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남자입니다. 군대를 08년에 늦게 제대하고 1년 정도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 회사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회사 사정부터...
전 직원 10명의 작다면 작은 중소기업입니다.
(이정도면 동종업계에선 그래도 중간급이라고 하던데 ;;)
화공( NO 火功 )쪽 소재 취급합니다. 거의 일본이랑 거래가 많은
전형적인 해외영업에 의존도 높은 중소기업이죠.
서울에 사무실이 있고 지방에 공장 하나 돌립니다.
저는 서울사무실 영업사원으로 들어왔죠.
토요일은 격주근무로 한달에 두번 나와요.
출근9시 퇴근6시인데 실질적으로는 9시에 나와서 7시쯤에 퇴근하네요.
일단 연봉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합니다. (근무 오래 하신 분 말씀으로는...)
제가 올해 1월에 입사했는데 2100 으로 체결했어요.
작년에 일하던 회사랑은 거의 뭐 비교불가급이라 워 많다! 라고 생각했는데
판에서는 엄청 적은 취급 받는것같네요. 뭐 그건 그렇고 ;;
복지 부분을 보면...
일단 점심값은 회사가 냅니다.
격주 걸려서 토요일 근무시 점심도 회사가 냅니다.
희한한건 집에서 회사오는 왕복 차비를 회사가 내줍니다.
후불 교통카드 하나 만들어줬네요.
제가 술담배를 전혀 안해서 그런지 돈이 굳는것같습니다.
바이어 오거나 회식때도 회사돈으로 냅니다.
학원 다닌다고 하면 학원비도 회사카드로 긁어준다는데 제 짬이 아직 거기까진 아니고.
빨간날 쉬고 명절 (앞뒤로 하루씩 더쉰다거나 하진 않지만) 쉬고...휴가제도는 아직 모르겠네요. 신경을 안써서 ;;;;;
가끔 ' 커피 타다 바쳐야 하는 ' 회사가 있나 봅니다.
여기는 사장님이 직접 나와서 녹차타서 갖고 들어갑니다.
회사 업무를 보면...
바쁜 분들은 정말 엄청나게 바쁩니다!
이 무슨 하이브리드 업무도 아니고 경리 아가씨 한분이 전화응대 세무계산 사무실관리(비품체크 등등) 다합니다. 부장 과장 차장...장 급들은 정말 일주일에 3번 보면 많이본것같습니다. 그나마도 회사오면 금방 출장간다하고 나갑니다.
찾는 전화도 하루종일 여기저기서 옵니다. 아웃룩 보면 메일이 하루에도 수십개...
공장은 또 물품 들어오면 재고파악하랴 물건정리해서 쌓으랴 눈돌아가는데 그걸 2년 먼저 들어온 선배님이 혼자 합니다. ㄷㄷ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혹은 제 이야기를 들은 주변 지인들은
' 거기 뿌리내리든가 뼈를 묻어라 '
' 사표써라 내가 들어가게 '
' 인원충원 안한대? '
라고 하지만....
저의 고민은 이런 양질의 토양 위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필요가 없는 회사인 것 같습니다.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하길래 역시 중소기업은 강하게 키우는군! 싶었습니다.
진짜로 아무것도 안시키네요.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조차 없습니다.
"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 " 음...일단 대기해봐. "
쓰레기통을 비우고 설겆이를 해봤습니다. " XX씨 나중에 하면 되요. 그냥 두세요. "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 (이제 2달!)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속된말로 간보는 중인가 싶었죠.
지금 보니 안시키려고 하는게 아니라 못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뭘 하라고 지시하고 기다릴 수가 없는거죠. 당장 급하니까.
처음엔 ' 아 편하다 굿굿 ㅋㅋㅋ 웹툰 정주행해야지 '
지금은 ' 제발 뭘 좀 시켜줘...하다못해 쌓인 서류 정리라도 시켜주세요....ㄷㄷ '
다들 바쁜데 혼자 일을 안해서 눈치보이는건 둘째치고
사원이냐고 앉아서 꼬박꼬박 밥축내고 월급축내는게 회사에 너무 미안합니다.
일을 찾아서 배우란 말이 이렇게 어려운 임무인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제가 술을 정말 못합니다 + 안합니다. 술자리 가서 소주 석잔이 리미트.
술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체질도 아니라서 술자리+2차 3차가 저에게는 쥐약입니다.
그렇다고 쉴새없이 떠드는 재미있는 말주변도 없구요.
사무직도 아니고 영업직이 일본 바이어 앞에 앉혀놓고 묵묵히 고기굽고 먹고 하다가
1차끝나면 "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 하니 데려오신 사장님 부장님은 그저 답답할뿐....
제가 생각해도 반쯤 미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이 회사를 나오려고 합니다.
' 니가 돌았구나 '
' 빨리 나와 나 들어가게 '
' 배가 불렀냐 '
물론 저도 백수생활 해봤습니다. 한 7개월 해보니 미치겠더군요.
부모님이 기막혀합니다. 그렇게 놀다가 들어간 좋은 회사 왜 때려치려고 하냐고.
전에 다니던 곳은 고정급조차 없이 수당제로, 사대보험조차 없는
알바만도 못한곳이었죠. 출근 9시, 퇴근 10시. 복지혜택 전무...
왜냐고 한다면...' 회사에게나 저에게나 득될것이 없다고 판단되어서 ' 입니다.
그렇게 바쁘고 중요한 바이어간 업무, 출장, 접대가 저에겐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제 주임무이면서 저를 뽑은 이유이기도 한 업무가 가장 안맞는 일이라니...
영업이 맞는 것도 아니면서 왜 지원했냐고 한다면...
솔직히 7개월동안 백수생활해보니 똥줄이 타는 것은 물론이오, 자기비하가 심해져서
' 이러다간 진짜 내인생 말아먹겠다 ' 싶어서 이력서를 살포하다시피 해서
위치조차 모르고 ;;; 전화받고 면접보고 들어온 회사거든요.
누가 봐도 영업보다는 사무직인데도 급한맘에 억지로 낑겨 들어온 나...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용해서 월급주고 밥주고 차비주는 사장님에게
요즘은 볼때마다 죄송스럽습니다. 오늘은 지각까지 하고 - - ;;;;;
하루가 다르게 나태해지는 자신을 재발견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잔머리를 굴리죠.
' 오늘은 뭘 하고 지내야 하나. 업무보고서에 쓸게 없네. '
' 일을 찾아서하긴 뭘 찾아서해 사무실에 누구 사수라도 있어야 찾든가하지. '
' 이런 제길 오늘 바이어오잖아 일찍가긴 글렀네 - - '
인생을 말아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공짜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커피까지 타서 마시며 생각합니다.
' 나 인생 좀 막사는듯.... '
마음을 다잡고 ' 그래, 한번 눈딱감고 이 일 올인해보자. ' 열심히 찾아봐도
할일은 여전히 없고...눈치는 보이고 미안하고...딴생각드니 또 슬렁슬렁 놀고...
빈말로라도 회사가 안좋아서 그만둔다는 생각은 못하겠으니 자괴감만 늘고....ㅠㅠ
하지만 이러고 앉아있어도 월급은 때되면 나오니 단물빨면서 버팅기고...
내 인생, 28년 인생 이대로 모험없이 굳히기 들어갈까요....?
별로 호감가지 않는 일이지만 조건을, 현실을 시인하고 순응할까요?
고민은 늘어만 갑니다. 앗 흰머리 또 한가닥 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