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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일요일 밤의 막장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

찬스 |2009.12.28 13:26
조회 906 |추천 1

 

감히, MBC의 간판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쓴소리를 좀 할까 합니다.

오늘 방송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우리 아버지> 코너에서는 아버지께 자신의 간을 공여한 아들의 사연과

청소년 보호 감호 시설에 들어간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사업이 망하고 인쇄소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고 있는

아버지의 사연을 다뤘습니다.

<단비>에서는 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 중에

전국 각지의 선행 '영웅'들을 초대해 그 사연을 소개하고,

서울역 앞에서 메달을 수여한 다음 2NE1이 축하 공연을 펼쳤습니다.

<헌터스>는 이번이 '멧돼지 축출'을 마지막으로 다룬 회였는데,

끝내 멧돼지를 포획하는 장면을 담지 못하고,

전시행정에 가까운 주민 우롱성 기만 행위와

전파 낭비에 버금가는 수준 이하의 몰래 카메라를 보여주며 자폭하고 말았습니다.

 

 

<헌터스> 코너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화가 납니다.

도시 사는 사람들이야 멧돼지 개체수의 폭증과 그로 인한 잦은 출몰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 정도로 넘기면 그만이지만,

시골에서 농사 짓는 분들에게는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인 것을

너무 철없고 가벼운 기획으로 접근했다가 비판에 직면하자

기획 자체가 놋쇠 숫가락처럼 이리저리 구부러졌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웃기는' 코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단, 진정을 위해 <헌터스> 얘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나름대로 감동적이었던 <우리 아버지> 코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보여주겠다는 기획 의도는 정말 좋았습니다.

"역시 김영희 피디야!"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혹은 알고도 모른 척했던 아버지들의 고단한 일상과

속 얘기들, 가슴 아픈 사연들을 들려주는 프로그램 방향은

시의적절하고 공감의 폭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한파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충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힘을 내 살아가게 하는

가족의 의미, 부모와 자식의 의미, 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훌륭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아빠 냉장고'는 뭔가요...

한겨울에 냉장고를 주겠다고 트럭에 싣고 다니는 모습,

고적대가 빵빠레를 울리는 모습은 참...

마치 잃어버린 10년을 부르짖는 정치인들의 쇳소리만큼이나 난감했습니다.

아예 프로그램의 목적을 '감동의 제공'에 두기라도 한 듯

"자 오늘은 어떤 감동적인 사연의 아버지가 냉장고를 타게 될 것인지!"라고

누가누가 더 쎈 감동을 주는 사연을 들려줄지 경쟁시키는 모습마저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쎈 감동'을 준 사람에게는 냉장고가 아니라 '강심장 트로피'를 줘야죠...

너무 예전의 영광, '양심 냉장고'의 추억에 함몰돼 있는 것 아닌지 묻고싶습니다.

혹은, 냉장고 업체로부터 협찬을 받는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프로그램의 취지는 좋은데, 그 형식에 있어서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동적인 사연이 나올법한 장소들과 사람들을 뒤지고 다니는 것은

멧돼지를 쫓는 '헌터스'만큼이나 작위적이고 가식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주 소재가 '감동'이 될 수가 있는지!

지금의 <우리 아버지>는 선거 기간에 보는 홍보 영상 느낌입니다.

웃음보다는 좀 더 강한 '감동', 제작진의 시각에 의해 규정된 모범적인 아버지 상의 구현.

힘들고 지친 아버지를 위로하고 가족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어째서 자식들은 반드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여야만 하고,

우리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상황이

당연한 듯 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2010년을 목전에 둔 지금, 아버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더 적절한 것 아닌지 의문입니다.

지금이 무슨 6,70년대 권위주의 시절도 아닌데,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가족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며 복종해야 하는,

김영희 피디는 그런 권위주의, 가부장제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미화하여 선전하고, 시청자들에게는 감동 받으라 강요하는 <우리 아버지>.

차라리 공익 광고를 한 시간 내내 틀어주는 게 낫겠습니다.

