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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날때 읽어주세요, 연애소설.

구김스 |2010.01.29 23:08
조회 1,279 |추천 0

 

 

 

 

 

1

 

 

 

 

 

 

  탕!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우리의 인생은 마치 마라톤처럼 정해진 경로의 코스를 달린다. 물론 모두가 완벽히 같은 존재는 아니다. 저마다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결승점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것처럼 우리 역시 제각각 나름의 다름을 추구한다. 때때로 몇몇 사람들은 코스를 이탈해 다른 이들과는 다른 색다른 경로를 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번호표를 내던져 버리기도 하고, 또다른 이들은 교묘하게 반칙을 사용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또 뛰어 번쩍이는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한다.

  그것은 순전한 자신의 몫이다. 원함의 유무와는 별개의 것이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우리의 경로는 정해지고 마는 법이니까.

  나는 흔하디 흔한 케이스였다.

  문득 깨달았을 때에는 상황이 나빠져 있었다. 어느샌가 먼 발치에 떨어져 나의 모습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동네 작은 문구점에서 내 시선을 자극하던 유리통 속 쳇바퀴를 무작정 돌기만 하는 조그만 다람쥐와 진배없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대략 10분 거리이기에 걷는 도중 급경사진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지금 버스타러 가고 있어. 도착하기 전에 문자할게.

  "알았어."

  어디부터 먼저 갈까?

  "일단 만나서 생각해보자. 나중에."

  그러자.

 

 

  광석이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명진이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마 방과후 여느때와 다름없이 게임을 하러 가는 길에 명진이가 데리고 온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대면에는 퍽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테가 굵고 각진 안경에 구릿빛 피부를 지닌, 자칫 촌스럽고 조용한 아이처럼 각인되었다.

  그날 이후로 교내에서 간간히 마주칠 때마다 알은척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다가 학년이 올라가고 같은 반이 되어 지금껏 친하게 지내고 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실바느질이 촘촘히 박힌 얇은 가죽지갑을 꺼냈다. 내가 지닌 몇 안 되는 소중한 물건 가운데 하나다. 어머니가 얼마 전에 중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우리 아들 선물로 딱이겠다.'라면서 집어들게 되었다던 휴고 보스제였다. 가격이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귀뜸해 주지 않았지만 성격상 진품인지 모조인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정류장에 선 버스에 올라타 뒷편 창가에 앉았다.

  핸드폰으로 문자나 할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그보다는 창가를 바라보며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나는 우주를 선망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워 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온갖 발버둥을 쳐봐도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스푸트니크Sputnik 호처럼 그저 무기력하게 불가항력의 힘에 굴복해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우주선을 탔던 개 라이카Laika에게 대단히 공감과 동정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한다. 확실히 궤도 안은 안전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우주에는 어떠한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른다.

 

 

  약속 장소에는 5분 늦게 도착했다. 여유있게 출발해서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느긋하게 움직였던 것이 원인이었다.

  덕분에 이동하는 내내 광석이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는 항상 엉뚱한 면이 있다. 지면을 향해 떨어뜨리는 공처럼 어느 각도로 튈지 짐작할 수 없다. 주변에서는 그 점이 그의 매력을 더욱 빛낸다고 말한다. 나 역시 심히 공감하는 바이다.

  경성대부터 가보기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평소에도 별다른 이유없이 이끌리는 데로 움직이곤 했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이 광석이인 것으로 봐서 굳이 이유를 추측하자면, 본인이 수시에 합격한 학교라 일종의 정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2

 

 

 

 

 

 

  대학교를 처음 접해 본 나로써는 상당히 놀랐다. 그동안 거쳐온 초, 중, 고등학교에 비하면 규모가 꽤 넓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학은 대부분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대학교의 풍경과 닮아있어 일축하자면 흥미진진한 견학이 될 터였다.

  학교 식당 근처를 지날 때즈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금껏 바람이 없어 12월의 겨울에도 신선한 온도가 유지되었는데 이젠 따뜻한 겨울과도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았다.

  없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견디기 힘들었는지 광석이가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 추워서 돌아다니기도 힘들어. 안 그래도 배가 많이 고팠었는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갈까...... 따뜻한 거 먹고 싶은데."

  "그냥 여기 학교 식당에 가자. 추워서 돌아다니기 싫어."

  그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말했다.

