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의 집 앞
퇴근 시간에 맞춰 지수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민준은 오늘은 프로 포즈를 하고자 마음먹고 반지와 꽃을 준비했다. 이젠 그 누구도 이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지수를 기다린다. 시간은 점점 가고 어느덧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일생의 단 한 번뿐인 프로포즈라 일부러 연락도 안하고 깜짝이벤트 겸 준비한 것인데 지수는 민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밤 9시가 넘어갈 때쯤 슬슬 기다림은 걱정으로 돌아서고 핸드폰을 만지막 만지막 거리던 민준이 단축 번호를 눌러 지수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 데 하얀 불빛이 비추며 차 한 대가 집 앞에 선다. 불빛이 너무 밝아 순간적으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던 민준은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준혁이다. 그리고 준혁이 부축하며 내리는 여자는 지수였다. 그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움질 일수도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 지수야. 들어가자.”
“ 응....”
너무 힘겨운 얼굴의 지수는 곧 쓰러질 것 같았지만 지금 민준에게는 지수의 그런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지수를 감싸 안고 있는 준혁의 손이 보일 뿐이다. 조수석에 놓여 있는 반지 케이스와 꽃을 한 번 보고는 한 숨을 내쉰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걸어 그 곳을 떠난다.
# 지수 방안.
준혁의 부축에 의지해 침대에 누운 지수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 지수야. 괜찮을거야. 걱정하지마. 아무 일 없어. ”
“ 준혁...아.나....나...아니야.... 난 안 그랬어...”
“ 알아.. 다 알아. 뭔가 잘못 된 거야. 지수 넌 아무생각 말고 푹 자.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게. ”
불안함에 떨고 있는 지수의 손을 잡아주고 안심시키던 준혁. 지수가 잠이 들자 그제 서야 주변을 살핀다.
‘ 내가 없는 동안 넌 이곳에서 이렇게 살았구나. 보고 싶었어. 김지수.
#휘문 고등학교 교장실
“ 아버지. 지수는 그런 일 안해요. 제가 보증해요. ”
“ 네가 보증 한다 해도 이미 어쩔 수 없어. 소문은 온 학교 안에 다 퍼졌고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김선생에겐 안 된 일이지만 일을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흥분하는 준혁.
“ 그럼 촌지를 줬다는 그 학부모를 만나볼게요. 아니라는 것만 밝혀지면 아무 문제 없잖습니까. ”
“ 설령 그 학부모를 찾는다고 해도 사실대로 말해주지는 않을 게다. 시간 낭비야. ”
“ 아직 지수에겐 아무런 말씀 마십시오. 기다려주세요. 제가 밝혀낼테니까요. ”
흥분한 상태에 준혁은 교장실을 박차고 나간다.
“ 음..녀석.. ”
# 교육청
준혁은 지수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 다닌다. 교육청 관계자들도 만나고 경찰에게 의례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제보자를 찾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저희도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
이리저리 뛰어 다녀도 해결할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지수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건다. 민준에게로.
“ 네. 차민준입니다. ”
“ 안녕하세요. 최준혁입니다. ”
최준혁이라는 말에 긴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 네. 무슨 일이십니까. ”
“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났으면 합니다. ”
“ 그러죠. ”
#커피숍 & 지수 집
준혁이 커피를 마시며 민준은 기다리고 있다. 얼마 뒤 커피숍 문이 열리고 민준이 들어온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서로 다시는 안 볼 사이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한 여자 때문에 또 다시 두 남자가 마주 앉게 되었다.
“ 오랜만이네요. ”
“ 그렇군요.”
“ 오래 만에 만났는데 이런 말 먼저 꺼내 미안합니다. 사실.. 내가 만나자고 한 건 ”
“ 지수 이야기입니까? 얼마 전에 봤어요. 지수랑 당신이 같이 있는 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
“ 지금! 질투라도 한 겁니까? 그래요? ”
“ 그러게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흥분한 준혁은 벌떡 일어나 민준의 멱살을 잡는다.
