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上-2차세계대전 당시 붉은군대 포스터
下-근대 붉은군대 퍼레이드 사진)
명칭: 붉은군대(Красная Армия)
국가: 소비에트 연방(구소련)
시대: 제정러시아말 혁명기
붉은군대(Красная Армия[크라스나야 아르미야])는 구소련의 정규군이었다. 정식 명칭은 노농 적군(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라보체-크레스티얀스카야 크라스나야 아르미야])이다.
붉은군대의 역사는 과거 제정러시아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당파(짜르 신봉파)'와 '맨셰비키'들의 군대였던 '백군(白軍)'에 대항하기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병대 수준이었던 '적위대'를 '레프 트로츠키'가 개편하여 만든 것이 바로 '붉은군대(적군)'이다.
이 '소비에트 연방군'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제 2차세계대전에서였다. 2차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전, 소련 최고 권력자였던 '요시프 스탈린'은 피비린내나는 소련 권력층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권좌에 오른 참이었다. 그랬던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붉은군대 지휘자들의 쿠데타였다. '스탈린'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자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30년의 '대숙청(예조프치나)'로 불리우는 사건은 당시 실전 경험이 많은 붉은군대의 지휘관들을 사상의심자로 몰아 벌인 대대적인 숙청작업이었다. 덕분에 '스탈린'은 쿠데타에 대해 안심할 수 있었지만, 붉은군대의 질적인 저하를 초래하였다. 이는 후에 발생한 독일의 소련 침공을 보다 손 쉽게 만들었다.
'독소불가침조약'으로 2차세계대전 독일군에 대해 안심하고 있던 '스탈린'은 얼마 후 '아돌프 히틀러'가 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략한 '바르바롯사 작전'이 실행되자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된다. 10년전 벌인 '대숙청'으로 인해 붉은군대에는 노련한 지휘관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교과서적인 이론만 공부한 젊은 장교들 뿐이었다. 결국 소련은 영토의 절반이상이 독일군에 점령당하는 대굴욕을 겪게 된다.
하지만 곧 사태를 파악한 '스탈린'은 소련의 국민들에게 함께 연방을 위해 싸워달라고 간절하게 소호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야전에서, 시가지에서 격렬하게 독일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덕분에 독일군의 진격은 지연되었으며, 곧 불어닥친 러시아의 겨울은 급하게 진격해오느라 겨울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독일군인들을 얼어 죽게 만들었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붉은군대는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에 나섰다. 미,영,프 연합군도 유럽대륙의 서부전선에 상륙하여 독일을 압박했다.
조약을 무단으로 파기한 '히틀러'에 대한 '스탈린'의 분노는 대단했다. 독일 중심으로 진격하는 붉은군대의 목표는 '히틀러의 생포'였다. 결국 붉은군대는 서부전선의 삼국연합군보다 먼저 독일 본토의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여 옥상 첨탑에 소련기를 내걸었다. 1945년, '히틀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독일군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2차세계대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붉은군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두번째 사항은 바로 '냉전'이다. 미국이 당시 자본주의국가들을 대표하였다면, 소련은 사회주의 공산국가들의 대표였기 때문에 붉은군대는 구성국가들의 안보를 담당하고, 결속력을 유지토록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미군도 그러하였기 때문에, 양 극단의 군대들은 서로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부단한 개발과 실험을 진행하였다. 1949년에는 원자 폭탄을 배치하였고, 1961년에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탄인 '짜르' 수소폭탄 실험을 하여 미국을 겁에 질리게 했다. 1987년 당시 붉은군대 총원은 500만 명에 이르렀고, 이 병력은 당시 세계 최고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사실상 붉은군대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현재의 '러시아'의 연방군이 이를 상당부분 흡수 계승하여 화기나 장비 등을 여전히 운용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