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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님.. 제 글 보시고 힘내세요!!

kobel |2007.09.13 00:37
조회 512 |추천 0

안녕하세요?

 

먼저 반가와요... 제 남편도 벨기에 사람이거든요.. 남편은 Namur에서 왔어요.. 남친분께서 플라미쉬쪽 분이라면 Namen이라면 알꺼에요..

 

전 퇴근후에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나면 한국 이야기가 그리워 톡에 와서 톡톡에 있는 글들을 읽으면서 아..요즘 한국에는 이런일들이 있구나.. 라고 주로 읽기만하는 사람인데 글쓴분의 남친께서 벨기에분이라니 오늘만은 주제넘겠지만 제 이야기좀 들려드릴려구요..(보통 한시간정도 읽고 나머지 시간은 남편과 이야기나 DVD를 보는데 오늘은 남편이 태국으로 당일 출장을 간 터라 늦게 집에들어와요)

 

저희가 지금 거주하는 곳은 싱가폴이구요.. 중국과 홍콩을 거쳐 이곳에 온지는 일년 육개월이 조금 넘었네요..

 

전 북경에서 공부를 했구요.. 대학을 다닐때는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사귈때 아주 좋았던 사람이라 2년6개월 정도 사귀고는 양가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겠다고 인사도 했었구요.. 처음 사귀었을때는 언어연수때라 같은 학교였는데 대학 본과로 들어가면서 서로 학교가 달라졌어요 그런데 제가 보는눈이 없었던건지 아님 제가 모자랐던지 당시 남자친구가 3년 정도 되던 시기에 같은학교 기숙사에 살고있는 다른 한국여자분과 저 몰래 교제를 시작했더라구요.. 어느날 성격이 맞지 않으니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이별후에 그것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 여자분이 이별의 이유라는걸 알았어요..

 

그 후론 한동안 남자를 사귈수가 없더라구요.. 주변에서 정말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주셔도 제가 자신이 없어서요.. 그렇게 약 2년간을 보냈습니다.

 

졸업후 상해로 취직이 되어 갔고 상해생활 6개월 정도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전 당시 LG전자에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Alcatel이라는 프랑스 회사에 다녔는데 두 회사의 공장이 마주보고 있었거든요.. 점심을 먹는데 남편이 말을 걸었어요.. 절 북경에서 봤다고.. 98년 프랑스 월드컵때였는데 네델란드에 4:0으론가 지고 그 다음 경기가 벨기에와의 경기였거든요.. 전 중국인 친구가 하는 카페에서 죽어라 소리지르며 응원을 했는데 그 모습을 이 사람이 아주 인상깊게 봤나봐요. 성격이 차가운 저는 "수작걸지미!"라고 중국어로 쏘아부쳤는데 그걸 알아듣고 "아니야 수작, 친구..친구"라고 어설픈 중국어를 하더라구요..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 동료랑 걸어나왔죠.

 

그런데 같이 있던 중국 친구가 제 남편을 너무 마음에 들어라 하는거에요.. 그래서 단둘이 만나기는 싫고 내 친구도 같이 만나자 라는 제안을 하며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엔 두 사람을 묶어주려고 그랬는데 열 손가락 꼽을만큼 만나다보니 제가 욕심이 나더군요..그래서 사귀게 되었어요..

 

사귄지 3달이 되어갈 무렵 한국에 놀러를 갔는데 그 해 유난히 따뜻했거든요, 스키타러 갔다가 빙판에 넘어져 남편 쇄골에 금이갔고 2달간 깁스를 하는바람에 더욱 가까워졌어요.

 

그 다음해 일월 저는 저희 친정 경제 사정이 너무 나빠져서 한국에 들어갔고 남편도 주재원 기간이 끝나 본국으로 들어갔죠.. 공항에서 같은날 헤어졌는데 전 사실 그게 우리의 이별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만나는 동안 한결같이 성실하고 보수적인 모습만 보여주었던 남편이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거리가 자연스레 우리를 헤어지게 만들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본국으로 돌아간후 매일 전화를 하더군요. 하루에 30~1시간? 그러다 4월달에 남편이 공항이라며 제 전화번호 하나 달랑 들고 찾아왔더라구요.. 그리고 저희집에 인사를 시켜달라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부모님께 소개 시켜드렸는데 의외로 좋아하시더군요. 물론 짧은 한국말에 주는대로 넙죽넙죽 잘 먹는 모습이 반감을 주지는 않았겠죠.. 저와 함께 벨기에로 돌아가겠다고 허락 안해주시면 그냥 한국에서 사는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의 모습이 듬직해 보였는지 아님 그 기를 꺾을 요랑이 없으셨던건지 반대없이 벨기에에 들어갔어요.

