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조금 길지만 열심히 적어보았으니까 꼭 읽어주세요..
그녀는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저도 그 많은 남자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되었을까 궁금해요.
키는 약간 크구. 혈액형은 같네요.
자존심이 세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잘 털어놓지 않아요.
사람들 사이에선 조신하며 여성스럽게 행동하다가 내 앞에서 개구쟁이가 되어요.
이쁨 받는 것과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고 한없이 포근하고 재미있다가도 아무 이유없이 변덕부리며 화내고 진상부릴 때도 더러 있었죠.
그 변덕에 상처 받고 익숙해 지는데 1년이 넘게 걸렸네요.
하지만 무척 신중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헤어지자'라는 말은 쉽게 뱉지 않는 거였고. 싸우면 늘 먼저 화해를 걸어와 주었고. 뒷끝은 전혀 없었어요.
저는. 무척 잘해주다가도 싸울 때는 할말 다 하며 물러서지 않는 B형 남자라...
소심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서로 만나오며 일주일에 2~3번은 으르렁 거렸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만났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많이 싸우면서 어느덧....
그 싸움의 목적이 서로 더 '사랑해 주세요' 라는 의미인 걸 알게 되었어요.
싸워가면서 웃고 울며 화해 하면서 서로 참 많이 닮아 갔어요. 처음에 두 사람은 밤과 낮 같이 공존할 수 없는 듯 했는데. 어느덧 둘은 서로를 위해 상대방의 태양과 달이 되었어요. 없는 부분이 되어 주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죠.
그렇게 싸우면서도 365일 중. 340일을 밤낮 안 가리고 얼굴 봤어요. 서로의 땀 냄세를 좋아했고, 아무 말을 해도 개그가 되고 철학이 되었어요.
누구보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죠.
정말 좋아했어요. 태어나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참 신기했어요. 만화 여주인공 같은 사람이
내 여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것에...
2년이 넘은 어떤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까지도 너무 사귀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지 '우리 뭐 먹을까?' 라고 묻는 여자 친구의 물음에 '네?'라고 했었던..;;
늘 그랬어요. 여자 친구를 여신님이라고 불렀고. 차에서도, 밥 먹을 때도 손을 놓지 않았어요. 길을 걸을 때도 앞을 보기 보단 여자 친구의 옆모습을 봤었고. 여자 친구가 일어서거나 안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신기하게 예쁘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어요.
하루 종일 여자 친구에게 하는 말의 70%는.. '정말 예쁘다' 였구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약간.. 나이에 비해 여러 의미로 많이 모자랐어요.
여자친구가 늘 고생이었죠.
반대로 나는 행복했어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기분이 이런 걸까..
라고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예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낀다'는
감정을 한계없이
여과없이 모두 어떤 사람에게 줄 수 있어서 짜릿했고 상쾌했어요.
그녀의 생일엔 늘 손으로 만든 선물을 준비했고. 생일상이라던가
꽃다발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직접 만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별 것
아니었지만 내 노력에 늘 그 사람은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구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한편으론...
늘 불안했던 걸지도 몰라요. 이 사람이 내 곁에서 언젠가는 떠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줄 수 있는 것. 함께 하는 것 모두 좋았지만. 그 다음 순간에는 어쩐지
내 마음이 아렸거든요.
그래서 그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더 노력했던 건지도 몰라요..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서서히 내가 바랬던 그 '익숙함'을
그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었어요.
좋았어요. 공원 언덕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놀더라도 꼭 낙원처럼
만족스러웠어요. 그리고...
만난지 2년이 되었을 무렵 저는 결혼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준비가
덜 된 듯해서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녀의 꿈'에 맞는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았던 2년 차의 시간이 흐르고. 3년 차부터는 서로 더 편해졌고
덜 싸웠지만...
괜시리... 싸우지 않는 모습이... 좀. 아쉬웠어요.
저는 진로를 변경하길 맘 먹었고 여자친구는 응원해 줬습니다.
그 무렵 여자친구는 능력을 인정받아 조기 승진을 했고. 내가 생각해도
몰라볼 만큼 큰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핑계가 될런지 아님 그게 정말
시작이었는지 우리 둘은 많이 바빠졌어요. 언제부턴가 서로 얼굴 보는 날이
줄어들었고, 통화와 문자가 시들어졌어요. 예전과 달리 '일' 이야기가 주된
화제가 되었고. 주식과 나중에 살게 될 집 문제에 있어
이견을 보이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사사로운 작은 부분일 수 있었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 앞으로의 현실에 꼭 필요한 것이며. 그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시각 차이는 즉시 현실 안에서 반영되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감정 이외의 균열이 심장 중심으로 서서히 이동했어요.
