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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정래 - 해냄[첨부파일]

이동학 |2010.07.08 16:03
조회 455 |추천 0

- 感卜

예전에 주마간산식으로 읽었던 아리랑을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계 정세의 제국주의 바람에 휩쓸려 어떻게 나라를 뺏기게 되었는지 과정에서부터 일제의 식민지에 편승하여 앞잡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이 땅의 민중들이 어떻게 자기들을 억압하고 착취한 지배층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나라를 되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아리랑의 중간중간에는 사투리와 더불어 성적인 묘사가 상당히 자세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민초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리랑! 만일 남북 통일이 된다면 애국가를 새로 만들 필요없이 아리랑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하에 민초들의 한과 서러움 그리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한 많은 노래에는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음은 당연지사인 것이고, 독립운동의 중추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취약한 식민지배하에서 희망의 역할을 했던건 바로 이 아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아리랑에 묘사된 수많은 잔혹한 고문과 탄압, 억압의 글들은 당시 현실보다 더 완화된 표현일지 모른다. 그만큼 인간으로서는 차마 당해서는 안될 비인간적 처사들이 비일비재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에서 완화시키고 순화시킨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비인간적 처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물론 나라를 잃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에 와서 당시 세계 정세를 볼때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가 그 커다란 제국주의 파도를 견뎌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국내 정세도 흥선대원군을 위시한 보수층의 집권으로 더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라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이런일도 없었을텐데라는 말은 어쩌면 무의미 할지도 모르겠다.

아리랑의 시작은 지평선의 고장 김제의 들녘에 대한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과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 싶었다. 그 푸르름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움직임을 느낄 수 없는 채 멀고 작은 점으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넓은 들은 한낮의 생기를 잃고 야릇한 정교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초록빛 싱그러움을 뒤덮으며 들판에는 갯내음 짙은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로 시작되고 있었는데, 넓은 들녘과 생기 잃음이 오버랩되면서 암울한 모습이 나라잃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막힘없이 읽는데 중점을 둔 나는 7권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서 메모를 하고 읽는것을 재개하였다. 그 구절은 친일파 이동만과 그 아들인 이경욱이 이야기 하던 중에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본문을 인용하자면, 『이경욱은 아버지 뒤를 따라가며 이렇게 속말을 하고 있었다. ‘보라, 조선의 사나이 된 자들이, 더욱이 배움을 갖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그건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항일이냐, 친일이냐 하는 것이다. 아니, 또 하나 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항일도 친일도 하지 않고 중간에서 엉거주춤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히 친일이다. 다만 적극적이지 않고 소극적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것이 왜 친일인가? 조선인에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항일을 해야 할 책임과 의문이 있다. 더욱이 배움을 가진 지식인들은 그 책무가 더 커진다. 그런데 왜놈들의 범죄를 방관하다니, 범죄를 방관하는 것은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고 동조하는 또다른 범죄다. 그러니 그게 친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식민지가 된 이 땅에서 지금 가장 고통받고 고생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배움도 없고 가난한 소작농들과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왜놈들의 착취정책을 피할 능력이 없이 매일매일을 고통에 시달리며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살 수밖에 없다. 고통과 싸우는 그들의 생활, 그건 항일이다. 다만 적극적이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방관에 비하면 그건 적극적인 항일이 된다. 그럼 그 수많은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 사람들을 구할 책임이 바로 지식인들에게 있다. 그게 지식의 대의며 지식인의 사명이다. 그럼 어떻게 그들을 구할 것인가.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바쳐 그들이 못배운바를 일깨워야 하고 깨달음에서 생성된 힘을 한덩어리로 뭉치게 해야 한다. 자각한 소작농들과 노동자들의 조직화된 항거, 그건 그들의 해방인 동시에 조선의 해방이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아라. 마음을 크게 열고 세상을 대하라. 식자들이 망친 나라를 식자들이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서완 선생의 말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이경욱은 눈을 감으며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라고 비교적 긴 글로써 친일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부분이 나는 지난 8월에 서거하신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친일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항일도 친일도 아닌 중간도 소극적 친일이라는 면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과 묘하게 대입되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매국에서 독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악의 편들은 정의인양 살아가고, 악의 반대편이 악인양 살아간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타파하자면 어디부서 시작되어야 할지 막막하겠지만 그래도 정의는 올바른 길에 올려놔야 한다.

