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이후로 가본 적이 없던 경복궁
며칠 전 부터였나..왜그리도 이곳이 그리웠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5월 5일이 어린이 날인지 더군다나 그 날이 휴일 이라는 것도 잊고있었다.
그래도 큰 맘먹고 출사를 감행했다
선뜻 함께 동행해준 그녀에게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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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광화문거리를 재현한다며 공사가 한창 중이었고 인파로 인해 입구가 어수선했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근정전
왕이 문무백관에게 조회를 받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며 즉위, 책봉,혼례 같은 나라의 주요한 행사를 치르는 곳으로,왕과 나라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다.
사정전
왕이 평소 머무르며 나랏일을 돌보았던 곳으로, ‘깊이 생각하여 나랏일에 임한다’는 뜻을 품고있다.
세종이 밤 늦도록 학문을 연구하고, 집현전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곳
내전
외전 영역이 위엄을 갖추었다면, 왕과 왕비를 비롯한 세자와 대비 등 왕실 가족이 생활하는 내전 영역에는 친밀하고 섬세한 정서가 배어있다.
강녕전
왕이생활한 건물이다. 왕은 강녕전에서 독서나 휴식을하였고, 때로는 신하들과 만나 편안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교태전
왕비가 생활했던 곳
아미산
궁궐 안에 한번 들어오면 궐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왕비를 위해 꾸민 정원이다. 야트막한 동산을 계단식으로 꾸미고 곳곳에 나무와 꽃을 가꾸었다. 화단에 세운 육각기둥 모양의 굴뚝에는 학, 박쥐, 봉황,
사슴,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덩굴, 바위 등 무늬를 장식하였다.
경회루
연못 안에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지은 큰 누각으로, 주역 사상에 바탕을 둔 우주의 원리를 건축에 담고 있다. 왕이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열 때 이용하였다. 어린 단종이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에게 눈물로 옥새를 내어준 곳이기도 하다.
향원정
건청궁을 지으면서 새롭게 만든 왕실 전용의 휴식 공간이다
건청궁
구한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시해되었던 곳. 고종은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참극을 겪은 뒤 경복궁을 떠났다. 최근에 건청궁이 복원되어서인지 아직 쌘삥 냄새가 난다. 그런 관계로 무채색 처리 ㅡ,.ㅡ
경복궁은 '만년토록 빛나는 큰 복을 지닌 궁궐' 이라는 뜻을 품고있다고한다.
여기에는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며, 대대손손 태평함을 이어가겠다는 조선 왕조의 강한 소망과 이상이 담겨있다.
경복궁이 가장 활기찼던 시절은 세종 때이다. 특히 세종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을 발명해 냈다. 한글에 대한 사용 해설로서 펴낸 [훈민정음]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고종은 임진왜란 후 273년 동안 빈터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330여 동 7,700여칸의 전각을 지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속에 근래 강영전,교태전,자선당,비현각,건청궁,태원전,흥례문,영제교 등 주요 전각과 문, 다리가 복원되었다.
언제 어느 때 찾아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깊은 역사 전통의 향기를 전해주는 서울의 궁궐은 우리가 살아온, 또 오래도록 살아갈 터전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하는 자랑이며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