저는 좀 더 감성적이며 감정적이었고.
여자친구는 더 현실적이며 이성적이었어요.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기에. 서로에게 상처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았죠.
3년 차부터는... 편해진 만큼, 알아서 싸우지 않았고. 힘든 부분을 건들지 않기
시작했죠. 하지만 실수였던 게...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미묘하게 솔직하지
못하고 숨기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예요.. 말하려다가도 물으려다가도
멈추게 된 바로 그 다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숨기는 부분이 되었고 그것이
쌓여가다 보니 어느덧 꽤 높은 벽이 생겨 있었어요. 그리고 그 '벽'은 우리 사이의 시선을 막아갔어요.
우리 둘의 만남에 있어서 모습은 변함 없이 즐거운 듯 했지만..
그 사람 집 앞에서 마주 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꼭.. 이제 몇번 안 남은 것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몇 개월 늪으로 빠져들듯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줄여가며 만나갔었던
작년 여름 어느 날.
여자친구의 생일을 축하한 후 집으로 들어와 그녀의 전화를 받았어요.
그리고 전화 끝 부분에... 여자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덕분에 많이 변했고. 더 웃게 되었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당신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 주었어. 오랜만에 이런 얘기하는데...
정말 사랑해요'
나는. 나는. 나는... 1초 아니.. 그 이상 숨을 쉬지 못 했고. 잠시 정적이
흘렀고.. 생각하다가.. 생각하다가.. 하다가..
'나도...'
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여자 친구는 "고마워"라고 전화를 끊었고. 나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째서.. '나도 당신을 정말 사랑해!' 라고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못내.. 마지못하다는 느낌으로.. '나도...'라고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솔직했던 순간이었을 지도 몰라요. 아니 그래요 어쩜...
그 후로는 이상하게도 나와 여자 친구의 모습이 바뀌었어요.
여자 친구는 오히려 전화를 많이 해줬고. 예쁘다고 말해달라고 했어요.
길을 걸을 때나,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뽀뽀해 달라고 졸랐고.
일주일에 한번은 함께 여행 가자고 했어요.
이런 모습들은 내가 지난 3년 동안 해 오던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나는 왜 그랬던지.... 받아주기.. 싫었어요..
욕심..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그토록 바랬던 그 '익숙함'은 어느덧 내게
트로이의 목마처럼... 내 마음에 뜻모를 '권태로움'을 불러 들였어요. 더불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더 크게 와 닿아... 마음을 붐비게 했어요..
그녀를 눈 앞에 두고도 그녀가 보이지 않을만큼...
고무줄이 끈어질 듯 팽팽한 시간이 내 촉촉한 마음을 가물게 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잘 웃지 않게 되었어요.. 그녀의 사진도 잘 찍지 않았구요.. 예쁘다는 말도 아끼기 시작했어요.
늦은 밤 길게 통화하는 것도 줄였고. 주말엔 피곤하다는 핑계로 저녁 늦게 만나자 했어요.
남자는 어느덧 변하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곧 핑계조차 댈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 변화의 이면에는 그녀의 행복이 걸려 있었고.
내가 그만큼의 미래를 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도 했지만...
서서히 그랬던 거예요. 스스로가 말하던 그 사랑이란 감정도 어느덧
익숙함 앞에서 새로울 것이 없어졌고 모두 표현하던... 말처럼
그 사람의 살이, 내 살 같은 시기가 찾아온 거죠...
그 사람과 하는 모든 것이 공기처럼 물처럼 되었던 거죠..
그리고 남자의 변화를 감지한 여자도 서서히 다른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여자는 어두운 자신의 가족관계에서 벗어나
남자와 함께 더 나은 다음 단계로 가고 싶어했고.
감성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남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익숙함에 전염돼 의지를 잃어, 그동안에 만들어 졌던 의미를 외면했어요.
우리가 가진 갈증과 욕심은. 분명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 온 '사랑'과 '믿음'보다 못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감정의 균열과 현실과 꿈을 차이가 주는 아득함에 집중하며 서로의 사랑과 믿음을 쉽게 보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각자가 가진 갈증을 체우려고... 자신만을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남자는 여자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뒤로한 채 나약한 자신을 지키려 거짓을 말 했고. 여자는 남자보다 더 큰 남자가 다가오자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기 시작했어요.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 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내가 1500통의 편지를 보낼 동안 30통도 안되는 답장을 보냈던 그녀는.
