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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有)배신과 사기속에서도 날 지켜준 엄마

1905 |2010.02.13 23:42
조회 36,780 |추천 72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두말 필요없이 엄마였습니다.

 

어렸을 때를 되돌아 기억해보면 자식으로서 엄마를 대한게 아니라

두려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눈치를 살폈던 기죽은 시절이었던것 같아요.

 

백화점이나 완구점에 가서 인형갖고 싶다고 떼를 쓰면 아무말 안하고 집에 갈때쯤

독기를 품으셨어요. 그러더니 말없이 '손바닥 대'라고 말씀 하셨어요

그러면 저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건지 이유도 모른채 맞으면서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 알아서 다 사줄텐데

떼쓰고 사달라고 하는건 잘못된거라고 눈물이 쏙 빠질정도로 혼을 내곤 하셨지요..

 

4살이 지나고 5살부터 매일 유치원에, 끝나면 바로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영에 피아노에 발레에 월수금 화목토 돌아가며 글짓기 종이접기 동요교실이며

하루에 책한권 꼭 읽히고 독후감써서 검사받기를 반복하며 초등학생이 됐습니다.

 

아침 아홉시에 나가서 저녁 8시에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지쳐도 내색한번 못하고

혼날까봐 억지 생활을 하던 중이였습니다.

 

그리고 10년만에 낳은 자식이라 욕심이 많으셔서 좋은 옷, 좋은 약,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않고 다니며 엄마의 자존심처럼 저를 키우신것 같아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받아쓰기를 하나 틀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기싫어서 불안해하며 집에 갔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2학년.

화목했던 우리집에 다른집과는 다른 환경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석달이 넘게 집에 오시지 않더라구요..

엄마는 아빠가 출장가셨다고 했지만 좀 지나고 알았습니다.

연락도 없이 그대로 집을 나가셨다는걸..

 

 

그때는 어려서 엄마 말을 믿었습니다.

출장이 길어져 1년있다 오신다고..

 

그러던 중 몇달되지않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됐습니다.

아빠는?

 

이라는 질문에 엄마는

아빠는 이제 안올꺼야. 그러니까 너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엄마 말 잘들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유치원을 이모랑 같이 하게 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는 자리를 잡았고 그러고 2년이 훌쩍 지나 아빠의 존재를 잊게 됐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아저씨가 가끔씩 오기 시작하시는거예요..

매일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그 아저씨가 시간이 지나자 절 부르고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의아했지만 엄마도 그러라고 해서 그 아저씨는 아버지가 됐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였어요.

 

집에서 학원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벨이 울리더라구요.

누구세요?

 

인터폰으로 확인해보니 몇년을 못봤지만 한눈에 아빠인걸 알아봤어요..

문을 열었더니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장 건네면서 아빠가 미안하다

엄마말 잘듣고 잘지내라. 하며 가셨어요.

 

엄마한테 아빠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6학년때였죠.

 

엄마는 왜 아빠랑 같이 살지 않는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묻지 않았어요.

그러고 중학생이 됐고 저는 또래 친구들과 만나며 점점 엇나가기 시작했죠.

 

더이상 공부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가고,

반항도하고, 나쁜짓도 많이 하고 엄마 속 많이 썩혀드렸어요.

 

엄마는 안되겠는지 서울로 전학을 결심하고 옮겨가서 해야할일을 모색하던 중에

새아빠가 적극 추천한 횟집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새아빠 아시는 분의 소개로 방배동에서 횟집을 동업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계약할때도 구두계약식으로 했던지라 사기를 당하고 접게 됐어요.

 

그러고 이사를 가게됐어요 엄마가 주택에서 살꺼라고 하시더라구요.

2층 주택. 마당있는.

 

 

이사간 날 너무 좋아서 잠도 제대로 못잤어요 집 너무너무 좋다~

 

 

 

근데 그집도 새아빠가 적극적으로 알아봐서 계약했는데 경매넘어간 집이더라구요.

그래서 2주도 못있고 집에서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ㅡㅡ

 

완전 절망한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어요.

