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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아프신분, 내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분 힘내세요.

회색숲병든... |2009.10.20 01:59
조회 4,076 |추천 5

... 글을 쓰고 처음으로 싸이월드를 접속했습니다.

일하고 중간고사 기간이여서 컴퓨터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보는 싸이월드 업데이트가 보여서 봤습니다...

톡이 되었다는 글..

정말 보고나서 하나도 빠짐없이 댓글을 봤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저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이 한두분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전 하소연할곳이 없어 쓴 글에 힘내라는 응원을 받으니까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것 같습니다.

사회에서의 생활이 아무리 안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굽신거리고 얌채짓을 할 수는 있었지만 대리사장역활이지만 회사의 사장이 되다보니 저보다 나이많은 분들에게... 부모님 뻘되시는 분들에게 화를 내기란 정말 말도안되게 힘들었습니다. 화를내도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아 또 사설이 길어지네요;;

정말 응원해주시는분들 감사드립니다. 지금 어려운것은 나중에 다 잘되기 위해서 그런 디딤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

지금 어려우신분들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싸이 공개해라 라는 댓글도 있었는데요....

그 댓글 신고해서 삭제시켰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시고 힘을 내야하는 가장역활을 한 자녀분들에게 같이 힘내자고 글을 쓴건데 무슨 망발입니까....

 

전 올해 21살인 대학생입니다.

근데 사회에선 40~50대로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합니다.

그래도 당현하게 해야할 일 이기때문에 잘하지는 못해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작년 08년도에 대학교를 처음 입학하며 이제 대학생이다 성인이다 뭐다 하면서 놀기,학교운동에 바뻤습니다.

하지만 신입생일때도 잠시 4월달 말에 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중국에 계셨구요. 학교에서 운동을하다가 다짜고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당시 어머니는 집안일과 돈을 혼자서 벌고 계셨습니다. 의사는 당현히 과로라고 몇일 쉬시면 될 것 같다고 해서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곤 계속 생각했죠. 학교에서 놀지말고 할 수 있는걸 해서 장학금을 타보자..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제 마음처럼 되진 않더라구요... 힘든점이 많았지만 동기들이 힘내라는 말을 들으며 운동과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로부터 딱 10일후에 병원에서 연락이 오더라구요 어머니가 위암이시라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과로라고 말해놓고 갑자기 암이라니....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버릴정도로 정말 당황했습니다..

의사는 암이 초기증세라고 수술을 하면 금방 치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술날자를 바로 잡으려 했습니다. 근데 대한민국에 암환자가 그렇게 많을줄 몰랐습니다. 수술하고 입원하려면 2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정말 의사한테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대신 2주동안 항암치료를 받자고 했습니다.

전 그대로 의사말을 듣고 2주동안 어머니 항암치료를 받도록 간병인역활을 했습니다.

학교수업도 하고 간병인역활도 하며 했습니다. 당현한거겠지만...

그리고 수술날자가 다가오자 병원측에선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얼마나 진행됬는지.. 새팔...... 그 2주만에 항암치료를 했는데도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간 것 입니다.. 그래서 의사는 위를 절단해야한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인간의 장기중 하나라도 없으면 생활에 불편합니다. 그 장기중 음식물 섭취 후 중요한 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위암이 가장 치료가 잘되는 암이라고 하지만 그 후 생활이 정말 불편하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위를 절단하고 그 위대신 할수 있는게 있냐고.

희소식이였습니다 저에겐. 위 막을 이식할 수 있다고 그러면 위역활을 할 수 있다고...

전 당연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혈액형과 조직검사를 받았고 정말 자식이라고 해도 조직검사중 불일치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어머니와 일치하여 바로 수술을 들어갔습니다... 참 어리석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히 한마디씩 했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널 낳아주시고 지금까지 키워주셨고 내가 여기있기까지 그 배경을 모르면 잘난 주둥이 떠들지 말라고, 너혼자 잘나서 살아온게 아니다라고'  정말 학교에서 3살많은 형이 멍청하게 그런걸 하냐라고 말을 들었고... 저보다 어린놈들한테도 많이 들어서 항상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튼 수술을 잘되었고 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마음대로 안되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던 공장은 계속 부재중이 될 수 밖에 없는 어머니때문에 직원들은 계속 불안한 마음에 연락을하고... 아버지께서 돈을 빌린 사람들과 은행에선 독촉전화가 계속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오는건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직접 찾아가자 상황은 악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08년 6월9일... 지옥같은 나날이 시작되는 날이였습니다.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방학때 3가지 일을 했습니다. 5시 7시엔 신문 우유배달 그리고 9시부터 저녘 8시까지 어머니 하시던 공장에 나가 사장겸 직원 일을 하며 그이후에 병원에 사정해서 새벽 병원 청소일을 맡아 했습니다.. 한달은 정말 죽을맛이였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하고 병원내에서 어머니를 뵈야하니 얼굴은 점점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그걸 감추기위해 웃고있었습니다.. 더러운꼴봐도 웃고 욕해도 웃고....

정말 어린 중학생 비위까지 맞춰줘야 했습니다... 어려봤자 6살 차이지만 세상무서울것 없는 부모님 빽을 믿고 깝치는 중학생.... 공장에 주문을 하는 사장의 아들이였기에 아무말도 못하며... 정말 개같이.. 지옥이 이건가? 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잠은 정말 출근 1시간 점심시간 1시간 병원 청소를 다하고 일찍끝내면 3시간 아니면 2시간.. 평균 짬짬이 4시간을 잔것같습니다.

시간은 정말 안가는것 같았는데 정말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전 어머니가 다른곳으로 암이 퍼졌다는 걸 듣고 8월 15일 광복절에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2차 수술이였죠.

