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2009. 4. 13 신경민의 마지막 클로징 멘트 중 일부)
2009년 4월 13일 9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mbc 신경민(57) 기자가 갑작스럽게 뉴스를 하차한다. 그의 하차에 후배기자들은 제작 거부를 선언하며 농성을 벌이는가하면, 일각에서는 정권의 외압에 의해 일어나는 또 다른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1년가량이 흐른 지금, 마지막 방송에서 “할 말은 많아도 클로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다”고 이야기 했던 그의 30년차 베테랑 기자로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4. 6일 여의도에서 기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당초 만남은 mbc 여의도 사옥에서 진행 될 예정 이였으나, 인터뷰를 하루 앞둔 바로전날 방송사의 파업으로 인해 여의도 근교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 졌다.(다음은 신경민 기자와의 일문일답)
끝나지 않은 신경민의 클로징을 말하다.
- 이제 다음 주면 뉴스데스크를 하차하신지 1년이시죠? 뉴스 하차 하시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신) 현재 보도국의 정식직함은 선임기자로 돼 있죠, 뉴스데스크 하차이후 회사에서 특별히 제게 미션을 주고 싶어 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아주 사소한 일 몇 가지만 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정권적 차원의 배려? 라기 보다 결정 이라고 봐야죠. 가급적 회사 내의 일이나 시국현안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주로 집필, 원고청탁, 강연 등의 일이 많아요.
- 뉴스데스크를 하차 하시고 <신경민의 클로징을 말하다!> 책을 출간 하셨는데 책 이야기 좀 해주시죠?
신) 최근....아니 이제 최근도 아니죠. 작년 12월 <클로징을 말하다> 책을 쓰는데 한 4∼5개월 정도 공을 들였어요. 작년 여름, 가을에 책을 썼고, 책을 다 쓰니까 이제 책을 팔라고 하더라고요(웃음)
- 출판 싸인 회 같은 것도 많이 하셨겠네요. 책은 좀 많이 나갔나요?
신) 출판 싸인회 같은 것도 많이 했죠, 강연회도 많이 했어요. 판매 부수는 제 책의 장르가 사회과학 쪽인데 그 장르치고는 꽤 나간 편이에요. 근데 사람들이 책 팔아 돈 좀 벌었냐고 많이들 묻는데 사실 그다지 많이 벌진 못했어요. 오히려 돈을 쓰지 않았다면 모르죠, 그래도 사회과학 책 치고는 꽤 반응이 좋은 편이라 4판 까지 인쇄 했어요. 그 정도면 많이 나간 편이죠...
- 앵커 교체의 관한 논란이 워낙 컸고, 클로징 멘트가 뉴스 하차에 작용 한 것을 아닌가? 하는 의문 속에서 클로징을 묶어 책을 출판하신 이유가 있나요?
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말씀 하신 것처럼 제가 뉴스를 그만 두게 된 직접적 계기가 클로징 이였고, 때문에 제 멘트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제 멘트가 인터넷이나 이런 곳에서 많이 떠도는데 체계적 정리가 안 되어 있다 보니 그것을 내 손으로 해야 갰다는 생각도 했고요. 멘트가 짧다보니 여지저기서 자의적 해석이 너무 많은 것도 이유고, 또 하나는 제가 클로징 멘트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배경이 있고 저 나름대로의 클로징 멘트의 분석이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을 제 손으로 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일부에서는 정치 출마용이다. 라며 여러 가지 의미를 담는데 그것 보다는 앞서 말씀 드린 이유가 더 크고요. 제가한 뉴스 진행 때문에 그것을 대상으로 해서 글을 써보겠다 는 사람들도 많았고, 앵커란 무엇인가? 바른 언론이란? 언론의 정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설명이필요해 출판 하게 되었죠.
29년차 mbc 선임기자 신경민, 언론을 이야기 하다.
