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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으로 끝난 지갑주인 찾아주기^^

BBeom |2010.02.17 21:31
조회 1,926 |추천 0

안녕하세요
저는 신체의 부실함으로 현역을 가지 못하고
소방서에서 사회복무요원(=공익)으로 복무하고 있는
올해 22살의 (빠른 89니까...-_-) 청년입니다.

 


어제 톡에 보니까 어떤 여성분께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주으신 분이 집에까지 찾아오셔서 주셨다라는 에피소드가 있길레
저도 지갑에 관련된 나름 착한 일을 적어보려구요.

 


작년 여름이었어요
집은 경북이고 학교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데
입소 날짜 받아놓고 집에서 세월아 네월아 정신못차리고 지내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대학교의 상큼한 공기를 마시고자 급 춘천으로 올라갔지요.


몇 달만에 간 동방은 참 변한게 없드라구요. (그래봐짜 두달만이었나 쩝)
어젯밤에 또 큰형님들 한잔 하셨는지 상위에는 소주병이 짝으로 있고
먹다 남은 안주들과 이리저리 뒹구는 통기타들
신선한 공기는 무슨, 곰팡이냄새+소주냄새부터 맡았습니다.
애들은 다 숙취에 뻗어있는지 아무도 안오는 동방을 지키다가
혼자서 소주 공병을 차근차근 모으고 간만에 대청소를 합니다.
(속으로는 2학년 이하 전부 다 대운동장 집합을 외치지만, 속마음일 뿐...ㅜㅜ)

 


공연에 관한 혹은 공지사항을 적어놓는 화이트보드엔
후배들이 술을 먹고 멍멍이가 되어서 잃어버린 소지품들을 찾는다는
예를 들어 -미적분노트 찾음 00기 OOO 후사하겠음-
이런 멘트를 날린 사람이 여럿되네요.
찾는 거 한번도 못봤습니다.
그러다가 지갑? 웬 지갑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돈은~~~ 십원 한 푼 없네요.
견물생심은 아니지만 누구나 빈 지갑을 줍는다면
아마도 배춧잎이 몇장이나 들어있을까 하고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만 그런거라면... 욕먹을께요...ㅜㅜ)

 


탈탈 빈 지갑안에는 신분증 몇 장과 영수증 몇장
학생증은 없고~
아! 좀 깊숙한 곳에 주민등록증과 스티커 사진이 두장 나왔습니다.
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사는 곳은 알아낼 수 있네요.
결과는 사진상으로 보아 좀 흐릿하지만 외형은 처자! 민증앞자리는 89!!!
순간 머리가 급속도로 회전이 됩니다.
이 상황은... 판에서나 읽던 운명적인 만남?
입소 3일 남겨두고 이런 나이스한 찬스가 오는구나! 했더랬죠.

 


그런데, 사진 속의 이 친구는......
이런 드라마틱한 상황에 나오는 청순가련형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요.
오래되서 인상착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살짝 날카로워 보이는 예쁘장한 얼굴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교복에 어울리지 않는 현란한 펌과 날카롭게 정돈된 앞머리와 눈썹, 진한 화장은
이 누님(호칭급변경) 껌 좀 씹고 침도 좀 뱉으셨겠구나 라는
부정할 수 없는 스멜을 스물스물 풍겨주네요.
물론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예상은 이미 99.999%

 


그나저나 89라면 나보다 한 학번 아랜데 동아리에 이런 후배는 없습니다.
우리학교 학생인가 아니면 다른 학교 학생인가?
학생증이 없고 연락처도 없고 민증에 있는 집주소로 찾아가는건 굉장한 실례겠죠?
혹시나 해서 다른 정보를 찾고자 영수증을 뒤적거려봅니다.
H대 매점영수증이 여러장 나옵니다.

우리학교는 춘천K대니까 우리학교 학생이 나오네요.
그리고 농협카드가 한 장.

 


시나리오가 그려집니다. 농협에 가서 신상정보를 알아낸 다음 연락해서 지갑건네주고
아직 점심시간 되려면 조금 남았으니까 그 여성분이 나오면 딱 점심나절
그러면 오늘 점심은 간단하게 해결! 이런 공식이 나오네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술마실 돈은 있어도 밥사먹을 돈은 없어요.
적어도 우린 그랬으니까 -_-.........

 


일차 목표는 학교 후문 농협입니다.
이러저러해서 이래저래됬고 이래서 제가 한번 알아보러 왔습니다~ 하니까
친절한 농협 아가씨께서는 고객님 감사합니다^^ 라는 생글생글 사람좋은 웃음과 함께
간단한 신원확인절차만 하시고 연락처를 주시네요.
일단 미션 1은 클리어했습니다.
찌는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좋아서 그냥 농협 안에서 지갑주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안되네요. 몇 번을 전화해도 연락이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사람좋은 웃음을 띈 누님의 힘을 빌려 보호자의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아! 아버님께서는 다행히도 전화를 받으시네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곧 지갑을 찾으러 가겠노라 라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딸은 지금 영어학원에 가있답니다.
미션2도 거의 클리어했네요.
훈훈한 결말이 보입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다되가면서 점심시간도 끝나가는데 아버님...?