어쩐 일인지 겨울이 들어설 무렵 한통의 편지를 내게 먼저 보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내가 품은 욕심이 당신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어.
당신은 그저 당신으로 좋은데. 나를 위해서 변화하려는 당신은
너무 어색해. 그 어색함으로 나를 이뻐하는 모습은 이제 두려워...
거기에는 가식만이 있으니까.. 나는 지금 생각해. 당신과의 의리를
지키고 모든 것을 포기할지. 모든 걸 지키고 당신을 포기할지..
비겁하지만.. 결정을 해 주지 않을래?'
우리는 12월 첫날 전화 통화를 했고. 오랜만의 통화에 반가워서
웃으며 농담하며 아무 일없던 것처럼 서로의 이름을 불렀어요.
그 사람은 회사 옥상에서 내게 웃는 목소리로 '대답해 줄래?'라고
했고. 나는 그 사람에게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 그 사람이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이었어요..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끝으로 우리는 연락하지 않았어요.
둘 다 어지간히.. 치졸하고 비겁했습니다..
서로 할 수 있는 최악을 서로에게 선물하며 각자의 인생에 죄를 지었습니다.
편했어요. 다시 혼자니까.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고.. 더 걱정할 필요도
부담도 없었고 힘을 낼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을 잊었고. 밥을 먹는 것을 까먹었습니다.
잠자고 밥먹는 것이 무의미했으니까..
휴가를 냈습니다. 방 안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너무 창피해서...
며칠이 지난 후. 어머니께서 작은 상에 식사를 차려 내 방에 넣어주셨습니다.
아무 말씀없이 방문을 닫아주셨습니다. 나는 밥을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밥을 뱉었습니다... 한동안 혀를 쓰지 않아서... 밥알이 너무 아팠으니까요...
물을 말아 밥을 마셨고. 샤워를 했습니다.
다음날 오전에는 잠을 좀 잘 수 있었습니다..
1월 얼마 동안은 그렇게 보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듯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밤엔 방송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혼자 노래를 부르고... 산에 오르고...
그러다가
1월 중순이 넘은 어느 저녁. '내일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자가
그녀에게 왔습니다.
수신 거부 목록에 그녀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다시 풀었습니다..
다시 넣었습니다. 다시 풀고 답장을 보냈어요.
'저녁 8시 공원 입구'
그날 밤엔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삭제한 것 빼고.. 한 3000장 정도가 보존됐네요.
날짜 순으로 정렬한 뒤에 사진을 한장 씩 넘겨 봅니다.
사진이 한장씩 넘겨질 때마다. 작은 바람이 모니터에서 나와 내 머릿결을 흔드는 기분이었어요. 좋았어요. 웃음이 가득. 장난이 잔뜩. 사랑이 듬뿍...
담긴 사진들.. 그러다가 깨달았죠. 어느 날부터 사진이 줄어들고 있었다는 걸..
4년차의 시작부터.. 같이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가관. 내 표정은 정말 쓰레기...
그러다가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남이섬에 가서 찍은 사진 속에. 나는 정말 짜증에 만사 귀찮은 표정이었고. 그녀는... 여전히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즐거운 듯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모니터에 손을 댔었고... 순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어찌할 수가 없는 그 미안함에...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내게 투정은 부렸어도... 짜증을 부린 적이 없었어요...
어떤 사진을 봐도... 웃고 있는 사진 뿐.. 힘든 날이 있어도 멀리서 내가 나타나면... 다시 활짝..
하지만 나는 늘... 내 생각 내 감정 뿐이었나봐요. 사진을 보니 알겠어요.
늘 내가 더 좋아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더 잘하고 내가 더 많이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뇨 그 사람은... 가만 있지 않았던 거에요.
늘 감사해 주고 고마워 해주고 반응해 주었어요.
내게 말 없이 말해 준 거죠. '나도 당신이 참 좋아요' 라고..
아주 단순한 것을... 바보처럼... 지겨워라니... 병신.. 소리가 저절로 나왔어요.
엔터키를 계속 눌렀어요... 사진들이 바뀌어요. 하지만 모든 사진엔
그녀가 있었고. 모든 그녀는 웃고 있었어요. 모니터에서 나를 보며..
우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어요.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이 듣고 싶었어요...