- 올해 29년 차 이시죠? 현재는 보도국 최고참 선임기자를 담당하고 계신데 기자를 꿈꾸게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신) 기자를 하게 된 거창한...기대하시는 만큼의 동기는 없어요. 당시 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해야 했고, 공부를 하는 것은 여건이 허락지 않았죠. 다른 일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았고, 단기간에 가장 쉽게 들어 갈 수 있었던 게 기자였어요. 물론 저한테 익숙했고요. 그래서 여러 언론사에 지원서를 낸 거죠. 원래 제가 1980년 입사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사번이 81년 번이예요. 당시 신군부의 쿠데타 상황이라 기자 해직 사태 등의 사건으로 입사 취소 직전까지 갔기 때문에 이런 해프닝이 벌어 진 것이죠.
- 익숙했다는 것은 언론사 기자를 하셨던 선친의 영향을 말씀 하시는 건가요?
신) 아버지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죠. 때문에 직장선택에서 일반 회사보다 언론사를 가자...라는 생각이 잠재적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공적인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과 동시에 말이죠. 물론 MBC도 주식회사지만, 당시 월급과 여러 가지 조건 그리고 공적인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제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에 적합했기 때문에 방송사를 선택 한 거였죠.
- 동아일보 신문사에 입사 시험을 치셨죠? 방송사로 입사를 전향 하신 것도 궁금한데요?
신) 당시에는 시험을 보는 곳이 몇 군대 없었어요. 동아일보가 시험을 쳤고, mbc 그다음에 중앙일보가 있었는데, 중앙일보는 제가 동아 일보와 mbc가 합격했기 때문에 시험을 보지 않았어요. 세 군대가 있었는데, 그해에 전부 다 시험 내지 합격이 취소가 되고 mbc만 유일하게 합격을 시킨 거죠. 중앙언론사 중에 유일하게 사원을 채용 한곳도 mbc 였고...
- 30년간의 기자 생활에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셨을 것 같은데 기자 생활 하시면서 즐거웠던 때와 아쉬웠던 때를 말씀 해 주신다면 언제 입니까?
신) 우선 즐거웠던 때보다 아쉬웠던 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당시 독재 상황에서 기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보도를 지금처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죠, 일명 <땡전뉴스>로 대표되고 상징 되는 거죠. 뉴스 편집과 취재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청와대가 톱 블록에 기사는 직접 써주고 편집을 해주기도 했죠.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다는 것은 생각 할 수 도 없었고, 비판 적인 기사라고 해 봤자 지역 하급 말단 공무원의 비리 정도 수준 이였죠. 그것도 눈치를 봐가며 써야하는...그런데 지금도 예전의 그러한 성향, 가령 어떤 기사를 써야 할 때 이것을 과연 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약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정치권의 눈치를 항상 봐야 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인가? 하는 생각도 들죠. 근데 민주화가 되니까 정치권에서 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 졌는데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지배 세력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있어요.
기자생활에서 즐거웠던 적이요? 일단 보도에 의해 비판이 수용되고 사회가 변화 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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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보도를 한번 한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뉴스의 특성상 같은 도표를 가지고 여러 번 할 수도 없고 관련 보도를 여러 번 하려면 조직 내의 consensus 가 필요한데 그러한 consensus 가 쉽지도 않고요.
- 언론 보도에 있어서 민주화 이전에는 권력에 의한 침해 이었다면, 현 사회에서 보도의 장벽이라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신) 지금은 사회에서는 정권의 비판적인 기사의 경우 무조건 빨간 딱지를 붙인다는 거예요. 정권에 비판적이라면 소위말해 좌빨이라는 행태가 횡행 하는 거죠. 때문에 기사도 정권이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요. 왜냐면 한쪽에서는 ‘보수꼴통’이라고 비난하고 한쪽에서는 ‘좌빨’이라고 비난 하고 있거든요. 이러한 성향은 정권에 비판적인 생각자체를 말살 시키는 거예요. 사회적 구조 문제고 굉장히 후퇴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민주화 20년이라고 하는데 민주화 20년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사회 각 분야가 통탄하고 한심해 할 것입니다. 예전독재와 싸울 때는 독재가 바로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잖아요. 근데 지금은 대상 자체가 굉장히 불분명해요. 그게 정치권이기도 하고, 경제적 어려움과 겹치기도 하고
- 그럼 현재 언론이 투쟁 하여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신) 언론은 권력 감시기능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죠. 그 권력이란 정치권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내의 모든 권력의 비판의 잣대를 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 많은 않습니다. 왜냐면 언론이 지금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고, 광고가 급속히 압박을 받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기본임무를 수행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 외신부 기자로 오랜 시간동안 미국에서 생활 하셨잖아요. 보도에 있어 미국적 뉴스 시스템과 국내의 시스템에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그리고 뉴스 하시면서 미국적 시스템에 부러운 점을 말씀 하신 다면요?
