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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의 힘 ‘남보원’이여, 정녕 웃자고 한 말 이던가?

큐리오 |2010.03.21 17:58
조회 1,033 |추천 2
 

‘정치적 올바름’이란 용어가 있다. 정치적 (political) 관점에서, 인종, 종교, 성차별 같은 편견이 개입되지 않는 것이 옳다.(correct)는 뜻.

‘Black’ 대신 ‘Africa American’ 이라는 것. 훌륭하다. 다만 고압적인 자세로 엄숙한 사회분위기 조정에 남용될 경우 본래 의미가 변질된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벼드는 누군가에게 ‘허허,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혔군요’ 라고 말하면 된다.

 

 실천 사례. 대놓고 웃기겠다는 시추에이션 코미디(줄이면 시트콤)에서 꼬마 아이가 ‘빵꾸똥꾸’라고 했더니, 어느 위의원회가 그러지 말라 했다. 이 소식을 보도하는 아나운서는 죽을 맛이었을 테고 덕분에 인터넷은 뜨거워졌다.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볼 수도 있다.

 수신료도 내겠다 문화도 직간접적인 상품이니, 오늘은 KBS-TV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 보장위원회(남보원)’란 상품으로 수다를 떨어보자. 개그의 속뜻을 파헤치겠다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빵구똥구 같은 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웃기니까 웃지요, 라고 하기에는 심상치 않다.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은 니가 사라” 이 말에 남녀관계에 관한 세태와 그걸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 유머의 새로움과 마케팅의 본질까지 다 녹아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X축에 세월을 놓고, Y축을 사회적 위상이라 설정한다면 여성들의 지위는 확실히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반면 남성들의 지위는 꾸준히 폭락한다. 그 격차를 정확하게 집어낸 것이 ‘남보원’ 이다. 촌철살인의 명대사를 보자. “뽕 넣은 거 인정 한다. 키높이도 인정해라” ,“에이컵도 인정한다. 백육십도 인정해라”, “커피값은 내가 내고, 쿠폰도장 니가 찍냐”, “니들끼린 쫄면 먹고, 나 만나면 파스타냐”, “네 생일엔 명품가방, 내 생일엔 십자수냐” 구구절절 애절하다. 마디마디 짜릿짜릿 하다.

 

 일찍이 故김광석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에서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의 세태를 노래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남녀 위상은 체인지 정도가 아니라 전세 역전이 되었다. 남보원의 명대사를 좀 더 살펴보자. “네가 울면 천상여자, 내가 울면 찌질이냐”, “커피값은 내가 냈다. 진동오면 니가 가라”, “갔다온건 안면돈데, 돈 쓴 거는 하와이나”, “벗어달라 강요 마라, 가을밤엔 나도 춥다” ,“ 정따위는 필요 없다. 같은 가격 선물해라”

 마초는 온데간데 없고, 온통 경제적 피로와 현실적 불평등에 억눌린 찌질이들이ㅡ 투정뿐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환호하고 여자들은 박수 친다.

 솔직히 진짜 소중한 사진의 대부분은 지나가던 누군가가 찍게 된다면서 누가 찍어도 잘 나온다고 말하는 카메라 앞에서 누구나 쉽게 ‘맞어, 맞어’ 라는 반응을  보인다. 재춘이 엄마가 생각이 모자라서 ‘재춘이내 조개구이’라고 했겠냐느 SRRL업이 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인 나라의 소비자들이 이 기업을 미워할 이유가 있겠는가? 한때 록커였던 국민할머니의 ‘혼자 왔니?’ 란 말 한마디에 피식 웃어버렸다면 찬바람 불 땐 그 핫초코를 먹게 되다. 이것이 인사이트의 힘이다.

 

 소비자의 잠재된 심리를 자극하는 인사이트가 강력한 것은 동의보다 공감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의견이 같다는 이성적 판단을 넘어 의견은 물론 감정까지 공유할 때 브랜드는 강력해진다. 당장 시작하자는 신불을 신는 이유에, 기능은 둘째 문제이다. 공감은 영혼의 브랜드로 가는 입문 같은 것. ‘러브마크’의 첫 단추인 셈이다. 어쨌나 광고든 개그프로그램이든 인사이트를 제대로 건드렸다면 반은 성공한 셈이다.

