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 호텔 1205호 오늘밤 10시 카드는 로비 우측 3번째 보관함 키번호:1,2,3,4)
그것은 라이가 보내온 문자였다.
유진은 서둘러 시간을 확인한다.
1시간 정도 남아있는 여유.
아지트에 도착해 가방을 챙기며 휴대폰을 들었다.
태민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손가락이 망설임을 한다.
몇번의 망설임끝에 이내 휴대폰을 닫아버리는 유진
그리고 서둘러 아지트를 빠져 나간다.
그 무렵 라이는 자신의 집에서 무언갈 꺼내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것은 원영을 향해 겨누었던 총이었다.
허 용추에게 받아 증거품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라이는 그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취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명료한 정신이 서서히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라이는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자신의 팔을 향해 내리 꽂았다.
덜덜 떨리던 손이 차츰 가라앉았고 그의 동공은 힘없이 풀어졌다.
그는 뒷주머니의 차가운 감촉을 다시한번 확인한 후 집을 나선다.
호텔 정문에 도착한 유진은 다시 한번 문자를 확인한다.
"딩가~딩가~"
순간 벨이 울렸고 그 상대방은 일우였다.
유진은 2~3번 심호흡을 한 후 휴대폰을 받는다.
[형!]
[진아! 지금 어디니? 밖이니?]
[어. 무슨 일이야?]
[그때...말없이 끊어지고 연락이 없어서...무슨일 있는건 아니지?]
[난 잘있어...그땐 번호를 착각해서....형....행복해?]
[뜬금없이 무슨소리야?]
유진은 어쩌면 이제 영영 볼수 없을것 같은 예감을 느낀다.
이것이 그와 마지막 통화가 될것을...
[형...행복해야돼! 꼭 행복해야돼!!]
[너 무슨일 있지? 지금 거기어디야?]
[미안. 나 지금 좀 급해서...끊을께 형]
[진아? 윤유진??]
유진은 서둘러 휴대폰 전원을 끈 후 호텔로 들어선다.
일우는 끊어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언습해오는 불안감에 다시 재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유진의 전화기는 꺼져 있는 상태..
일우는 빈 거실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당연히 신혼을 즐기고 있어야할 일우의 아파트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수진의 가출...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일주일동안 서로를 배려하며 제법 잘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원영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그 수평이 어긋나 버렸고, 수진은 그런 일우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각방을 쓰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그녀는 아무말없이 아파트를 떠나버렸다.
아마도 그가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을것을 일우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우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떠난 빈 공간이 너무도 달콤했고 편안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는걸 알면서도, 되돌릴수 없다는걸 깨닫고 있으면서도 일우는 그 짧은 순간부터 유진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띠링~~띵띵~~"
[진이냐? 너 지금 어디에...라이?]
일우는 휴대폰이 울리자 급하게 받았고 상대방은 술에 취한 라이였다.
[유진이...유진이...형님은 그 아이만 찾으시는군요...]
[취했구나..내일 통화하자]
[네...취했습니다. 술에 취한건지..약에 취한건지...하하하 ..이기분 형님 모르시죠?]
[약? 라이 너!!! 설마...진짜 너였단 말이냐?]
일우는 한가닥 희망이 산산이 무너짐을 느꼈다.
[형님의 그 ...감은 지금도 녹슬지 않았더군요...알고 있을거라...아니, 모르길 바랬는데...ㅋㅋㅋ 내가 가족이라고 했던가요? 이제 어쩌실 겁니까? 신고...하실겁니까? 아니면...이번에도 침묵하실건가요?]
[지금 어디냐? 만나자]
[하하하 잡으러 오실려고요? 아직 ...할일이 남아서...어쩌면...하...]
긴 한숨이 전해져 들려왔다.
일우는 이미 아파트를 나와 차에 오르고 있었고, 라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유진이 ....사랑하십니까?]
[.......]
차에 시동을 켜는 순간 라이의 질문이 던져졌다.
일우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뭐가 다릅니까? 내가 남자라서? 그 아이가 여자라서? 형님도 아시쟎아요...그 아이 감정 사랑 아닌거...그런데도...사랑하는 겁니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아! 허용추 그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용했는지 또 다른 희생자가 늘어나기전에 잡아야해! 라이야 정신차려!!!]
[나 한텐 중요해! 대답해! 사랑해?]
[...아니.. 사랑하지 않아!]
[거짓말...당신은 ...사랑하쟎아...모든걸 버릴수 있을만큼......사랑하쟎아....하하하하...]
허탈한듯 라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라이가 허 용추와 관련이 있다는걸 짐작은 하고 있었다.
가끔 보이던 노신사의 모습이 바로 태식이 건네준 사진과 동일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니길 바랬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아 외면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라이즈 호텔...1205호...앞으로 10분뒤...거래를 할꺼야...유진이 ...알아냈어]
일우는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심장이 멈추는듯 했다.
방금 끊어진 유진의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미세하게 흔들렸던 음성... 일우의 차는 매서운 속도로 도로를 질주해 나갔다.
이미 모든건 머리속에서 지워져 버린 상태였고, 오로지 한 단어만이 입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제발...유진아....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