신) 차이점이라고 하기 보단 일단 같은 점이 하나도 없어요. 미국사회와 한국 사회가 다르듯이 다만 뉴스를 진행하는 겉포장만 비슷할 뿐이에요.
- 취재의 자유로움을 말씀 하시는 건가요?
신) 그렇죠. 문화적으로도 크게 다르고, 취재행태도 다르고, 기자의 선발조건, 트레이닝, 취재행태, 기사행태, 편집, 편성 모든 부분에서 비슷한 점은 없어요. 우리는 보통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의 다른 점? 이라는 물음으로 접근 하는데 그런 식으로의 접근은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너무 다르니까요. 그리고 한국은 미국은 벤치마킹 하지만 미국을 그대로 베낄 수도 없고.
일부는 앵커 시스템이 똑같지 않느냐? 하는데 미국의 뉴스기자들은 우리나라 보다 훨씬 치혈한 경쟁을 하고, 훨씬 더 많은 보도의 자유를 누리지만 강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죠.
- 차이점을 예를 들어 설명 해주신다면 어떤 것이죠?
신) 예를 들어 이야기 하자면 이런 거죠. 미국의 경우 공인의 범주를 굉장히 넓게 봅니다. 공인에 대한 보도 또한 자유롭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보도에 공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인물들의 반감이 상당히 거세죠. 틈만 나면 공인은 사람이 아니냐...?하는 등의 이야기도 들고 일어서고, 또한 얼마 전 조두순 사건 때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 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미국의 경우 공공의 안전이 가장 우선시되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신상을 공개 하는 것이 일반 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의 자유 속에서 가지는 책임 또한 국내와는 다르죠. 만약 오보로 판명이 나는 경우 회사가 거의 망할 정도의 타격을 입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개인의 명예, 개인의 신변 이러한 것을 공공의 이익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것이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고 생각 되요. 이러한 것을 사회적으로 토론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 인터뷰에서 김주하 기자가 mbc의 가장 큰 위기는 황우석 박사 사태 때였다. 라고 한 것을 봤는데요. 신기자님이 생각하시는 mbc의 최대 위기는 언제 이었습니까? 지금의 파업 또한 가장 큰 위기 의 연장선인가요?
신) 황우석 사태 때는 회사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큰 문제 이었죠. 그게 만약 오보였다면 mbc는 문을 닫았어야 했을 거예요. 국민적 감정도 큰 반향이 있었고, 최대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권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 현재 또한 최대의 위기라고 볼 수 있죠. 과연 이 싸움에서 mbc가 어떠한 위상을 찾을 수 있는지 이것 참 숙제죠.
‟언론의 사회적 비판에 무조건 빨간 딱지를 붙여요.
이러한 비판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거죠”
-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언론 규제 차이점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 지난 정권도 언론과의 마찰이 있었죠. 기자실 통‧페합등의 사건들 등....여러 가지 사건 있었죠. 그렇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이런 것은 하지 않는 다는 최소한의 바텀 라인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 것을 기자로써 인정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정권은 그러한 바텀 라인이 없는 것 같아요. 정권 초기에는 프레스 프렌들리를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언론에, 사회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경제위기에 언론의 경제위기가 겹치게 되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 광고시장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언론이 굉장히 어렵죠. 심하게 이야기 하면 언론의 고
사, 질식에 현재의 정치적 압박까지 언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올드미디어들이 고민을 하고 있어요. 언론의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까.
