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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도록 알고 지낸, 아는걸 넘어서 어렸을때부터 서로 살을 비비고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이것저것 미친짓도, 방황도, 공부도 같이했었던
그런녀석이었기에 제 마음이 너무 그놈을 편하게만 여기면서 즐겁게만 지냈지요.
간신히 170이 될까 말까, 어리게 생기고 소년티를 스물이 된 지금까지도 벗지 못하는
저와는 달리, 그녀석은 키도 학교에서 손꼽을만큼 컸고, 싸움도 잘했고, 생긴것도
남자답고 멋있게 생겨서 예전부터 여자들의 대쉬도 많이 받아왔었고
그렇다고 성격이 나쁜것도 아니어서, 항상 긍정적으로 산다는 느낌을 주는 놈이었죠.
공부도 학교에서 상위권에 들었었구요.
그냥 놀기 좋아하는 저와는 달리 미래 계획도 뚜렷하고,
뭐랄까, 그냥 오랜기간 서로를 알아온 동성의 친구지만 약간의 질투 비슷한 감정도
없었다면 거짓이겠죠.
그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정도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건강이 극심하게 나빠지는 것을 겉으로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정도로 초췌해지는 것을 느꼈지요.
원체 같이 공부한다고 독서실을 끊어놓고, 새벽이 되면 근처 편의점에서
매일같이 술이랑 안주를 사다가 얘기하고 놀면서 마시고 들어가고 그랬던지라
어린 나이에 과음때문에 그런줄 알고, 수능을 준비하기 전까지 쭉 그랬던 것 같아요.
수능을 준비하면서도 말도 안될정도로 체중이 줄어들고
쉬는시간이나 야간자율때 잠도 깰결 자판기 커피 하나 뽑아놓고 화장실에서 같이
담배를 피던 도중에 심지어 각혈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도, 걱정은 되지만
피곤해서 그러겠지. 나아지겠지. 이런 생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녀석도 당시에는 심각성을 모르고, 스트레스와 피로인줄만 알고 무시했어요.
원래 노는것도 좋아하고 사고도 많이 치는놈이었지만, 수능을 일년정도 앞두고부터는
그녀석 꿈이 번듯한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려가는
소박하지만 어려운것이었기에 하루에 세시간 자면서도 매일 공부에 전념했거든요..
3학년때 같이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새벽에 사감을 피해가며 이불 뒤집어쓰고
핸드폰 라이트로 자습서를 읽고, 화장실에 가서 몰래 문제집도 푸는놈이었으니까요.
결국 수능이 끝날무렵에는 한달에 두세번은 갑자기 쓰러질때도 있었고,
누가봐도 '심한 환자다' 라는 분위기가 느껴질정도였는데,
수능시험을 치는순간까지 잘 버텨내다가 수능을 치르고 다음날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상시 서로 같이다니고 같이 놀고.. 여튼 누구에게나 학교생활하면서 꼭 있는
멤버 개념의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녀석들도, 저도 그놈이 폐암으로 고생하고 있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평상시 모의고사 치면 350도 넘기기 힘든놈이, 막판에 그렇게 열심히해서
440이라는, 그냥 평범한 학생들이 어지간해서는 절대 얻을수없는 그런 점수를 받고
인서울을 꿈꿀수 있게 되었는데, 뜬금없이 폐암이라뇨.
그것도 너무 오래 치료없이 방치한데다가, 원래 몸이 약해서 급격히 병이 진행되는바람에
작년 12월당시 말기판정을 내리다니요..
제가 나쁜놈인것이, 곧 친구를 떠나보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에서 위로하는 말만 듣고 요새 의학이 발전해서 암도 고친다느니..
그런소리만 믿고 사태의 심각성도 몰랐었습니다.
주변에 병으로 고생하다 떠난사람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걸리는 사람이 많은 병이라 그랬던걸까요
제가 그런 고통을 느껴본적이 없어서 그랬던걸까요.
올해가 되고, 저도 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그녀석은 병원에서 치료를 계속 하고있었죠.
학교다니고, 같은 동네에서 매일 볼때는 편하고 즐겁고 소중했던 친구이면서
잠시 멀어지니까 마음도 멀어진것인지..
가끔 그녀석이 항암치료에 지쳐서 한탄을 할때도 무시했고
보고싶다고, 힘들다고 말해도 한귀로 흘려 넘겼습니다.
단지 제 얼굴과 목소리를 가기전에 한번이라도 더 보고 듣고 가려는건줄 몰랐습니다.