그 사람의 자랑이 나였으면 했어요... 뭐든 말만 하면 다 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렇지 못해서 나는 잔뜩 지루하단 핑계를 대며 한발 두발 걸음을 늦췄고
방향을 돌렸던 거였나봐요..
그런데 그녀는 마지막까지 내가 남자처럼 잡아주길 바랬던 거였어요.
나는 참 병신..
다음 날 저녁. 공원에 나갔어요. 그 사람이 서 있더군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손을 흔들며 웃어 주었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뛰고 있었어요... 달려가서 그녀의 머리를
두손으로 잡고 강한듯 약하게 '박치기'를 날렸습니다.
둘 다 크게 웃었어요. 미쳤다고 하면서^^
공원에 들어가자며 그녀가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공원은 그 공원이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사귀기로 한 뒤 첫데이트 때 오기로 계획하고.
너무 너무 좋아서 데이트 전날 새벽 3시에 공원에 가서 아무도 없는데 혼자
지랄발광을 하며 "내일은 그녀와 같이 올거야 그럴 거라구!! 커플 천국 솔로 지옥!" ....... 이 지랄 하던 그 공원..
공원의 트랙을 손을 잡고 걷다가 첫데이트 때 앉았던 언덕 위 의자에 앉았습니다.
첫데이트 때처럼 왼 손이 저려왔어요. 긴장되고 땀나고 아무튼 자제할 수 없는
설레임.
그녀가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잘지냈다고 대답했습니다.
살이 빠졌냐고 물어왔습니다. 초콜릿 복근을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랄말고 밥 잘 챙겨 먹으라 합니다. 나는 의외로 선뜻.. '응~'이라고 했습니다.
겨울. 아무도 없는 공원 언덕 의자에 둘이 앉아서.
겨울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초딩들처럼.. 서로의 사이에 미뤄두었던 '숙제'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녀는 숙제 마지막 페이지가 되었을 무렵 잠시 뜸을 들이며 하늘의 달을 바라보다가 내 왼손을 살짝 놓으며.
'다른 사람이 생겼어' 라고 ..... 내게 초등학교 졸업이 아닌 자퇴를 선언하며...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아이처럼... 굳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살짝 숙였습니다.
나의.. 몸은 가만히 의자에 붙어있지만. 마음은.. 바닥에 떨어진 젤리처럼
이리 저리 요동치며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나는 떨리는 입술을 힘껏 누른 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밝은 목소리로 정적을 깨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사실은 다른 사람 만나고 있어' 라고... 여친 따라서 되도 않는 자퇴쑈로 맞불을 놨습니다... 여자 친구는 고갤 돌려 나를 올려다 봤고.
나는 '레알'이라는 느낌이 들수 있도록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응수했습니다. 여친은 살짝 미소지으며 '누구?' 라고 물었고 나는 언젠가 여친에게 말했던 날 좋아한다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반사적으로 토했습니다.
그러자 여친은 '둘 다 참..' 이라며 입 밖으로 구름을 날리며 긴 한숨을 뱉었고 나는 '..참.. 잘했어요' 하며.
두 사람의 엉터리 마지막 숙제에 급마무리 도장을 찍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쩐지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던 반시간 동안의 사과.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섞어가며 어째서인지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질리도록 사과를 먹였습니다... 그녀에게 사과를 줄 수 있는 지구 최후의 날인듯.. 나는 그렇게 그녀에게 억지로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선 날도 추운데 일찍 들어갑시다~ 하고 자리를 일어섰고.
그녀는 내 점퍼를 살짝 잡아 끌며 날 보지 않고 나즈막히 물어왔습니다.
"누굴 만나는지 왜 묻지 않아?" 라구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남자들의 이름 중. 가장 부유하고 꽤나 착한 사람의 이름 하나를 허공에 날렸습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맞아..." 라고 했고. 눈치를 보다가
"화나지 않아?"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맘 속으로는 '아 신발 역시 그 쉑히 였구나' 라고 치를 떨었지만 겉으론
"그나마 그녀석이라 싫진 않아" 라고 거짓말을 참말처럼 흘렸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했고 나는 그녀가 죄인 같은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마구 마구 이상한 말을 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잊기 어려울 거짓말...
"지겨웠어. 너랑 길을 걸어도 손을 잡아도 키스를 해도... 별 감흥없고 반복되는 게임을 하듯 지겨웠어. 언젠가는 끝나겠지 했는데 너무 반복했었던 게임이라 잘 죽지 않는 거야. 내 의지론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어. 세상에 너만 있으면 다 필요없을 거라고 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세상에 너만 없으면 좋겠다.. 라고 .. 그만큼 지겨웠어 니가. 넌 믿지 않겠지만. 그래서 힘들었어. 니가 참 처치곤란해서.."
