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벼르고 벼르다가 이번주 주말에 보러가기로 했는데, 이번 주말부터 상영을 안한다기에 최대한 시간을 내서 주중에 힘겹게 보러 간 영화...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을 그린 영화, 21년의 나이차, 소설을 영화화 한 영화, 명작...
아무튼 붙는 소개 말이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기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보러갔었다.
하지만...영화를 보고 나와서의 첫느낌은... 뭐지?...였다.
사랑을 기대했기에 전혀 사랑이야기가 아닌 것에 대한 강한 실망감이 있었나 보다.
사랑영화... 전혀 아니였다.
그 어디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입시켜 봐 줄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말이다.
무엇이 사랑이란 말이였단 말이였을까?
한나에 대한 소년의 강한 끌림? 글쎄 운명적 만남이나 필연에 의한 서로의 강한 끌림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랑 전혀.. 아님... 여자의 성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진 10대 소년의 욕구가 어떻게 끌림으로 풀이 되어지는지...
한나가 옷갈아 입는 모습을 살짝 훔쳐보며 시작된 소년으로서의 당연한 순간의 욕구가. 끌림이고
운명적 사랑이라고 어떻게 말하여질 수 있지?
소설에서의 묘사와 상황은 어땠을지 몰라도, 영화에서 묘사된 그 장면을 가지고
운명적 사랑을 느낀 장면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강한 성적호기심을 지닌 열 다섯 소년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로 하는..
삶이 아주 고단하고 어두운 상황에 있는 한 여자의, 서로의 필요에 의한 관계의 시작일뿐이였다.
첫느낌은 분명 영화에 대한 강한 실망감이였는데, 왠지 이상하게도 하루종일 영화의 장면과 그들의 삶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인간극장같은 것을 보고 온 느낌이 내내 들었다.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원하고 기대한 사랑에 대한 어떤 느낌과 공감을 주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무슨 사랑 영화? 하며 불쾌하게 영화를 보았지만,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 해 보게 해주는 영화이고, 영화적으로는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분명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마이클(랄프 파인즈)의 아침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첫 장면에서 여자의 대사를 통해, 마이클은 사람을 사랑할 수는 결코 없는, 공허를 그리고 상처를 지닌 영혼이 되어버린 인간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함께 밤을 보낸 여인의 말과 태도를 통해 그리고 헝클어진 이부자리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그린 이 장면을 통해
한나의 존재가 소년에게 어떤 혼란과 아픔을 주었는지, 그 상처로 인해 이미 인간에 대한 신뢰전체를 잃어버려,
얼만큼 영혼마저 피폐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분명히 와 닿았다.
시작이 단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건 성욕으로 시작되었건 어쨌건 간에, 10대 소년이였던 마이클은 그녀에게 빠져들어 그녀가
그의 우주 전부가 되었었구나 하는 건 공감 할 수 있었다.
<소년의 성홍열과 같은 욕정 혹은 사랑?>
15살의 마이클은 성홍열이 시작되어 기차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내려 길에서 구토을 하며 힘들어 한다.
그것을 우연히 본 한나는 소년의 입을 거칠게 닦아주며 나름 그녀의 식대로 그를 도와주며, 바쁘게 집앞을 청소한다.
(친절은 하지만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한나의 행동을 통해, 참.. 삶이 팍팍한 사람인가보다라고 느끼게 해 준다.)
청소를 대충 끝낸 한나는 계속 힘들어 하는 소년을 향해 다가가 꼭 껴안아 주며 소년을 진정시키고는, 눈을 바라보며 됐다고
소년을 달래며 집으로 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포옹 속에서 소년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며 그녀를 응시한다...
극도로 마른 삶을 살아가던 두 영혼이 이때부터 서로의 동질성을 감지하고 사랑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무언가가 찌릿했던걸까?