  "하지만 맛없지 않으려나?"

  "춥다니까. 그냥 가자."

  나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이 가까웠기에 몇 발치 걸어가서 학교 식당 문앞에 다다르자 그는 망설이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 생각해 보니까 맛없을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국밥이 먹고 싶어지네."

  "그래? 그럼 국밥 먹으러 가자."

  이내 광석이는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지만 길지는 않았다.

  "아니다. 그냥 학교 식당에서 먹자. 춥네."

  평소 내가 겪고 있는 불편함 중에 상당히 높은 쪽에 위치한다.

처음에는 그의 이런 제멋대로인 성격에 홀로 끙끙 앓곤 했었다. 지금도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약간은 면역이 생겼다. 게다가 내 쪽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항상 알고 있었다. 각종 연애 서적이나 관련 글, 인터넷 까페 정보를 통해 이를테면 연인에게 무작정 잘해주기만 해선 안 된다, 밀고 당기기를 잘 해야 한다, 신비감을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 능숙하게 스킨십을 해야 한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 따위의 흔하게 널리 알려져 있는 정보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가 선포형 화법을 쓰지 않고 의문형 화법을 사용할 수록 주체성이 부족해 보이고 자신감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오며 형성된 성격을 역시 옷 갈아입듯 간단히 갈아치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주위의 친구들 가운데 변덕이 심한 이들이 몇몇 있다. 이제 더이상 고목처럼 막아내고 맞서기보다는 갈대처럼 유연하게 흘려넘기곤 한다. 전과는 생각이 조금 달라져서, N극의 자석끼리 붙을 수 없고 S극의 자석끼리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톱니가 맞물릴 수 있다고 편하게 생각한다.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자존심은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그렇게 학교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끝냈다. 메뉴는 제육볶음과 육개장이었는데, 생각보다도 맛이 훌륭했다.

  곤혹스러웠던 것은 학교 학생이 아니면 식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매점 아저씨의 단호한 태도였다.

  다행히 그래도 매서운 바람 때문에 우리가 딱해 보였는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식권을 내주긴 했지만.

 

 

  식당을 나서니 움츠러들지 않을 듯 무서운 기세로 불던 바람도 한 달음 달리고 쉬어가듯 잠잠해져 어느새 선선한 초겨울 날씨로 돌아왔다.

  학교를 빠져나와 대학로에 도착했다. 경성대 앞의 대학로는 한 눈에 봐도 상당한 번화가였다.

  비교적 한산한 가로수 길로 들어서, 가로수마다 하나씩 이어진 나무로 된 벤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 그 순간 다리 아프다, 하며 광석이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기 앉아서 잠깐 쉬었다 가자.

  좋아, 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배가 고프지 않았더라면, 매점 아저씨가 우리를 끝까지 매몰차게 내몰았다면, 그래서 학교식당이 아닌 다른 식당으로 갔다면, 또한 바람이 여전히 거셌더라면, 수많은 가로수 벤치 중에서 다른 벤치가 시야에 들어왔다면, 정확히 그 순간 광석이 다리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다른 상황은 얼마든지 있었다.

 

 

  참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린 이 결정으로 인해 삶의 경로가 송두리째 뒤바뀌어버린다면 분명 그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선택이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부웅. 부웅.

  뭐지?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핸드폰 진동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그것은 마치 작은 돌에 날개를 부비는 작은 귀뚜라미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뭐해? 네 핸드폰, 전화오고 있잖아."

  광석이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내 거 아냐. 너한테 전화오는 것 아닌가?"

  나는 직감적으로 이 소리가 그의 것이 아님을 짐작하고도 물었다.

  "내 것도 아냐."하고 두터운 점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고는 멍한 눈빛으로 그가 말했다.

  "그럼 이게 무슨 소리..."

  "네 것도 꺼내 봐. 진동모드로 되어 있잖아? 나는 요즘 진동 잘 안 한다구. 좋은 벨소리가 얼마나 많은데."

  자, 하며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였다.

  "봐봐. 이것도 아닌걸."

  "에? 이상하군. 어디서 나는 소리지?"

  "멀리서 나는 건 아닌데? 가까워."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소리의 원인으로 의심될 만한 그 무엇도 찾지 못했다.

  이윽고 허리를 숙여 벤치 아래에서 말라 비틀어진 낙엽에 가려진 핸드폰을 찾아냈다.

