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허무하다는 걸 매일 매일 느끼고 있는 27세 여자입니다.
참 세상은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고, 언제나 제약만 있고, 그러네요.
27살이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시집가면 되는 좋은 나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그럴테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힘들고 가슴이 아픈 날들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의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아끼는 물건에 손을 대 아버지한테 혼이 많이 났었죠.
좀 애한테 심하다 할 정도로, 물론 저 역시도 그렇게 혼나도 그 버릇이 고쳐지지 않으니
아버지께서 더 혼내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어릴 적부터 아버지한테 허벅지에 멍이 들도록 맞고 하다보니
아버지가 너무 너무 무섭고, 집에 들어오는 것도 싫고 그렇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다정하고 재미있는 아버지를 두어서 좋겠다고 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가족을 대할 때 아버지 모습이 많이 달랐다는 걸
사람들이 몰랐기 때문이었어요.
반면에 어머니는 절 어린 시절부터 많이 끼고 도셨다고 해야하나?
그런 편이었어요. 아버지가 너무 가혹하게 저를 혼내니까 그런건지,
어머니가 저를 너무 끼고 돌아서 아버지께서 저를 미워하신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숙제도 공부도 항상 어머니께서 상머리에 앉히고 하나하나 가르치셨고,
옷입는 것 물론 준비물이며, 가방이며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도 하나하나 다 챙겨주셔야 직성이 풀리셨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저는 똑똑하고 어머니 아버지 말씀 잘 듣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다만 사회성이 많이 떨어져 친구들과 못 어울려 항상 힘들어 했었다는 것 외에는
그럭저럭 공부도 잘 하고, 학교 선생님들도 이뻐하고, 그리고 내 세상 속에 갇혀 그런대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도 제가 공부를 잘 하니까 친구들쯤은 없어도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히 고등학교 무렵엔 나름대로 내 세상을 깨고 나와 슬슬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어울리기 시작했고, 27살이 된 지금은 별 문제 없이 사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될수록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간섭에 제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사실 무섭던 저희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생 때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아버지랑 그다지 부모자식간의 정을 쌓지 못하고 끝나버렸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무섭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돌지는 않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합니다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요.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안 계신 다음부터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 같았습니다. 뭔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전에 그렇게까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쫓아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돈 많은 사람과 권력있는 사람을 쫓아 어울리는 것을 낙으로 알고, 화려하고 세련된 치장과, 사람도 겉보기 좋은 이들과만 어울리려 하십니다. 27살인 한창 꾸밀 나이의 저보다도 더 미용에 관심이 많으시고, 저에게 하나하나 간섭하기 좋아하시는 성격과 그런 이유들이 어우러져, 지금까지도 옆에 있으면 제 옷 입는 것, 머리하는 것, 화장하는 것 하나하나 다 어머니 마음대로 하려 하십니다. 제가 사서 입는 옷, 제가 하고 싶어서 한 머리스타일, 화장... 모두 다 싸구려같고 촌티난다고 항상 비난해가시면서요.
처음엔 어머니 말에 투덜대면서도 잘 맞춰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점점 그런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가 산 옷과 구두 악세서리 헤어 모두 다 촌스럽다고, 이 나이에 저를 어머니가 사오신 옷들로 다 바꾸어 입히고, 머리까지 해놓습니다.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저보고 훨씬 낫다고 거울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소름이 끼칩니다. 거기에 저는 없고, 그냥 우리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 서 있을 뿐이니까요.
저는 사실 교직에 있습니다. 옷이야 선생님답게 품위있으면서도 검소하게 입으면 된다고, 그게 맞는 것이고, 그렇게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교육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옷을 이상하게 입는 것도 아니고...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고 나오면, 쪽팔려서 같이 못 다니겠다고 인상을 찡그신 적도 많으십니다. 너무 너무 속상하게 말이죠.
비단 저를 대하는 태도는 옷 뿐만이 아닙니다. 저를 대하는 어머니는 뭔가 항상 저에게 짜증과 화가 나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들이 항상 상황에 안 맞고 푼수 같다고 싫어하십니다. 모르겠습니다. 가끔 저희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제가 진짜 쫌 어딘가 모자란 애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암튼 그러네요. 그럴 때면 어렸을 때 내가 내 세계 속에 너무 오래 빠져 있고 친구도 별로 없이 지내서 남들과 다르게 보이는 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너무도 속상하고 힘들고 그렇습니다.
작년에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6살 많고, 그도 교사입니다. 가정적인 성격에, 성실하고, 성격이 많이 꼼꼼해서 탈이지만 덤벙대는 절 잘 챙겨주고, 정말 자상하거든요. 가끔 그 사람 친구들이 그런답니다. 뭘 그렇게까지 챙겨주냐고, 너무 잘 해주면 나중에 고마운 줄 모른다고...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이 사람 저를 공주 받들듯 잘 해줍니다.
