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둘러메고 노을 담으려 노을 쏟아지는 산하를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 노을을 주제로 하여 다도해, 서해, 제주도로 노을 내리는 곳을 부지런히도 따라 다녔다.
노을, 그 속에는 별별 무지개가 다 만들어진다. 보는 곳에 따라, 노을 내리는 곳에 따라 주변의 환경에 따라 시시철철 수 만 가지 빛의 색깔을 다듬어 낸다. 노을 그것은 황혼 한나절 하늘이라는 거대한 화폭에 담겨지는 색채의 무릉도원이고 찬란한 만다라의 세계다. 어떻게 그리도 심상 얼얼한 장엄을 펼치는가.
바다가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는가.
산 노을이 새색시 다홍치마에 소담히 담겨 편안하게 잘 익은 노을이라면 바다에 쏟아지는 노을은 바다를 불 태워 버리려는 용솟음의 질펀한 불바다다. 다도해의 노을은 끌고 가는 섬들이 기가 막히다.
노을은 물이 있어야 금상첨화다. 어차피 해는 서산으로 지는 것. 카메라의 앵글도 서쪽 땅을 향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기에 내 눈도 해 질 무렵이면 서 쪽 땅을 지향하는 사시가 된다. 노을이 내린 바다를 바라다 볼 때 불타는 빛의 화염에 나를 태우고 싶은 욕망이 섬광처럼 내달린다. 그 순간만은 망념에 시달리는 세상살이를 잊을 수 있다.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라. 굴원의 그 유명한 <어부사>의 한 구절이다. 나는 굴원이 보지 못한 뜨겁게 불타는 붉은 노을 잠긴 바닷물에 마음을 담궈 세정의 온갖 비린내 묻은 마음의 땟국물을 흔적 없이 지워 낸다.
그런데 노을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현상 확대한 뒤 잘 생긴 그림틀 속에 놓고 지인들 보고 한 점만, 딱 한 점만 가지시라고 하면 여자들은 해금강 초입 도장포 내려가기전 언덕배기에서 잡은 노을의 그림을 곧 잘 선택한다. 그곳의 노을 풍경은 화려함이나 황홀함이 없는 담담한 수채화의 군더더기 없는 노을이다. 산뜻한 느낌을 주는 노을, 산초향내 긴 여운이 남아도는 노을이라 표현 하면 될 지 싶다. 하늘이 그렇게 붉지도 않고 분홍빛에 가깝다. 물에 떨어진 노을의 잔영은 오히려 바다를 옥색비단으로 휘 감아버린 분위기를 연출 한다. 단지 뒤쪽 병풍처럼 둘러 처진 산자락과 오른쪽 새색시 아미처럼 잘 생긴 산자락의 끝이 바다에 발을 담그는 담박한 모습이다. 하늘 흐르는 연한 핑크빛과 바다에 가볍게 담은 옥빛의 소담함, 암묵으로 빚어진 산그늘의 처연함이 균형의 구도로 잡아 줄 뿐 노을의 흥취를 눈이 서걱거리도록 담아내지 못 하는 소박함이 담겨있다. 여자들은 대부분 이 담담하고 소박한 노을 그림을 잘 택한다.
반면에 남자들은 돌산도 군내리에서 작금 사이의 금오도 부근으로 점점이 흩어진 섬들을 배경으로 김발이나 통통배 사이로 불바다가 된 노을에 눈길을 멈춘다.
여수만의 수많은 섬들이 아득하게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그 모습들을 좋아 한다. 포구로 돌아가는 고깃배의 흐르는 동적 분위기에 감탄 한다.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빛이 부드럽게 흘려진 느린 셧트를 좋아하고 표준이상 70mm 위로의 대 구경에 묻어난 그림들을 즐긴다. 여자들은 조리개가 조여진 빠른 셧트나 광각렌즈의 섬세하고 품이 차지게 담긴 노을을 좋아한다. 그리고 부분이 아닌 전체를 담아낸 그림을 좋아한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을 노을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실소를 자아낸 적이 있다.
내 방에는 엉뚱하게도 군산 비행장 가는 중간쯤 이름 모르는 저수지에 저녁 그물 거두어들이는 쪽 배 탄 어부의 어깨위로 부드럽게 내리는 노을이 걸려있다.
차를 몰고 가다가 기가 막히도록 잘생긴 노을을 보고 허겁지겁 삼각대를 설치하다보면 마음은 급한데 한 뼘 남았던 붉은 해는 가을날 홍시 떨어지듯 산 너머로 꼴딱 떨어져버려 아쉬워하던 마음이 한두번 아니다. 눈으로나마 그 잘생긴 노을을 바라보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면 아른거리는 잔영에 한참을 흥에 취하여 실눈 뜨고 바라보다가 독한 한 잔 술로 여독을 풀기도 여러번 했다.
마음이 산만해져서인지 변산 채석강 만권 불태우는 노을이 오늘은 왜 이다지도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가을 들녘처럼 풍성하고 불타오르는 노을만큼이나 정열로 가득 차 있으면 좋으련만 하 이다지도 스산한 바람만 불어오는지.....
마음 다잡아보려 하지만 방정맞지 못한 갈등만 짙어지는 하루다.
푸 른 바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