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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나신곳)

김민희 |2009.08.26 10:49
조회 411 |추천 1

 

-김대건 신부님 출생지-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1821년 8월 21일-1827년)

"솔뫼"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 내포(內浦)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내포는 남으로는 광천의 오서산을,서북으로는 덕산의 가야산을,서로는 큰 바다를,북으로는 경기도 해읍(海邑)과아산만을 경계로 하면서 서해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온 평야지대이다.내포에 한복판에는 삽교천이 흐르고있다.삽교천은 선사시대부터 바다를 통하여 건내지는 문화를 내륙으로 전하는 '문'의 구실을 하였다.삽교천에 인접해 있는 "솔뫼"는 일찍부터 외국 문물을 접했다.따라서 이곳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육로를 통하여 복음이 전하여진 이승훈(1784년) 이전으로 미루어 지며,그런 까닭으로 한국 천주교 초창기에 이곳 내포 출신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전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고 순교를 하는 굳은 신앙의 모범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과 어머니 장흥 고씨(울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대건 신부의 아명(兒名)이 재복(再福)이었던 점으로 보아 아마도 형이 하나 있었으나 어려서 죽어 족보에 오르지 못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김 신부의 족보명은 지식(芝植)이고 대건(大建)은 관명(官名)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다.김 신부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고 난식(蘭植)이라는 보명을 가진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충청도 내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솔뫼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 곧 송산(松山)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하여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하여 1982년에 대전교구는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고,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2004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생가를 복원,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을 이루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도 해미읍성에서 옥사하였고,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1839년 기해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김진후의 둘째아들이자 김 신부의 조부인 김택현이 가세가 기울고 더 이상 신앙을 지키기 어려워지자 가족이 **고향인 충청도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동을 거쳐 용인 땅에 정착한 것은 대략 1827년경이었다. 당시 그의 가족이 정착하여 교우촌을 일군 곳은 골배마실이 아니라 남쪽 산너머에 있는 '한덕골'(寒德洞,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묵4리)이었다.

 

-설명-

*김진후(비오)-성인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증조부이다. 하급 관리로 있으면서 지위와 재물을 탐하던 자였는데, 어떤 계기에서인지 50세에 천주교에 입교, 신앙생활에 몰두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때부터 가해진 시련으로 4 ·5차례나 구금 ·석방이 되풀이되면서 고문을 받았으나 신앙을 지켜왔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되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배교(背敎)를 약속하고 유배되었다. 귀양에서 돌아온 뒤 배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또 붙잡혔는데, 끝내 배교하지 않고 10여 년의 옥고를 치르다가 옥사하였다. 그는 옥중에서도 굳은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수감자들을 감화시켰다.

 

**김대건 신부 가족이 언제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용인으로 이사를 하였는지 문헌상으로는 밝힐 수는 없다. 단지 김대건 신부가 1821년에 태어났고, 1827년(정해년)에 전라도 곡성, 경상도 상주, 충청도와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신유박해 이후 전국적인 규모의 박해가 났는데 이 때 김 신부 가족들이 솔뫼를 떠나 서울로 그리고 용인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러나 김 신부의 진외 6촌인 최양업 신부는 10세가 되던 1830년 충청도 청양 다락골을 떠난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한 것을 보면 1830년경에 충청도 신자들이 경기도로 이주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김 신부 집안도 이 무렵에 서울을 거쳐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했을 수 있다. 그래서 김 신부가 솔뫼를 떠난 것은 정해박해가 발발한 1827년부터 최양업 신부 집안이 이사한 1830년 사이, 즉 7-10세 사이가 될 수 있다.

 

(사진을 제가 찍은것이나 설명은 옴겨적었습니다~)

 

1/2 일 해맞이 가족 여행을 떠나 돌아 오는 길에 잠시 들러 보았습니다.

특별히 성지에 대한 지식이 없이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나신 곳이란것만 알고 찾아간 곳~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으며~

잘 관리 정돈된^^

항상그렇듯 무언가 알고 그곳을 찾는 것과 어련풋이 알고 그곳을 찾는것에 차이는 큰듯하였습니다~

이 글이 성지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좋은 하루들 되십시요^^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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