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 중 부모님 중 어느 한분이나 두분다 병중에 계시거나 돌아가셨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 해도요. 그래서 제가 몇글자 남기는 이글에 동요 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부모" 우리는 흔히들 너무 당연히 부르고 있고 어쩌면 그 존재를 쉽게 잊고 살지도 모르죠... 저도 한때는 엄마가 계셨어요. 지금이 삼년째 기일을 맞이하셨고 무엇보다도 막내인 제가 가장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이 길었고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와 함께 했전 시간들 입니다. 지금은 저만의 재산이라 할만큼 그 기억만큼은 힘들고 지칠때 위안이였고 그리운 엄마를 저 스스로 감당 못할때 힘이 되어준 작은 기억들 중...살아 생전에 밥 한공기 제대로 비우시기 조차 힘드셨던 엄마가 내내 항암 치료로 기력을 못찾으실 때 아마도 엄마에게는 치료 받으시고 병원에서 나와 가끔 아이 쇼핑하시는게 즐거움 이였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삶의 의욕을 찾게 해드리고 싶었기에 늘 사람 많은 시내로 모시곤 했지요.
하루는 식사 한번 제대로 하시지 못해 병원 밥 한공기로 저랑 나눠 드실만큼 약하셨고 치료에 지치셨죠...그런 던 엄마와 전 내내 병원에 지내서인지 그날따라 삼겹살이 먹고 싶어 오후무렵, 병원 측의 허락을 받고 삼겹살 집을 찾았답니다. 거기 직원분들이 참 모녀간에 보기 좋다며 밝게 맞이해 주셨죠...
평소에 소화를 제대로 하시지도 못하시는 엄마가 은근히 걱정도 되고 비록 2인분이였지만 막상 그렇게도 맛있게 드시는 엄마 모습을 보니 놀랄만큼 맛있게 드시더라구요. - 처음이였어요. 그렇게 음식을 보는 사람 조차도 배부를 정도로 맛있게 드셔주는 엄마의 모습.... 차마 그런 엄마 모습에 눈물 보일 수가 없어 전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말로 그렇게 쌈을 맛있게 싸서 드시는 모습 처음 이였지요...
지금은 그저 맘이 아프고 후회가 많습니다. 식사 제대로 못하시고 밥상을 쳐다 보시지도 않을때면 매번 다투고 엄마 맘보다는 고통을 다 헤아려 드리지 못한게 지금도 너무 그때만 생각하면 괴롭습니다.참고로 저희 엄마는 간경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암으로 전환된 상태 이셨죠. 그것 아세요? 의사들 말에 가장 이질적이고 잔인하게 들리는 말이 뭔지...최하 3~6개월 정도 밖에 못사신다는 것 그건 신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의학적인 통계에 의해 그 보호자와 환자들을 두번 쓰러지게 하는 셈이죠. 그러고 보면 의사라는 직업도 호평받을 만한 직업도 아닌 모양인 듯 싶네요. 전 그렇게 엄마를 보내 드렸죠. 늘 대못 같은 주사 바늘이 엄마의 목에 있는 큰 혈관에 투입되면서까지 엄마의 고통과 항암 치료로 쇠약해져 가누진 못할 만큼의 힘없고 살 빠진 팔과 다리... 그때는 엄마 없이 못살것 같고 죽고 싶었죠.
그러나 지금의 저는 밥도 잘 먹고 할것 다하고 삽니다. 이런 제가 너무 밉군요. 이제는 엄마 대신이라도 된듯 지금의 아빠는 치매이셔서 정신을 놓으시고 아이처럼 떼를 쓰실때면 정말 한없이 엄마가 더욱 그립더라구요. 눈물나게...그보다 더한 고통이지만 전 아빠라도 포지하지 안을려 합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고 이렇게 저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 정말 힘내시고 잘 이겨내시라는 말 꼭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엄마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언제나 그랬듯.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사랑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남여간의 사랑.... 헤어지면 그때 뿐이란걸 알고 알았죠. 하지만 끝없이 애처롭고 가냘픈 사슴의 목처럼 힘겨운 사랑...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영원히 보내야 하는 마음이 사랑인것을....엄마에게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한다는 말씀 못드린게 크나큰 아픔입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는 분들 꼭 연인에게만 사랑 고백하라는 법 없고 하다 못해 애견들에게도 사랑 공세 많이 하죠? 하지만 마냥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신 우리네 부모님에게는 그 한마다가 낯설죠? 저도 그랬으니깐요....어느 날이라도 자신이 힘들고 지쳐 뒤돌아 보면 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봐 주시는 부몬님께 그말 한마디 전하기로 해요. 그리고 전 가끔 술의 힘에 기대어 산답니다. 여러분의 보석같은 작은 일들과 조언들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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