- 언론의 탄압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언론 수용자들이 어떤 점에서 언론 탄압을 가장 체감 할 수 있을까요?
신) 증거가 뚜렷하게 없어서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아무도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증거를 남길 만큼 그렇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언론탄압이 없어도 언론 자체가 테크놀로지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어려워요. 그리고 과도한 콘텐츠의 여파로 우리나라는 곧 있으면 콘텐츠의 위기를 겪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러한 콘텐츠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완성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돈과 자본만이 필요한 것이 아닌 언론의 역사 전통 인지도 등의 평가가 필요하고 좋은 언론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언론의 establish 하루아침에 생성 되는 것은 아니죠.
저도 인간인데 제 자리에 대한 불안감 항상 있죠!
그렇지만 언론인으로써 신념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방송사 뉴스 꼭지 선정에서 앵커의 역할은 어느 영역까지인가요?
신) 일단 메인 뉴스 선정 시보도국장이 책임을 지죠, 앵커는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는 있고, 다만 제가 선임 기자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예우를 해줄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보도 국장입니다.
- 메이저 신문의 뉴스를 참고 하시기도 하시죠?
신) 참고 하죠. 그렇지만 기본적인 참고 일 뿐이지 결국은 국장의 개인의 역사관 사회관 철학에 의해 좌지우지 되죠. 그 사람의 학식, 용기도 메인 뉴스를 선정함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죠.
- 시청자로써, 언론인 지망생으로써 신 기자님을 뵈면 언론인으로써의 자신의 신념을 상당히 잘 지켜 내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런 신념을 지키시는데 두려움은 없으십니까?
신) 왜 없겠어요? 당연히 있죠(함께 웃음) 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정치권력이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한 개인을 파괴시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죠. 개인의 정보를 가지고 있잖아요. 정치권력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두려운 거죠. 저도 한 개인으로써 당연히 두려움이 있죠.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굳이 언론인의 신념을 지키시는 이유가 뭔가요?
신) 당연히 언론인으로써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 현제 집권정치 세력이 잘하는 것이 있다면 저도 당연히 칭찬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이 없고, 언론이 근본적으로 칭찬을 하려고 있는 것은 아니고, 지적을 하고 비판을 하려고 존재 하는 것이고요. 그러한 섹터를 할 수 있는 것은 언론뿐이고, 관료 조직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일하게 이러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섹터는 언론 밖에 없죠, 그렇지만 대다수의 언론도 지금 현재 미디어법 이후 종편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언론들만이 할 수 있는 거죠. 방송에서는 mbc 만이 할 수 있을 거예요. 극히 일부의 언론들만이 할 수 있죠.
- mbc가 그러한 비판적인 보도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신) mbc 가 어떻게 보면 대기업과 정부기관에 대해 예를 들어 군, 기획 재정부 이러한 거대 조직에 대해 올바르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mbc 의 전통과 민주화 이후 전통과도 관련이 있죠. 선배기자들이 후배 기자들과 PD 들에게 권력의 비판과 감시가 우리의 임무라는 것을 가르쳤고, 그리고 그렇게 실행하기 위해 노력 했고, 그 남아 mbc가 경제적으로 여타의 언론사에 비해 조금 낫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mbc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죠.
- 아까 ‘그러한 소신을 지키시는데 불안감이 있다’. 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그러한 불안감을 직면하신 경우가 있나요?
신) 있으니까 뉴스에서 잘린 것 아니겠어요(함께 웃음) 왜 잘렸겠어요? 하하 몇 번 있었죠. 몇 번 있었는데 그 마지막 칼날이 저를 자른 거죠.
- 칼날 이라면 그 칼날이 어디 인지 혹시 예상하고 계신 곳 있으십니까?
