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뿔났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 아내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내의 뿔은 좀처럼 사그라 들지않고 사슴뿔처럼 길고 단단해 보였다.
다행인지,불행인지 이번 아내의 뿔은 나로인해 생긴것이 아니고 몇달후에
고입시험에 직면한 중3 아들녀석이 원인제공을 한 모양이다.
그릇 깨질듯한 파열음이 설거지통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에고. 내가 못살아. 컴퓨터를 버리던가 해야지. 이녀석아 넌 걱정도 안되냐?
낼 모레면 고입인데 도대체....에휴 말을 말아야지"
혈압이 상승하는지, 아니면 2차 꾸중폭격을 준비하는지 잠시 말이없는 아내.
맞는 말이다.
내가봐도 아들녀석이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무사태평이다.
미적미적 하위성적 5위권의 성적표를 들고 오면서도 발등의 불을 끌 생각을 하지않는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녀석은 말을 하지만 보질 않았으니 모르겠고
적어도 복습의 공부시간은 투자 해야한다는 나의 이론을 항상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책상다리를 흔들며 게임에 열중하는 녀석에게 뚜껑 열리기 직전.
그래도 자상하고 친구같은 이미지로 다가가는 애비모습 보여주려고,
"주원아. 그 게임 끝나고 공부 조금 해야지?" 열리는 뚜껑을 꾹꾹 누르면서
다정다감,간,쓸개 다 내놓으니 녀석도 미안한지 공부방으로 향한다.
이어폰을 꽂고 책을 펴는녀석.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나름 본것도있어
음료도 준비하고 과일도 이쁘게 깎아 잠시후에 조심스레 들어가니
그렇게 편한자세로 자는녀석은 난생 처음보았다.
들고 들어갔던 다과를 도로 갖고나와 꾸역꾸역 목구멍에 넣는 이심정을 누가 알까!
이녀석의 장래희망도 변덕스럽게 바뀌지.
언제는 가수가 되겠다며 비장한 모습으로 몇일 밤낮을 노래만 부르더니
또 언젠가는 과학자가 되겠다며 휴대전화 분해해서 작살내 버렸지.
어디서 줏어들어는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를 신조처럼 내뱉는 녀석.
잠시후에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드디어 2차 융단폭격을 쏟아낸다.
"도대체 넌 뭐가 되려고 그러냐. 공부 하기가 그렇게도 싫으냐?
너...아빠처럼 살고싶냐? 에혀"
그 말에 살 맞대고 산지 17년의 우군에서 아내는 적군이 되어 버렸다.
아니. 아들녀석이 잘하는건 자기 닮아서 이고 못하는건만 죄다 날 닮았다고 하니.나참!
"그래. 나 공부 못했다. 근데 내가 어때서! 빚 안지고 살지. 돈벌어오지.회사 잘다니지,
당신 속 안썩이지. 이만하면 된것 아냐? 주원아 나 만큼만 살아라."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처럼 살라고 하는 부모가 있을까. 괜히 말 잘못했다 싶어
말뜻을 다시 수정하려는데..."아빠 말이 맞아 ㅎ"
한술 더뜨며 고개까지 끄덕이는 아들녀석.
아내에게 부전자전,자전부전 별 소릴 다 들었다.
어쩌랴!
부모 바람대로 공부잘해서 어이쿠 이쁜 내자식! 하면 더 바랄게 없지만
공부만 잘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3%에 불과 하단말 어디선가 줏어 들었다.
꼴찌에서 면하지 못하는 아들녀석에게 그 3%에 들게끔 잡으란 말인가!
학교 수업하고 학원수업 밤늦도록 하고 그것도 부족해 새벽까지 집에서 공부하라?
그러다 정말 자식 잡아먹은 부모될까 두려워진다.
공부는 지지리 못해도 아들에게 사람답게 살아라.네 꿈을 펼쳐라 란 노래를 불러줘야겠다.
기술 배우고 싶단 아들에게 난 기계부속품이 되어야겠다.
나 학창시절에 뒷동산에 올라 하늘 쳐다보며 노래하고 시를쓰고
아카시아꽃 따먹으며 자치기로 하루해를 보내던 여유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