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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 |2010.01.12 03:12
조회 945 |추천 0

이글은 원래 동영상자료로 되어있는데,

글만 퍼왔습니다. 6년이라는 군복무때

병사들 정신교육 자료로썼던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육군사관학교장-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선진의 주체,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얼마만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1950년 6월25일 새벽4시20분, 그날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죽음과

파괴의 공포로 몰아넣은 날이었다.

잔악무도한 김일성 공산도당들에 의해

전 국토가 아비규환이 되었던 그날,

북괴군의 전차와 대포 앞에서 M1소총과

맨주먹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화염병과

수류탄을 몸에안고 적의전차에 뛰어들어 팔과 다리가

찢겨져 진한피를 토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켰다.

모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었으며, 누군가의 사랑스런

낭군이었을 그분들은 조국흥망의 급박한 갈림길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품속과, 사랑스런 애인의 품속을 마다하고 시립고

적막한 산중에서 나라를위해 싸우다 가셨다.

이분들의 거룩한 주검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의 풍요와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어있음을 알고 있는가?


5ㆍ16혁명직후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가난한 한국에 돈을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 1억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낮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 뿔뿔히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체를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코올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m 이상의 깊은

땅속에서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캐는 일을 했다.

서독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남자 광부와

여자 간호사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할수 있을까?” 해서 붙여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 이었다.

몇 년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여명이

들어갈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때 이들은 목이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m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가며 힘든일을 하고있는 제 나라 광부들과 말도

통하지 않는 병원에서 시체를 닦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니 목이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말만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고생하고 있는 광부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라는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을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들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가족같이

한명 한명 껴안아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만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건네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UN에 등록된 나라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이 때 한국은

76불 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여개 나라 가운데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로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있었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머리카락 파세요.”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드신 분들은 서울 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이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해서 1965년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

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광부들과 간호사들이었다.

여기서 월남전 파병은 우리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보수세력으로 펌훼하는 그때,

그 6ㆍ25 참전용사,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이름모를 산천에서

거친숨을 몰아쉬며 조국을 위해

숭고한 죽음을 맞았던 6ㆍ25 참전용사,

월남파병용사, 이방인의 시신을 닦은

간호사,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광부,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한

 6, 7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보수 세력으로

펌훼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피와 땀을 흘린 오늘의

 6, 70대를 보수 수구세력으로

펌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줄아는 혜안을

지녀야하지 않겠는가?,

보다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참고 견뎌

국민소득 40,000달러대의

고지달성 때까지는 우리 신, 구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복하고 갈등하기에는

갈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서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한번 뭉쳐보자.

우리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 주면서 함께 가보자.


1964년 대한민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 뒤에는

40여년 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베어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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