신)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사람이 죽을 때 자기 죽이는 사람을 분명히 알고 죽는 경우가 있나요? 가령전쟁에서 전사 했다고 하더라도 총알이 어디서 날아 왔는지 정확히 아는 경우는 쉽지 않죠. 그냥 누군가 배후 세력이 있다고 추측 하는 거죠. 분명히 저를 반대 하는 세력은 힘이 있는 세력이죠. 그리고 명령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 것은 당시의 보도국장, 보도이사, 사장이죠. 누군가가 있겠죠. 분명히 짐작은 가는데....칼을 들이민 것은 엄기영 사장이고, 엄기영 사장에게 칼을 들게끔 한 것은 짐작은 가나 아직 증거는 없어요.
- 신문사에도 시험을 보셨잖아요.
신) 그냥 시험만 봤어요..
- 그런데 신문사의 경우 보도의 논조가 자본력 즉, 사장의 경우를 많이 따라 가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당시 신문사
에 입사를 하셨어도 지금과의 같은 신 기자님의 신념, 지켜질 수 있었을까요?
신) 글쎄요? 그것은 장담 할 수 없겠는데요?(하하) 노 아이디어예요...그럴 수 있었을까요? 장담 할 수 없겠어요.(하하하)
- 뉴스 클로징에 대한 질문 드릴게요. 클로징에서 앵커가 자신의 주관적 의견을 뉴스에 적극적으로 개입 시키는 적극적 역할 론을 주장하고 개신데 이런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 이러한 질문은 꽤 많이 받아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 하고 있는데요. 그때의 주관이라는 것은 저의 퍼스널한 주관은 아님이다. 예를 들어 법관이 법을 집행 할 때 그 법관의 법 집행이 완전한 주관은 아니잖아요. 그 법관의 직업적 양심으로 판단을 하는 건데,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양심에서 나오는 주관이죠. 그것은 저의 직업적인 여러 가지 관점이고요. 신경민 개인적인 주관적 판단이다. 라고 하는 것은 저를 비난 하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주관적 개념을 객관화 하기위해 더블체크, 트리플 체크를 합니다. 그래서 객관화 시킨 다음 주관화 하는 거죠. 제 멘트가 만약 수용자들에게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이러한 신기자의 클로징은 보도로 봐야 하나요? 단순한 의견 표명으로 봐야 하는 건가요?
신) 보도라고 봐야죠, 보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스트레이트 보도는 단순히 팩트를 보도 하는 거구요. 객관적 평가도 있고, 분석도 하고 전망도 하잖아요, 다 보도의 종류죠, 다만 신문의 경우는 지면 개념이니까, 스트레이트 뉴스가 있고 analysis editorial 가 있고 그렇잖아요. 앵커가 하는 보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송은 그러한 것을 굳이 따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 보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최근 mbc 뉴스를 보면 앵커의 연령대가 좀 낮아 진 것 같아요.
신) 연령은 지금은 딱 적당해요. 제가 좀 나이가 들어서 진행을 맡은 거고, 예전 엄기영씨도 38세에 시작 했어요. 그렇지만 이런 것도 있습니다. 80년대에는 젊은 층이 뉴스가 주 시청자 이었는데. 지금은 뉴스를 보는 층이 조금 연령이 높아졌고, 그리고 이러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멘트를 통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멘트를 통제 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앵커가 필요 했다고 느껴져요. 구체적인 이유를 저에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앵커가 뉴스의 편집으로 뉴스의 이미지를 완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앵커의 힘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이러한 앵커 이미지가 뉴스 시청률에 얼마나 부합 되나요?
신) 글쎄요 그것은 의문입니다. 앵커가 시청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번 조사를 시도 했지만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앵커 때문에 뉴스를 보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다는 것이 지금 나온 결론입니다.
- 미국의 경우 로컬 방송에서 임산부나 장애인들이 진행하는 뉴스를 많이 봤는데 한국의 경우 그런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신) 미국의 경우 앵커가 아주 젊은 경우는 없어요. 여자의 경우 젊은 여자가 되긴 하는데 주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진행 하죠. 네트워크의 경우는 오디오와 비디오 문제가 중요하게 생각되죠. 한번 되면 굉장히 오래 진행하고, 10년 이상 하기도 하죠. 80년대 앵커가 2000년대 중반까지 25년 까지 하다가 중도 하차 합니다. 그전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같은 경우 60년대에서 80년대 20년까지 했죠. 우리나라는 그렇게 까지 한경우가 몇 명 안 되고, 그게 차이점이죠, 여자의 경우 수명이 짧고, 긴 호흡의 진행자들은 없죠.

