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랑을말하다 -서른네번째이야기-

loveis |2009.12.18 17:21
조회 240 |추천 0

 

- 왜 전활 안 받아?

 

나는 그녀에게 결국 화를 내고 만다.

그런데도 그녀는 당당하기 짝이 없다.

 

- 내가 니 전화를 당연히 받아야 되는 사람이야?

 

내가 숨을 고르고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다시 그녀가 매섭게 말한다.

 

- 아니, 왜 화를 내. 난 누가 나한테 화내는 거 정말 싫어.

다음부터 전화 받으라고 말하면 되잖아. 꼭 그렇게 화를 내야 돼?

 

그 말에 나는 하려던 말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래, 꼭 그렇게 화를 내야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누가 자기에게 화내는 걸 몹시 싫어한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렇다.

방금까지 화를 내던 나는 엉뚱하게도 갑자기 사과를 하고 있다.

 

- 화내서 미안해..

 

참 괴상한 현상이다.

방금까지 화가 난 사람은 나였는데, 어느새 나는 용서를 구하는 입장이 되어 있다.

그녀가 오래전에 해놨던 우리의 약속을 메세지 한통으로 취소해 버린 일.

또 내 전화를 몇 통씩이나 받지 않았던 일 같은 건

어디로 다 가버리고 내가 화를 낸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화 내서 미안해..' 초라한 사과.

'계속 전화 안받으니까 걱정도 되고..' 옹색한 변명.

'다음부터는 화 안낼께. 기분 풀어..' 비굴한 다짐.

'미안..' 이라는 내 사과에 그녀는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목소리가 누그러진다.

 

- 그럼 말해봐. 뭣땜에 전화했는데?

 

그녀가 용건을 묻는데 나는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용건같은 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통화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고,

나는 답답했다가, 짜증스러웠다가, 초조했다가, 걱정이 됐구, 결국 화가 났던 것 같다.

 

용건도 없었다고 말하면 그녀는 내게 또 뭐라고 할까?

생각할수록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낸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녀는 내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화 낼 권리도 없다.

용건도 없으면서,

애인도 아닌게,

내가 더 좋아하는 주제에,

나는 그만 참담해지고 만다.

 

내가 언제든 걸 수는 있다면, 그녀는 언제든 받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언제든 걸 수 있고, 그녀는 언제든 받지 않을 수 있으므로,

나는 언제든 상처받을 수 있다.

 

내가 언제나 통화하고 싶은 사람.

가끔씩만 내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

나를 기다리게 하고, 애타게 하면서 화를 낼 수 없게 하는 사람.

 

사랑은 어쩌면 가장 무서운 권력 일지 모르겠다고,

 

  

사랑을 말하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