 

 다시 ‘남보원’ 으로 돌아가자. 지긋지긋하리만큼 가부장적인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날들을 불리한 차별대우로 보내는 여자들이 기껏 특별한 날 특별한 대접받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억울하다고 징징거리는 남자들이란․․․. 하지만 남보원의 인사이트 유머에 열광하는 것은 시대적 공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음의 저 밑바닥에는 여전히 건재한 남성우월주의자에 대한 풍자가 있고 소소한 것에 투정부리는 볼품없는 수컷에 대한 동정이 있다. 한때 여자는 사회적 약자엿다. 그래서 밥값 정도는 사회적 강자가 내는 것이었다. 역차별의 실태를 낱낱이 까발릴 때 대중적 카타르시스는 붓물이 터졌다.

 웃음 밑에 가려진 남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트렌드는 이렇게 변하고 있다. 글쓴이, 15년 전 뽀송뽀송한 대학생일 때, 대한이ㅡ 건아들은 비비크림을 바르거나 마스크팩을 하거나 스키니진을 입을 수 없었다.

피부관리실은 금남의 집. 행여 배에 초콜릿이 있다해서 그걸 까발리고 다닐 순 없었다. 사나이의 키가 180㎝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루저’라고 불릴 일도 없었다. 심지어 외간 여자의 허벅지를 대놓고 칭송할 줄 상상이나 했던가?

 남자다워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짓눌리지 말고 여자니까 여성스러워야만 한다는 편견에 괴로워 말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신상 개그프로그램 앞에서 마음껏 웃어나 보자.


                                                                        한국경제신문 프로슈머매거진 중

                                                                                   정성배 (카피라이터)의 글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인사이트는 공감이라는 코드를 갖고 있어 강력하다” 는 주제.

촌철 살인과 같은 인사이트를 담은 인기 개그 프로그램 ‘남보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남녀사이 미묘한 역학 관계가 세기에 걸쳐 이슈가 아닌 적은 없기에 새로운 주제도 아니지만, 그 구도가 한국사회의 경제․사회상황과 맞물려 변화하고 있어 또 다시 새롭다. 그 카타르시스의 실감은 ‘남녀 탐구 생활’, ‘남보원’을 보는 시청자이면서 당사자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다.

 사실 이 글은 얼마 전 알게 된 남대생과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과 관련된 주제라 내 눈길을 끌었다. 마치 우리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흡사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 되어 있었다.

그 청년은 초콜릿 복근을 까발리고 다니는 시대에 사람이며, “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은 니가 사라”는 말을 하기엔 한순간 일명 ‘ 찌질이’ 가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는 남대생이다.

 글에서는 남보원의 통찰적 유머의 밑바닥에 여전히 건재한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풍자가 있고 소소한 것에 투정부리는 볼품없는 수컷에 대한 동정이 있다고 한다. 

 이 청년은 남성우월주의에 물든 사람도, 소소한 것에 투정부리는 볼품없는 수컷도 분명히아니다.

남성우월주의에 동화되어 “남자니까!” 라는 의식에 젖어 밥값을 내는 남자보단,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내자”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나은 쪽이다. 차라리 솔직하다. 

 오히려 ‘남보원’ 을 옹호하는 듯 비판하며 그 인사이트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남성들을 두가지 중 하나의 종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글에서 어떤 입장은 없다. 그저 남보원의 인사이트를 지적함으로써 소비자의 잠재된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인사이트라고 연결 짓고 싶었던 것 뿐.

 우리가 남녀간의 역학 관계에 관해 누가 더 우위이며 우세한지 확인하고 있는 동안, 기업과 트렌드 주도자들은 그 속의 심리를 자기의 것과 연결 지어 보려 노력한다.

 소비자의 트렌드를 파악한 새로운 상품과, 정책들이 나오는 것이 그 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품과 서비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정당에서는 민심을 잡기위한 정책으로 둔갑되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비추어 본다면, 남녀 역학 관계의 단순한 기술(description)보다, 이성적 판단을 넘어 의견과 감정을 공유하는 인사이트의 힘을 누가 어떻게 활용(usage)할 것인가가 다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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