아서 아주 근사하게 번쩍
거리것으로 바꿔 놓았다.
유스타슈는 그것들을 입고 어깨를 활짝 펴고 가게 안을 걸어다니며 자기 모습이 어떠냐고 물었
다.
기병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배꼽을 잡고 웃으며 놀려댔다.
"하하 ! 꼭 냄비 뒤집어쓰고 후라이팬을 걸고 식칼 들고 서 있는 것 같군. 하하!"
결투를 신청하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지만 꾹꾹 눌러 참던 유스타슈가 드디어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11일인가, 13일인가 하여튼 목요일 저녁 유스타슈는 가게문을 빨리 닫았다.
장인이 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구바루 씨는 피카르디 집을 보러 3일 전에 떠났다.
3개월 후에 그는 그쪽으로 이사할 예정이었다.
그때쯤에는 새로운 후계자가 확실히 주인 자리에서 안정되어 손님이나 다른 동료들에게 신임도
얻어 잘 해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도 다른 때랑 똑같이 밤늦게 돌아온 기병은 문이 닫히고 불까지 꺼진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여느 때처럼 술에 얼큰한 채 돌아 그는 큰 소리로 소란을 떨었다.
큰 결심을 하고 처음으로 일찍 문을 닫은 유스타슈는 아직 잠들지 않은 채였다.
그 소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선잠을 깼다.
기병이 발로 문을 차며 소리를 질러댔다.
"뭐야?
오늘밤 축제야?
대천사 미카엘 축제야?
양복점 축제야? 아님 도둑들의 축제?"
그리고 가게문을 마구 두들겨댔지만 여전히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어이! 아저씨! 아주머니! 그럼 나보고 바깥에서 자란 말야? 이돌바닥위에서 개나 괴물한테 잡
혀 먹으란 말야?
어이! 이봐! 난 친척이잖아.
에잇! 지옥에나 가버려라! 에이! 씨!
빨리 내려와.
야! 돈이다. 돈 줄 테니까!"
소란스러운 조카의 대연 설에도 가게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문은 꼼짝하지 않아도 창문이 있었다.
간단한 방법이 생각난 군인은 뒤로 한참 물러나더니 발 밑에서 깨진 도자기 조각을 주워 들었
다.
그리고 2층 침실 작은 창문을 겨누어 던졌다.
유리는 조용한 밤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뜨렸다. 이것은 유스타슈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
다.
구두쇠가 맹렬하게 돈을 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듯. 겁쟁이들이 한번 화가 나면 걷잡 을
수 없다.
게다가 유스타슈는 새댁 앞에서 한 번쯤 멋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별러 오던 참이었
다.
오래 전부터 창 끝 표적처럼 군인의 공격 표적이 되는 걸 보고 새댁이 그를 우습게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유스타슈는 펠트모자를 집어들고 쟈보트가 막으려고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2층에서 1층으 로
좁은 계단을 구르듯 내려갔다.
가게로 통하는 입구에서 긴칼을 꺼내 손에 들었다.
손바닥에 칼 손잡이의 차가운 축감을 느꼈을 때 갑자기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또 다른 한 손에 열쇠를 잡고 문 쪽으로 납처럼 무거워 진 다리를 겨우 옮겼다.
그러나 두 번째 유리창이 깨지는 커다란 소리가 들리면서 뒤에서 부인이 쫓아오는 발걸음 소
리가 들려왔다.
다시 온몸에서 힘이 솟았다.
재빠르게 문을 밀쳐 열고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칼을 겨눠 어깨를 쫙 펴니까 자신이 큰 군대를 인솔하는 장군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밤 고양이 같은 놈. 술주정배이 깡패야!"
소릴 질러 봤지만 끝에 가서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떨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배에 힘을 줬다.
"없어져! 당장! 밤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시끄러운 소리에 이웃사람들이 깨잖아.
부대로 널 쫓아버릴 거야.
자,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고 가버려. 다신 돌아오지 마!" 하지만 군인은 오히려 앞으로 다
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유스타슈 목소리는 자꾸 흐려지고 작아졌다.
"잘도 지껄이는군."
군인이 말했다.
"자네는 지금 나한테 싸움을 거는 거야. 좋아. 결투를 받아 주지." 그리곤 가까이 다가와 유스타
슈의 코를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코가 빨개졌다.