 

(벌써 전학만 4번째.)

 

친구들하고 친해지는데도 이젠 힘들어진 저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누구든 금방 친해지지만 깊게 지낼 수 없는 사람이 됐죠.

한마디로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외로운사람....

 

 

 

근데.. 새아빠가 친구 보증을 잘못 스시는 바람에 큰일이 나게 생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가 변호사비며 원상복구 시키려고 땅까지 팔았습니다.

 

 

완전 바닥을 치고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친해질만하면 헤어지고 친해질만하면 헤어지고 저도 학교생활에 지쳐있었고,

엄마도 일이 제대로 안풀리니까 엄마대로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받고 있었어요..

 

처음 이사간 날.

 

엄마는 제 손을 잡고 말하셨어요.

 

'이집에서 1년만 버티자.. 1년만 있다가 다시 서울갈꺼야..'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째 이집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러기를 반복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새아빠는 서울에서 일을 했고 엄마랑 동생과 셋이 살았는데..

이때부터 엄마와 갈등이 심해졌어요.

 

아침마다 엄마한테 차비를 받아 학교를 다녔는데 어느날이었습니다.

 

'엄마 돈줘'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어제 그돈 벌써 다썼어???'

 

라고 하는겁니다.

 

 

참고로 전날 전 천원을 받았다는 ....ㅡㅡ

 

 

'엄마 어제 천원줬잖아.차비면 끝나는거 당연하지!'

 

 

그러자 엄마는 노발대발하며 '돈 못줘. 걸어가든 가지말든 벌어쓰든 니맘대로해!!'

 

 

이러시는 겁니다.

 

 

 

 

그때부터였던거 같습니다.

일주일에 엄마랑 대화가 급격히 줄어 3마디 이상 하지 않는 사이가 됐어요.

 

 

정말 우리 친엄마맞아?라는 생각에

정말 철업시 친구들한테 울엄마 계모같다는 소리까지하게 됐어요.

 

 

전 학교생활보다 그때부터 알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잠만 자고 새벽알바며 주말알바며 닥치지 않고 일을 했어요.

 

왜냐하면 급식비부터 생활비까지 모두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했기 때문에

학교 생활은 뒷전이 될수 밖에 없었어요..

 

 

집에 친구라도 데려와서 라면이라도 먹고 있으면 외출다녀온 엄마는 친구를 한번보며

저에게 '내집에 친구는 왜데려와!!! 당장 나가' 하며 친구를 당황하게 했고

친구가 가고나면 '다시는 집에 사람 데려오지마라.'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점점더 미워졌고 엄마랑 대화가 단절됐습니다.

 

그때 전 결심을 했었어요.

 

 

'20살이 되면 소리소문없이 이집 나가버릴테다.'

 

 

고3. 수시접수를 하고 대학에 붙었습니다.

엄마 나 대학붙었어! 등록금넣어줘!

 

 

다행히 새아빠 회사에서 등록금이 지원되서 그냥 들어갈수 있었어요.

 

근데 엄마가 '학비는 니가 벌어해라' 라고 하니까

생각이 다시 들더라구요.

 

내가 과연 학비를 벌면서까지 학교를 가서 얻어오는게 있을까/

 

그래서 안가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근데 엄마가 미운거예요.

 

 

...왠지 모를 불편한 분위기가 오가는 집에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20살이 되고 졸업을 한뒤 전 친구랑 집을 나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좋았죠.

 

그러고 반년이 지났어요.

 

 

 

 

조금씩 엄마 생각이 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도 21살까지는 몰랐는데 21살 어느날 전철을 탔는데

 

아빠를 만났어요. 친아빠.

 

 

아빠는 당연히 어른이 된 저를 못알아봤지만 저는 아빠를 알아봤습니다.

 

 

4-5살 정도 되보이는 남자아이와 8살정도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빠아빠 거리고

아빠는 많이 늙은 얼굴로 힘없이 앉아계시더라구요.

 

 

그렇구나.... 엄마가 잘못한게 아니라 아빠가 엄마를 배신한거구나..

