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떨어져 뒹구는 거리 저 너머 천안함 영웅들의 합동분향소는 추모객들의 물결로 숙연합니다. 요 며칠 봄은 4월을 차마 이대로 보낼 수 없었는지 비바람을 흩뿌리고, 때아닌 추위까지 보태 죽은 이를 위무하려는 산 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발길은 끝없이 이어져 꿈같았을 이 즈음 풍경을 흑백그림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두 동강난 천안함을 뒤로 한 채 태극기에 싸여 있는 자식이거나 지아비거나 아니면 동생 또는 오빠를 매만지며 오열하는 유가족 이상으로 우리는 비통함 속에 영웅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추모객 중에는 6·25 전장에 목숨을 맡겼던 노병이 있고, 월남전에서 팔다리를 잃은 상이 군인도 있습니다. 간첩에게 어머니를 빼앗긴 40대 아들이 국화 한송이를 바치는가 하면 초등생의 노란색 리본은 만장처럼 휘날려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평범한 이들의 눈물이 조국을 위해 산화한 넋들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겸허한 마침표 하나가/네모난 상자에 누워/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못다 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흙을 뿌리며 꽃을 던지며/울음을 삼키는 남은 이들 곁에/바람은 침묵하고 새들은 조용하네/더 깊이, 더 낮게 홀로 내려가야 하는/고독한 작별인사…(이해인 시인의 시 ‘하관’ 중). 순국 용사들에게 헌화하며 그동안 잊고 살아온 소중한 것들, 그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전사자나 참전용사는 선진국 국민에게는 존경과 경외의 일상적인 존재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 결혼식을 마친 뒤 모스코바 젊은이들이 찾는 곳은 크렘린 궁 인근 무명용사 묘지랍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무명용사를 기리는 파리 개선문의 ‘영원한 불꽃’도 1년 내내 꺼지지 않구요. 해마다 미국 전몰장병 기념일 때면 참배객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다시 상기할 필요도 없겠지요.
영웅들을 영원히 보내야 하는 이 아침, 애도의 마음 이상으로 죄스러움 속에 용사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여전히 망령처럼 떠도는 온갖 설 때문이지요. 천안함이 침몰했을 때 진실과는 상관없이 암초충돌이나 선체피로파괴를 제기했던 게 우리들 아니었던가요. 불만을 가진 소행자의 내부 폭발설까지 거론했습니다. 여러 증거들이 뚜렷해지는 데도 한미합동군사훈련 중 미군의 오폭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최근에도 계속되는 게 현실입니다.
추모와 애도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아름다운 용단으로 중단된 실종자 수색을 멈춰 선 안될 일입니다. 6인의 산화자를 백령도 해역에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습니다. 천안함 악몽을 겪던 지난 15일 USA 투데이는 2차대전 때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를 70년 만에 찾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죽기 전 보낸 편지봉투에 남아있던 타액의 유전자 감식으로 마침내 유족들의 품에 안기게 됐다는 거죠. 주인공은 1941년말 하와이 진주만에서 전사한 제럴드 레흐만이었습니다. 17세에 입대한 이 해군 수병은 90세 가까운 나이에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를 모토로 조국에 목숨 바친 용사들을 찾는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러시아는 또 어떻습니까. 천안함 침몰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모스크바 지하철역 연쇄 자살폭탄테러를 기억하실 겁니다. 체첸과 연관된 ‘블랙 위도우(검은 미망인)’ 소행으로 추정되자 푸틴 총리가 내뱉은 첫 마디는 “안보 기관은 범죄자들을 색출, 처벌하는 데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테러집단을 말살시키겠다”고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또한 “배후를 찾아내 섬멸하겠다”고 응징을 다짐했구요.
추모의 시간이지만 눈물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할 때입니다. 유가족과 국민들의 슬픔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진정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것은 결연한 의지와 단호한 대응 자세입니다. 잇속 챙기기 바쁜 정치권도, 우왕좌왕한 군도 진정한 추모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추모의 변도 ‘나의 일'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한반도는 정전(停戰) 중이고, 군대 간 피붙이 역시 위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잊으면 안되겠지요. 불과 몇해전 일어난 연평해전을 까마득하게 잊고 산게 우리들입니다. 영웅들의 ‘못다한 사랑’을 완성하는 건 남은 자의 몫입니다. 시 ‘하관’이 그려 낸 성스런 수녀의 마지막처럼 46명의 영웅들이 숭고한 죽음으로 남긴 조국 사랑을 어떻게 승화시킬 지 숙고할 때입니다. 다시 한번 천안함 영웅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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