유스타슈는 부인 앞에서 이렇게 창피를 당하자 참고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부인은 어떻게든 말려 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유스타슈는 뒤로 물러서려는 상대방에게 돌진하여 긴칼로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의 칼은 너무나 오래 사용하지 않은 골동품이라 군인이 입은 소가죽 옷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의 손이 그의 양 손을 꽉 잡고 비틀었다.
칼은 밑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유스타슈 입에서 비명과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점점 세게 조이는 상대의 힘을 약하게 하기 위해 그저 군인이 신은 장화를 발로 밟을 뿐이었
다.
쟈보트가 사이에 끼어서 싸움을 말려 겨우 진정됐다.
이웃사람들은 창문으로 싸움을 구경할 뿐 내려와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스타슈는 손을 겨우 빼냈지만 꽉 잡혔던 손이 너무 아파서 한참 동안 문지르느라 정신없었
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소리치는 걸 잊지 않았다.
"너 같은 것 하나쯤은 안 무서워.
또 한 번 하자.
용기가 있으면 나와.
내일 아침 프레오크렐로 와! 여섯 시에.
이 싸가지 없는 것.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야.
이 비겁하고 나쁜 놈!"
"하. 좋은 장소를 골랐군.
꼬마 무사. 좋아. 신사적으로 하자!
내일 성 죠르즈에 맹세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 군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없던 진
지한 태도로 말했다.
유스타슈는 가슴을 활짝 펴고 부인을 돌아보았다.
결투 신청을 한 것이 자랑스러워 갑자기 키가 1m쯤 더 자란 것 같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운 후, 큰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들어갔다.
샤토 가이얄
다음 날 아침 양복점 젊은 주인은 눈을 뜨자.
어젯밤에 충전했던 용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걸 알았다.
어처구니없게도 군인에게 결투를 신청한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싸움이라곤 어릴 때 친구들과 나무조각을 가지고 전쟁놀이를 했던 게 고작인데...
또 무기라고 해봐야 녹슨 칼 한 자루가 전부인데.
유스타슈는 그냥 집에 있기로 결심하였다.
이윽고 여덟 시 삼십 분쯤 되자 해가 꽤 높이 떴다.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 저쪽에서 군인 제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유스타슈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그 기마병이 아니었다.
공포에서 벗어난 유스타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군인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주 침착하고 정중하게 말을 했다.
그는 기마병의 친구였다.
그 결투 상대는 약속장소에서 두시간을 기다렸는데 유스타슈가 오지 않아 친구를 보냈던 것이
었다.
뭔가 불의의 사고라도 생겨 오지 않는가 하고.
그래서 내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는 얘기였다.
끝으로 만약 내일도 다시 나오지 않으면 그가 가게로 찾아와 양쪽 귀를 잘라 버리겠다는 말까
지 덧붙였다.
유스타슈는 결투 상대가 자기 용기를 무시하고 협박까지 하는데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변명 대신 큰 소리를 뻥뻥 쳤다.
자기는 결투할 각오와 준비가 돼있다.
오늘 못나간 건 결투 증인을 구하지 못해서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상대방은 이 대답에 만족한 듯 상인에게 정중하게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퐁네프 다리 사마리티누 탑 근처에 가면 그런 증인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항상 그 근처를 직업이 없어 1에큐라면 어떤 싸움이라도 참견하고 칼까지 빌려준다고 했다.
이렇게 충고를 한 뒤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유스타슈는 생각에 빠졌다.
한참 동안 생각 해봤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 가지 궁리를 놓고 망설이고 있었다.
'군인이 횡포와 협박을 경찰에 신고해 몸을 지키기 위해 무기 소지 허가를 받는 게 어 떨까?
그래도 결국은 결투를 하게 되겠지...
아니면 결투 장소에 가긴 가되. 먼저 경찰에 알려 주고 결투가 시작되는 바로 그때 경찰이
올 수 있게 하는 건 어떨까?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난 뒤에 경찰이 도착할지도 몰라.
그럼 어떻게 할까...
퐁네프 다리에 있는 마법사에게 물어 볼까?
맞아! 그래야겠어.'
마침내 유스타슈는 결심했다.
샤토 가이얄은 다리 남쪽에서 떨어진 강기슭에 있었다.