(글쎄..암튼 내가 시종일관 느낀 두 인물에 대한 느낌은 마르고 피폐하고 공허함에 쩔어 있는영혼들 같았다
한나는 단절과 고립 속에서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힘겹게 버티고 있는 영혼이였고,
소년은 상당히 딱딱하고 엄격한 부모와 가족들 틈에서 삶이 사랑으로 채워진 무엇이라기 보다는 의무와 격식과 율법이라고 의식하며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삶에 대해 상당히 황폐함을 느껴버린 듯 했다 ...)
암튼 포옹 뒤에 그녀는 힘들어 하는 소년을 집까지 바래다 준다...
그리고 며칠 뒤 성홍열에서 회복된 소년은 한나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꽃을 사들고 그녀를 방문한다.
그리고 함께 나가자는 그녀의 말에 그녀를 기다리며 우연히 그녀의 개인적인 부분을 훔쳐보게 된다
한나는 소년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다.
(케이트 윈슬렛의 눈빛과 생각하는 표정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역시 이 영화에서의 그녀는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터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한나를 찾아 온 소년을 향해 그녀는... 이걸 원한 것 아니였냐며 그의 감추어진 욕구를 받아들여준다....
사랑이라기 보다는 욕구를 받아들여주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말이다...
그녀가 이런 행위를 하는 데에서는 정말 어디에서도 사랑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그냥 소년의 호기심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내는데 지나지 않았다. 어쩌면 갇혀진 그녀의 삶에 대한 작은 출구로 그를 이용했을 수도...
21년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그녀의 태도를 통해 그녀가 일상적인
삶의 범주의 의식이 있는 여인은 아니란 걸 느낄 수는 있었다.
그런데 영화 전체 어디에도 그녀가 왜 그런 인식의 소유자로 살아가는지?
현재의 그녀가 되게끔 만든 그녀의 아픔이나 그녀의 삶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왜 문맹인지도 왜 그런 상황 속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세상과는 닫혀 있었기에 세상의 관념이 그녀에겐 전혀 없는 그런 사람같았다.
나중에 나치의 감시원이 되어서 경악을 금치 못할 행동을 하고서도 반성이나 인식을 전혀 못하는 것도 어쩌면
그녀에겐 세상과 소통이 없는, 단절로 인해, 세상의 인식이나 가치관이 전혀 스며들어 있지 않은 그런 사람으로 되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들과 소통하며 세상 속에 살아가기에 세상의 관념과 가치와 범주와 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자유의지가 아닌
기대의지에 의해 살아가기에, 이 영화 전반에서 나이차를 상당한 이슈로 거론하며, 사랑을 운운하며 영화를 홍보하고 있었는데,
정작 주인공인 그녀에겐 그런 관념이 전혀 없었다.
어린 소년과의 관계에 대한 도덕적 가책도,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몰고가는 감별을 하는 행위의 양심적 가책도 그녀 안에는 전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소년을 사랑했을까? 그저 유희를 위한 도구처럼 여겨졌었다 그녀에게 소년은...
그리고 그녀는 떠날때도 자신이 문맹이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승진한 회사를 떠나기 위해 그냥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난다
떠나는 그녀에게 소년은 정말 그녀의 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였다.
소년이 느낄 상실감과 아픔과 그녀에 대한 사랑을,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소년에게 그녀는...
性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눈뜨게 해 주었고, 사막과 같은 소년의 삶에 유일하게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쾌락을 주는 존재였기에
학교를 마치고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소년의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사랑이라기 보다는 삶의 도피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욕구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한때의 환상은 아니였을까?
암튼 소년은 그녀를 그의 삶의 중심에 두고 그녀에게 강하게 집착한다...
하지만, 여인은 소년에게서 책을 읽어달라는 요구를 하며 소년의 존재를 통한 책의 세계에 오히려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계 전에 우선 책을 읽어 달라며, give and take식의 묘한? 거래관계를 보여준다.
