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말이 없다
김형석/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하나.
세계적 섹스심벌 여배우가 주인공인,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해 흥행에 대성공했던 영화의 2탄을 본다. 치명적 유혹과 위험한 본능을 즐기는 매력적인 팜므파탈 주연배우의 이름 이야기하면 누구나 안다. 누구냐고? 할리우드 액션 영화 등에 무명으로 잠시 나와 도망가거나 죽는 배역이나 하다가 ‘짧은 치마 입고 다리 꼬기’로 속보이고(?)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 말이다.

에곤 쉴레(Egon Schiele)Semi-Nude Girl
여주인공은 잘나가는 소설가로 나온다. 그런데 감독은 구질구질한 설명 대신 그녀의 저택 응접실에 걸려 있는 한 점 그림으로 말한다. 에곤 쉴레 그림이다. 영화와 어울리는 에로틱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클림트, 코코슈카와 함께 오스트리아 ‘빅3’ 중 하나다. 아마 국제 미술품 경매장에 이 작품이 나온다면 수백억 원을 호가할 것이다. 우연한 발견은 영화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아는 사람만 느끼지만.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이지만 영화감독의 의도적인 복선은 치밀했다.
해외여행 풍경 하나.
중국 마카오를 여행하다 수백 개의 호텔 중에 건물 앞 대형 황금사자 조각상에 시선을 뺏긴 호텔에 여장을 풀기로 한다. 국제적인 체인을 가진 이 호텔 로비는 명품이 즐비하다. 카지노로 쓸어모은 돈, 미술품으로 품격을 높이려고 노력 많이 하나 보다. 체크인 기다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타일 조형물이라 발길이 자연스레 간다. 친절한 설명판을 보니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다.
피카소, 미로와 함께 스페인의 ‘빅3’인 이 화가의 작품도 수백억 원을 할 것이다.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 작품이 꼭 나오는 유명한 화가이고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하니 ‘달리 모르면 간첩’이다. 작고했으니 더는 작품생산 불가능하다. 그러니 만약 이 특급호텔 노후해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짓게 되면 이 작품 천억 원 이상 호가할 것이다. 건설 공사비용 걱정할 필요 없겠다.

마카오 MGM 호텔의 로비의 미술작품들
미술품이나 골동품은 보존되어야 할 역사적 문화유산인데 금전적 투자 가치로 보아 죄송하다. 그러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좁은 지식에 아는 게 이 분야뿐이니 재미있는 생활정보로 하는 이야기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게 명품이다. 화려한 미문(美文)과 곡필, 최첨단 조명과 음향의 배치도 필요 없다.
영혼 없는 지역마케팅은 죄악!
전국 지자체마다 문화마케팅에 혈안이다. 어느 도시에서 성공사례 하나 나오면 ‘따라 하기’는 잘한다. 그리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 했던가. 중요한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에 올인해 랜드마크 짓는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다. 철학이 담긴 영혼, 지역 정체성, 창조적 상상력 등이 중요한데 이를 간과한 지역마케팅은 죄악이다.

영화제작 및 배급사로도 유명한 MGM의 마카오 호텔 입구의 상징 캐릭터 사자상
요즘 유행하는 ‘된장녀’와 ‘명품녀’의 차이랄까. 무지로 머얼건 눈에는 천박한 호기심만 가득하고 수입된 고가의 화장품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린 게 차라리 가면(假面)이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에 기생하며 정신적 풍요보다 육체적 쾌락에 탐닉한다. 이름 모를 무국적의 패션잡지가 한 손 가득 이다. 겉에 걸친 명품 가방, 명품 옷은 비루한 영혼을 숨기기 위한 보상적 허상이다.
그러나 깨끗한 생얼에, 단아한 의상으로, 손에는 예술서적, 미술잡지 아니면 시집이나 소설 한 권 든 채 울퉁불퉁 비포장일지라도 ‘자존의 길’을 걷는 그녀가 아름답다. 이런 도시를 만나고 싶다. 짧은 유행에 급급하고, 시류를 하향평준화하는 불편한 진실에 흔들리는 물질만능 도시는 질색이다.
자존의 길을 읽다!
작년, 여름휴가에 동행한 수필가는 ‘마카오에서 길을 잃다’라는 기행문을 썼다. 필자는 마카오에서 길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가야 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한 답을 얻었는데 말이다. 실패에서도 배우고 성공에서도 배운다. 준비된 사람이나 길을 찾던 사람과 우연히 신천지에 도착한 사람의 차이 아닐까?

'스토리로 문화도시 만들기'를 위한 김주영 소설가 등 작가들의 거제도 문화탐방
명품은 말이 없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그 가치를 알아주는 심미안을 가진 소수를 위해!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니아들과 대중들에게 구전되어 전파된다. 화려한 화장, 과장된 언변과 몸짓으로 유혹하지 않아도 된다. 꽃의 은은하고 진실된 향기에 취한 수많은 벌, 나비떼처럼 문화에 굶주린 사람들은 그 명성을 찾아 모여 든다. 험한 산길, 물길 마다하지 않고!
선거의 계절이라 군더더기 하나 더.
21세기를 살아가는 선진 민주시민이라면 투표에 참여해 깨끗한 공명선거와 정책선거를 하는 후보를 두 눈 부릅뜨고 찾아 찍는 것은 기본이다. 혈연,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촌스런 투표행태에는 마침표를 찍자.

공명선거 캠페인(뉴시스 사진제공)
리더의 문화마인드는 중요하다. 여러 분야 공약 중 ‘문화의 21세기’라는데 문화예술 공약도 꼼꼼히 챙겨보자. 시간이 지나면 그 독창적 가치가 빛을 발해 명품도시를 만드는지? 유행이 지나 흉물스러워 파괴해야 할 소모품 쓰레기를 양산하는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자. 당신들의 사랑스러운 자녀와 그 후손들이 살아갈 도시 풍경들을 상상하면서 투표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