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고사는 것은 하나님의 원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럼 하나님의 뜻은 뭐냐.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그 땅의 소산을 먹고사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하나님은 그것을 지정하셨습니다. ‘너희가 얼굴에 땀을 흘리며 땅의 소산을 먹고살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불변의 원칙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축복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miracle, 기적이 아니고 blessing, 축복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만나가 상징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셨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가나안 땅에 도착할 때까지만 하나님이 허락한 잠정적인 방법이고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는 더 이상 만나가 아니라 이들이 농사를 지으면 하나님이 거기에 복을 주셔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수확을 얻게 하는 방법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축복이 기적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이냐.
첫째로 기적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지요. 매일 아침 나가서 그날 먹을 양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기적은 그때그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고 그때그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입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저장할 수 없고 굶어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풍요롭지도 않습니다. 그날그날 먹을 양식을 생각해야 됩니다. 반대로 축복은 먹고사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문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풍요로움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도 믿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의학을 발전시켜서 인류의 병을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암을 정복하고 성인병을 정복하고 인간의 병, 이 병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고쳐주시는 것도 믿지만 그러나 의학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사용하게 될 때 한꺼번에 더 많은 사람들을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이 기적보다 나은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축복이 기적보다 나은 이유는 기적은 내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축복은 남에게도 베풀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만나는 자기 먹을 양을 거두는 것뿐이었지만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되면서 내 것뿐만이 아니고 남의 것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풂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축복의 장점은 기적은 그때 경험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축복은 지속돼서 더 큰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대손손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천대까지 복을 주리라’ 복이라는 것은 대대손손 천대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면이 있어요. 참고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만나를 먹었을 때는 가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살게 되면서 부자가 생기지만 가난한 사람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원리의 하나의 구조적인 리스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만나를 먹고사는 것보다는 가난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서 얻는 풍요함이 그들의 가난의 문제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눔을 통함입니다. 또 풍요함을 통함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원칙은 심고 거두는 원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길은 심고 거두는 원칙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길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풍요로움의 가능성이 우리 눈에 당장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심고 거두는 원칙을 사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적외선 감지기가 있을 때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 스프레이를 쫙 뿌리면 스프레이 안개 속에서 적외선 광선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하는데 그 복이 어디 있는지, 나와 내 가적을 위한 풍요로움이 어디 있는지, 우리 민족이 풍성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는지 우리 눈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심고 거두는 원칙을 사용할 때 비로소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원리가 바로 심고 거두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심고 거두는 방법을 사용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저 배급받는 식으로 손을 내밀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심고 거두는 방법을 사용해야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심어야 됩니다. 콩을 원하면 콩을 심고 팥을 원하면 팥을 심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심는 것을 거둡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을 심으면 됩니다. 우정을 얻기 위해서는 우정을 심으면 됩니다. 남에게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어요. 남에게 사랑받기 원하면 내가 먼저 사랑을 심으면 됩니다. 만일 내가 거두는 것이 없다면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게 거둔다면 적게 심었기 때문입니다. 나쁜 것을 거둔다면 나쁜 것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믿음을 배우고 좋은 가정교육과 예절과 사랑과 신실함과 근면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해야 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에 선한 것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찍 들에 나가 선한 것을 힘써 심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인내하고 희생하는 것도 다 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가는 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선한 것은 아니에요. 밭에 곡식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라지가 있는 것처럼 곡식을 심는 사람이 있고 가라지를 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것처럼 우리가 선하고 하나님이 선한 일을 경영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선한 일을 경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선한 말 ․ 축복하는 말 ․ 상대방에게 힘이 되는 말 ․ 살리는 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고 사람을 살리는 일 ․ 생명을 보호하는 일 그리고 영적으로도 남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아니고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돕고 사람의 믿음을 돕는 그것이 살리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똑같은 종교적인 활동도, 똑같은 종교의 일도 간음하던 여인을 끌고 와서 돌을 던지려고 했던 사람이 있고 예수님처럼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종교 활동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라는 것이 남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돌 맞고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리는 것, 어느 것이 예수님의 정신에 부합합니까. 