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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의 그림자

갱스 |2010.02.28 20:59
조회 243 |추천 0

이번에 열린 벤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쇼트/프리 결승전을 지켜보는 동안 심장이 쿵쾅거렸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김연아가 점프를 뛸 때 마다 행여 실수나 하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던 시청자들에게 걱정말라는 듯이, 점프를 하기 직전 속도를 줄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엄청난 스피드를 유지하며 핀을 찍고 점프해서 나비처럼 사뿐히 착지하는 환상의 3-3 점프를 완성시키고도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의 김연아는 확실히 강심장이 맞는 것 같다.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염원대로 총점 228을 획득하며 세계신기록 갱신과 함께 피겨 퀸으로 등극했다. 이번 김연아의 점수는 남자선수로서는 세계 9위에 해당되는 경이로운 기록이라고 한다.

 

김연아의 올핌픽 무대 연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보다 외신이 한층 호들갑이다. 깐깐한 해설로 승냥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왕년 피겨스타 스캇 해밀턴은 "김연아는 아마 숨만 쉬어도 점수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스캇과 함께 해설을 맡은 여자 아나운서는 김연아의 연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여왕폐하 만세!"라고 외치는가 하면 김연아의 우상이었다는 피겨선배 미셀 콴은 "내가 본 올핌픽 프로그램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고 하니 과연 갓 스무살이 된 소녀 김연아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이 얻게 된 자랑스러움은 이번 우승으로 인해 김연아가 이룰 경제적 효과 2조원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김연아의 이번 쾌거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또 한편으론 김연아의 금메달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연아의 우승에 대한 기쁨을 엉뚱한 방식으로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마오의 회전수가 다소 부족해 보이는 트리플 악셀에 다운 그레이가 적용되지 않고 후한 점수가 매겨졌다는 점은 공감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은메달도 아깝다"는 식의 표현이나 마오가 인터뷰에서 "분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니가 잘못해 놓고 연아에게 뒤진게 분하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의 2인자를 능욕하는 발언은 수준이하의 반응이란 생각이 든다.

 

마오가 표현한 "분하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직역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뜻과는 다른 차원의 일본식 의미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마오의 지도자 타라소바에게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마녀처럼 재수 없게 생겼다"라는 표현의 모욕적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는 네티즌도 나는 보았다. 심지어 "김연아 동상을 세우고 기념일을 만들자"라는 무개념 여론도 있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사다 마오가 최고의 선수라면 김연아는 천재라고 한다. 마오가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서도 천재와 동시대에 격돌하게 됐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비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주니어 시절의 아성과 다르게 차츰 김연아에게 뒤로 밀리며 급기야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지 않다"라고 심경을 토로하기까지 했던 그녀가 결국 슬럼프를 극복하고 올림픽 무대에서 당당히 김연아와 선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를 최고의 스케이터라 말해주고 싶다.

 

김연아도 오늘 치러진 갈라쇼에서 "마오짱"이란 호칭을 먼저 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평생 스케이트 슈즈 한 번 신어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2인자에 머문 최고의 선수에게 함부로 비난의 칼을 겨누는 것일까. 13년 동안 피 땀 흘려 원하는 것을 얻어 낸 것은 김연아이지 안방에서 편하게 앉아 박수 몇 번으로 김연아를 응원한 우리들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저 김연아라는 노력형 천재를 가졌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뿐,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 바닥을 딛고 일어나 끝까지 선전해준 또 한 명의 소녀를 모욕하며 비참하게 만들어선 안 될것이다. 마오는 이번 실패를 쓴잔으로 받아들이고 4년 후 올림픽에 재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김연아를 먼저 지지함과 동시에 마오의 발전 역시도 더불어 희망하며, 김연아의 독주 시대가 아닌 최고의 선수, 마오와 김연아가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1인자 쟁탈전을 계속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또 한 가지 덫붙이자면 우리가 김연아의 금메달 쟁취로 삼페인들 터트리고 있는 순간 MB의 음모가 기어이 목표물을 탈취했다는 사실이다. 엄기영씨의 사퇴로 비어 있던 MBC 사장 자리에 MB 똘마니를 들어 앉힘으로 MB는 드디어 방송 3사 장악이라는 글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그 기회주의적 음모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또 한번 잔치의 뒷마당에서 오로지 파티의 즐거움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힘입어 작당들이 펼쳐진 것이다. 이제 화려한 잔치는 끝이 났다. 13년을 노력한 대가로 김연아는 올핌픽 메달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만 김연아가 화려하게 열린 제 2의 피겨 인생에 자만하지 않고 다시 다가올 올림픽을 향해 매진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도 이제는 삼페인의 거품을 거둬내며 "김연아 과연 연예계에도 데뷔할 것인가"라는 웃기는 짬뽕 같은 여론에 휘몰리지 말고 제자리를 찾아 본분에 충실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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