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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성훈 |2010.07.23 09:17
조회 3,102 |추천 1

 우리 가족은 '삼성밥'을 먹는다. 아버지는 삼성 직원이라기엔 애매한 병원직원이지만 그럼에도 '삼성'이란 이름이 들어간 직장에서 일하고 '삼성'임직원 혜택을 받으며 '삼성'이 주는 돈을 받고 산다. 우리집의 가전은 대부분 오래 전 부터 삼성이었고 어렸을 땐 삼성라이온스 야구단 회원권을 공짜로 받아서 삼성 로고가 찍힌 모자를 자랑스럽게 쓰고 다녔다. 용인에 살았던 나는 임직원 혜택으로 에버랜드 연간회원증을 몇번이나 저렴한 가격에 샀다. 98년 무렵 중간 관리자급이던 아버지는 오래 타던 중고차를 팔고 SM5를 샀다. 가족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난생 처음 중고차가 아닌 우리 아버지의 멋진 새 차를 타서 무척이나 좋았다. 이건희 IOC위원 취임 기념 열쇠고리와 전화카드를 받은 기억도 나고 거실에 놓여있던 삼성 로고가 찍힌 상패도 기억난다.

 

 삼성은 자랑스러움 자체였다. 아직도 잘 굴러가는 98년형 SM5, 세계를 석권한 휴대전화, 미국 일본이 수백년, 수십년에 걸쳐 개발한 반도체를 불과 수년사이에 따라잡은 신화, 세련된 삼성 냉장고와 TV, 카메라... 삼성이 무언가를 개발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일처럼 기뻤고 김진명의 『바이코리아』을 읽으며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을 반드시 지켜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건희, 이병철은 자랑스러운 우리 기업인이자 경제영웅이었고 우리집 서재 한켠에는 여전히 『이건희 에세이』가 꽂혀있다. 아버지가 '삼성맨'이라는게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이 정도면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삼성 사랑 보다도 몇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있을 것이다. 삼성 상속 비리를 접한 중학생 때 내 반응은 이랬으니까.

 

 "삼성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살았는데, 그까짓 상속 좀 넘어가면 어때!"

 

 

 

 

 

 설마 이정도 일줄은 몰랐는데, 지금 떠오르는 내 기억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삼성 마크를 못 보겠다. 아니, 삼성 마크를 못 보겠다는건 한국사회에선 불가능하니 심한 과장이고, 더는 삼성 제품을 못 쓰겠다. 아직까지 아버지가 삼성에서 벌어온 돈에 신세지고 있는 주제에 할 말도 없다만, 그래도 도저히 삼성은 못 쓰겠다. 불쌍한 임직원들이 무슨 잘못이겠냐만 그래도 삼성 마크가 달린 제품은 마음에 걸려 쓰지 못하겠다.

 

 

 

 책에 실린 삼성의 비리는 더할 수 없이 충격적이다. 그래도 뉴스는 웬만큼 보고 살기 때문에 김용철변호사의 양심고백, 삼성의 전환사채, 불법상속, 탈세 등 각종 불법행위, 이건희 구속까지 보면서 삼성의 비리가 웬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설마 이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참담함과 분노가 들끓음을 느끼면서도 책장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두툼한 책을 연신 넘겨가며 읽었다.

 

 물론 재벌 비리와 정경유착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만큼 삼성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재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정경유착이 지속되어온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 물신주의와 실적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비리의 방조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삼성 비리는 심각하다. 98년을 기점으로 다른 재벌들을 제치고 한국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삼성은, 이전의 여타 재벌들보다도 더욱 대담하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으로 비리를 저질러왔다. 비단 삼성 내부의 비리, 경제계 내부의 비리가 아니라 조직적인 방법으로 정부, 여야정당, 검찰,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권력이란 모든 권력을 '관리'했고 그렇게 장악한 사회, 경제, 정치적 힘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그 비리의 내용은 너무나 광범위해서 차마 다 소개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관리'의 효과는 삼성에 대한 검찰수사, 삼성 특검에서도 역시 효과를 발휘했다. 명백한 증거와 모든 범행을 자인한 범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특검은 삼성을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하긴, 검찰의 고위직 가운데 삼성의 '관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나는 그동안 그래도 검찰 자체를 불신하지는 않았다. 진실을 밝히라고 만든 권력기관을 우리가 불신한다면, 과연 누가 진실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검찰 조사에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검찰의 수사결과는 존중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

 

 삼성에게 관리된(즉 매수된) 기관은 검찰 만이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검찰 출신이고 검찰을 '관리' 했기 때문에 검찰에 대한 비리가 더욱 불거졌지만 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사법부, 우리가 뽑아놓은 행정부와 기성 정당, 하위 공직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삼성은 구석구석 손을 봤다. 

 

 

 이를테면, 삼성 공장 관할 관청 공무원을 매수해서 노조 설립 신고서를 아예 수리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매수된 공무원은 신고서가 들어오면, 신고서 수리를 일단 미루고 바로 삼성에 알려줬다. 그러면 삼성은 재빨리 유령노조 설립 신고를 했다. ... 노동조합 설립 기미가 보이면, 관련 주동자를 사실상 납치해서 회유,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각개격파하면, 결국 노조 설립시도는 불발로 끝나곤 했다.

 정부 역시 삼성의 이런 행태에 힘을 보탰다. 복수노조 허용을 계속 유예한 게 대표적인 예다. 주요 재벌 가운데 복수노조 허용에 강력히 반대하는 곳은 삼성뿐이다.

                                       -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139쪽.

 

 

 

 정말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이래서 관리의 삼성인가 보다.

