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드라마 / 142분 / 감독: 엘렘 클리모프
(★★★★☆)
1985년 제14회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
전쟁을 고발하고,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가장 강렬하게 전달하는 걸작 영화 '컴 앤 씨 Idi I Smotri, Come And See 1985'는 러시아 영화사의 저력을 보여주듯 경악과 공포의 연속인 작품으로 ‘네러티브’ 보다는 ‘영상’과 ‘몽타쥬’가 중요시되는 소비에트 전통 위에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작가 ‘엘렘 클리모프 Elem Klimov’가 만들어낸 ‘세미-다큐멘터리’작품이다. ‘엘렘 클리모프’감독은 뛰어난 미학적 구성과 함께 참혹한 전쟁의 현실을 놓치지 않는 완벽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치밀하고 사실적인 놀라움으로 가득 차있으며, 표정 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 유기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한 장면마다 꽉 짜여진 상징과 복선은 상상을 뛰어넘으며, 나치독일의 대량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생한 표현으로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는 내용의 영화는아니다.
즉 영화는 주관적인 아름다움의 이미지와 객관적인 전쟁의 공포를 교차시키는 아이러니가 탁월하며, 가령, 소년 ‘플로리아’가 소녀 ‘글로샤’와 함께 숲속에서 빗방울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 가득 아름다운 불꽃놀이 같은 광경이 귀를 긁는 소음과 함께 펼쳐지며, 사실 그 장면은 나치독일이 퍼붓는 폭탄투하의 현장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자명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현실의 고통을 절묘하게 대비시키는 몽타주는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며, 소년 ‘플로리아’가 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하러 다닐 때, 귓전에서 윙윙대는 벌레들의 소리는 섬찟하면서도 또한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신경을 자극한다. 곧 어머니의 죽음을 보게 되리란 복선인 셈이다. 이처럼 이 영화의 힘은 단순히 참상을 고발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고발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뛰어난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으며, 제2차 대전의 막바지에 접어든 1943년,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의 만행을 충격적인 이미지들로 고발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헐리우드의 전쟁물과는 달리 요란한 돌비디지털 총소리도, 팔다리가 잘려 나간 채 울부짖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숨막히는 정적, 작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주관적인 소리들, 갑자기 구토하는 소녀, 마루 바닥에 버려진 인형들, 그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들, 우물을 들여다 보며 눈물을 떨구는 소년, 길을 따라 난 탱크의 흔적 처럼 인과관계가 모호한 셧들이 느릿느릿 어우러지면서 그 어느 장면보다 강렬한 충격을 만들어 낸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실과 영화적 현실에 대한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일군의 제복들은 1980년대에 만들어진 소품이 아니라, 실제로 2차대전 때 누군가 입었던 옷이다. 소년의 머리 위로 지나가던 무시무시한 총알들은 특수효과가 아닌 실탄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연기를 해 냈던 ‘플로리아’ 역의 ‘알렉세이 크라브첸코Aleksei Kravchenko’는 촬영 중 실탄이 자신의 머리 위 10센티미터를 지나가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숲을 향해 난사하던 총알 역시 실탄이다. 영화 속의 순서 그대로 촬영이 이루어졌다. 감독은 이 끔찍한 영화가 어린 배우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서 촬영 전에 최면치료를 시도했다. 그러나, ‘알렉세이 Aleksei’는 최면에 잘 걸리지 않았고, 감독의 근심을 덜기 위해 최면에 걸린 척 가장한 채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CNN은 어둠에 휩싸인 이라크의 도심을 정확하게 강타하는 포탄들, 무표정하게 불타오르는 건물들, 그런 장면을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사용된 값 비싼 미사일들, 그 미사일들에 적용된 가공할 첨단 과학을 지나칠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건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 현실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생생하게 목격한 그 장면들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면서도, 전쟁의 참상이라기 보다는 신나는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것은 ‘현실을 찍는 것’과 ‘현실을 현실로 찍는 것’이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암시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됐을 때, 그 영화에서 묘사한 전쟁의 압도적인 강도를 종종 이 영화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보다 물리적인 현실의 고통이라면, ‘컴 앤 씨’는 대량학살에 따른 심리적 공황 상태를 그린 고통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두고두고 생각날 반전의 메시지를 깊이 각인시키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