9권에서는 친일파들이 아무리 많아도 아닌 사람이 많다는 걸 힘주어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허탁과 송가원이 대화하는데 허탁이 하는 말이었다. 『다 알고 있어, 허나 친일파들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친일파 아닌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법이지. 왜 그런지 아나? 근본적으로 저버릴 수 없는 민족적 양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지. 쉽게 말하면 왜놈들에게 짓밟히며 사는게 싫다 하는 생각 때문이란 말야. 우리의 운동은 그 점을 믿는 것이고, 그 바탕에 뿌리를 내리는 것 아닌가. 자넨 아무 걱정 말고 의술이나 열심히 익혀. 그래서 장안의 명의가 되어 부자놈들에게 비싸게 받고,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싸게 받아 돈을 많이 버는 거야. 그리고 그 돈을 나 같은 사람한테 대주면 그보다 장한 독립운동이 어디 또 있겠나. 난 자네만 믿네.』라면서 민족적 양심을 믿고 있었다. 독립 운동이 총들고 싸우는 무장투쟁만이 아니라 각자가 위치에서 할수있는 바를 행할 때 이 또한 독립 운동의 한 부분이라 하고 있었다. 민족적 교육을 하는 선생님도 독립운동이고 무장투쟁을 하게끔 도와주고 염탐해주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감옥에서 단식으로 시위하는 것도 독립운동이었다. 다방면에 걸치는 독립운동이 결과적으로 일제에게 야금야금 타격을 주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피로를 누적하게 만듬으로써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었다.

10권에서는 소설의 중추적인 인물인 송수익에 대한 허탁의 묘사였다. 9권까지에 걸쳐 송수익은 신출귀몰하면서 불사신처럼 독립운동의 중추적 인물로 활약하였다. 하지만 끈질기고 집요한 일제에 의해 아니 일제에 빌붙은 앞잡이들에 의해 만주에서 잡혀 15년형을 언도받고 옥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15년형은 종신형과 다름없는 형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면회를 한 허탁이 송수익의 아들 송가원에게 한 말은 송수익에 대한 묘사였다. 『나는 만주벌판에 무릎 꿇고 앉은 춘부장의 모습에서 혁명가의 외롭고도 위대한 모습을 발견했지. 그때의 전율을 뭐라고 해야할까. 난 그 후로 힘든 고비마다 그 모습을 생각하며 힘을 얻고는 했네』라고 말이다. 온갖 고문과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절대 굽히지 않는 모습은 실제 인물인 안중근, 신채호, 윤동주, 이육사 등 대표적 독립운동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완용, 박정희, 서정주, 김활란, 최남선 등의 친일파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11권에서도 역시 한 구절이 와 닿은 부분이 있었다. 『아닙니다. 여자의 한계라기보다 인정이 너무 많은 거지요. 인정은 선인에게 베풀 때 선이니 악인에게 베풀면 악이 될 뿐입니다.』이 구절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통용되는 말일듯 싶다. 우리 사회에 선인은 누구고 악인은 누구인가? 정의와 불의가 뒤바뀌어버린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아니 진작에 바뀌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암담할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정의가 정의롭지 못하고 불의가 정의처럼 되는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나라 잃었던 설움과 매국노들에 의해 한 번 울고, 좌와 우의 이념 대립에 의해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에 의해 또 한 번 울고, 친일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독재에 의해 또 또 울었다. 이 울음은 이제 자본주의라는 돈에 의해 바톤을 이어 받았다. 경제 제일주의에 의해 또 한번 울게 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기막힌 현실은 어쩔수 없냐는 체념론에 의해 당연시 되고 있다. 이 모든 거꾸로 된 사회를 이제는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아리랑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건, 현재의 부조리가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일제 시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고 그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역사의 진일보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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