- 이제 다음주, 뉴스 그만 두신지 1주년 이죠...마지막 클로징에서난 이제 짐을 벗었다고 했는데 그 짐은 무엇입니까?
신) 그 짐이라는 것은 이런 거죠, 여러 사람의 미움을 받으면서 내가 굳이 이것을 해야 하는가? 저도 인간인데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더군다나 권력을 지적 한다는 것이 힘들고 부담되고, 그러한 부담을 이제는 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죠, 머리 빠지도록 부담을 가져야 하는 그런 것이 개인적으로 홀가분하다. 이런 의미고, 누군가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부담감 이런 것이죠.
- 첫날 클로징 멘트 기억 하세요? 후배들의 적극적지지로 뉴스 진행을 맡았다는 멘트가 인상적이던데요.
신) 내 당연히 기억하죠. 심혈을 기울여 쓴 건데요. 책에 그 대본은 일부러 뺏는데요. 저를 임명한 것이 엄기영 사장인데. 자른 것도 엄사장이지만 엄사장이 저를 메인뉴스 앵커로 임명하는 것을 상당히 망설였어요. 시키고 싶지 않아가지고...보통 사람들은 엄사장과 제가 대학교 1년 선후배고 같은 회사에 오래 근무 하고 친밀하고 해서 엄사장이 나를 앵커로 시키는 것을 호의적이고 적극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엄사장이 저를 앵커를 시키는데 상당히 반대 했었죠. 근데 제 원칙이 또 앵커를 안했으면 안했지 앵커답지 않은 앵커는 안하겠다는 제 나름대로의 약속이 있는데 그러한 객관적인 외부적 정황이 있었고, 후배들이 엄기영 사장에게 가서 신경민이 앵커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 했던 것을 행간에 녹인 것이고요, 또 하나는 제 개인적으로 내가 앵커다운 앵커를 하겠다는 제 다짐을 첫날 멘트에 담은 것이죠.
- 원래 엄기영 앵커의 후임이 김성수 앵커 이었잖아요, 특별하게 2주 정도 뒤에 교체 되었더라고요.
신) 김성수 씨는 자기가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최문순 사장 때 엄기영 사장이 사장으로 출마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냈고요. 최문순 사장이 당시 보도 국장을 하고 있던 김성수 씨에게 “국장을 겸임하는 최초의 앵커가 되어봐라” 라고 해서 했는데 김성수 씨가 “안 된다 2가지 일은 겸임 못한다. 라고 해서 하차 하게 된 거죠. 그 후임을 결정을 해야 했는데 그 후임을 김성수 씨를 포함한 후배들이 저를 추천 한 거죠.
- 후배들에게 되게 신임 받는 선임기자 이신가봐요?
신) 글쎄요? 후배들이 저를 굉장히 어려워하는데 제가 허튼짓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나 봐요. 뉴스를 뉴스답게 하는 사람으로 신임을 받았거나, 멘트에 있어 공정성을 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후배들이 생각했겠죠.
- 뉴스 하차 이후에 후배들이 제작 거부 농성도 벌였는데 당시 심경은 어떠셨어요?
신) 글쎄? 제작거부는 예측을 전혀 못했어요. 갑자기 제작 거부를 들어갔는데 왜 그렇게 까지 됐는지는 상당히 복합 적이었고, 제작 거부가 궁극적으로 제가 앵커직을 하차 했다는 것만이 아닌 제가 하차 하게 된 배경에 관한 상징성을 심각하게 생각 한 것이겠죠.