둥근 탑 아래 있는 작은 건물로 옛날에는 감옥으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낡아서 부서지기 시작해.
여기저기 금이 가 따로 갈 데가 없는 살마들외에는 찾지 않는 곳이었다.
유스타슈는 땅 위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돌더미 사이를 이리 저리 걷다가 작은 문을 발 견했
다.
그는 문 앞으로 다가가 살짝 노크를 했다.
고난 선생 원숭이가 빗장을 풀고 문을 열어 주었다.
문안으로 들어가자 마법사가 테이블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더니 젊은이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젊은이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자기에게 생긴 일을 설명했다.
고난 선생은 아주 조용히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리곤 자넨 그게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비하면 아주 사
소한 거라며 자기에게 상담하러 온 건 잘한 거라며 아주 흡족해했다.
그리고 그는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말하자면 마술을 원하는 거지?
자네가 필요한 건 정확한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주문을 원하는 거지? 그렇지?" "
네, 그런데 얼마나 있어야 합니까?
당신의 마술을 쓰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글세, 생각해보게. 자네 목
숨과 바꾸는 거니까.
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구하는 거야. 이 점을 잘 생각한다면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이 두 가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지.
백 에큐 어때?
그 두 가지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돈이지."
'차라리 백 마리 악마에게 먹혀 버리는 게 낫지!'
유스타슈는 고개를 저으며 입 속으로 부르짖었다.
'내가 가진 돈으론 어림도 없군.
목숨이 있어도 밥을 먹을 수없고, 명예가 있어도 입을 옷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 게다가 이
사람은 사람을 잘 속일 것 같은데.
이 작자 허풍을 지도 몰라.'
"돈은 나중에 쥐도 상관없어."
"그렇다면 조금쯤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데 담보로 당신은 뭘 원하나요?" "자네 손 뿐이야."
마법사는 유스타슈의 손을 쥐며 말했다.
"옛? 뮈라구요?
당신 정말 이상한 말만 하는군요.
지난번엔 내가 교수형에 처해진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나는 그 말을 취소하지 않았어."
"그렇다면...그렇다고 한다면 난 이번 결투로 죽지 않겠군요.
이 결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군요."
"글세, 아무것도 두려워할 건 없지.
그래도 두세 번 칼로 얼굴을 긁히거나 몸에 상처를 입겠지.
하지만 당신 영혼은 육체보다 훨씬 크게 상처 입을걸.
그런 후에 역시 교수대에 매달릴 거야.
높고 짧게 말이야.
죽든지 살든지 법을 따를 수밖에.
이렇게 해서 자네 운명도 끝나는 거지. 잘 알겠나?" 양복장이는 확실히 이해했다.
알겠다는 뜻으로 서둘러 마법사에게 잡힌 손을 빼낸 후 돈 준비하는 데 열흘 달라고 했다.
마법사는 돈 받는 날을 벽에 적었다.
그리고 코르네리우스, 아그리빠와 토리트미우스라는 마법사가 주해한 대 아르베르토우스의
마 법서를 들고 '결투' 항목을 펼쳤다.
자기 마술이 조금이라도 악마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을 유스타슈에게 증명하기 위해 악마
의 적에 해당하는 신에게 기도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큰 상자에서 뚜껑을 열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아까 책에서 본듯한 여러 가지 원료를 그 안에 섞었다.
그러면서 주문 비슷한 것을 입 속으로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 일이 끝나자 마법사는 유스타슈의 오른손을 잡았다.
유스타슈는 나머지 한 손으로 십자가를 그었다.
마법사는 지금 막 만든 약을 유스타슈 손목에 정성껏 발라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커다란 상자에서 굉장히 낡고 동그란 병을 하나 꺼냈다.
조심스럽게 그 병을 기울여 손바닥으로 그것을 문지르며 주문을 외었다.
주문을 위는 그 라틴어는 사제가 세례를 할 때와 비슷했다.
순간 유스타슈는 팔 전체에 강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팔이 마비되는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손은 마치 이제 막 눈을 뜬 야생동물처럼 관절을 뚝뚝
꺾으며 두세 번 부들부들 떨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정상으로 돌아왔다.
혈액 순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난 선생은 말했다.
"자아! 아주 잘 됐어.