안오시네요.
(회사 점심시간에 나온다는 분이 점심시간 끝나면.. 못나오질 가능성이 커지겠죠?)
그냥 맡기고 가면 될꺼 쓸데없이 오기발동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보고 면대면으로 직접 건네주리라 (참 할짓 없었네요 저도...) 다짐합니다.
(대가보다는 그저 요즘 세상에 이런 훈훈한 학생이 있나 이 한마디 한 번 듣고
판에 자랑해보고 싶었습니다. 톡되면 플러스 알파일까요? ㅎㅎ)

 


밥도 못먹고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있는 저를 보다 못한
농협 직원 누나가 직접 아버지한테 전화해줍니다.
"여기 따님 지갑찾아주러 오신 고객님께서 아직 기다리고 계신다고...^^;;

아하~ 이런 깜빡하셨다네요. 퇴근시간에 오신다고..

지금 바쁘니까 고맙고 걍 맡겨 놓고 가래요.

싱겁네요. 그럼요, 가야죠.
버스타고 5시간 걸리는 집이라 .. 저도 더이상 못기다리네요.
아쉽게 지갑을 맡기고 나오는데 농협누나가 말 잘해서
감사의 전화라도 한 번 하게 해보겠다고 연락처 남기고 가랍니다.
이 누님 정말 착하고 마음씨가 곱네요, 웃음에 반했어요^^

 


사실 저도 작년 초에 지갑을 잃어버려서 돈은 별로 안 잃어버렸지만
고1때부터 1년에 한,두장씩 꾸준히 찍은 증명사진을 모조리 잃어버렸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갑 꼭 찾아주고 상투적인 한 두마디 해보려 했는데 결말이 어째 시원찮네요.

 


집에가서 티비를 보면서 평소에 진동만 해놓던 폰을 밸소리 빵빵 울리게 해놨습니다.
혹시나 그래도 전화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
그래도 고맙단 인사 받으면 기분좋자네요~ 내일모레 훈련소들어가는데 ㅜㅜ
그런데 전화기가 잠잠하네요.

후배들이 잘 갔다오라는 문자만 해주네요(고마워라 ㅜㅜ)
그러다가 잠자리에 누으면서 지갑사건을 리셋시키려는 찰라
아! 드디어 문자가 왔습니다.

미등록된 이 번호의 주인은 통화기록 살펴보니 역시 그분이네요.
좀 늦은 밤이지만 이제사 고맙다는 말 하려고 문자를 했나보아요.
그런데 엥???

 

===================================================================================
여 : 누구세요?

 

나 : 네?? 누구라니요??

 

여 : 부재중 전화 와있던데 누구세요?

(아무래도 여자들은 모르는 번호가 있으면 좀 까칠해지나봅니다. 험한세상ㅜㅜ)

 

나 : 지갑 잃어버리셨죠 어쩌구저쩌구 해서 지갑 찾아드린 사람입니다^^

 

여 : 아, 고맙습니다. ㅎㅎ

(굉장히 무미건조한.. 단답형?)

 

나 : 다음부터 조심하시구요^^ 혹시나 하는 말인데 지갑에 있던 그대로 드렸어요

 

여 : 괜차나요 ㅎㅎ

 


이 때 머리속에서 아 여친도 없는데.. 편지 한 통 구걸해보자 ㅜㅜ
이런 발칙한 생각이 또 듭니다.
훈련소에서 여자에게 받는 편지는

엄청난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한 달 짜리 캠프가지만 나름 받아보고 싶어지네요.
그래도 받을 수만 있으면 다 추억이잖아요.
말을 돌려돌려 한 번 떠보기나 하자라고 답장을 하나 더 보내봅니다.

 


나 : 저... 내일모레면 훈련소 들어가요.

 

여 : 아.. 잘갔다오세요 ㅎㅎ ㅋㅋ

 

나 : 네ㅋ 좀 짧게 가긴 하는데 잘 다녀올께요.

 

===================================================================================

 


여기까지... 하고 답장이 끊겼네요.
칼같이 딱.. 타이밍이 지금 생각해도 끊기 제대로네요.
참 들이대기도 머하고... 갈 때 되면 겁없어 진다는데
전 이렇게 소심하고 그저그런 문자 몇개 보내보고는
이틀후에 머리밀고 훈련소로 입소해서 한달짜리 캠프 잘 갔다오고
지금 잘~ 나름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결말이 먼가 급 마무리짓는 듯한 느낌이지만
총평을 내려보자면 판이 원하는 해피엔딩이네요.
그분을 뵙지도 못했으며, 에프터도 없었으며, 답장따윈 한달 뒤에도 없었고
여전히 저는 솔로이니까요 ㅋㅋㅋㅋ
슬프네요. 아직 1년 5개월 남았어요.
나도 그냥 집으로 찾아갈껄 그랬나요...하하하하하하하

 


이 글 읽으신 톡커 여러분들!!!
남녀 불문하고 우리모두!!! 잃어버린 지갑 찾아준 사람에게 과한 사례는 아니더라도
음료수 한 캔과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정도는 해요ㅜㅜ
그리고 엇그제 설이었는데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엔딩!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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