한나는 문맹이고, 그 사실을 드러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이고, 자신의 약점을 세상에 들키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세상에서 자신을,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길이라 생각하며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소년에게서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영혼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관계에 서 있어야 사랑이 가능 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어디와도 소통이 없었고, 소년과도 육체적 관계는 있었으나, 자신의 삶과 자신의 영혼에 대한 소통은 전혀 없었다.
그게 무슨 사랑?...소년은 욕정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점 더 그녀를 보기를 원했으나 그녀는 소년을 전혀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에게 나체로 있었으나 그녀 자신을 조금도, 전혀 보여준 적은 없었다...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 홍보문구가 어색했다...
책을 정말 좋아하는 한나의 행동을 통해 그녀가 지나치리만큼 예민하며 예술세계에 대한 강한 공감력이 있는 맑은 영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 맑은 영혼이 세상과 소통방법을 모르고 관계하는 법을 모르고, 삶에 갈증을 느끼다가 소년이 읽어 주는
책을 통해 나름 영혼의 안식을 얻는 것 같았다..
교육을 받을 수 없는 그녀의 열악한 환경과는 닮지 않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영혼을 지닌 또 하나의 이방인이였던듯 하다 그녀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어줄땐 얼굴을 붉히며 불결하다며 읽기를 제지 하던 그녀가
정작 자신이 소년과 나누는 행위에 대한 인식은 없는 것도 참 묘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가 잠깐의 일상의 탈출을 위해 소년의 요구대로 함께 여행을 한다...
소년은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그저 그 상황 속에서 잠깐의 한가를 받아들이는 듯 했다.
함께 식사를 한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엄마는 맛있게 드셨냐는 말에 "네" 하고 대답을 하고는
그녀에게 달려가 진한 키스를 한다...
여기서도 한나는 엄마로 비춰지는 그 상황에 대한 인식에 대해 주눅이 들기보다는
메뉴판을 받아들며 읽지 못해서 당황해 하는 감정의 동요가 더 크게 부각되어졌었다.
문맹이라는 사실과 21살 어린 꼬마와 연인이라는 사실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우리의 가치관과 허용의 범주를 넘어선 걸까?
여행의 여정지 중에서 교회에서 들려나오는 합창 소리에 끌려 교회안으로 들어가 있는 한나...
이장면에서는 정말 그녀의 영혼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음악과 맑은 세계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것 같은 그녀는, 그 소리에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글썽이며
그 곳에 올 수 있게 한 그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음악에 잠긴다.
그 잠시의 환희의 순간이 지나고, 역무원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하자 그녀는 떠남을 생각한다.
승진을 하게 되어 사무직으로 가게 되면 문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니까 떠남을 결심한다.
소년을 떠나는 것이 문맹이라는 치부가 드러나는것보단 견디기 쉬웠던 것이다.
그녀에게 정말 소년이 그렇게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였다면 정말 사랑영화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평상시에도 그녀맘대로 그를 대했던 그녀는 헤어짐도 그녀 쪽에서 결정하고 어떤 무엇도 없이...
그녀 식대로 소년을 마지막으로 구석구석 닦아주며 마치 자신의 흔적을 닦아내기라도 하는 듯 소년을 닦아주고
소년의 눈빛에 끌려 마지막 관계를 하고는, 아침이 되어서 가방을 들고 떠나 버린다....
소년의 감정이나 소년의 삶에 미치게 될 어떤 생각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그녀 자신의 삶만을 바라보는 여자였던듯하다.
한나가 떠난 날 밤 소년은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내며, 감당 할 수 없는 상실감과 아픔으로 진통한다...
사랑했다면, 소년이 느끼는 아픔이 느껴져야 되는 건데, 그녀에겐 소년의 상실감이 어떠할지 그 배반감과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이 밤 이후로 소년은 더이상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 버린 듯 했다.