지금 상태라면 어떤 군인이나 궁중 무사도이길 수 있어.
요즘 유행하는 옷에 달린 단추도 하나씩 떨어뜨릴 수있을 만큼 섬세하고 훌륭하지."
프레 오 크레루 숲
다음 날 아침 남자 네 명이 프레 오 크레루 숲나무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한적한 장소를 찾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남쪽으로 한참 가서 높게 언덕진 곳에 이르러 그들은 발걸음을 멈춰다.
그곳은 쇠구슬 놀이를 하는 경기장이었는데 결투를 하기엔 아주 좋았다.
그곳에서 유스타슈와 그 상대는 제각기 웃옷을 벗고 규칙에 따라 온몸을 점검했다.
양복장이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집시의 마법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
마술, 주문, 마법의 약 같은 것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믿고 의지
했다.
유스타슈가 퐁네프에서 찾아내, 1에큐를 지불하고 데려온 입회인은 군인의 친구에게 인사를
했 다.
그리고 함께 싸울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물었다.
상대가 아니라고 하자. 상관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서 결투자들을 바라보았다.
결투 상대가 검으로 인사를 할 때 유스타슈는 받을 기분이 나지 않아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유스타슈가 칼을 어색하게 잡고 다리 자세도 취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원래 마음이 악하지 못
한 군인은 살짝 상처만 내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싸움이 시작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유스타슈가 들고 있던 가느다랗고 긴칼이 떨리기 시작하며 손목이 앞을 향해 몸을 끌어 당겼
다.
굉장한 힘이 손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날렵한 솜씨로 칼을 쥔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동작의 부드러움과 유연성은 대단했다.
군인은 손목에 칼을 맞고 곧 칼을 저 멀리 날려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유스타슈의 칼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같은 공격을 계속해, 군인의 가슴에 걸린 어
깨 걸이까지 찌르며 맹렬하게 계속했다.
유스타슈의 손은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갔지만 다리가 따라주지 못해 몸이 휘청거렸다.
상 대에게 부딪히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대단한 솜씨야!"
입회인들이 소리쳤다.
유스타슈는 자신의 입회인이 일으켜 주지 않았다면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것
이다.
한참 동안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군인은 실험실에 누운 개구리처럼 누워 있었다.
유스타슈는 그이 가슴에 자기 칼이 관통되어 꽂힌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혼비백산해 그 자리
에서 도망쳤다.
윗도리를 풀 위에 놓은 것도 잊어버린 채.
군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입회인 두 사람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그 자리
를 떠났다.
조금 걸어가다가 유스타슈 쪽 입회인은 머리를 툭 치며 소리쳤다.
"내가 빌려 준 칼을 잊어버리고 왔어."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입회인을 먼저 가게하고 결투하던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입은 옷을 뒤져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트럼프와 쓸데없는 물건들뿐이었다.
그 가난한 남자는 군인의 제복엔 손대지 않았다.
그걸 팔면 덜미가 잡힐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군인이 신은 부츠만 벗기고 유스타슈의 웃옷과 함께 소매가 없는 망토 안에 말아 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유스타슈는 며칠 동안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그는 비탄에 잠겼다.
조금 창피를 당했다고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르다니! 이제 그는 이 세상에서건, 저 세상에서건
용서받지 못하고 벌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그것은 모두 꿈이었다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저기 웃옷이 없어진 게 생각나는 걸 보면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 날 저녁, 자기 눈으로 확실히 확인하려고 산책을 나가는 척하고 프레오 크레루로 향했다.
결투를 했던 쇠구슬 놀이 경기장이 보이자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웠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곳에는 재판소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습관처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유스타슈는 눈을 가리고 있던 안개 같은 것이 사라지자 발 밑 평평한 지면에 커다란 핏자국이
있는 걸 본 것 같았다.
몸을 돌려 뒤돌아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변함없이 눈앞에 핏자국이 따라왔다.
형태도 그대로, 걸어가는 길마다 눈이 닿는 모든 사물들 위에 그것이 계속 겹쳐서 보였다.
마치 맑은 날 대낮에 해를 정면으로 쳐다본 뒤 한참 동안 그 잔영이 눈앞에 계속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누군가 자기를 뒤쫓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게다가 만약에 마르그리트 왕비 궁전 시종들이 자기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
다.