그러므로 종교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자와 같은 종교만을 봤기 때문입니다. 돌을 던지는 신앙, 남의 허물을 들추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돌로 벌주려는 신앙을 경험한 사람은 이 세상에 차라리 종교가 없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진정한 예수님을 경험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신은 살리는 것이고 구원하는 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죄는 밉지만 죄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공산주의는 인민을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은 인민을 속박했습니다. 결국은 그들을 가두었습니다. 외부를 알지 못하게 하고 여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생각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인간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당신이 죽으심으로, 당신의 삶을 심으심으로 만민을 구원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내가 나라를 구하겠다, 내가 여러분을 잘살게 하겠다, 많은 약속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남의 희생을 요구했지요. 남에게 희생을 요구했지요. 복종을 요구했지만 예수님은 친히 당신이 희생하셨어요. 당신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게 심고 거두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한 분을 땅에 심었더니 만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작은 것을 심어서 많은 것을 거두고 그리고 작게 시작해서 큰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네 시작은 심히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할 수 있는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꿈을 가지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다 작습니다. 우리의 능력이든 우리의 재능이든 다 작아요. 그것으로 어떻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심으면 가능합니다. 작은 것을 심어서 그것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가 될 수 있는데 단 일 년에 그렇습니다. 단 일 년에 그만한 풍성함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해, 그 다음해 그것이 지속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울며 씨를 뿌리더라도 뭔가는 심어야 됩니다.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애처롭지요. 어릴 때 놀지도 못하고 어떻게 저렇게 공부만 하나 불쌍하게 생각되지만 그러나 이것도 그들이 울면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뭔가 자기가 울면서 힘들지만 심는 것이 있어야 이후에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느냐. 지금 공부 자체보다도 근면과 성실과 희생과 그리고 집념 이것을 그들이 공부를 통해서 배우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을 하든지 사업을 하던 연예인이 되던 목회자가 되던 무슨 일을 하든지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사도지만 다른 사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거저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을 것이 없다면 믿음이라도 심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your faith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셨는데 물건이든 돈에는 예수님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네 것을 네 것처럼 여기지 말고, 네 것을 남에게 주고, 또 배와 그물을 버리고, 물질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지만 믿음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어머니의 믿음이 아니고 빌려온 믿음이 아니고 너의 믿음, 네가 소유한 네 타이틀이 붙은 너의 믿음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른 것은 다 빌려온 것이라도 집도 빌리고 자동차도 빌리고 다 빌려서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믿음은 빌리면 안됩니다. 믿음은 빌릴 수 없습니다.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시면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심고 거두는 방법인데 이 방법은 적은 것을 심어서 많은 것을 거두고 지금 심어서 이후에 거두는 것입니다. 지금의 희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풍성함을 얻기 위해서 현재 순종과 인내와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건 민족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재정 적자라는 게 있지요. 미국만 그렇습니까. 그건 무엇을 보여주느냐면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돈을 갚을 테니까 지금 쓰고 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돈을 지출하고 보자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걸 어떻게 갚을지 그건 모르겠다는 얘기에요.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우리 자손의 세대에 가서 돈을 갚겠지. 지금 당장 쓰고 보자. 그건 별로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을 보장할 수 없는데 내일 갚게 될지 못 갚게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쓰고 보자는 것은 그건 별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에요. 심고 거두는 것은 오히려 이후에 풍성하기 위하여 지금 아끼는 것입니다. 그 씨를 먹어버릴 수도 있어요. 먹으면 지금은 배가 부르지만 심으면 나중에 몇 사람의 몫을 생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사과 과수원을 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가을에 추수를 앞두고 있는데 강풍이 불어 닥쳐서 사과나무의 사과 90%가 땅에 떨어졌어요. 농민들이 망연자실했습니다. 올해 사과 농사는 망쳤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이름으로 마케팅을 해서 수험생 엄마들에게 팔았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 얼마나 멋있습니까. 다른 사과는 다 떨어졌는데 10%만 안 떨어졌으니까. 떨어지지 않는 사과. 그래서 없어서 못 팔았습니다. 값을 열배로 높여서 팔아서 모든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함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그것을 보면 됩니다. 눈을 뜨고 그것을 봐야 됩니다.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그 사실을 알고 농사를 짓고 추수를 거둔 첫 해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조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감사함으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에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살 길은 풍성하고 함께 더불어 풍성하고 남들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게 우리의 나아갈 길이에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심고 거두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