 

 

겨울인 탓인지, '강심장', '스타킹', '청춘불패' 등 예능 프로그램들이 '감동' 코드를 많이들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일밤'과 다른 것은, '감동'이 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표절 논란으로 망해가다가 요즘 부활하고 있는 '스타킹'의 경우

단순히 재주가 뛰어난 출연자가 아닌 '감동적인 사연이 있는' 출연자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몸을 흔들고 목청을 높이고 갈고 닦은 희한한 재주들을 선보이다가,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웃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싶을 즈음 절묘한 타이밍에

그들이 무대에 선 이유, 감동적인 사연을 탁! 터트려주는 것입니다.

반전과도 같은 가슴아픈 사연, 기특한 사연에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박수를 칩니다.

'강심장' 역시 연예인들의 골 때리는 토크와 굴욕 사진 공개 등 한참 웃고 떠들다가

다른 데서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강도 높은) 진솔한 사연을 공개함으로써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하는 것이 포멧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청춘불패'에서는 평소 예쁘고 깜찍한 모습만 보여주던 어린 소녀들이 

동네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발벗고 나섰고,

가식적이지 않은 소탈하고 진심어린 봉사로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렇듯,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감동' 코드를

결정적인 순간에 극적으로 보여줬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일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시간 내내 "감동해! 이래도 감동 안 해?"라고 외치기라도 하듯

장편 공익광고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균형을 잃은 측면이 있었습니다. 

 

 

<단비>는 1회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우물을 파다니!  세상에 어느 방송국 사장이

"사장님. 프로그램 만들게 돈 주세요."

"뭐 할 건데?"

"아프리카 가서 우물 파려구요."

"오케이. 콜."

이러겠습니까!

사장이 미쳤거나, 아니면 그 피디가 김영희 피디 정도 됐을 때라야 가능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황금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영희 피디가

MBC 예능의 자존심인 '일밤'을 구하기 위해 돌아왔고,

야심차게 추진한 프로잭트가 바로 <단비>의 '아프리카 우물 파기'였습니다.

정말 멋졌습니다. 제가 피디라면,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로듀서가 부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달랑 2회로 끝나버리고,

코너 이름은 여전히 <단비>인데, 더 이상 아프리카의 <단비>가 아니게 돼 버린 것입니다.

무릎팍 도사에서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로 향하는 화면 나오듯이, 이 코너도 산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 가서 우물 파다가, 희귀병 어린이 치료 돕다가, 열차타고 전국을 돌며

선행 '영웅'들을 무더기로 모아 보여주는 모습은 일관성도 없어 보이고,

'감동'이라는 코드를 너무 거칠고 촌스럽게 보여준 듯합니다.

<우리 아버지> 코너와 <단비> 코너 모두 '사연', '감동', '미담'을 소비하는 데만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욕을 하게 만드는 <헌터스>!!!

1박2일이 어쩌다 한 번씩 몰카를 할 때면,

"저 사람들 또 아이템 떨어진 거 아니야?"하면서 욕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결국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고 마네요...

예능 프로그램 제작 회의 때 연출진이나 출연진, 혹은 스탭 중의 누군가가

"몰카 한 번 하는 건 어때요?"라고 말한다면, 경쟁 방송국에서 심어놓은 첩자가 분명합니다.

몰카를 하려면 대통령 몰카, 김정일 몰카 정도면 모를까, 이제 고만고만한 몰카는 신물이 납니다.

오늘 <헌터스>에서 보여준 모습,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피해 경험담을 듣는데

할머니의 말투가 재밌다면서 출연자들이 낄낄대고 따라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습니다.

180이하 남자는 루저라고 했던 모 여대생의 발언보다, 그 장면에 더 화가 났습니다.

멧돼지 때문에 죽겠다는 사람들을 한겨울에 들판에 모아다 앉혀놓고

거기서 '예능 꺼리'를 찾으려고 했던 얄팍한 의도가 아니었는지...

멧돼지를 포획하겠다며 설치해놓은 덫 주변에서 잠복한다면서,

웃고 떠들고 멧돼지 박제로 몰래카메라나 찍고...