 

그 해 10월 28일에 예식을 올렸고(벌써 결혼한지 만으로 8년이 다 되어가네요) 한 일년정도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았습니다. 처음엔 남편도 시부모님도 같이 사는것에 반대하셨죠, 시어머님께서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계셨거든요. 제가 시어머니의 우울증을 고치겠노라고 남편에게 장담을 하고 살게 되었어요. 당시 전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였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를 끝내면 집에와서 서툰 프랑스어로 시어머니와 대화를 시도했어요. 이곳 저곳 다니면서 말도 안되는 프랑스어로 사고도 많이 치고.. 통학기차 타고 오다 졸아서 어디 이상한 곳에 내리기도 하고.. 사고뭉치였죠 그런데 제 사고 수습을 하시면서 시어머님의 우울증이 치료되셨어요. 또 결혼하고 2개월도 안되어서 첫 아이를 덜컥 임신해 버렸거든요.. 손자를 너무 기다리셨던 시부모님이라 많이 기뻐해주시고 축복해 주셨어요.

 

임신 6개월쯤 되니 남편이 상해로 다시 발령을 받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에는 당시 자리가 없고 그나마 한국이랑 가까운 중국에서 거주하는게 저한테 더 좋을꺼라 생각하고 한 결정이더군요.. 그리고 당시 친정이 어려워 친정엄마가 이모네 집에 살고 있었는데 같이 살면 좋겠다고 모시고 살자며 엄마를 초청하더군요.. 결과 지금까지 친정엄마와 같이 살고있어요. 육아에 전적인 도움을 주시고 있는 상태구요.. 남편말로는 돌아가실때까지 모시고 싶다네요.

 

아무튼 9월 18일 첫 딸 유미를 낳았죠. 남편은 1개월간 휴가를 받고 제 몸조리 다 줬구요. 친정엄마한테 미역국 끓이는 법 배워서 미역국 끓여주고, 모유수유에 좋다고 돼지족을 구해다 고아주고, 부기 빼야한다고 호박 고아주고 자기도 피곤해서 눈에 다래끼가 올라오는데도 그렇게 제 몸조리 해 줬어요.. 작년에는 둘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역시 몸조리 다 줬구요

 

제가 실질적인 가장이라 남동생 두명 학교를 책임져야했는데 남편은 제가 번 돈이니 어떻게 쓰던 그건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동생 둘 대학 졸업때까지 아무 소리도 한적이 없구요 한 명은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중국 연수 2년 다른 동생은 중국에서 5년 이렇게 공부시켰는데 오히려 목돈이 들어가는 학기초에는 제법 큰 액수를 주면서 "나는 보는 안목이 없으니 가방이나 하나 사"이러고 동생들 학비도 보태주었죠.. 첫째 동생 결혼때도 부조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남편이 동생을 불러 천만원을 주며 "가장 멋진 허니문을 다녀오라"며 줬다네요..

 

쓰다보니 너무 내 자랑만했어요.. 욕먹겠다..그런데 제 주위에는 남편처럼 착한 외국인들이 참 많아요. 기혼친구들은 가족에 잘하고 미혼친구들은 두 부류더군요 신중히 사귀고 길게 가는 사람, 결혼은 절대 배재하고 자기 좋다는 사람이랑 연애만 하는 사람..

 

그런데 제가 이렇게 길게 글을 쓰는 이유는 외국인은 모두 난잡하고 경우없고 알게모르게 한국을 무시한다는 그런 선입견이 싫어서예요. 모든 외국인이 다 제 남편같지는 않죠. 정말 쓰레기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의 형편없는 사람들도 봤구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과 같은 나라 사람들도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죠. 우리도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만 있는건 아닌것 처럼.

 

솔직히 우리 두 사람 한국을 너무 좋아하지만 최근엔 한국에 좋은 자리도 생겼지만 지금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중이에요.. 글쓴님의 리플을 보니 한국은 그저 저희의 동경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글쓴님.. 남친분께서 외국인이라 사귄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외국인인거자나요.. 한국사람처럼 같은 빨간피가 흐르고, 같은 맛을 느끼고, 같은 색깔로 보는 다만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힘내세요!!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 좋은 결실도 맺어지길 바래요.. 그리고 혹시 속상한일 있음 메일보내요..

 

끝으로 무료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다보니 전부 제 남편 자랑이었는데요.. 정말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절 너무 사랑하셔서 보내주신 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에요..

 

다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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