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히틀러라는 못 말리는 고집장이 덕분(?)에 독일이 패하기는 했지만
독일에는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의 능력으로 5년 8개월 동안 독일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도 연합군의 물량전에 맞서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 중 한 명이 '총통의 소방수' 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발터 모델 원수입니다. 1890년 생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일반 병사로 시작해서 독일육군 원수들 가운데 최연소로 진급할만큼 능력이 있는 장군이었습니다.
사막의 여우 롬멜이나 독일 전차 부대의 아버지 하인츠 구데리안, 만슈타인, 호트 같은 장군들이 프랑스 침공이나 바르바로사 작전, 하르코프 공방전과 같이 전차 부대의 역할이 중요한 전투에서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데 비해 모델 원수도 쿠르스크 전투와 같이 공격적인 성격이 강한 전투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모델의 능력은 방어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고 합니다.
특히 쿠르스크 전투 이후에 벌어진 소련군의 대규모 공격이 벌어졌을 때 하겐 라인까지 성공적으로 후퇴 작전을 수행했고 1944년 여름에 있었던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중앙군 집단이 일방적으로 밀리자 보쉬 원수의 후임으로서 동부 전선을 안정시키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냅니다.
그런데 30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에 점령지 모조리 뺏기고 폴란드 국경으로 쫓겨났는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상대로 프랑스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 잔존 병력들을 프랑스 국경 너머로 후퇴시키는 활약을 보이면서 위기가 닥치면 히틀러가 항상 일을 맡기는 장군으로 인식되어 '총통의 소방수' 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롬멜이나 호트와 같이 강인하게 적진을 돌파해 나가는 전법보다는 꼼꼼한 성격을 바탕으로 적극적 방어전을 벌여서 적군을 지치게 만들어 전선을 안정시키는 전법을 쓰는 장군이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서는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밀리기 시작했던 1943년 이후의 전쟁터에서 적임자였기 때문에 히틀러의 신임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사병에서 시작해서 총통의 자리에 오른 자신과 같이 모델 원수도 자신의 능력으로 말단 병사에서 원수가 된 데 대한 동질감이나 친밀감을 느꼈던 것도 히틀러가 신임한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점령지는 계속 줄어들고 동맹국은 차례로 떨어져 나가는 것도 모자라 사방에서 몰려드는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벅찬데 더해 물자 부족까지 심해지면서 전쟁을 계속한다는 것은 국민들만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1944년 말에 정신줄을 놓아 버린 히틀러는 여전히 역전승 기회가 남아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대규모의 공격 작전을 지시합니다.
그 때까지도 히틀러는 단 한 번의 승리로 연합군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리한 작전 진행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홈런 한 방으로 경기 결과가 뒤바뀌는 야구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닌데ㅡㅡ;;;)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방어전에 투입하기도 힘든 부대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격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부터 완전히 돌아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작전 계획의 비현실성과 독일군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깨달은 모델은 아헨을 점령한 미군을 포위해서 공격하는 작전을 제안하지만 단지 연합군의 공격을 지연시킬 뿐 전세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히틀러가 처음에 제시한 작전 (암호명: 라인강 방어 작전)이 시작됩니다.
이 작전으로 유명한 벌지 전투가 벌어지고 독일군은 처음 출발 지점에서 70km 떨어진 곳까지 진격을 하지만 연료 부족과 진격로 정체, 예비 병력의 부족으로 후방의 적군을 확실히 소탕하지 못한 점 그리고 일부 지휘관들의 자질 부족과 연합군의 보급로 차단 공격으로 인해 작전은 실패하고 그 때까지 아껴뒀던 물자와 병력 상당 부분을 상실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합니다.
실패로 끝난 벌지 전투의 패배를 책임지기 위해 룬트슈데트 원수가 해임되지만 또 다른 책임자였던 모델 원수는 해임되지 않고 연합군의 독일 본토 진격에 맞서 독일군을 지휘하다가 독일의 주요 공업 지대인 루우르 포위전에서 패배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히틀러의 모델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어서 해임되지 않았겠지만 아마 모델 원수까지 해임하면 그나마 전쟁을 제대로 지휘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임시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는데도 패한 전쟁인데 자살을 했다는 점이 아마 같은 원수였던 파울루스가 항복한 걸 보고 원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항복이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