- 현재 mbc 파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도 있고 전체 적으로 어수선 한 상황인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신) 일부 보수적인 시각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글쎄요? 사상의 표현과 자유가 있는데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러한 시선은 이해를 하죠. 지금 노조가 파업을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일부에서는 그러한 이유를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다수가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신경민 그가 말하는 후배 기자들, 그리고 기자의 자세
- 마지막으로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질문 드리겠습니다.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 한 가지만 제가 말씀 드린다면,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언론을 많이 접하지 않고 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다수의 학생들이 언론사의 시험만을 준비해서 트레이닝 받아 언론사에 들어오는데 대부분 보면 기본 상식이 부족해요. 우리가 기사를 작성할 때 한국의 20대 만을 타깃으로 기사를 작성 하지는 않잖아요. 다양한 연령층을 타깃으로 기사를 작성하는데 그러한 타깃들을 아우르는 상식이 필요해요. 60년대 70년대를 뒤 흔들었던 그러한 사건들, 그러한 것은 다 알고 있어야죠. 그것을 모르고 선배 기자들이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이 뭡니까? 반문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때문에 상식을 기르는 것 이 중요하죠.
- 최근 입사한 후배들과 신 기자님이 신입일때와의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나요?
신) 요즘은 조직 내에 예전 보다 여성 기자들이 많아 졌고요. 그리고 또 외고 출신 기자들이 많아요.(하하) 그리고 요즘 기자들은 상식이 너무 부족 하죠. 언론인이 되기 위해 거의 트레이닝 받았다고 보여요.
- 그러한 상식을 갖추는데 필요한 책이나 영화가 있으시면 추천 해 주시죠?
신) 글쎄...너무 많은데요. 책은 굉장히 많은 책, 장르를 불문하고 접해 보는 것이 중요하죠. 영화는 미국 언론을 다룬 영화가 많은데요.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 그러한 영화를 보면 미국 언론과 정치를 이해 할 수 있죠. 책은 기초 서적들이 많은데 우리 때는 <에드워드 카, 역사는 무엇인가?> 라는 책을 꼭 읽었어요. 특히나 저는 그 저자의 책을 참 좋아 했고, 저희 때는 대학을 가면 꼭 읽어야 하는 필수 서적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기백씨 한국사>도 꼭 읽어야 했었고, <국제정치>, <마르크스 경제학> 이러한 다양한 책이나 <법학>, <경제학> 다양한 지식을 책을 통해 체험 하는 것이 중요하죠. 기자란 다양한 분야에 지식을 습득 하고 시야를 넓혀야 하죠. 항상 언론을 가까이 하고 토론 하고 보는 것 과, 편견과 편식을 가지지 않도록 토론으로써 교정을 해야죠.
- 언론사에서 인재를 채용 할 때 중점적으로 보는 것 또한 상식을 갖춘 사람을 고용 하는 건가요?
신) 그렇죠. 주로 상식과 식견이 넓은 사람들을 선호 하고 있죠. 또 너무 박학다식해서 오만 하면 곤란하고 유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 겸손한 사람이죠. 언론인의 멘트가 훈계로써 상대에게 받아 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용기와 도전 정신이 필요하죠.
- 뉴스 진행에서 기자출신의 앵커가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 우리가 똑 같은 원고를 가지고 읽어도 내용을 인지하고 읽는 것과 쓰여 있는 것을 그냥 읽는 것과는 틀립니다. 그러한 점으로 봤을 때 기자의 경우 현장에서 그 내용에 관한 경험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고, 기사 속 맥락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겠죠. 제 개인적으로는 기자가 앵커를 맡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 내년이면 정년이신데 향후 행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 아직 좀 더 생각 해봐야죠. 공부를 좀 더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기도 하고...
- 퍼블릭 서비스도 관심이 많이 있다고 들었어요?
신) 관심은 있어요. 근데 관심만 있어서 될 것은 아니고...아무래도 공부를 좀 더 할 것 같은데,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요.
- 데스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많은데요.
신) 데스크에 다시 갈 가능성은 없어요.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이채혁 기자 crazemagic@nate.com
전수린 사진기자
장소제공 : Mix&Bak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