그 사람을 뒤에다 두고 미친듯이 저만큼 퍼부어 버렸고. 공원이 전쟁 끝난
폐허처럼 끔찍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 점퍼를 끌어서 날
다시 의자로 불렀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고개를 45도로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됐고 노래 불러줘 "
더럽게 뻔뻔해. 늘 그랬어. 이 여잔 늘. 순간 순간 나를 광댈 만들었다,
가수 만들었다 들었다 놨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내게 뭔가
해달라고 하면... 거절할 수가 없어. 아무리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라도...
"내가 쥬크박스냐.." 라고 했지만
머릿속으론 그녀를 잡을 수 있는 노래를 끊임없이 찾고 있었어요. 그리고
고른 노랜..
성시경의 '당신은 참'
노래를 불렀어요.
눈 앞으로 갑자기 수많은 '사진'들이 넘어가요... 사진첩이 바람에 흩날리듯...
눈 앞에 4년 간의 시간들이 나부껴요...
마지막 가사를 말해야 하는데... 거기서 목이 막혔어요.
그 사람이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어요.
내 어깨가 진동하기 시작했어요...
진동이 내 온몸으로 전해져요.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 진동인데.. 나는
행복했어요. 나를 위해 울어주는 여자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목소리를 쥐어짜서 겨우 이야기 했습니다.
"괜찮아요.." 라고.
그 사람의 집 앞에 올 때까지 둘 다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집의 문 앞에 섰고. 나는 들어가라고 손짓 했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등을 돌렸고. 나는... 물에 젖은 성냥은 타오르지않는다 라는 영화 속 대사를 떠올리며 아담한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했습니다.
그녀가 계단을 올라 2층 현관에 다다랐을 무렵 한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 딱 들릴듯한 말듯한 목소리로 평소에 했던 농담 같은 일본어처럼.
그녈 올려다 보며 말했습니다.
"보쿠.....와........... 키미오......... 아이.... 시....테루......."
그녀가 물었습니다.
"응? 또 일본어로 놀렸지? 키미 뭐라구?"
나는 서서히 뒤로 걸음을 걸으며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자 '기미' 생길 나이니까. 관리 잘 하라구~~"
그녀가 어이 없다는듯 살짝 웃음 지었습니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갤 돌렸어요. 거기까지만 기억하고 싶어서...
웃는 모습까지만.
2시간 후.
문자가 왔습니다.
'계속 볼 수 있는 거지?'
늘 그래요. 얜 늘 지 맘대로죠.
헤어진 첫사랑을 계속 볼 수 있을 .... 만큼 내가 속이
넓진 못해서. 답장을 날렸습니다.
헤어지면 다시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헤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어.
답장이 왔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맞았습니다. 그녀와 함께 봤던 둘 다 좋아했던 영화 마지막에 나왔던 대사였어요.
기뻤습니다. 나와 함께 본 영화의 대사를 기억해 주고 그 영화 제목을 날려줘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문자를 날려 줘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
그녀에게 마지막 답장을 날렸습니다.
'베이베~ 당신은 버러플라이~~'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미쳐버린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현명한 초이스였습니다.
그 사람과 했던 가장 가장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어느 날 밤. 어느 이름 모를 휴개소에서.
둘이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었을 때 였어요.
그 때 두 사람은 컵라면이 왜 이렇게 맛있냐며
미친듯이 어깰 들썩거리며 라면 국물 다 마실 때까지.
쩝쩝 거리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며.
라면 한젓가락 당 한번씩 '사랑해'를 주고 받았어요.
그 땐, 나와 그 사람과. 따뜻한 물과 컵라면만 있음.
세계를 정복할 줄 알았어요^^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어요.
다만 우리 운명. 우리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일뿐...
이라고 두 사람이 서로를 포기한 것일 뿐.
인연이란 우스워요.
잡기 힘들지만. 잡으면 시시하고.
놓기 힘들지만. 놓고나면...
힘들게도.. 시시하게도.. 다시는
잡을 수 없어요..
삶은 녹화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늘...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리 긴 글을 썼을까요?
당신은 알고 있나요?
나는 지금 정말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늘. '그거'네요.
운다는 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욕심의 배설일지도 모르지만.
운다는 건. 그마만큼 '소중하다' 라는 거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