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슴살 초반 조금 넘긴 청년입니다. 일하다가 할머니 생각에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어릴때 작은 시골마을에서 할머니,아빠,나 이렇게 세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저 아기때부터 지금까지 병원에 계시고요. 그러다 보니 집안 형편은 좋지 못했습니다.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매일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더욱더 힘든 형편이 전 매일 술먹는 아버지가 진짜
싫었습니다. 그나마 저희 할머니께서 어려움 형편임에도 온갖 일을 해서 우리집을 이끌어주셨습니다.
남에일을 도와 한푼두푼 조금씩 깨농사 고추농사 또 나물을 시장에 팔으셔서 시골에 작은집도 한채 사셨습니다.
작은집이지만 우리집이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는 품앗이를 가시다가 경운기 사고로 허리가 심하게 다치셨습니다.
다른분들은 뛰어 내리셔서 다들 괜찮으셨는데 할머니는 앞쪽에 계셔서 피할틈이 ..
그 사고로 인해 저희 할머니께서는 허리가 휘어지셨습니다. 처음 다치셨을때 수술을 하셨으면 그래도 많이 휘어지는걸
방지 하셨을텐데 경운기 운전하신분이 큰 비용이지만 구해볼테니까 수술하자고 하셨는데 저희 할머니는 동네분이고
서로 형편 다아는 처지에 그럴수는 없다고,괜찮다고 하시면서 수술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휘어진 허리로 할머니는 평생일만 하셨습니다.
중2 여름방학때 였습니다. 갑작스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점점 힘든 형편이,아버지가 정말 미웠고 싫었지만,
아버지가 없으니까 눈물부터 흐르더라구요. 있을때 잘할껄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휴 때늦은 후회입니다.
그렇게 전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아버지없이 컸으니 저러지 그런말 안듣게 할려고
더욱 더 저를 이뻐해주셨고,사랑으로 키워주셨습니다.애들한테 놀림 안받게 할려고 옷도 매일 깨끗하게,
애들 사먹을때 같이 사먹어 하시면서 천원씩 손에 꼭 지어주시던 할머니 .. 그런 할머니 마음을 어릴때부터 저절로
알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전 용돈을 꾸준히 모아서 저축을 했습니다.
시골학교지만 초,중,고등학교때 저축상을 탔습니다. 고등학교때에는 알바, 여름방학때에는 아는분 박스공장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매일 저축을 했습니다. 고삼졸업할때 되니까 통장에 오백만원이라는 큰돈이..
할머니께서 저축날만 되면 만원 이만원 십만원 보태주신게 더많지만..
저는 그통장을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전문대라도 나와야 한다면서 삼년동안 모은돈을 등록금으로 내주셨습니다.
전 군대와 등록금때문에 1년다니고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고, 신체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어릴때 크게 다친것 때문에
군대를 면제를 받게됐습니다. 친구들은 신의 아들이라고 신의 아들은 맞는것 같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지만,
애들 전역할때 같이 모여서 말하면 다 군대얘기 나는 야그만좀해 그러면 넌 빠져있어 이럽니다. 서럽긴 하지만 .. ㅠㅠ
역시 남자는 군대인가 왠지 친구녀석들이 든든해보이고,생각도 약간 깊어진것 같고
무튼 그렇게 친구들 군대 있을때 저는 일을 했습니다. 숙소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그렇게 일을 1년 반정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지냈는데 하루는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힘도 없으시고 예전같지 않아서 불길한 기운에 시골집을 가게 됐습니다.
나: 할머니 어디아퍼?
할머니:아니 괜찮아 조금만 쉬면되
나:병원가보자
할머니:괜찮아
흠 그래도 불안해서 고모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고모한테 전화했더니 당장 대전으로 오라고,그래서 할머니 모시고 대전으로
대전에 모셔놓고 난 일때문에 갔다가 몇일만 쉰다고 말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움직이시고 생각했던것보다 아프시지 않으셔서 다행인줄 알았는데
다음날 오후쯤에 할머니 얼굴 기색이 너무 놀라서 전 업고 고모랑 가까운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할머니 괜찮아?
할머니:...
나:조금만 참아..
