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침표를 찍다. ‘.’
흘러간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착각을 했었다. 고백과 포기, 고백과 포기를 거듭하면서 5년이란 세월을 혼자 짝사랑 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되지 않았다.
‘내 지갑 속 깊은 곳에 숨겨 놓은 네 모습을 지갑 속 사진첩에 넣어두어도 되겠냐’는 나의 물음과 10송이 장미를 건내자 그녀는 ‘사귄다면 자주 연락해야 하고 손도 잡고 뽀뽀도 해야 하는데 우리 둘의 그런 모습이 상상이 안돼’하며 미안하듯 답변을 했다.
“지난 번에 전화로 내가 너랑 사귄다고 한 말에 너 그러는거야? 그거 농담이었어. 그 날 우울하고 고민되서 그런거야.”
“농담...”
“오래 알고 지내서 그런지 너랑은 친구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아.”
“...”
“넌 내가 왜 좋아? 처음부터 날 좋아하지 않았잖아.”
“글쎄... 나도 네가 왜 좋은지 모르겠어.”
“나도 웃는 모습이 예쁘고 말도 세련되게 하는 남자가 좋은데, 넌 나이 들면서 점점 멋있어 지는 것 같아. 운전하는 모습도, 날 위해주는 마음도 그렇고, 웃을때 들어가는 보조개도 예쁘고... 근데 너랑 사귄다고 생각하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한편으로 다른 여자에게 나한테 대한 것처럼 잘해 준다면 그건 또 싫고... 나도 모르겠어. 아마 오래 지내서 그런 것 같아”
“친구 이상 감정이 안 드는 거네. 그런거네. 그만하자.”
“계속 이야기 해”
“네 표정이 굳어져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답변 안 들을래”
어떠한 이야기가 더 오고 갔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결론은 그녀는 나를 친구이상의 감정으로 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었다. 이 자리를 빨리 떠나 혼자 있고 싶었다. 나에게 어떠한 행동을 해도 그녀 얼굴을 보는 것이 낙이였던 나였지만 지금 그 순간만큼은 그녀를 피하고 싶었다. 이런 어색함은 세상 누구도 달갑게 즐기지 않는다.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볼지 모르니 잠시 이야기나 하자며’ 그녀의 집 근처 구석에 조용히 주차했다. 그러면서 아까의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너도 좋아지고, 집도 화목한거 같고, 날 정말 아껴주는 것 같은데 아무 설렘이 없어. 앞으로 사귀면서도 손잡고 스킨십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
“...”
“손 한번 잡아볼까?”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여전히 설레고 떨렸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함과 더불어 쓸쓸함이 밀려왔다. 다시는 우연이라도 마주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이번을 끝으로 나는 그녀를 다시 찾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알기에.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아. 가슴 떨리고 설레여야 하는데 전혀 아무렇지 않아.”
“늦었다. 들어가자.”
“나한테 잘해주는 것도 고맙고 점점 좋아지는 것 같기는 한데... 사귀는 건 그래!”
“...내가 네 옆에 있으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절대 다른 사람 만나지지 않을거야”
“나도 작년부터 네가 부쩍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니 너도 지쳤구나”
“...응 이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어. 긴 시간 후회없이 좋아했고 이제 우리가 친구조차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운명으로 생각할거야. 여기까지 널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운명. 널 미워하지 않아. 사랑이란 단어가 어울리겠다. 혼자서도 오랫동안 좋아했으니 사랑이란 감정이 맞겠지. 혼자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으니 좋은 추억으로 기억 할 수 있을거야”
“혹시 나중에라도 내가 알고 있는 여자랑 결혼은 하지마라.”
“어머니 걱정하시겠다. 빨리 들어가.”
“아마 내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서 그런거 같아! 누굴 사귈 여유없이 나 혼자 살아가기도 힘든데...”
“응... 그래... 잘 지내고... 늦었다.”
그녀가 차안에서 내렸다. 늘 그랬듯이 나도 차안에서 나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배웅하려 했다.
“잘 지내”
그녀의 작은 손이 입술을 살짝 댄 후 나의 입술에 대며 그녀가 말했다.
또다시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여기서 또 흔들려 그녀를 찾게된다면, 친구로라도 좋으니 만나만 달라고 또 매달린다면 난 5년을 그래왔듯이 가시밭길을 계속 걸어야만 했다. 나를 위해서 다시는 어떠한 연락도 안겠다는 다짐을 해야만 했다.
그녀도 이 순간이 마지막이란 것을 알았을까? 평소하지 않던 내 손을 잡아주고, 손으로 전해준 따뜻한 입맞춤도 전해주면서 나의 기억에 좋은 그녀로 기억에 남아 있게 하려고.
5년 동안 친구로 만나면서 내 인생은 가시밭길을 걷는 불안함 속에서 헤매었다. 사귀는 것도 아닌 친구도 아닌 그런 모호함 속에서 난 그녀의 작은 반응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나를 버린 헌신적인 행동으로 잠시라도 그녀를 볼 수 있었고 잠시나마 행복해 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자존심도 없이 5년동안 네가 좋다고 외쳤고 되돌아오는 메아리에는 항상 친구라며 처량하게 되돌아 왔다.
이제 정말 끝이다. 내 삶은 더욱 초라해져 엉망이 되겠지만 하루 빨리 좋은 사람 만나 연애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잊혀지면 그녀와의 어색한 사랑과 우정사이 속에 머문 추억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싶었기에 이번 마지막 고백도 답을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친구라는 확신을 끝으로 그녀를 정리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아쉬움과 함께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결언한 다짐이 앞선다. 이.제. 정.말. .끝.이.다. 그렇지만 핸드폰 속 전화번호는 삭제 키를 누름과 동시에 흔적없이 지워졌어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전화번호는 추억과 함께 선명히 남아있다.
어렵게 사랑을 고백한 사람에게 가장 힘든 대답은 “친구” 라는 말이다. 포기할 수도 다가설 수도 없는 애매한... 내 나이 서른 둘에 깨달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