결투에 고나한 법률은 그다지 엄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궁전 사람들이 본보기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인 하나쯤 교수대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감기만 하면 수많은 교수대들이 눈앞에 아른거려 정신을 혼란하게 했다.
그 교수대 하나하나에 걸린 밧줄에는 시체가 매달려 축 늘어진 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달 위에도 뚜렷하게 해골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악몽도 갑자기 어떤 사람이 떠올라 모두 물리칠 수 있었다.
유스타슈는 슈바슈 판사를 떠올렸던 것이다. 장인의 친한 친구이면서 자신에게도 대단히 친
절 하게 대해 주곤 했으니까.
그라면 틀림없이 큰 도움을 주리라.
내일 그를 만나러 가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상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고 늘 친절하게 대해 주던 쟈보트를 생각해서라도 또한 높이 평
가받는 구바루 장인을 봐서라고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 확신했다.
유스타슈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베개 삼아 잠들어 아침까지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9시정도 유스타슈는 판사 집을 찾아갔다.
그 집 하인은 유스타슈가 치수를 재거나 가봉 때문에 왔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주인이 있는 곳
으로 안내해 주었다.
주인은 머리까지 파묻히는 깊숙한 의자에 기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부인과 장인 안부를 묻고 신혼 생활 재미가 어떠냐며 놀려댔다.
젊은이는 그런 가벼운 분위기를 살려 결투 이야기를 꺼냈다.
군인과 결투하게 된 동기부터 설명하자, 판사는 마치 자식을 대하듯 그를 격려해 주었다. 유
스타슈는 판사의 그 부드러운 어조에 마음이 녹아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고백
해 버렸다.
판사는 이미 그 사건에 유스타슈가 관련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믿지 않고 있었다.
왕의 군대에 속한 군인을 유스타슈같이 순진한 젊은이가 땅바닥까지 깊숙이 박힐 만큼 칼을 찌
를 만한 힘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렇게 무술이 뛰어난 군인을 양복점을 경영하는 소심한 젊은이
가 어떻게...
하지만 사실이 이렇게 밝혀지자 판사는 경찰들에게 추적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었다고
약속했다.
또 입회인들이 신고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고 단언했다.
슈바슈 판사는 몇 번이나 다짐하면서 문까지 그를 배웅해 주었다.
그래서 유스타슈는 허리를 굽히고 뒤로 돌아서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판사의 얼굴을 유스타슈의 주먹이 세게 갈겼다.
판사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반은 빨갛게 반은 파랗게 질려 버렸다.
깜짝 놀라고 당황한 유스타슈는 벌벌 떨면서 자기가 한 행동을 설명하면서 판사 발아래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간절하게 빌며 눈물을 흘리며 돌발적인 경련처럼 일어난 행동이라,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
는 거라고 변명하고 맹세했다.
그러니 제발 넓은 마음으로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판사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그렇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엎드린 유스타슈를 일으켜 세웠다.
겨우 사태가 진정되는 듯 해서 유스타슈가 몸을 일으켰을 때 손이 또 제멋대로 움직여 다시 판
사 얼굴로 날아갔다.
이번엔 판사도 참지 못하고 하인들을 부르려고 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유스타슈의 팔이 판사보다 빨리 날아가 계속 주먹을 휘둘러댔다.
그 모양은 너무나 기묘했다.
악마가 씌인 팔이 판사에게 주먹을 휘둘러댈 때마다 불행한 젊은이는 계속 눈물을 흘려대며
입으론 변명을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 행동과 말은 정말 기묘하고도 부조화스러웠다.
유스타슈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멈추게 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마치 커다란 새 다리에 줄을 묶은 후 그 줄 때문에 끙끙거리는 어린 아이 같았다.
당황한 어린 아이가 방 전체를 새에게 끌려 다니면서도 그 줄을 놓아버릴 용기가 없어 꽉 잡고
있는 것처럼.
유스타슈는 손에 끌려 다니며 판사를 쫓아다녔고 판사는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빙빙 돌며 울리
거나 비명을 지르며 아픔과 분노 때문에 펄쩍펄쩍 뛰었다.
얼마 후 하인들이 방으로 뛰어들어와 유스타슈를 잡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헐떡이며 정신이 없어 졸도할 지경이던 유스타슈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
다.