걱정은 되었지만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짜증, 무력함도 있었지만
결국 저는 성인으로써 새로 시작된 삶을 즐기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 바뀐 이것저것을
즐겨보느라, 정작 같이 지금을 준비해온 14년을 알고지낸 사람을 잊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서운함을 느끼는것 역시 알고있었지만요..
4월인가 5월인가.. 제가 서울에 올라갈 일이 생겼었고
신촌의 S병원에 입원해있던 그녀석은 그소식을 듣고 저에게 한번 와주라고
연락을 보냈었지만, 놀기 바빴고 귀찮았던나머지 들르지 못했었습니다.
물론 악의가 없었던것은 알지만 서운한 투가 묻어나는 그녀석의 말을 듣고
전
'너 아픈건 아는데 뭐 어쩌라는거냐
그렇게 동정사가지고 사람 시간 뺏어먹으면 좋냐.
네가 내 애인도 아니고 친구인데 왜자꾸 귀찮게 하느냐.'
이런식으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냥 길가다 맞아도 마땅한 말들을 던졌었습니다.
그놈은 제 말에 할말을 잃고 그 이후로 간간히 문자로 연락이라도 했었는데
연락을 끊어버리더군요.
제가 먼저 잘못했고. 심한 암의 전이로 곧 떠날 사람에게 이런말을 했다는거 자체가
미친짓이었는데.. 왜 전 사과의 한마디조차 안했던걸까요.
그리고 6월 중순경.. 그녀석과도 친했고 저와도 친했던 한 친구에게 연락이 오기를,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것 같다. 얘 가기전에 정말 너 보고싶어하니까 무리해서라도
병실로 와라'
하더군요.. 제가 저런 말을 던지고 연락을 끊은지 2개월밖에 안지났는데
저는 연락을 받던 순간마저도 까맣게 그녀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정말 즐거웠고 슬프던순간을 같이했고 같이 커왔고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한다고 자부했던 친구였는데..
그제서야 눈물이 시야를 가려 앞이 잘 안보일정도로 흘러내렸고
한밤중에 심야버스를 타고 급하게 병실로 찾아갔습니다.
이미 친구들은 다 와있고, 그놈 부모님도 같이 계시더군요..
제가 오니까 그녀석은 나머지 사람들을 다 밖으로 내보내고
거의 숨결이 느껴지지도 않는 창백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와줘서 기쁘다는 눈으로..
이정도로 폐암이 힘든 병인지도 몰랐고,
이런식으로 한사람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저인지라
그제서야 온갖 후회와, 그간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간신히 입을 열어서 제게 나지막히 말하던 그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재밌게 사냐? 니말듣고 생각해봤는데
여자는 이별해도 더 좋은 여자를 만나면 잊고 더 행복해질수 있지만
친구는 한번 배신당하면 그 상처는 평생을 가지고 가도 잊을수가 없는것 같다.
미안하다. 넌 정말 좋은놈이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모습만 보이고
피곤하게 만들어서.. 고맙다. 와줘서."
이말을 마치고.. 저를 바라보다가 지긋이 웃으면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길로
떠났습니다.
그때 왜 그런식으로 정말 힘들었던 한녀석을 거부했는지.
마지막순간마저 날 생각하고 그렇게 가슴에 커다란 상처입힌 날 보면서 웃어주었던
그녀석이었는데..
삼오제가 끝나고 집에 들어온 이순간..
내일 뜨는 태양 아래에서 떳떳하지 못한 제 자신이 되겠지만,
그놈을 위해서라도 그놈이 가려던 길을 누구보다 더 충실히 이뤄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죄를 지울수는 없겠지만, 용서를 구하며 하늘에서나마 고통없이 그놈이
행복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무릎꿇고 빕니다.
여자는 이별해도 더 좋은 여자를 만나면 잊고 더 행복해질수 있지만
친구는 한번 배신당하면 그 상처는 평생을 가지고 가도 잊을수가 없는것 같다.
미안하다. 정말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플이 100개가 되었으므로 이글이 소설이었음을 밝히며
감정몰입해서 읽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말씀을 올립니다.
다음엔 더좋은 픽션으로 찾아뵙겠슴다.
비록 픽션이지만 당신도 평상시엔 너무 가까워서 느끼지 못했지만
영원히 이별해야하는 사람이 언젠가 찾아올 것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감정으로,
그사람에게 평상시에 잘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