어른이 되고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21살 겨울.

 

엄마한테 고1이후로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엄마 나 서울에서 살고싶은데 원룸 구하게 보증금좀 빌려줘.'

 

 

'어..엄마도 돈이 없어서.. 알겠어 기다려봐'

 

 

그러고 2일 후에 구해주셔서 전 그돈으로 방을 구하고 서울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철없던 나이에 일을 하다 22살.

 

일을 관두면서 돈이 없어지자 방을 빼고 보증금을 다 써버렸습니다.

 

 

한심한 나날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다 우연히 접하게 된 모델에 매력을 느끼고

그쪽으로 일을 시작해볼까 하며 하나씩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죠.

 

 

 

 

23살. 엄마를 찾아간 집에서 엄마가 많이 늙은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까지 몰랐던거예요.

 

 

 

 

 

 

저라면 정말 포기하고 싶었을겁니다.

 

초등학교 2학년.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자신 혼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생각에 막막한..

 

 

그러다 마음을 열고 만나게 된 사람은 의지할 만한 상대가 못됐던 거죠.

 

 

몇번을 사기와 배신의 연속을 지내고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에서

엄마는 이러면 안되겠다 생각하셨던겁니다.

 

그래서 돈없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더우 못되게

자신으 ㅣ마음은 아프지만 돈 니가 벌어쓰라고.

 

 

넓고 좋은집에 있다가 좁고 초라한 집으로 이사온게 속상하셔서

친구들이라도 오면 챙피해서 못오게 했던거.

 

 

 

서울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저에게 실망시켜주고 싶지않아서

보증금을 대출받아 해주셨다는거.

 

 

그리고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우셨다는거..

 

그건 얼마전에 술을 같이 마시다가 듣게 됐습니다.

 

 

'내 딸인데.. 대학도 마음편히 못보내주고..

서울에서 일하고 싶은데.. 엄마가 되서 월세 보증금 하나 못대주고..

너무 미안해..'

 

'그래도 엄마가 그 어린 널 가지고 같이죽을까도 생각했는데

죽을동살동 너 생각하면서 버틴거야.. 엄마 마음 알지?'

 

 

그말에 너무 찡하더라구요.

 

날 이렇게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엄마를 전 계모로 생각하고 있었다니요..

 

 

 

그리고 말하셨어요.

 

 

'엄마 욕심에 너를 엄마 마음대로 키우려고 했던거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엄마 이해해줘서 고맙다..'

 

 

 

 

 

지금 어엿하게 황토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 엄마를 보면서 대단하기도 하고

너무 멋지기도 하고 너무 너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하루이틀 눈에 보이게 앙상해져가는 다리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와요.

하루 빨리 호강시켜드리고 싶은데 그게 맘처럼 안되네요..

 

그래서 예전에는 하지않던 애교도 부리고 안마도 해드리고, 밥도, 요리도

제가 많이 도와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사랑이란 위대하다는거 다시한번 느끼게 됐어요.

 

요즘같아서 우리엄마같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설날 다음날이 생신인 엄마께 뭘 선물해드리면 좋을까 궁리하던중에

네이트를 뒤지다가 이렇게 쓰게 됐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여러분 엄마한테 잘하세요.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

 

그 어떤 친구나 애인보다도 나에게 노력하고 아무 이유없이 사랑해주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엄마한테 효도하세요.

 

지금이 아니라면 나중엔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추천수72
반대수0
베플-|2010.02.17 08:54
이름만 들어도 눈물부터 나오는 그 이름 어머니. ------------------------------------------------ 베플감사 ! 새해 복터지세요. www.cyworld.com/higaeji

이미지확대보기

베플.|2010.02.17 13:57
누군가가 그러시더이다. 어릴쩍은 가장 무서운사람이 부모님이였는데,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오니, 부모님 빼곤 다 무서운 사람들뿐이라고...
베플이와인|2010.02.17 09:55
모델이란 일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모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해야 함. 철들어줘서 괜히 제가 다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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