슈바슈 판사는 마법 따위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유스타슈가 한 난폭한 행동은 분명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를 일부러 해치려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을 불러 결투에 의한 살인 및 판사 폭행죄로 그를 기소해 감옥으로 보내 버렸다.
유스타슈는 자기가 갇힐 감옥 안에 들어가는 순간에야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무죄야."
그를 안으로 밀어 넣는 간수에게 소리 질렀다.
"흥! 이 멍청이!"
남자가 굵은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 여기에 들어오는 놈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얘기해!"
마법의 책과 사형 선고
유스타슈는 샤토레 감옥 독방에 혼자 갇혔다.
불행한 자신의 신세를 끝없이 한탄하며 되새겼다.
감옥 안에서 마법사로부터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려 했던 것이 오히려 자기 목숨을 잃도록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한없이 그 마법사가 원망스러웠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마법사가 자기 손 하나를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행한 일이 생겨난 것이다.
어느 날 감옥으로 마법사가 유스타슈를 면회하러 왔다.
마법사가 조용한 말투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정말 미칠 듯이 확 치밀었다.
"너 같은 놈은 악마에게 잡혀가야 해.
이 나쁜 마법사 놈! 그런 마법을 나한테 걸다니..." "어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마법사가 태연하게 말했다.
"자네가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가져오지 않았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게 내 탓이란 말야?"
"어! 그건 잊고 있었어. 그렇게 급하게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어." 조금 누그
러진 목소리로 유스타슈는 말했다.
"나는 당신이 연금술사처럼 필요할 때마다 마음대로 황금을 만들 수 있는 줄 알았어." "무슨 소
리야!"
마법사가 화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정반대야. 분명히 언젠가는 쇠붙이로 황금을 만들 날이 올 거야.
지금 열심히 수련중이니까. 하지만 나의 성공은 황금을 쇠붙이로 바꾸는 것까지야.
이거야말로 위대한 연금술사 레이몬 류가 말년에 겨우 발견한 비법이지만..." "대단한 학문이
네."
유스타슈가 말했다.
"하여튼 당신은 나를 여기에서 꺼내 주러 온 거지?
그게 마땅한 도리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당신을 믿지 못하겠단 말야." "젊은이!
실은 내가 성공 단계에 와있는 비법은 열쇠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나오는 거라네.
보고 있어봐.
어떤 순서로 그게 이루어지나."
그렇게 말하면서 마법사는 주머니에서 먼저번에 보던 책을 꺼내서 가지고 온 램프로 불을 비쳐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집안으로 몰래 들어가기 위해서 대 악마들이 사용하는 비법! 여기에 보면 교수형 당하는 사람
한테서 자른 손을 구해야해.
단 그것을 죽기 전에 사두지 않으면 안 돼.
또 손가락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안 되고.
그리고 그것을 여기에 있는 약품들과 잘 섞어서 불에 얹어.
손을 완전히 건조 시키면 장기 보존이 가능하게 되지.
그리고 여기 써있는 방법대로 다른 물건들을 준비하여 주문을 외우면 어디든지 마음대로 출입
할 수 있지. 이렇게 처리해서 만든 손을 '영광의 손'이라고 부른다네." "대단한 방법이네!"
유스타슈가 소리쳤다.
"자! 잠깐! 자네는 나에게 손을 팔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건 내 거야. 약속한 날짜까지 돈을 갚
지 않았으니까.
일단 지불 날짜가 지나면 손은 그 자체에 씌인 염력으로 제 멋대로 행동하게 돼 있지.
내일 최고 재판소는 자네에게 교수형 판결을 내릴 거야.
내일 모레엔 형을 집행할 거고.
그리고 저녁 무렵에 나는 기다리던 그 물건을 갖고 필요한 처리를 할거야!" "농담하지 마!"
유스타슈는 흥분해 소리쳤다.
"내일 바로 이 비밀을 전부 판사들에게 말해 버릴거야." "오! 좋아. 해보시지.
그래봤자, 너는 산 채로 불에 던져질 거야.
마법을 사용했으니까.
악마의 꼬치구이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야.
그리고 전부터 네 운명은 교수형으로 끝이었어.
네 별자리나 손금이 그걸 말해 줬잖아.
