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QT / 요나 2:1~11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고난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오늘의 말씀 가운데 먼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고난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셨다는 것이다.
요나 1장의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는 말이 두 차례 등장한다.
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이처럼 요나에게 일어난 고난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신 것이었다.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이것은 조금 치사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신에게 불순종한 요나에게 불가항력적인 고난을 일으켜 순종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만물의 창조주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씨름선수와 갓 태어난 아기가 함께 샅바를 잡고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고난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께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고난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서 불평만 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왜 그렇게 고난을 주시느냐 묻는다.
그 고통이 극심할 때도 있다.
때로는 설명하기 힘든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사랑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금더 쉽게 이해를 하기 위해 우리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면 좋을 것 같다.
좀 교만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입장을 바꾼다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지혜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땅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이 땅에서도 천국의 것을 누릴 수 있기에 충분히 맛은 볼 수 있다.
부모가 사탕만 좋아하는 자녀에게 계속 사탕만 주는 것이 사랑일까? 독일까?
아이가 좋아한다고 고기반찬만 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나쁜 부모일까?
자녀가 결과가 불보듯 뻔한 악한 일을 할 때 그냥 두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훈계하는 것이 좋을까?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게 되겠지만
대체적으로 적당한 규제와 완화를 동시에 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이다.
너무 엄격한 부모와 매우 자비로운 부모. 둘 다 자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너무 엄격한 부모 밑에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고,
매우 자비로운 부모 밑에서는 보호가 없기에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는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한다.
자비로우면 상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상대적으로 아이가 약해지기 때문에
척박한 세상살이 가운데 더 심한 상처를 받을 때가 많다.
하나님도 오늘 이 두 가지의 방법을 다 사용하셨다.
요나가 처음으로 불순종 할 때 하나님은 너무 엄격하게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다른 길로 돌아섰을 때 하나님은 스올이라는 회초리를 드셨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발생한 일, 자신이 악한 일을 행하여 발생한 죄의 결과.
이런 것들 마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탓해서는 안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다.
자신이 무엇을 심었는지도 되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고난을 원망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그런 고난을 받는 상황을 보시며 고소해 하시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의 악한 행위가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시며 안타까워 하신다.
오늘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셨다는 것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고난을 주관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빨리 돌이켜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초리를 드는 부모의 심정인 것이다.
이 땅에는 제대로 되지 못한 부모가 자식에게 체벌이 아닌 폭행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채 분풀이를 하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부모가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본인의 의도아래 체벌을 가한다.
많이 부족한 나 조차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 철저한 계획 아래 상처받지 않게 체벌을 했다.
체벌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얼마나 자신의 잘못을 빨리 뉘우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랑의 체벌 이후에 부모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는가?
우리 부모님은 늘 정해진 체벌 횟수 이상으로 나를 체벌하지 않았다.
한 번도 손지검을 당해본 적이 없다. 회초리로는 엄청 많이 맞았지만.
그 이후 어머니가 종아리에 발라주시는 연고로 베개를 잡고 울었던 적이 참 많다.
엄마가 미워서 울었던 것이 아니다. 엄마의 사랑이 내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울었다.
하나님도 체벌을 하실 때 우리가 아프다는 것을 잘 알고계신다.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와 직접 십자가 고난을 몸소 다 체험하셨던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체벌당하는 것을 보고 즐기시지 않는다.
그 분도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회초리를 드시는 것이다.
우리가 요나처럼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고난'을 주셔서 우리의 삶을 바로 잡기도 하신다.
그 때 중요한 것은 본문의 요나처럼 빨리 우리의 길을 돌이키는 것이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한다.
우리에게 오는 고난을 생각해보자.
나의 심각한 죄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놓지않아 손해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것은 내 자아일 수도 있고, 욕심이나 고집일지도 모른다.
물질에 매여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스올'이라는 고난이 우리를 즉시 토해낼 것이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더 성숙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나를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어학원에서 그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목사님, 제가 시험에 든 것 같아요."
나는 그 목사님의 답변에 이 아주 인상깊었다.
"시험에 들면 100점 맞으면 되지요."
나도 만점으로 시험을 통과하여
출중한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싶다.
지금은 비록 너무 약하고 부족하지만
고난 앞에 원망하지않고 그것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간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귀하게 쓰임받을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