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프랑스지엥~ 무슈리!'를 연재 하게 된 이승현입니다.
글을 씀에 있어 기본이라는 맞춤법도 잘 모르는 저이기에 이렇게 저의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게 참으로 부끄럽네요.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이곳의 생활상,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해주고픈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여러분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노력에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매주 토요일(한국시간으로는 일요일이겠군요)에 글을 올릴 예정이고 정해진 주제나 목표는 아직 없습니다;; 단지 제가 한 주 한 주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 고민을 연재할 예정인데요, 만약 여러분들이 특정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거나 프랑스 생활에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그 의견을 적극 수렴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글을 읽어주시러 제 글을 누르신 여러분들, 모두 감사하고요 다들 복받을껴!
이제는 너무 흔하디 흔하여 그 의미가 퇴색한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1행을 빌리지 아니하여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잔인할 만큼 아름다운' 봄의 의미와 온 세상 모든 새 생명들의 움트는 '잔인하리만치 처절한' 생의 의지, 그리고 우리네 역사속에 남아있는 '잔인을 넘어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까지,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군체는 또 한번 4월의 '잔인함'에 울고 있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의지든 우연한 사고든 신의 섭리든간에, 역사에 잊혀지지않을 잔임한 죽음에 흐느끼고 있다. 정열찬 목숨을 바친 36명의 전사자와 8명의 실종자들에게서 받은 잔인함을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지 알지 못하기에, 아무것도 줄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울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잔인함을 느끼는 건 어쩌면 군 당국과 정부의 태도가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사진 1. 사고 전 천안함의 모습. 나 역시 2함대 대천함의 일원으로 2년간 배생활을 해서 그런지, 그들의 죽음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허순행 상사님과, 유지욱 하사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쉰건...나쁜짓일까...?
출처 : 다음카페 '해군동지회 중앙회' http://cafe.daum.net/Rok-Navy >
파리의 중심을 가르는 샹 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ees). 수 많은 옷가게와 카페, 레스토랑, 쇼핑몰이 운집한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자 유렵연합의 중추국 프랑스의 심장 파리의 대동맥인 이 도로는 우리가 잘 아는 개선문으로부터 뻗어나간다. 개선문(Arc De Triomphe)은 1806년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나폴레옹 1세(우리가 잘 아는
보나빠르트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지어졌다. 파리의 정중앙인 샤를 드 골 광장(Place Chales de Gaulle)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하지만 나폴레옹 1세의 실각, 왕정복고, 7월 혁명 등 격정의 세월을 거쳐 1836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이 문 밑으로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개선하려 했던 나폴레옹 1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그의 시신이 이 문을 통과했다는 것은 마치 난세의 영웅이자 프랑스 유일무이한 전제군주인 그의 인생같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 문의 전면에 장식된 부조는 나폴레옹 1세의 승리와 공적을 묘사하고 있다. 문의 아래에는 수 많은 전쟁에 참여하여 전사한 장군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기둥 아래 문의 중앙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 용사들의 묘가 있는데 매일 저녁에는 추도의 불꽃이 점등되고 있다. 내가 파리의 개선문을 보고 가장 처음 느낀 것은 그 웅장한 크기에 대한 감탄도, 수 많은 관광객에 대한 흥미도, 개선문을 둘러싼 수 많은 차량에 대한 복잡함도 아니었다. 유럽의 중추, 프랑스의 심장, 그 중심에 위치한 것이 이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수 많은 전사자들을 기리는 건축물이라는 것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었다.

<사진2. 개선문 밑의 이름모를 병사의 묘지. 많은 외국인들이 전사들을 추모하고 있다.>
많은 외국인들, 특히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나 지명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대다수 외국인들은 잠실 올림픽경기장, 서울 월드컵경기장, 청계천 등을 이야기한다. 과연 이것들이 정말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인지, 누구를 위한, 어떤 목적을 위한 건축물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자. 잠실 올림픽경기장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종합경기장이다. 상암 월드컵경기장 역시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하여 지어진 주경기장이다. 모두 6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서울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아니다. 청계천은 물이 흐르기 시작한지 10년도 되지 않는 인공하천이다. 물론, 그것이 600여년 전 조선의 수도 한성을 흐르던 내천을 복원하였다는 명분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서울사람들에게 안식처를, 다양한 문화공간을, 도심속의 자연공간 등을 제공한다는 상징성을 갖기에 서울을 대표한다는 말에 어느정도는 수긍은 하는 바이다. 미국의 타임지는 청계천의 성공을 보고 이명박 대통령을 '녹색성장을 이끌 지도자'라 평하였으니... 하지만 그 내천이 어떤 모습으로 600여년이 넘는 유구한 서울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말인가? 600여년을 쉼 없이 흐른 한반도의 중심에 선 서울의 역사처럼 저 곧게 뻗어 쉼 없이 흐르는 하천이야말로 서울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말 그가 이런 생각을 가졌다면, 청계천 광장에는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들어서야 했다. 소라 껍데기는 백번 양보한다 하여도 서울의 모습이 아니다. 그 건축물이 가지는 의미를 나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 하여도 일반인들에 눈에 그것은 절대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과오를 갚으려 청계천에 투영된 한성의 600년 역사를 뛰어넘는 반만년의 한반도 역사를 운하로 표현하려는 것일까? 물론, 그럴 생각은 쥐똥만큼도 없어보이지만. (주어없음. 정말 이런 생각으로 만드는 거라면 나는 그저 당신이 웃긴다.)
<사진 3. 2008년 소고기 파동 때 촛불시위 현장. 차라리 평화 촛불문화제를 대표로 삼아라!>
현재까지 사망이 확인된 38명의 시신들은 곧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미래의 오늘, 우리는사망자 가족들의 비참한 고통을 간추린 뉴스로 듣게 될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면, 우리들은 그 사건을 모래사장에 적은 사랑의 언약처럼 잊게 될 것이다. 하지만 200년 전 국가를 위하여 승리를 쟁취한 군인들을 위해 지어진, 수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장렬히 전사한 장군들을 기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이름도 모르는 무명 병사들을 위해 매일 밤 추모의 불이 켜지는 개선문 아래에서 파리를 찾는 수 많은 관광객과 파리시민들, 더 나아가 프랑스 국민들은 절대로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나 외국인들에게나 가슴 깊이 기억되야할 서울의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청계천의 소라껍데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그것이 엄청나게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라 하여도, 그것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서는 안된다. 4.19탑, 국립 현충원 내에 위치한 자유상이 더 이상 애국가 2절의 한컷으로 사용되는 이 때, 우리의 가슴속에 소라껍데기가 있어서는 아니된다. 많은 서울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지만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건축가의 작품을 ,혹은 그 작품앞에서 서울의 역사를 끼고 흐르는 청계천을 서울에 대한 모든 것으로 기억하는 많은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순국선열들의 혼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프랑스의 정신이 마냥 부러워지는 오늘이다.
참조 : 위키백과 '개선문' http://ko.wikipedia.org/wiki/개선문
By-승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