암튼 정말 저를 세상에 둘도 없는 여자처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이런 사람 못 만나봤고, 이 사람이랑 헤어지면 다른 사람 더는 못 만날 것 같을 만큼요. 어쩌면 이 사람에게 어린 시절 무서워서 곁에 가는 것도 싫었던 아버지란 사람한테 못 받았던 그런 비슷한 정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음껏 애교도 부릴 수 있고(사실 저 이 사람 만나면서 제가 이렇게까지 애교가 많은 성격인 줄 몰랐네요.) 또 이 사람이 그런 제 모습을 너무너무 예뻐해주고, 정말 옆에 있으면 너무 너무 행복하고, 애틋하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네요.
올해 초에 이 사람이 우리 집에 인사를 왔네요. 사실 저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스타일이 분명 아닐 거거든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겉보기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저를 이렇게 사랑해주고 아껴주는데 그리고 제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싫어하실까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 이 사람 보시더니, 한 마디도 안 거시더군요. 노골적으로 저한테 너도 눈이 있으면 한번 봐라. 저걸 남자라고 데려왔냐시면서... 그러더니 머리 숱도 없고, 코도 낮고, 입도 튀어나오고 키도 작고 뭐 하나 백이면 백군데 마음에 드는 데가 단 한군데도 없다면서 아주 맹비난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솔직히 이 사람, 어디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 듣습니다. 객관적으로 나이에 비해 많이 어려보이고, 귀엽게 생긴 얼굴이거든요. 나중엔 이 사람이 뱀띠라 돼지띠인 저와는 궁합이 안 맞는다는 얼토당토한 이유까지 만들어 가며 반대를 하시네요. 저희 집 교회 다니는데 말이죠.
사실 저희 아버지도 어머니랑 뱀띠, 돼지띠 궁합이시긴 해요. 물론 저도 그 사실을 옆에서 봤지만, 어머니 말씀대로 띠 궁합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부터 간이 안 좋으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차마 어머니께 그 말씀을 못 드리고...
어머니께서는 너 과부되고 싶으면 나랑 인연 끊고 그 남자한테 시집가라고 하실 정도로 반대하십니다. 아니 결혼은 물론이고, 지금 교제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계세요. 제 핸드폰까지 뺏고, 제 핸드폰으로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 어머니 핸드폰 번호까지 알아내, 막무가내로 폭언을 하시며, 우리 딸 못 준다고 으름장까지 놓으셨네요. 그 사람네 어머니는 저 많이 이뻐하셨는데, 지금 마음 많이 상하셔서 저와 그 사람이 만나는 거 이젠 반대하신다고 하시네요. 그렇다고 아직도 저희 집이 이런데 제가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머니 얼마전엔 저 직장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땐 몇 번 연락이 안 되었다고 제 핸드폰까지 아는 사람한테 해서 복제해놓으신 거 있죠. 정말 환장합니다. 다행히 그 사람이 자기 명의로 다른 핸드폰을 만들어 줘서 그 폰으로 문자만 주고 받고 하고 있지만요. 거의 의처증 수준이예요. 도대체 어머니가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이렇게 집착하고, 제 결혼에 완전 목숨을 거시고...
전 무섭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원하시는 조건의 잘생기고, 돈 많은 사위감 만나, 어머니 근처에 살면서 결혼해서도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 간섭 받고 사는 거... 여전히 제 옷, 머리 스타일 보고 뭐라하실 건 뻔하고요. 살림, 반찬, 하다못해 커튼 한 장 해다는 것도 일일이 간섭하시고, 사위 넥타이 하나 사입은 것, 아이들 해 입히고, 먹는 것 가지고 뭐라뭐라 하실 생각하니 너무 끔찍합니다. 그러시면서 어머니는 그걸 인생의 낙으로 삼으실 테죠.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내 인생이 너무도 허무하고 괴롭습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난 이런 삶 그만 살아도 좋으니까 엄마한테 내 몸을 빌려줘서 엄마 마음대로 하고 살게 하고 싶네요.
너무 힘듭니다. 사람은 나이 먹는 대로 거쳐야할 과정이 있는 건데,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저를 기껏해야 중고등학교 학생 수준으로 밖에 안 보시는 것 같네요. 일부러 좀 그만 간섭하시라고 직장도 멀리 지방에서 잡아서 교사하고 있고, 여기서도 제 앞가림 잘 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여전히 집에만 오면 전 17살짜리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아뇨. 아직도 신발 하나 신는 것 가지고 뭐라 하시는 것 보면 초등학생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나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하면 어머니랑 대들고 싸우는 것밖에 안 되고, 매사에 그렇게 으르렁 대면서 싸울 수도 없고, 정말 힘듭니다. 이젠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했는데도 이러네요. 저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싶고, 이제는 제가 제 삶의 주권을 가지고 좀 살아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았는데, 그렇게 제가 노력해서 만든 결과들마저도 어머니의 만족을 위해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네요. 괴롭습니다. 어떡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