어떤 방법으로도 그건 피할 수 없어!"
비참해진 유스타슈는 소리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자, 젊은이..."
고난 선생이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왜? 운명에 그렇게 저항하려고 하나?"
"아! 성모님! 제발 살려 주세요.
전 아직 젊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말로는 쉽죠.
하지만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유스타슈는 격렬하게 흐느꼈다.
"죽음이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냐. 그렇게 울고불고 할 만한건 아니라고. 나는 죽음이 우습게 보
여. 누구든 임종 전에는 죽기 싫다고 비극 작가처럼 울부짖지.
너만 죽음의 노예인 줄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 모두 마찬가지야.
죽음은 누구도 거부할수 없어. 누구도 유죄 판결을 받아 죽어 없어지는 거야.
황제도 교황도 왕도 해병대장도 신분이 낮은 놈들도 마찬가지야. 어떤 차별도 없어.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일이니까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야. 그리고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
스가 지은 아름다운 시구라도 한 번 더 음미하는 게 좋아. 그 시는 이런 의미야.
될 수 있는 한 장수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죽음의 영원성으로부터 어느 것 하나라도 도망칠 수는 없다!" 고금의 이런 세련된 아름
다운 명언을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 들려준 뒤 고난 선생은 램프를 들었다.
그리고 독방 문을 두드리자 간수가 와서 문을 열었다.
죄수에겐 다시 납으로 만든 망토처럼 무겁고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영광의 손
2시에 유스타슈는 샤토레 감옥 밖으로 나왔다.
드뉘누 거리 입구에 있는 아케이드 두 개와 퐁네프 다리 사이에 오귀스탄 광장이 있었다.
그는 이 광장까지 끌려오며 주기도문을 중얼거렸지만 이가 딱딱 부딪힐 만큼 몹시 떨렸다.
광장에서 유스타슈는 돌로 된 교수대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꽤 똑바른 걸음으
로 계단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이 처형장은 많은 처형장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 위대한 교수형에 점을 찍어 두기라도 한 듯 관중들이 많이 모였다.
사형 집행인은 교수형 줄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금양털이라도 되는 듯 신중하게 다뤘다. 여
러 사람들 앞에 직무를 다하는 만큼 엄숙하고 멋지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형인이 뒤로 물러섰을 때 유스타슈가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성 이구나티우스와 성 루이스 드 곤자고에게 기도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하지만 간수는 거절했다.
군중들이 일을 제쳐두고 구경 나왔기 때문에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거였다.
관중들을 그렇게 기다리게 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줄을 단단히 묶고 발 받침대를 저쪽으로 치워 버렸다.
뭐라고 중얼거리던 유스타슈의 목소리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확실한 뒷얘기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형 집행인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관장 가까운 샤토 가이얄의 작은 창에 고난 선생이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유스타슈의 몸은 완전히 생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쪽 손은 주인을 만
난 강아지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시체의 손이 움직이는 걸보고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고 돌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광장은 금세 가득 찼다.
마치 일 막이 더 남았는데 실수로 극장을 떠났던 관객처럼.
사형 집행인은 발 받침대를 다시 한 번 놓았고 죽은 사람의 맥을 다시 한 번 집었다.
맥은 없었다. 집행인이 칼을 들어 펄펄 날뛰는 손목 동맥을 끊었다.
피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그 남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관중들이 퍼붓는 야유 소리에도 불구하고 시체
어깨 위에 올라타고 손을 눌렀다.
바로 그때 판사가 당했던 것처럼 손이 혼자 움직여 그 사내를 때리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항상 옷 안에 지니고 다니는 커다란 나이프를 꺼내 재빨리 악마에게 붙들린 손
을 잘라 버렸다.
손은 깜짝 놀랄 만큼 높이 뛰어올라 군중들이 모인 한 가운데로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졌다.
군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파도처럼 두 피로 갈렸다.
손은 계속해서 손가락의 탄력으로 또 뛰어 올랐다.
그때마다 넓은 길이 열려 결국 손가락은 샤토 가이얄의 작은 탑 밑까지 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게다리처럼 손가락을 세워 성벽을 기어올 벽이 갈라진 틈 사이로 올라가 마법
사가 기다리고 있는 작은 창문 쪽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