혹시 잘못될까봐 고모랑 나랑 울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병원도착하니까 의사선생님이 조금 큰병원으로 가라고
거기서 119를 불러주셔서 119타고 대전 을지병원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큰고모 작은고모 삼촌 난 너무 놀라서 중환자실 앞에서 울고 날리도 아니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정말 많이 아프셨을텐데 지금까지 참은게 신기합니다. 그러면서 수술도 잘됐고
몇달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 된다고, 전일을 그만두고 할머니를 간호했습니다. 할머니가 지금까지 나에게 해주셨던
반에 반반반반반반x100 안되지만 ..
그렇게 할머니는 좋아지셨고 고모집에 있으면서 새벽마다 박스와 철같은걸 주워서 마당에 모아놓고 고물상가서
리어카를 끌고 오시고 리어카에 한짐 싣어서 그걸 끌고 고모랑 고물상에 가서 팔고옵니다.
처음에는 고모가 하지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할머니가 가만히 있으면 답답하다고 시골간다고 하니까 고모도 시골가면
불안하니까 그냥 할머니가 박스 모아오면 정리해서 대신 싣어서 갔다오고 합니다.
하루는 쉬는날이라 자고 있는데 부스럭 부르석 소리에 깨어보니까 마당에 박스에 고물에 고모랑 할머니랑 리어카
한짐 넘게 싣어서 고모는 앞에서 끌고 할머니는 뒤에서 미는데도 리어카는 바람에 빠져서 그런지 나가지도 못하고.
자다가 깨서 슬리퍼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가게로 향했습니다.
고모가 하지말라고 계속 말렸는데도 그냥 얼른 갔다오지 하고 나갔는데.
고물상 가는길에 큰 사거리가 있어서 횡단보도를 두번 기다렸다가 가야 하는데,버스탄분들 신호대기 상태에서 사람들
시선 사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ㅠㅠ
저 화살표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한달정도 하시다가 치매 초기증상이 고생을 너무 하셨나봅니다. 고모가 할머니에 손발이 되서 다해줍니다.
병원에 가보니까 나이도 있고 기력도 약하시고 약먹고 더이상 나빠지지 않게만 ..
그래도 다행히 고모에 정성으로 더는 안나빠지지만 밥을 잘먹지 못하시고 거의 누워만 계시네요. ㅠㅠ
요즘 다리 만져보면 살도 하나도 없고 이제 겨우 효도좀 해드려야지 했는데 할머니 보면 가슴이 찡하네요..
그래서 길가다 할머니들 박스 줍는거 보면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차라리 아프지 말고 계속 움직이시지
부끄러워도 많이 도와드렸을텐데 ..
그 이후 옆집 할머니도 박스를 모은다고 고모한테 들은 이후에는 택배 박스랑 집에 박스 있으면 잘펴서 할머니 집앞에
박스 모아놓은 곳에 놓고옵니다.
할머니에 무안한 사랑
+.할머니랑 둘이 시골에 살았을때
우리 손자 불쌍해서 어쩌나. 나 죽으면 누가 보살펴주나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시더라고요.
(잠에서 깻지만 일어날수가 없었습니다. 그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글썽글썽)
+. 소풍갈때
새벽부터 밭일을 하로 가시는데도 소풍일때는 항상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소풍 가서 열어보면 애들은 김밥도 이쁘고 과일에 난 단무지에 김밥 꼬불 꼬불 삐죽 삐죽
애들꺼보면 챙피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김밥이 최고 맛있었던것 같네요.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엄마모시고 와야해. 할머니한테 말하면 다음날 할머니가 오십니다.
다른애들은 이쁘게 화장하고 오신 젊은 엄마들이지만 난할머니 어릴때 진짜 부끄러웠지만
커보니까 우리 할머니가 최고 이쁜걸 알았습니다.
<-우리 귀여운 할머니 지금은 아프셔서 누워있지만 항상 내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할머니
소원이 있다면 항상 오래 오래 내곁에서 나 장가가고 아기 낳고 할머니한테 못다한 효도 다할때까지
평생 내곁에 있어줬으면 하는게 소원(장가나 갈련지 ㅠㅠ)
할머니 생각하면 쓸께 너무 많네요. 흠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보다 힘든분들도 많을테데 우리 다 힘내서 열심히 살아요. 좋은날이 오겠죠..
참 부모님에게 효도하세요 부모님은 저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저도 못해서 한이 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