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
소재와 묘사 면에서 아마도 가장 후각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베스트셀러 ‘향수’를 스크린에 옮기면서, 독일 감독 톰 티크베어가 제일 먼저 맞부닥친 과제는 그것이었을 것이다.
후각을 영화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티크베어가 동원한 방식은 시각을 교란하고 청각을 마비시켜 상상 속의 후각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냄새를 맡는 코를 먼저 보여준 뒤 냄새를 풍기는 대상들을 클로즈업해서 아주 빠른 속도의 편집으로 연결시키는 동안, 음량을 올린 음악은 귀를 짱짱 울리며 화면에만 몰두하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향수’는 이런 직조술의 도움으로 극 초반 불결한 시장 한 복판에서 태어난 아기를 비출 때 온갖 비린내를 풍기는 듯 생생하다. 그러나 후각은 가장 마비되기 쉬운 감각. 향수를 처음 쓰느라 마구 뿌리는 바람에 결국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게 되는 시골뜨기처럼, 같은 화술을 남발하는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냄새도 풍기지 못한다.
18세기 파리. 그루누이(벤 위쇼)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고아원에 맡겨진다. 천부적인 후각을 타고난 그는 거리에서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에 접한 뒤 그 향기를 간직하고 싶어한다. 향수업자 발디니(더스틴 호프먼)로부터 향수제조법을 배워나가던 그루누이는 여인의 향기를 소유하려는 꿈을 이루려 향수의 본고장인 그라스로 떠난다. 광적으로 자신의 꿈에 집착하던 그루누이는 아리따운 처녀들을 납치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자신만의 향수제조법을 시험하기 시작한다.
재능에도 색깔이 있다. ‘롤라 런’ ‘공주와 전사’ 같은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티크베어는 분명 뛰어난 테크니션이다. 그러나 서술보다는 스케치에 강한 그의 스타일은 기이하고 유장하고 신화적인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그루누이의 어린시절을 다루는 도입부와 발디니 밑에서 일하는 전반부는 제법 흥미롭다. 특히 그루누이가 처음 만난 발디니 앞에서 최고 인기 향수를 직접 만들어 보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냄새 한 번 맡는 것만으로 성분을 분석해낸 뒤 재료들을 눈대중으로 대충 섞고도 인기 향수를 똑같이 만들어내는 그루누이의 모습은 그 광경을 목격한 더스틴 호프먼의 탁월한 반응 연기의 도움을 받아서 대단한 재미를 준다.
그러나 연쇄살인이라는 자극적 모티브에도 불구하고, ‘향수’는 그루누이가 그라스로 가면서부터 맥이 빠지기 시작한다. 군중들이 경악스런 행동을 벌이게 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도 원기를 찾지 못하는 이 영화는 결국 충격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해프닝처럼 막을 내린다.
죽이는 자에게도 죽는 자에게도 감정을 이입하기 쉽지 않은 이 이상한 영화는 발디니를 제외하면 대부분 박제된 듯한 캐릭터들의 마임 연기 같은 행동만 두시간 반 내내 잔뜩 늘어놓는다. 성적(性的) 상징에서 종교적 해석까지, 풍부한 함의를 품고 있었던 원작은 스크린을 거치면서 이해하기 힘든 괴담으로 남아버렸다.
기괴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영화에는 음울하고 으스스한 공기가 서려 있다. 자기의지를 상실한 채 행동하고 후회하는 영화 속 인간들 묘사에선 언뜻 허무주의적인 분위기도 풍긴다. 그러나 그 모든 묘사에도 불구하고 ‘향수’는 염세적일 수가 없는 영화다. 지상 최고의 향기가 여자-인간의 냄새라고 주장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출처 : 이동진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