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을 일삼은 자들의 말로는 파멸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다. 그러나 종종 악행을 일삼은 자들이 영웅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를 본다. 전설적인 은행 강도 존 딜린저(1903~1934)가 그런 경우다.
경제 대공황기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암흑기였지만 가진 자들, 그리고 가진 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갱들에게는 황금기였다. 이 시기 활약했던 갱들은 은행을 털면 돈은 물론 대중의 인기를 부수입으로 거머쥘 수 있었다.
경제 대공황기, 대중들은 은행을 증오했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백의 명작 <분노의 포도>에 묘사된 은행은 게걸스럽게 이윤만을 먹어 치우는 괴물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갱들에게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갱들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존 딜린저는 바로 이런 시대를 살아갔다.
<히트>, <콜래트럴>, <마이애미 바이스> 등 대도시를 무대로 대중의 고독과 남자들만의 끈끈한 의리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과시했던 마이클 만 감독은 존 딜린저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 목록에 끌어 들인다. 이 작품이 바로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다.
마이클 만은 존 딜린저라는 은행 강도에게 꽤나 매료된 것 같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묘사된 존 딜린저는 전혀 위험스럽지 않다. 연인인 빌리 프리셰를 유혹하는 딜린저의 모습은 무척이나 로맨틱하다. 게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수용소에 감금되는 그 순간에도 수사관의 어깨에 기대어 농담을 건넨다.
오히려 딜린저 체포에 동분서주하는 수사국 요원들이 더 위험스러워 보인다. 이제는 FBI의 전설이 되어버린 존 에드거 후버는 존 딜린저를 빌미로 예산 증액과 조직 확대를 꾀한다. 그래서 딜린저 체포를 위해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던 멜빈 퍼비스 요원에게 수사 총지휘를 맡긴다. 후버는 퍼비스 요원에게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자비한 수사 기법까지도 묵인한다.
멜빈 퍼비스가 지휘하는 수사팀이 동원하는 방식은 말 그대로 무자비하기 이를 데 없다. 도청과 감청, 용의자에 대한 가혹행위는 기본이고 딜린저 주변 인물들의 약점을 쥐고 흔들며 협조를 강요한다. 수사 당국은 존 딜린저를 공공의 적이라고 규정하지만 수사관들의 행태는 누가 공공의 적인지를 의심케 한다.
마이클 만이 묘사한 딜린저는 대중의 영웅이다. 이는 수사 당국에 체포된 딜린저가 인디애나의 한 교도소로 이송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수감 되는 딜린저를 보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이 사람들은 딜린저의 모습을 보고 열광한다. 딜린저는 그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하고 미소 짖는다.
사실, 딜린저는 정말로 대중의 우상으로 추앙 받았다고 한다. 마이클 만의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은행 돈만 노렸으며 인질에게는 깍듯한 태도를 보였고, 무엇보다 갱들의 필수 덕목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한 시대를 살아간 갱스터
어떤 면에서 존 딜린저는 경제 대공황기의 사회적 모순에 일찍 눈 떳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딜린저는 동네 가게에서 50달러를 훔치려다 붙잡혀 10년간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다. 이 사실은 영화에서도 딜린저가 연인인 빌리 프리셰를 유혹할 때 잠깐 등장한다. 모든 갱들이 그렇듯 딜린저 역시 감옥 생활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딜린저는 어디까지나 은행 강도다. 근대 법치국가에서 범법행위를 저질렀으면 이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한다. 마이클 만 역시 작품 내내 딜린저에게 연민 어린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렇지만 마이클 만은 무덤덤한 결말을 통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존 딜린저는 살아서는 영웅이었고 죽어서는 신화가 됐다. 딜린저의 신격화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전신인 수사국이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무자비한 방법으로 범죄 소탕에 나선 수사당국이 역설적으로 은행 강도 한 명을 신격화시킨 것이다.
이런 일은 한 세대 뒤, 라틴 아메리카에서 되풀이되기에 이른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남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회혁명을 주도했던 체 게바라 역시 딜린저와 마찬가지로 살아서는 영웅이었고 죽어서는 신화가 됐다. 체게바라의 신격화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누가 공공의 적인가? 강도 행각을 통해 가진 자를 중심으로 구축된 금융질서를 교란시키는 존 딜린저와 위험천만한 사상으로 미국의 뒷마당을 위협하는 체 게바라였던가? 아니면 법질서 확립과 국가안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워 온갖 무자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미국의 정부기관인가?
마이클 만이 묘사한 딜린저는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퍼블릭 에너미>의 결말은 갱스터 무비가 의례히 빠져버리는 함정, 즉 천박한 낭만주의나 교훈적 도덕주의를 훌륭하게 피해간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늘 선 굵으면서도 섬세한 필치를 자랑했던 마이클 만 감독의 연출력이 무르익을 대로 익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