 

 이제 삼성의 권력에 맞설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많은 이들이 희망을 걸었던 노무현 정부 마져도 삼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삼성 특검은 노무현 정권 말에 있었다. 오히려 이건희가 구속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하긴, 노무현 정부는 검찰조차 손보지 못했다. 행정부의 하위 기관인 검찰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행정부가 어떻게 삼성 비리를 단죄할 수 있을까. 삼성은 행정부 수반 조차 건드리지 못한 권력조직 검찰을 그대로 장악해버렸다. 더군다나 노무현과 삼성 비리의 핵심인 이학수가 동문으로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다는데 어떻게 삼성을 건드릴까. 노무현 정권이 서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했음에도 집권 기간 내내 친 재벌적 정책을 쏟아내었던 것을 생각하니, 그것은 노무현 정부의 한계가 아니라 삼성에 장악된 사회를 운영하는 행정부 자체의 필연적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희를 구속해 놓고도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말도 안되는 명목으로 내보낸 이명박 정부도 참 할 말이 없다.

 

 

 

 삼성을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의 시각도 문제이다. 언젠가 이건희 구속 소식이 알려진 후  이런 인터뷰를 봤던 것이 생각난다.

  

기자: 이건희 회장의 구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민: 지금 경제가 이 모양인데 능력있는 이건희 회장이 구속되다니 걱정이 크네요.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대충 이정도였다.

 

 뭐 먼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삼성 문제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아버지는 삼성 비리에 공감하시면서도, 이건희가 구속되어 있는 동안 결단력 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해  현재 아이폰에 삼성 휴대전화가 고전하고 있다고 하셨다. 즉, 죄의 유무와는 별개로 이건희의 리더십과 경영능력은 삼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조금 더 나아가면 한국 경제를 위해서 이건희와 삼성비리는 뭍어둬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 된다. 앞서 인터뷰에 나온 시민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상당수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다시 생각해보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다. 앞서 말했 듯 우리 아버지는 98년형 SM5를 탄다. 사실 고백하자면 아버지 직급에 맞게 2000cc이상은 타야한다는 허세섞인 생각을 갖고 계셨지만 98년 당시 우리집은 차를 사기는 커녕 집이 넘어갈 위기를 이모의 도움으로 간신히 넘긴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1800cc급 sm518을 사고 뒷면 트렁크의 518마크를 520으로 바꿔달으셨다.  힘들 때 돈 빌려서 값지도 않은 주제에 멋진 새차까지 산 우리 가족이 이모 눈에 어떻게 비쳐보였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정 많고 용돈도 잘 주시는 우리 이모는 경차 다마스를 타고 다니신다.

 어쨌건 518이든 520이든 10년 넘게 탈 만큼 좋은 차임에 분명하고 우리 가족도 처음 타본 중형차에 만족했다. 그런데 삼성은, 98년 그 힘든 상황에 직원들에게 SM5를 사라고 강요했다. 난 어렸을 때라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우리집도 분수에 안 맞는 중형차 사느라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자국 뒤로 더 물러서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자동차 매니아인 이건희의 욕심으로 시작한 삼성자동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도지경에 이르고 삼성은 그 부담을 계열사와 임직원들에게 떠넘겼다. 대표적으로 우리 아버지. 그리고 그럼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결국 삼성과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파산직전의 삼성차를 기사회생시키고 마침내 르노-닛산에 넘겼다. 그리고 그 공적자금은 우리 부모님, 한국 국민들의 세금이었다. 이외에도 이건희, 또 삼성이 무리하게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의심하게 하는 사건들은 꽤 많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건희와 이재용이 경영을 잘 해서 삼성을 성장시키더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한국 경제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업의 이익과 나라의 이익이 같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삼성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나라 밖에서 협력업체를 구한다. 이런 기업이 내는 이익은 국내 일자리 증가, 국내 중소기업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판단은 좌파들이나 하는 것일까. 역시 아니다. 조선일보조차 이런 입장이다. 이 신문 송회영 논설실장은 2009년 10월 24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일치하던 시대는 갔다. 글로벌 회사일수록 기업이익과 국익 사이의 간격은 도리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을 키울수록 국익이 커진다고 믿으며 온갖 혜택을 제공하는 전략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 김용철, 위의 책, 133쪽.

 

 

 특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어느 경제지는 "삼성특검, 고민 끝 '경제'선택"이란 제목을 달았다. 재벌의 잘못을 덮어주는 게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따른 제목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반칙과 특권, 비리를 공권력이 용인하면, 시장질서가 무너진다. 결국 경제가 망가진다. (중략)

 게다가 현재의 재벌은 중소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재벌이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납품단가를 정해왔다. 중소기업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만 활용하는 세이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재벌의 성장이 곧 국민경제의 성장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 김용철, 위의 책, 432~433쪽.

    

 

 

 대기업 일자리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무리 크게 잡아봐야 2~3%정도다. 삼성 하나로 한정한다면 1%도 안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97%이상의 일자리가 중소기업이다. 현재와 같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상황에서 삼성이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국민경제에 직결되는 중소기업의 형편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 난 삼성 제품은 쓰지 않으려 한다. 집 안에 이미 있는 삼성제 가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사는 물건은 삼성을 쓰지 않으려 한다. LG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겠냐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나은 제품을 찾아 쓰련다. 갤럭시S를 사느니 싸이언이나 아이폰을 사겠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더니 평소에 내 성향에 비판적이던 친구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너 같은 시장주의자가 그렇게 말하니 좀 어색한데?"

 

 그렇다. 난 자본주의를 긍정하고 시장논리를 긍정한다.

 그래서 더더욱 삼성을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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