그 때 저도 같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전 의사가 위막 이식을 하곤 몇번만 인공적인 약품으로 생활하면 재생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식한 이유일 수 도있네요

수술을 받으면 안정해야하지만 전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매월 말... 그 시간만 다가오면 수많은 전화... 그리고 독촉하러 오는 사람들을 다 되돌려 보내야해서 수술을 받고도 일을하고... 수차례를 계속 했습니다..

학교 2학기엔 휴학을 하려했지만 어머니는 제가 이렇게 일하는걸 모르셔서 학교를 다니라고 하셨습니다.(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하여 일하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고 2학기 생활을 했습니다... 역시나 학교생활은 정말 꽝이였죠... 또다시 공부와 운동도 하지도 못한체 일을 또 다시 시작했습니다... 우유 신문배달은 학교때문에 도저희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수업을 듣고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새벽엔 간병역활을 하며 청소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수면시간은 늘진않더라구요... 정말 죽을맛이였을땐 3일동안 밤새며 활동했을때입니다....

전 열심히 하면 언젠간 이 더러운 꼴을 안봐도 되겠지... 해는 뜨겠지 생각하며 열심히 했습니다.. 죽어라 일.. 또 일... 그리고 학업을 하며 교수님과 상담하며 꾸준히 1학년을 끝맺었습니다. 1학년동안 매학기마다 장학금은 다 받았습니다...

아무튼 09년도가 어느새 앞에 다가왔습니다... 1학년이 2학년이 되었지만 달라진건 밑에 후배가 생긴것 뿐?? 참 학교 후배들이 들어오며 별상관없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안되더라구요 이렇게 생활하지만 학교다닐땐 동기들과 동아리 후배들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수술이 몇번 있었지만 큰수술이 아니여서 다행이였고 전 6번 정도를 인공약품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걸 누군가 알아줬는지... 하는 것들이 잘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군단 ROTC 군사 장교가 되어 군입대를 하면 병원비 절감이 있다고 해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기쁨뒤엔 슬픔이 있던가요... 동아리 공연을 오랜만에 나가서 하다가 다치고... 갈비뼈에 금간상태로 체력검정을 받고... 다 합격했지만 최종적인 집안 조사에서 떨어졌습니다 아버지 신용불량이 순간 머리에 스쳤지만 그냥 내 운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떨어진 후 똑같은 일상을 시작 했습니다 다시... 그러다 사고는 연달아 일어나더군요.... 제 부주의로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허리가 많이 아팠지만 그냥 임시방편인 한의원을 다니며 활동을하다 아버지가 계신 중국으로 가서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일을 했습니다... 말도 안통하던 나라... 암흑가가 정말 많은 나라... 아침엔 아버지사업을 돕고 저녘엔 술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언어가 안통하니 여기저기 술집을 돌아다니며 주류(술)을 판매하는 역활이였습니다.

일을 하며 몇년간 못뵌 아버지를 보니 기뻣지만 일때문에 일주일에 2~3번도 못보고..

중국에 3달을 있으면서 아버지를 본게 20번은 되려나....

그렇게 시간은 흐르다 또한번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또다시 졸음 운전..... 미친짓이였죠.. 장거리운전에 피곤한 상태로 운전을 하니 몸이 남아날까..

그 사고 이후 꾸준히 아프던 허리가 정말 아프기 시작한것입니다.. 사고가 나면서 오른쪽 무릎도 작살이 나고.

이렇게 됫으니 2학기고 뭐고 휴학이나 자퇴하자...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제가 지금까지 혼자 이렇게 일한 사실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닌 계속 미안하다고 하시며 울기만 하셨습니다. 그모습을 보고 화장실로 뛰쳐나갔습니다. 정말 지금까지 이렇게 운적은 처음이였습니다 저도... 2시간동안 혼자 화장실에 가서 울기만 했으니.. 여자친구랑 헤어져도 이렇게까지도 아니였는데말이죠

2학기는... 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개같이 다니는 학교... 어머니 결혼 예물하고 외가집에서 돈을 내주셔서 다닙니다.... 쌔팔. 진짜 돈이라는게 얼마나 썩은것인지..

학교를 다녀도 일상은 똑같습니다 뭐.... 위에서 쓴듯이 똑같이 일을하고.. 그리고 오늘 교통사고 후 최종적인 검사 결과를 들었습니다... 허리디스크 참... 30%라고 해서 3/1이니까... 아닐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못이겼네요... 종합병원입니다 참...

허리디스크에 위는 평생 인공약품을 사용해서 막을 만들어야 하고 눈의 시력감퇴까지..

그래도!! 어머니가 좋아지시는게 보이니 다행입니다. 요즘은 정말 밥도 드시는걸 보면 제가 안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듭니다... 어머니는 제 몸상태를 모르십니다. 제가 항상 감추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런 사고 사고들이 있지만 조금씩 회복되는 어머니와 조금씩 성장하는 아버지 사업이 잘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항상 절 이해해주고 제 투정을 받아주는 동기들이 있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까지 잘 버틴 것 같습니다.

 

나억울한 글인가.. 억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신세한탄글이네요 읽어보니... 그래도 저보다 더 힘드시고 어려운 분이 계시겠죠...

정말 악물고 힘냅시다~! 언젠간 해가 뜹니다 절대로...

막막하던 활동도 어린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왔습니다. 다들 힘내세요.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님들 화이팅... 아프신분들은 어서 쾌유를 바랄께요 ^^

 

추천수5
반대수0
베플..|2009.10.23 10:04
님 힘내세요 전 아빠는 뇌졸증에 수술을 늦게 해서 반신불구되시고 엄마는 암 3기.. 수술도 못하고 항암치료 받고 계십니다. 밑에 딸린 동생만 두명(고3,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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