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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영화]

Habana |2009.11.15 20:41
조회 132 |추천 0

 

<비즐러가 우편배달부가 된 까닭>

 

1989년 겨울,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그렇게 커다란 쇼크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같은 민족이 이념으로 인해 두 개의 나라로 갈라져 살아가는 나라는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나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어쩌면 우리도 조만간 독일과 같이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그 시절 내 머리속에 잠깐 스쳐갔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이미 관료화와 권위주의화 되어 버린 동독 사회 체제의 정보국 비밀경찰 비즐러가 정치범, 사상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한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과정, 24시간 철저한 도청과 감시를 통해 타인의 사생활을 바라보던 냉혈인 비밀경찰 비즐러가 점차 예전 자신의 삶과는 달리 인간적인 면모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비즐러의 도청과 감시는 어느 순간부터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대한 연민의 정과 감동으로, 오히려 그들의 적대적 행위(동독의 처참한 반인권적인 상황을 서독 언론에 알리는 일)를 눈감아 주며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결정적인 증거인 드라이만의 타자기까지 스스로 나서서 숨겨버리는, 비밀경찰인 자신의 임무와 반국가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의 비즐러 역인 '울리히 미훼'의 내면 연기는 정말로 인상적이다.

또한, 이 영화 역시 굳이 무언가를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저 비즐러와 드라이만, 그리고 크리스타를 쫓아가며 드라이만을 둘러싼 긴장감과, 살기 위해 밀고해야만 하는 크리스타, 또 타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삶을 되찾는 비즐러를 은막에 비추며 감동으로 승화시킨다.

 

결국, 허위보고서와 작전실패로 비밀경찰 간부에서 우편배달부의 삶으로 전락해 버린 비즐러는 그래도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 드라이만을 구해 준 사람이 바로 비즐러였음 뒤늦게 알아내고 책 첫장에 그에게 헌사하는 내용의 그의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며 포장하겠느냐는 점원의 질문에 "아니오, 내가 읽을 거요." 라고 답하는 장면은 또 다시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비즐러는 그래서 더더욱 불행하지 않을 것 같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찾았으며, 또 드라이만의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을 법한 감동 또한 의미있으리라 여겨진다.

 

1984년의 동독의 국민들은 비밀경찰의 감시로부터 나도 모르게 철저히 조사당해야 했고, 심지어는 10만명이 넘는 비밀경찰과 20만명이 넘는 밀고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동독 정부의 목표!

 

문득, 어제 뉴스에서 일반인들의 인터넷상에 올리는 글이나 심지어 댓글마저 경찰에서 감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 영화가 오버랩되면서 얼마전 기무사 대위의 민간인 감시 활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우리는 지금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냉전시대에 행했던 비인간적, 반인권적인 작태를 2009년 대한민국에서 부활시키려 하는지... 밀려오는 짜증에 가슴 답답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임무 때문에 그런 일을 행해야 했던 기무사 대위도 타인의 삶을 통해 비밀경찰 비즐러 처럼 고뇌하며 스스로 괴로워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 사족

1. 최근에 본 독일 영화들은 모두 괜찮았다. 영화 선정 및 추천의 달인. 모블로거님께 감사드린다.

2.보통 불어는 마치 노래하는 듯 듣기좋고, 독일어는 투박하고 싸우는 것 같다는 선입견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는데, 지난 번 바더-마인호프를 볼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독일어 발음과 대화가 참 듣기 좋았다.  

3.마지막, 하나 더...여주인공 크리스타 역의 '마르티나 게덱'이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바더-마인호프에서 마인호프 역을 맡았던 동일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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