코너가 문을 닫을 때까지 웃길 건지 울릴 건지 문제를 해결할 건지 문제를 제기할 건지

결정을 못 하고 어영부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애초에 <헌터스>의 기획의도가 멧돼지 사냥이었던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선전을 그런 식으로 했었고, 코너 제목도 그런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느꼈습니다.

농가에 피해를 주고 인간을 위협하는 멧돼지를 사냥한다.

숨막히는 추격전, 며칠간 잠복한 채 숨죽이고 멧돼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긴장되는 순간!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두 개의 안광과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거대한 검은 형체!

혼비백산 도망가는 MC들의 모습과 겁에 질린 구하라의 떨리는 눈빛... 그러던 중 갑자기

산을 뒤흔드는 총소리! 쾅! 비틀거리다 풀썩 쓰러지는 멧돼지, 마지막으로 내뱉는 거친 숨소리!!!

이런 그림을 상상하면서 잔뜩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에서 맹렬히 비판하고 나서자, 프로그램의 방향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쫄았다'는 표현이 그렇게 잘 들어맞는 모습은 다른 데서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멧돼지가 농가에 얼마나 해로운 존재인지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금희 씨의 내레이션과

멧돼지를 사살하는 것이 아닌 '축출'할 뿐이니 안심하라는 반복되는 변명,

그리고 멧돼지 포획보다는 농가 피해 대책 마련에 더 주력하겠다는 내용의 인터뷰 등등...

너무나 과도하게 비판을 의식한 모습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뭄을 해소해주는 <단비>가 더 이상 '단비'가 아니게 된 것처럼,

멧돼지로부터 농가를 지키는 <헌터스>는 더 이상 '헌터스'가 아니었습니다.

출연진 구성도 들쭉날쭉, 프로그램 방향도 오락가락,

그나마 <단비>가 '감동'이라도 있었던 데 비하면 <헌터스>는 최악 of the 최악이었습니다.

예능史 교과서가 있다면, 2009년의 <헌터스>는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 같습니다.

멧돼지도 살리고, 농가도 보호하겠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현실 인식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헌터스> 코너에 대한 비판이 드높아지자, 다음 주부터는 아예 '멧돼지'와 무관한

'친환경 생존'으로 방향을 튼다고 합니다.

이럴 거였다면,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오빠밴드'를 굳이 폐지해야만 했는지 의문입니다.

정말 몇 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던 것이 맞다면, 이렇게까지 비판여론에 심하게 휘둘릴 수 있는 것인지...

제작 여건 상의 여러 사정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결국 시청률은 도로 밑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저는 오늘 <우리 아버지>, <단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간을 떼어주고 가슴부터 복부까지 ㅗ자 모양의

커다란 흉터가 남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허리가 휘도록, 지문이 닳도록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북에 두고 온 남편과 자식들에게 복이 돌아가라고, 평생을 홀로 떡볶이를 팔아 모은 전재산을 기부하고,

시신 기증 서약까지 해놓고 뭐 하나 남김 없이 가겠다는 할머니를 보면서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놓고서 이렇게 쓴소리를 늘어놓기가 미안하고 민망하지만,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기획의도를 밀어붙일 수 있는 결단력이 부족했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 했던 준비의 부족,

그리고 감동적인 사연만 줄줄 늘어놓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인식,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한겨울에 냉장고를 등장시킨 구태의연함이

일밤을 에베레스트로 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하루빨리 일밤의 <우리 아버지>, <단비>, <헌터스>가 제자리를 찾아

주말 저녁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속에서 프로그램 만드느라 고생하셨을 김영희 피디님과

모든 스탭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아버지들을 웃기고 위로하며 말벗이 되어준 신동엽, 김구라, 정가은 MC,

한파 속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전국을 누빈 김용만, 김현철, 탁재훈, 안영미 MC,

그리고 멧돼지를 잡지는 못 했지만 추운 곳에서 고생하신

정용화, 박준규, 올밴, 지상렬, 천명훈, 이휘재, 김태우, 예능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한 2NE1과

우윳빛깔 구하라 MC 모두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애정에서 나온 쓴소리니만큼, 너그럽게 보아 주시길 바랍니다.

 

 

찬스의 테레-비:評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찬스의 테레-비:評 http://www.cyworld.com/tv_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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