전부였던 것이 -그게 사랑이건 욕정이였건- 한 순간에 어떤 말도 없이 사라진 상실감을 감당하기엔
소년은 너무 어렸었던 것 같다. 그 상처로 평생을 닫힌 영혼으로 절둑거리는 영혼으로 살아가게 되니 말이다.
사랑하던 사람이 그것도 계속될 것 같던 사랑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유도 알 수 없이 사라지는 상실감을 배반감을
이겨 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영혼 전부를 다 내 놓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영혼 전체의 깊은 상처를 입게 되는 거니까...
그 이후로는 사람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어지는 것은, 그래서 영혼 깊이 상처를 입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되어지는 어른 마이클의 삶의 첫장면이 이해되어지는 장면이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의 사랑이나 그 크기를 느끼지도 믿지도 못하니 알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몇 년 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된 한나를 다시 보게 된다.
문맹을 감추기위해 직장을 떠나고 그녀가 선택한 직업은 포로 수용소의 감시원이였다.
유태인 학살을 자행하는 포로 수용소의 중심에서 죽음과 삶의 길을 가르며 사람들을 선별하는 것이 일이였던 감시원이 된 한나..
그녀는 그녀가 인식하지 못했던 그녀의 업무의 잔인함과 비도덕성에 의해 세상의 지탄과 혐오를 한몸에 받는
인간이하의 잔악한 범죄인으로 법정에 선다...
유태인 학살의 주범이 과연 일개 감시원인 한나와 같은 사람이였을까?
그녀는 생존을 위해 직업을 선택했고, 또한 세상의 어떤 관념과 가치 체계에도 속하지 못했던 사람이였기에
유태인 학살이라는 세상의 거대한 범죄에 있어서도, 또 그 일을 직접 실행했던 그녀였지만,
그녀는 우리와 같은 정상적인 판단의 가치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겐 그저 생존을 위해 그녀가 역무원을 하며 표를 끊었던 일처럼, 위로부터 선별해서 수용소에 새로운 죄수를 받아들일 자리를 만들라는
명령에 대해 그 명령의 가치를 떠나, 그녀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 능력이 더 중요했던 사람이였던 사람이였을 뿐이였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의 가치체계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이방인인 그녀가 그녀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이나
세상의 양심과 도덕적 행위에 관심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런 것을 생각할 삶의 에너지가 그녀에겐 없었던 듯 하다.
그녀에게는 나치의 행위의 가치성보다는, 그 일을 행하며 받아내는 세상의 그녀에 대한 행위 능력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자신의 삶 이외엔 생각할 에너지를 지니지 못한 사람이였으니 말이다...
법정에서 ...
결국 그녀는 자신이 서명하지도 않은 교회 학살의 주동인물임을 시인하는 서류 앞에서 자필 대조를 거부하고 만다.
문맹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싫어서 말이다. 그리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만다.
내내 재판과정을 지켜보던 소년은 그녀가 문맹이라는 것을 추론을 통해 확신해 가지만
눈물을 흘릴뿐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문맹임을 밝히기만 해도, 재판의 판결이 전혀 달라지는 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서질 않는다...
그저 바라볼뿐 어떤 행위도 하지 못하고 만다...
왜그랬을까?
그녀의 배반에 대한 용서치 못함때문이였을까?
아니면, 나치로 세상의 지탄의 중심에 선 그녀를 옹호하며 아는 척하기엔 세상이 두려웠던 것일까?
면회를 신청하여 감옥으로 가지만, 결국은 그녀를 만나지 않고 돌아옴으로써 그의 갈등은 종지부를 찍고
그녀는 20여년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이게 이해가 될수있을까? 아무리 배반감이 크고, 아무리 세상이 두려워도... 사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수십년을 감옥 속에서 인생을 소모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방관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손에 난 작은 상처하나에도 마음이 아픈것일텐데,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을 감옥에 있게 되는 데, 어떻게 자신은 일상이 가능하다는 말일까?