  그것은 마치 추위에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작고 여린 생명체 같기도 했다.

  "나이스 캐치!"

  핸드폰을 주워들면서 나는 외쳤다.

(동시에 이 물건의 주인을 상상하며 실루엣을 그려보았다.)

  로맨스의 시작인가?

  의외로 남자들도 가끔씩은 은근히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곤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닌게아니라, 17살이 되던 해 봄이었던가.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짝궁이 버스정류장에서 어느 여학생의 지갑을 우연히 주워서 연락을 통해 가까운 관계로 발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관계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서울에 살았는데, 모델 일을 하다가 부산에 잠시 볼 일이 있어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짝궁이 그녀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한 나머지, 믿거나 말거나 사흘간 시체를 다섯 구나 닦아 서울에 다녀올 경비를 마련해 그녀를 만났지만, 보기 좋게 퇴짜를 맞고 쓸쓸히 부산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그 짝궁의 얼굴을 보자마자 출행랑을 쳤다는 설도 있었다.)

 

 

  "오, 동효. 대박이네."

  광석이의 눈으로는 어떤 점에서 대박이라는 걸까?

  "아, 이런식으로 핸드폰을 주워보는 건 처음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핸드폰의 진동이 멈췄다. 슬라이드형의 몸체에 은빛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 소재의 테두리로 둘러싸인 액정에 꽤나 큰 글씨로 '러블리 마더'라고 깜빡이고 있었다.

  "폰 주인 부모님이겠다." 라고 내가 말했다.

  "줘봐. 게임 많을 것 같다."

 

 

  광석이에게 '대박'의 의미는 핸드폰 게임이었다.

 

  


 

 

 

 

 

3

 

 

 

 

 

  '러블리 마더'와 연락이 된 건 그로부터 보름쯤 지난 후였다.

  집으로 핸드폰을 가져와 확인해보니 모든 기능이 잠금 상태였다.

  모든 핸드폰이 그렇듯 잠금 설정 상태에서도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를 수신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폰을 충전기에 연결해 두고선 그 작은 전화기의 존재를 망각해 버리고 말았다.

  이따금 외출 직전에 내 핸드폰과 충전을 교대하면서 주인을 잃은 핸드폰은 무언의 외침으로 나를 상기시켰지만 나는 철저히 묵살했다. 핸드폰을 두 개나 가지고 다니기엔 힘든 노릇이었다.

  운명에 대한 판타지는 결국 21세기에 생겨난 신종 바이러스virus인 '귀차니즘'의 숙주가 될 판국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폰 배터리battery 를 갈아끼우러 방으로 들어갔다가 기막히는 타이밍에 전화가 온 것이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전화기를 들며 여보세요, 라고 나는 말했다.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핸드폰 주으셨어요?"

  "아... 네. 경대 앞에 있던 벤치에서..."

  "아이구, 다행이네요. 우리 딸 폰인데 학교 근처에서 잃어버렸거든요. 통화는 발신만 되고 찾을 방법도 없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러블리 마더는 내 말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그럴 만도 하셨겠네요. 다행히 제가 주워서 지금까지 잘 보관해두고 있었어요."

  "덕분에 찾았네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그나저나 언제쯤 드리면 될까요?"

  "편하신 시간에 제가 그곳으로 갈게요."

  "괜찮아요. 제가 그쪽 계신 곳으로 갈게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직접 찾으러 오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아니죠. 폰도 찾아주셨는데 제가 가야죠."

  "음, 그러면 내일 7시에 서면에서 보는 게 어떨까요?"

  "내일은 좀. 아휴... 괜찮은데. 그럼 미안하지만 모레는 어떠세요?"

  "모레부터는 일이 있어서요."

  아닌게 아니라 이틀 뒤부터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내일 한번 시간 내 볼게요. 7시에 서면 맥도날드 앞에서 보기로 해요."

  "그래요. 그때 드릴게요."

  통화가 끝나고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로맨스는 무슨.

  상상의 나래는 감식되고 현실적인 고민을 실은 기차가 뉴런 철도를 따라 돌기 시작했다. 괜시리 침울해지기도 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그야말로 에버랜드의 청룡열차 같다. 그러다 보니 영락없이 감정에 휘둘리게 되어버리고 만다.

  보통 이런 상황에 심란한 감정이 드는 게 맞는 건지.