“ 지금!! 지금 지수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기나 합니까? 모르겠지. 모르니까 허튼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 그게.. 무슨. 지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
“ 지수 지금 충격이 심해서 출근도 못하고 집에 있습니다. 지수가 학부모한테 촌지를 받았다는 누명을 썼다구요. 그래서 너무 괴로워하고 있는데 애인이라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 할 수 있죠? ”
“ 뭐..뭐라구요? 하.. ”
그 말을 듣자마자 뛰어나가 전력질주로 지수의 집 앞까지 온다. 초인종 누를 새도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불이 꺼져있는 방안에는 힘없이 누워있는 지수가 보인다.
“ 지수야. 지수야.. 정신 차려봐.. 지수야!!! ”
몸이 열 덩어리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신음소리만 내는 지수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민준. 자신이 사랑하는 이 여자를 지켜준다고 해 놓고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지 조차 몰랐던 자신이 한심하고 싫었다. 정신을 차리고 지수를 안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한다.
#응급실
링겔 맞고 간신히 열이 내리고 표정도 안정을 찾은 지수를 바라보며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린다.
“미안해... 미안하다. 지수야. 너 이렇게 힘든지도 모르고 네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선미의 집
“ 그래? 그렇게 됐단 말이지.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됐네. 알았어. 처리는 잘 했지? 수고했어. ”
전화기를 끊고 묘한 미소를 짓는 선미.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남자 차민준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자신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한 여자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한다면 자신이 그 동안 그 남자에게 당했던 무시를 한방에 갚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복수를 하고도 이상하게 그 남자가 욕심난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장선미를 거부한 남자도. 싫다는 데도 이렇게 집착하게 되는 선미 자신도. 혼란스러울 뿐이다.
#휘문 고등학교
수업 종이 울리고 3학년 5반 교실에 지수가 아닌 체육교사인 세호가 들어온다. 학생들은 수근 대며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 당분간 너희 반 담임선생님이신 김지수 선생님은 몸이 안 좋아서 병가중이시니 내가 대신 담임역할을 맡게 되었다. 지금 학교에 퍼지고 있는 이상한 소문들은 믿지 마라. 수근 대지도 말고. 알았나? ”
“ 선생님. 그게 사실이긴 한 거에요? ”
“ 아니죠? 우리 선생님 그런 분 아니세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
“ 맞아. 그럴리 없어. ”
학생들 모두가 지수의 안 좋은 소문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 않았다. 그 동안 지수의 행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지수의 집
지수는 쇼파에 덩그러니 앉아 멍한 표정을 짓는다. 순간 회의도 들었다. 그 동안 꿈꿔왔던 일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버렸으니 말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복잡한 머리를 애써 위로하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 누..누구세요. ”
“ 선생님. 저희들이에요. 소영이에요. 문 열어 주세요. ”
“ 소영이? 어머..”
현관문을 열어 보니 3학년5반 학생들 몇 명이 서 있다. 제자들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고 애써 태연한척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들어와. ”
“ 선생님. 저흰 알아요. 선생님이 절대 그런 일 하셨을 리가 없어요. 우리가 보증인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전교생들에게 서명운동 하고 있어요. 이거 보세요. 벌써 100명이나 서명 해 줬어요. 선생님.. 절대 포기하시면 안돼요. ”
“ 맞아요. 우리가 다 해결할거에요. 도대체 누가 선생님한테 그런 누명을 씌었는지는 모르지만 잡히면 아주 죽여 줄거야. ”
“ 그러니까 얼른 털로 일어나세요. 저희 이제 수능 준비도 해야 하는데 선생님 없으면 어떻 해요. ”
제자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고 고맙고 서러운 마음이 하나 되어 애써 참았던 눈물이 결국은 지수의 뺨을 타고 내려온다.
“ 거봐. 이렇게 마음 여린 선생님이 .. 말도 안돼. ”
“ 고마워.. 고맙다. 애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