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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가득했던 3개월간의 일기

박규영 |2009.12.15 21:22
조회 235 |추천 0

2007년 8월 18일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mt..

아침일찍 서둘러 행사준비에 정신없었다.

고기,술,과자, 밑반찬 일회용수저등 온갖행사용품등

구입해놓고 직원들과 통화해서 모이기로 약속한 오후4시경

난지캠핑장에 짐을 풀었다.

 일찍 도와주려고 정일이형,철훈이가족등 분주하면서도 각자

성의껏 도와주었다.

고기는 한우로 준비를 해 모처럼 소고기의 살살녹는 맛에 글구

부장님,명균이형, 희철이형,정일이형,민구형 인천사무소직원여러명

희준,태훈,철훈,주원,의균 족히 20~23명내외 가족중에는 철훈이

그리고 주안이.. 정말 많은 인원이였다.

 저녁을 많은음식들과 정겨운 담소두 많이 나누고 했다.

늦은밤이였지만 족구도 해서 아이스크림내기하고

 한참, 재밌을 만 했던 그 시간에 전화연락이 왔다.

어머님께서 쓰러지셨다고... 놀란나머지 술 별로 먹지 않았다고

했던 명균이형차로 집근처 일산백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님은 잠시 의식을 잃으셨다 정신을 찾으셨다고 했다.

큰형, 매형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였다.

 2~3시간 지켜보고 매형,큰형 집에 가라고 안심시키고 18일늦은밤

그리고 19일의새벽을 어머님과 같이 일산백병원응급실에서 보냈다.

 아침이 돼서 다시 캠핑장에가 정리를 빨리 하고 남은 일행들과

아침을 같이 하며 MT를 마쳤다.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한주의 시작 어머님은 머리가 아프시다고

그리고 당검사,초음파,MRI,CT촬영 병원에서 일어날수 있는 모든

검사를 일주간 입원과 동시에 이루어 졌다.

26~28일사이 힘든검사를 모두 마치고 어머님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 대스럽게 생각않으시면서 결과가 나왔다.

 의사가 환자는 나가 있으라는말과 함께 어머님께서 췌장암말기

3개월정도 세상이 허락할뿐이라는 말

 순간 작은형이 울먹이는 소리와 함께 의사의말은 더이상 없었다.

이 모든얘기를 나는 퇴근해서 작은형이 녹음해놓은 그대로를 이해

할수밖에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결과를 가족 누나,매형등 받아드릴수 없었지만 다시 2~3일후 새로운 검사를 했다. 의사를 대면하고 지금상황은 암이 임파선까지 전이돼 수술이든 방사선치료든 전혀 손을 쓸수 없는 상황  

 어머님께 알리지도 못한채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랑하는 어머님께 그냥 당이 심해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머리에 약간 물이 차

있는 사태의 질환이라고만 얘기하고 당으로 인해 발생될수 있는 만약을 위해서 누나하고 나는 가족모두와 함께 식이요법을 하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어머님께 얘기했다.

 어머님께는 식이요법과 당을 떨어뜨리는데 차가버섯이 좋으니 드셔보자고 했다. 아울러 백병원의 담당주치의를 만나 주엽역에 있는

어머님께서 다니셨던 한사랑병원  그동안의 처방전이 필요하니  그걸 가져오라고 하여 가져왔다.

 그걸 받으면서 그병원의사에게 나는 화풀이라도 하듯 아니 당이 이상있다는 증후가 있으면 합병증중 가장중한것부터 검사를 해서라도

당이 조절이 왜안되는지 원인이 무언지 언제부터 당조절에 이상이 있었는지 지금에 와서 환자가 3개월이라는 시한부선고판정을 받고 처방전을 받으러 오게 하냐고 당신들 의사맞냐고..??!!

 나는 그런것과 더불어 진료기록을 보여달라고 했다. 역시 2~3월에 부터 이상증후가 있었던것 같다. 그때라도 검사를 했으면 어머님은

그렇게까진 심각하지 않았을것이다.

 어머님은 날이 갈수록 힘겨워 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직도 어머님은 그냥 심한 감기려니 생각하시고 의지가 있으셨다.

 추석에 일이다. 어머님은 작은형네가 불편하면서 힘드시다 하시면서 요양하는곳이나 누나네집에서 쉬길 원하셨다. 어머님,큰형,작은형,형수,소현이 그리고 나 평소같으면 추석차례지내고 아버지산소에 성묘를 갔겠지만 원당의 종마공원을 찾아 바람쯤 쏘이고 상쾌하게 머리도 식히자고 했다. 어머님은 부축을 해야 거동을 하실수 있었다. 6월말의 소매물도를 여행했을때 그런 힘찬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부축하여 벤치에서 그냥 재롱피는 손녀의모습만을 바라보셨을뿐이였다.

 아마도 어머님의 짧은여행외출은 그게 마지막이였던것 같다.

추석을 조용히 그렇게 보내곤 9월28일 그리고 10월의 시작일 병원에서의 검사를 끝으로 심각해진 어머님모습에 담당의사는 더이상 숨길수 없었나 보다. 결국 환자에게 직접얘기를 하고 엄마는 망연자실하게

쓸쓸이 집에 오셨다.