  외로움을 느끼는 건가?

  나는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빵- 빵-

  6차선 도로로는 부족한지 저마다 기세좋게 경적을 울렸다.

  서면은 항상 인파와 차가 끊이지 않는다.

  반인반차半人半車라고 해도 좋았고 차산차해車山車海라고 해도 좋았다.

  도로가에 덩그러니 있는 지하도를 지나치자 오른편에 맥도날드가 보였다.

  무심코 시계를 바라보니 분침이 11과 12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 오겠군.

  맥도날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밖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가 의자에 앉아 '러블리 마더'에게 전해줄 핸드폰을 창가 탁자 위에 내려다놓았다.

  애초에 상상했던 것처럼 되진 않았지만, 어찌됐든 핸드폰을 줍고 주인을 찾아주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선행이기 때문에 뿌듯하기도 했다.

  창가에 기대어 턱을 괘고 맥도날드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그시 응시하며 '러블리 마더'로 추측될 만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대학생 딸이 있는 어머니이기에 4,50대 여성을 한참동안 찾아보다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기에 나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찰나 눈이 스르르 감기고 말았다.

 

 

  똑똑.

  왼쪽 어깨죽지 언저리즈음에 작은 노크가 느껴졌다. 그것은 수많은 말을 응축시킨 듯한 여린 손짓이었고, 몸 안 가득히 메아리처럼 퍼져나가는 아주 작은 울림이었다.

  나는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눈이 감겨 자연스레 엎드려 있을 때 탁자에 약간의 침이 흘렀다는 사실을 수습할 틈도 없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죄송하지만 핸드폰 가져오신..."

  어림잡아 내 나이 또래쯤으로 보였지만 몸에서 풍기는 여성스럽고 성숙한 분위기가 대학생임을 짐작케 했다.

  흐른 침과 갑자기 등장한 여성으로 인해 나는 당황과 긴장으로 정상적인 사고기능이 정지되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

  "제 핸드폰"이라고 탁자에 놓인 폰을 보며 그녀는 확신하듯 말했다.

  "고맙습니다."

  "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원래 저희 엄마가 오기로 했었는데 일이 바쁘셔서 제가 직접 왔어요. 더군다나 제 핸드폰이고 제가 잃어버린 거니까 제가 오는 게 당연히 맞는 거지만요."

  그녀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제서야 눈 앞에 있는 그녀가 핸드폰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라는 단발의 신음에 가까운 소리밖에는.

  자신이 넘치고 당당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패닉은 길지 않았고, 길어서도 안되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이를테면 '아, 날씨가 참 좋죠? 하하."라든가 "혹시 여기 햄버거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한답니다." 따위의 바보같은 말이라도.

  아니, 그런 바보같은 말은 취소다.

 

 

  깜짝, 하고 나는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직접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라고 말하려다가 턱 끝에서 집어삼켰다.

  "말 안 하고 와서 좀 그러셨겠네요."

  그녀는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기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한참 생각하던 끝에 내가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고작 그게 다였다. 나는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른다. 그저 별다른 일 없이 핸드폰만 건내주면 될 사람을 만나는 게 꼭 준비가 필요하냐고 말이다.

  글쎄, 그렇다면 이건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본격적인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는 이유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전해주고 싶다.

 

 

  "네? 아니, 이렇게 찾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릴게요."

  뜻밖이었다. 내 전두엽에서는 '이만 가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그곳을 빠져나온다는 하나의 계산밖에 해 놓지 못했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일반적인 대화가 흐르는 템포대로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수고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거기를 빠져나왔다.

  객관적으로 보면, 본심을 반어로 재해석해서 마구잡이로 내뱉는다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리허설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리허설이 부족할 수록 뮤지션은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범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코너를 몇 번 돌아,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그제서야 잠 기운이 달아나고 얼떨떨하던 정신이 맑아졌다.

  후회는 오래 걸리지 않아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운명이 되었을 지도 모를 기회를 날려보낸 셈이다. 흔히들 남자가 구애에 있어 여자보다 적극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다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기도 한다.

  대다수 남성들이 여성보다 적극적인 것은, 어쩌면 여성보다 더 운명적인 어떤 것을 꿈꾸기 때문에 (여성들이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남성들이 유리구두에 맞는 발을 가진 신데렐라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의 이 기회이진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지독히 남성 편력적인 미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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