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사실 글쓰기가 매우 조심스러운데,
그 이유가 이 바닥이 워낙 좁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자력 산업 전체를 보면, 다른 어느 분야보다 넓습니다.
이 분야를 좀 알기 위해서는 기계, 전기, 토목, 화공, 핵물리, 심지어는
보건, 의료, 법률(원자력법) 조차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산업 전체로 보면 이렇게 넓어보이지만,
정작 원자력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의외로 적습니다.
하다못해 원자력이라는 이름이 붙은 과도 별로 없을 뿐더러
그 사람들 졸업하고 가는 곳도 거의 뻔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원자력 연구자로서 조금은 당혹스럽기 때문입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원자력이 MB 정부의 성과가 되어버린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수출 자체는 원자력쟁이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죠.
하지만 제가 조금 당혹스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지금 원자력계의 현실이, 원자력 전공자로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자력 기술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자력 연구소 덕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현재 상용화된 발전소는 일반 회사(KOPEC)에서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뒤에는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하고 안정성을 검증하고
그 설계 기술을 일반 기업으로 이전하기까지
원자력 연구소 연구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연구소에서는 가압경수로를 넘어서
고속증식로, 수소생산로, 더나아가 핵융합로 등
미래형 원자로를 개발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MB 정부 들어서 원자력 연구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있는 게 사실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소 및 공기업 인원 동결입니다.
원자력이라는 분야는 그 특성상
어느 나라든 대부분의 기술개발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집니다.
정부연구소의 인원이 동결되면
원자력쟁이들은 정말로 갈곳이 없어집니다.
일반기업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실수도 있지만,
이쪽의 연구들이 워낙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다보니
일반 기업 중에 연구 업적을 그대로 살리면서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전자나 기계, 화공 등의 분야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여하튼.. 최근 MB 정부 들어서면서
공공기관들이 인원감축 등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다들 아실테구요..
이 때문에 공기업, 정부출연연구소 모두 정부 눈치를 보면서
인원을 거의 뽑고 있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우
신입 연봉을 대폭 삭감했지요.
얼마전 요르단으로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심지어 이 연구용 원자로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조차
정규직은 거의 뽑지 않습니다.
찾아보세요. 신규 채용은 거의 비정규직입니다. -_-
하다못해 원자력 발전소를 감시하는 기관인 원자력안전기술원(KINS)같은 곳조차
그놈의 인턴인지 뭔지, 뒤치닥거리 하느라
신입을 거의 뽑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원자력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갈만한 곳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죠..
현실이 이럴진데,
갑자기 원전 수출에 성공했다,
정부 대외협상력의 개가다,
이딴 소리 들으면 오히려 힘이 쭉 빠지죠..
물론 원자력계를 좀 아는 분들은
원자력계의 이런 침체가 단순히
투자부족과 연구인력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원자력은 현재 재생에너지와 일종의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에서도
방사성 폐기물이 나오는 핵분열보다는
풍력이나 태양광같은 재생에너지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원자력계의 침체에 한몫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하지만 이런 기술적 논쟁에 대해서는 엔지니어로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용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연구자로서 제가 느끼는 침체는
단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정책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때는
이공계 지원정책이니 뭐니, 최고과학자니 뭐니 해서
그나마 나름 활기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과학자 혹은 과학기술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양심과 인간됨됨이를 떠나서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아울러 비록 제가 전공하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미래 기술에 대해서 우선가치를 두고
무언가 투자하려고 하는 확실한 의지가 보였습니다.
사실 딱히 원자력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연구용 핵융합로인 KSTAR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국제 핵융합 프로젝트인 ITER에 참여하게 된 것도
노무현 정부의 그런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조금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록 원자력 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루긴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현실과 미래가 따로 노는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 드는군요.
사실 원자력 기술의 수출은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해왔던 것이고
원자력계에서는 대통령이 누구였든 간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다들 예상해왔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설계 기술이 발전했고
수십년 동안 발전소를 운전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의 감시 속에서
발전소를 운영하는 노하우라든지 기술도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가 보기에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원자력 발전소의 수출에 성공했다, 안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정부가 이와 비슷한 제2의, 제3의 사례를 계속 만들어내고자 하는
어떤 플랜이나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인 것 같습니다.
사실 과학기술부를 폐지할 때도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부처의 행정적 효율성을 따지기 이전에
과학기술부는 일종의 정책적 상징이자 의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보통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히 비교우위에 있고 기대효과가 있다면
정책적 효율성 이전에 한번더 재고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당장 눈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휘황찬란할 지언정
30년 후를 내다보는 철학이 있는가의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자로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수출하게 된 한국형 원자로 개발을 위해서
묵묵히 땀흘려 일한 이름없는 연구원들의 한마디가 듣고 싶어지는 새벽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