 2일 누나한테 문자가 왔다. "규영아 엄마이제 다 아셔 병명얘기했고 너 퇴근하는대로 집에 와" 라는 업무중에 멜을 받아 순간 앞이 깜깜해 졌다. 집에가면 엄마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무슨말을 전해야 할지  결국 치밀어오는 설움을 뒤로한채 누나네 집에 갔다.

 엄마는 화가난 모습으로 물그럼이 그냥 내얼굴을 볼뿐이셨다.

어머님의 그런모습에 눈물을 한없이 흘리시면서 아버지도 4년동안에 오랜투병 글구 자신마져 암중에 99%이상이 거의 죽는다는 췌장암 한없이 흐느껴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순간 세상이 이시간이후 무너져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아버지,어머니께서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다고 그런 고통을 안겨주냐고 말이다...

며칠후 어머님은 4남매 형수,매형등 가족들을 불러 의식이 있을때

말이라도 남겨야 한다면 어머님 유품이며 유언이라도 한다며 얘기를 하셨다. 그때 이미 어머님은 숨이 고르지 못했고 화장실을 혼자선 가시지 힘든정도 셨다. 고등학교재수하던시절 형제들과 아버지병간호때처럼 어머님도 안아서 화장실을 가시게 할정도였다.

 나중에 어머님께서는 그런 것조차 온몸에통증이심해 결국 어린애기가 기저귀를 찬것처럼 그렇게 해드릴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어머님곁에서 잠이 들면서 내게 얘기를 건네셨다." 규영아 막내야 짧으면 짧았고

길면 길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뭏든 너희들 만나 즐거웠고 행복했었고 살다보면서 우여곡절도 없을수 없겠지만 좋았다." 라고 내손을 잡으면 얘기하셨다. 순간 난 무슨말씀하세요. 다 저희들 때문에 어머님께서 그런 몹쓸병에 걸리신 거죠..

 맞다. 이루말할수 없이 어머님 속섫였다.

병을 알고난이후 일주일이 지나고 모습은 점점 참백해지셨고 몸믄 점점 여위기 시작하셨다. 한끼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약간의 야채즙이나 차가버섯다린물 밥은 한스푼...

 10일 인것 같다. 새벽녁에 어머님은 내게 이런말을 하셨다. 눈은 촛점을 잃은채 막내야 왜나를 검은 장의사차에 태우고 어디가냐고

나죽은거 같다고 막내야 내가 죽은거 아니냐고..

 엄마 정신차리세요. 난 크게 소리쳤다. 그 시각 새벽 4시를 알리고 있었다.

지난얘기지만 일주일전부터 어머님곁에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난 잠을 이루지 못한채 엄마 낮에 푹주무시고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그런말만 남긴채 출근했다.

16일인듯 싶다. 어머님은 자신의 현상태를 인정하셨다. 더이상 삶에 구걸하지않고 받아 들이셨다. 저녁 잘드셨냐고 엄마 식사하시는게

힘드셔도 한수저라도 더드세요. 아니 엄마 귀여운 명규녀석,소현이 하루라도 더보시려면 식사 억지로라두 드셔야 한다고 말을 했다.

 어머님은 그날밤 3일후면 아버지곁으로 갈텐데 뭔들 먹으면 뭘하냐고 그날밤지나 새벽에 누나는 어머님옆에 보이지 않는 기둥에

부닥쳐 아파 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바로옆에 저승사자가 있다고 이런얘기를 끝으로 3일후

19일이였다.

 엄마 저출근해요. "잘다녀올께요." 어머님께 생전의 마지막말이 될줄이야...!

 시간이 조금지나 11시경 핸펀에 전화가 울렸다. 누나가 빨리 와달라는 전화였다. 일산백병원응급실로  업무를 동료에게 넘기고 급히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왔다.

 엄마는 벌써 이세상사람이 아닌것처럼 의식이 없었다.

옆에 누나가 무슨얘기를 하니 의식이 없으면서도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침식사를 평소보다 많이 하셨다고 했고 몇마디 얘기도 많이 했다고 했다. 누나,큰형모두 그런데 순간 기저귀를 갈고 부축해 엄마를 잠시 옮기면서 모습을 보니 순간 숨이 없었다고 했다. 이미 엄마는 세상을 마감하는 8부능선을 넘어가신듯 하다고.."

 오후2시 손발은 싸늘하고 매우 차가웠다. 한시간지나고 엄마는 더이상 눈을 뜨지 않으셨다. 한없이 눈물이 나고 앞이 어두운질흙과도

같았다. 3시10분 사랑하는 어머님, 이세상의 어느누구보다도 강하셨던 어머님 그만 이 세상과의 인연을 마감하셨다.

 "작은형 멀리 지방에 있어 엄마가 늘보고 싶어했는데 불쌍하게 엄마 마지막가시는 모습을 못봐서 너무 슬퍼하지 마요. 엄마는 우리가 잘한거든 못하거든 함께 했던 순간순간 모두 추억에 담고 가신다고 했어요."

 사랑하는 엄마 하늘나라에 고통이 없고 평온한 곳에서 잘 지내세요. 그리고 부디 저희4남매를 비롯한 가족 모두 잘 보살펴주세요.

 어머님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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