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김민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한때는 김민선보다 낙타가 더 이쁘다고 생각한 적까지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해 심드렁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녀의 처지가 가련하여 온 힘을 다하여 지켜주고 싶습니다. 아야나미 레이가 신지를 위해 몸을 던졌던 것처럼.
2008년 5월 광우병 파동 당시 배우 김민선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 수입하느니,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다.”
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에이미트 측은 소장을 통해 “김민선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선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곤 의도적으로 허위·왜곡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회사의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그녀에게 3억원의 소송을 냈습니다.
저는 여기서 대체 허위는 무엇이고 사실은 무엇인지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말은 해도 되고 어떤 말은 해서는 안 되는 지 무서워서 입을 다물어야 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말들도 허위여부를 따져서 유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하느니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I should not hesitate a moment to prefer newspapers without a government.)” -토마스 제퍼슨
“머리카락을 자르느니 목을 자르겠다”(可斷頭 不可斷髮) - 최익현
“길을 내주느니 목숨을 내주겠다.(戰死易假道難)” -동래부사 송상현
“셰익스피어를 포기하느니 인도를 포기하겠다.(Will you give-up your Indian Empire or your Shakespeare, you English . . . we cannot give-up our Shakespeare)” -토마스 칼라일
“거만하게 되느니 고루한 편이 되겠다.(與其不孫也 寧固)” -공자
“소의 꼬리가 되느니 닭의 대가리가 되겠다.” -미상
“앓느니 죽겠다.” -아무개
이쯤 되니 더 헷갈려서 다음과 같은 말들은 어떤 게 허위인지 더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치하에서 사느니 히틀러 치하에서 살겠다”
VS.
“히틀러 치하에서 사느니 이명박 치하에서 살겠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느니 쥐새끼를 대통령으로 뽑겠다”
VS.
“쥐새끼를 대통령으로 뽑느니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겠다”
“전여옥과 사느니 이영자와 살겠다.”
VS.
“이영자와 사느니 전여옥과 살겠다.”
(이영자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만 아직 죽을 각오가 돼 있지 않습니다. 제발 한번만 봐 주십시오.)
이젠 에이미트 사장님께 어느 것이 더 위험한 진실인지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예쁘고 힘없는 여배우를 공격하느니 광우병 위험있는 소고기를 안 먹는 시민을 공격하겠다.”
VS.
“ 광우병 위험있는 소고기를 안 먹는 시민을 공격하느니 예쁘고 힘없는 여배우를 공격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