소년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실상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욕정에 대한 집착과 상실에 대한 분노가 그녀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감정의 중심이 아니였을까?
사랑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떠날 수 없고 어떤 경우라도 아픔을 줄 수 는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은 자신의 영혼이 상하는 고통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이런 상황들을 담담히 그려내 보여주며, 서로 사랑했던 사람의 가슴아픈 사랑영화란다...
내가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들도 없으면서 사랑이라고 하니 나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랑이 없는 사랑영화라...
한나가 감옥에 있은지 십여년이 흐른 뒤 이혼을 한 40대의 중년이 된 소년은...
그녀를 위해 책을 읽어준다. 책을 녹음해서 편지 한장없이 세상과의 소통에서 단절된 한나에게 유일한 빛을 준다.
과연 사랑일까? 한나로 인해 사랑을 믿지 못하는 영혼이 되어버린 소년은 결혼생활도 원만히 해 내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되고, 현재의 그의 삶에 대한 상실감과 아픔을 한나를 위한 책읽기를 통해 해소 하고 있는 듯 보였을 뿐이였다.
어쩌면 한나는 자신이 망쳐버린 한 영혼에게 구제받지 못하게 되는 결말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지만... 참 잔인한 삶이다...
어쨌건 한나는 감옥에서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소년에게서 전해져 오는 책읽어주는 테잎을 통해서 20년의 후반부의
감옥생활에 나름 안정을 찾고 세상과의 소통을 통한 위안을 받으며 회복되어 가는 듯이 보여진다.
하지만 출소 일주일 전, 그와의 면회를 통해...
그에게 남아있는 감정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연민과 동정 그리고 자신이 기대한 감정들과는 전혀 다름을 감지하게 된다.
더구나 그는 한나에게서 나치 수용소 일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찾아보려 하는데, 그것이 한나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고 만 것 같다.
그녀에게 그러한 인식의 영역이 있을리 없을텐데 말이다.
그녀가 얼마나 세상과는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 영혼인지, 어떠한 삶의 조건 속에서 그러한 삶의 환경에 놓여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녀의 영혼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깨닫고 만 것 이다...
서로의 영혼에 대한 소통과 이해가 전혀 없는 관계에서 무슨 사랑을 운운할 수 있을까?
그는 그녀를 끝까지 전혀 몰랐던 것이고, 그녀는 그것을 더 철저히 느꼈을 뿐이였을 것이다, 이 처음이자 마지막 면회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죽음과도 같았던 그녀의 삶을 스스로 놓고 만다...
어른이 되었던 마이클이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였다면, 그들간에 그런 소통이 있었다면
아마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였던 관계를 사랑이라 오해한, 어리석은 단절된 두 영혼의 실화같은 영화였다...
실제 우리들이 살아가는 많은 오해들이 그대로 담담히 드러나 있는 영화였다.
사랑을 영화화한 영화라기 보다는 실제 우리들의 삶을 찍어 놓은 다큐같았다...
몰이해와 소통불가능한 영혼의 감옥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겐 어쩌면 사랑은 유토피아처럼 환상 속의 단어 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영화였던 것 같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존재 할 거라고 믿는 사랑...
그 사랑이라는 것을 존재하는 듯이 그려내주고 말해줘서 우리를 안심케하는 아름다운 사랑영화는 분명아니였지만,...
인간은 자신이외에는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일 뿐임을 깨닫게 해주는 데는 성공한 영화였다....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완전한 소통과 이해가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일까?
시종일관 이 영화엔 사랑이 없다고 느끼는 내가...어쩌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꿈꾸는 바보가 아닐까? ....
네이버ㅣ블로그에 포스팅 해 놓았던 예전 영화감상을 싸이블로그 첫 영화포스팅으로 옮겨본다...
셤 기간이라 학원 밖을 나가지 못하는 9월.. 슬퍼지네...ㅠ
영화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