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뇌부의 눈물 이제 짜증난다.
-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결연한 응징의 의지를 보여야 할 때
슬퍼도 눈물이고 기뻐도 눈물이다. 눈물만큼 감동적인 순간은 없다. 언어도단의 경지다. 말과 글이 끊어진 자리고 미사여구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올 한해도 화제의 눈물이 넘쳤다. 아마존의 눈물도 있었고 북극의 눈물도 있었다. 최근에는 월드컵에서 정대세의 눈물이 그야말로 '대세'였다. 언제나 눈물이 화제고 화제가 되는 곳엔 눈물이 흘렀다.
지난 29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제2연평해전 8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서해교전’이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된지 3년째고 해전 발발 8년 만에 정부 주관 행사로 치러진 셈이다. 기념식장 옆에는 당시 해전에서 침몰됐던 ´참수리 357호’ 고속정 모형도 전시됐다.
제대로 된 보상도 못한 상황에서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운찬 국무총리가 기념식 인사말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최선의 노력으로 예우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전사자 6인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고 장내는 눈물바다가 됐다. 그가운데 유독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흘린 눈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해교전 전사상자 후원행사에서도 전 해군참모총장의 눈물을 봤고, 지난 천안함 폭침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방부장관의 눈물을 봤다. 그렇게 자주 눈물을 보일만큼 군수뇌부가 감성적이어야할까.
뻣뻣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 장관이 비록 현역 군인신분은 아니지만 군 책임자로서의 눈물은 좀 더 값졌어야 했다. 감정보다 냉정함을 보여야 하고 속울음으로 굳은 결의를 다지는 결연함이 있어야 했다. 값싼 눈물이 되는 순간 그 눈물마저 적들이 원하는 전리품이 되고 만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군대에 보낸다는 것의 의미는 맡긴다는 생각이 클 것이다. 자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군대와 지휘관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도 될 만큼의 든든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모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정작 눈물을 흘리려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눈물이어야 한다. 나약하고 감성적인 과거 형의 눈물이 아니라 정의를 세우고 진실을 밝히려는 미래를 향한 눈물이어야 한다. 눈물은 의미에 따라 무게가 다른 것이다.
지난 2009년 10월 2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를 찾았다. 그는 방금 착륙한 C-17 미군 수송기 앞으로 곧바로 걸어갔다. 잠시후 수송기의 문이 열리고 아프가니스탄전 전사자의 유해가 담긴 관이 미군 장병들에 의해 하나씩 운구돼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벽 4시의 활주로 한복판에서 침통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아무말 없이 18구의 유해 운구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아무도 그의 눈물은 보지 못했지만 미국 국민은 그의 부동자세 거수경례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프간 파병에 대한 논란을 멈출 수 있었다.
군인의 눈물도 고귀해야 한다. 군대는 전쟁을 대비해서 존재하는 곳이다. 전쟁터가 어떤 곳인가? 부하를 잃은 장수의 눈물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눈물 흘리며 떠나가는 부하들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홍콩영화 제목이지만 ‘영웅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英雄無淚)’가 이젠 ‘영웅은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로 바뀌어야한다. (By 정용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