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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득쫀득한 하루

독립녀 |2003.06.20 20:36
조회 19,183 |추천 0

오늘 소개팅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소개팅이라 긴장이 될법도 했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에 좀 심드렁 했던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나갔다.

 

 

"독립녀씨?"

"젤리씨?"

 

(젤리씨가 된 이유는 차차 말할 생각이다.)

 

 

나만큼이나 편한 마음으로 나왔는지 '심한' 케쥬얼 차림의

젤리씨가 웃으며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자유분방한 차림에 웃음이 쿡 하고 났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마치고 난뒤 느닷없이 던져진

 

"취미가 뭐에요?"

란 내 질문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만화 보는거요"

젤리씨가 냉큼 대답을 했다.

 

 

 

그순간부터 나는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는 내 만화얘기에 젤리씨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렇게 끝내면 안돼죠. 그럼 3권에서 깔아놓은 복선은 뭐가 되냐구요 도대체"

 

"그러게요. 차라리 확 죽여버렸어야 했어요."

 

"그렇죠 그렇죠. 그때 죽였어야지. 쇠꼬챙이는 액세서리야 뭐야"

 

 

 

젤리씨와 나는 손짓발짓에 침까지 튀겨가면서

정말 난리법석을 떨었다.

 

 

모르긴 몰라도

주변사람들은 우리가 10년만에 만난 단짝친구 정도 될거라 생각했을꺼다.

 

 

만화얘기로 의기투합한 젤리와 나는 자연히 말을 텄다.

 

 

 

"독립녀야 너 좋아하는 영화는 뭐냐?"

 

"나? 제8요일"

 

"헉... "

 

"왜?"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야.와~! 그 영화 정말 죽음이지 않냐?"

 

 

(젤리는  죽음을 좋아한다.좋은건 뭐든지 죽음이고 죽이고본다.)

 

 

"응. 나 그거보면서 너무 울어서 코끝이 다 헐었었어."

 

"캬~그렇지.눈물나는 제8요일...죽여 죽여~!!"

 

 

그렇게 죽이는 이야기들을 3시간 넘게 하고나자

배도 죽을만큼 고팠다.

 

 

 

아마 전화 한통이 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시간엔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둘다 죽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만 가봐야겠다는 말을 했더니

젤리가 잠시만 기다리라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30분쯤 지났을까

돌아온 젤리의 손에는 포장이 된 상자가 들려있다.

 

 

선물이라며 나에게 건내진 그상자를 뜷고 나온것은

코발트블루의 텀블러컵이었다.

 

 

 

"이게 뭐야?"

 

"컵 열어봐."

 

 

컵안에는

색색깔의 벌레 젤리가 목구멍까지 차있었다.

 

 

 

"밖에서 보기만해선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

그 속이 텅 비었는지 아니면 물이 들어있는지,것도 아니면 벌레가 들어있는지"

 

젤리가 씩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안에 든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거야"

 

 

 

 

 

 

 

 

지금 컵속에 있는 젤리를 먹으면서 생각한다.

 

딱딱한 컵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수 없듯

사람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섣불리 판단해버리지 말자는 말일거라고.

 

사람은 사람을 가슴으로 만나면서 살아야한다고.

 

 

 

 

 

밖으로 보이는 것들에 흔들리지 않고

그 사람의 안을 볼 수 있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혼자사는 이야기'의 우리들 ^-^)

 

그러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맣은 사람들을 만날수도, 느낄 수도 있을테니까..

 

 

 

 


역시 사람을 만난다는건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일부를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레곤플라이의 '사진' 이라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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