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새벽기도를 갔었던 토요일 오전.
너무 일찍 일어난 관계로 오전에 시간이 생겨서
오랫만에 동생과 전시회를 다녀왔다.
예술의 전당에서 사라문 사진전 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부터 무척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오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아 호젓하고 여유롭게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프랑스 패션사진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칭송받고 있다는
사라 문은 그녀 또한 패션 모델 출신이었다.
모델 이후 사진가, 그 후엔 영상 제작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의 사진들은
사진이라기엔 너무도 몽환적이었고 동화적이었으며
그림이라기엔 너무도 섬세하고 예민했다.
어두컴컴한 조명과 조금은 음울하고 느린 음악 때문에
마치 꿈을 꾸며 꿈 속의 세계를 헤매는 느낌을 주는
큰 홀 하나에 여러개의 그림들이 이리저리 그룹핑하듯 모여서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시 장소가 좁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전시를 기획 했다고 한다.
그녀는 또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한 그룹으로
묶을 사진들을 손수 골랐다고 하는데
실제 어떤 주제들로 그림들이 묶여 있는지는 딱히 알 수 없고
순전히 감상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그녀의 컬러 사진들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웠고
폴라로이드 기법으로 찍었다는 흑백 사진들은
마치 세계2차대전 홀로코스트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울하고 차갑고 슬펐다.
전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깨어나고 싶지만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서 하염없이 낯선, 그러나 왠지 모르게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들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사라문의 사진들보다
그녀의 영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사라 문은 두 편의 짧은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그 중 첫 작품인 '서커스'가 전시장에 상영중이었다.
표현주의 기법의 영향을 받아 촬영된 15분짜리 짧은 영화는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서커스단의 제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배고프고 춥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는 오래전 서커스단을 떠났고
그녀 홀로 남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커스단에서 가장 유능한 단원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떠난 후 서커스단은 문을 닫게 되고
이제는 아무도 곡예를 하지 않는다.
너무도 배가 고픈 제인은 결국 눈보라가 날리는 거리로
성냥을 팔러 나간다.
바람은 잔인하도록 거세고 눈은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내리고 거리의 차들은 마치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짐승처럼
그녀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결국 거리를 빠져나와 돌다리 밑에서
제인은 오들오들 떨면서 성냥을 하나 켠다.
성냥을 켠 채로 그녀는 잠인지 죽음인지 명확하지 않은
꿈 속으로 빠져든다.
성냥을 켜고 꿈을 꾸는 순간부터는 세상이 흑백이 아닌
컬러이다. 첫 번째 성냥이 켜지자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나타난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그녀의
꿈 속에 등장하여 날아다니는 거위들의 등에는
포크가 꽃혀있다.
첫 번쨰 성냥이 꺼지고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자
세상은 또 다시 흑백이고, 그녀가 속한 곳은 달콤한 꿈이 아닌
잿빛 현실이다.
서둘러 두 번째 성냥을 켜자 이번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나타난다.
제인의 이름을 부르며 앞서 뛰어가는 엄마를
제인은 따라간다. 없어질까봐 성냥을 켜고, 또 켠다.
그 다음 날 까맣게 타들어간 성냥과 함께 제인은
주검으로 발견된다.
사라 문의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and days passed.' 였다.
그렇게 제인은 죽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흑백의 세상은 돌아간다.
그렇지만 제인은 더 이상 이처럼 차갑고, 음울하고,
무관심한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 죽음을 통해
그녀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탈출했다.
이제 그녀는 자유롭고 흑백의 현실이 더 이상 그녀를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인지 엷은 미소를 띈 채 죽어있는 제인의
마지막 모습은 꿈을 묘사한 장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흑백이 아닌 컬러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 마지막 장면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