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 그리고 흩어진 기억의 잔상이 조각조각 모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지.
그게 바로 1Q84의 세계.
우리는 1Q84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청춘, 기묘한 세계.
엄마의 양수와 같이 포근하고 따뜻한 물속에 둥그런히 포개진 편안한 생명체처럼 뉘어진 세계.
자극으로 터진 자궁 밖 세계로 나온 치열한 인간의 삶, 편안한 휴식처가 없기에 인간은 태초의 안락함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비정상적 가정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의 인생은 본래 이러한 안락함을 그리워 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 애를 쓰지 않았을까?
10살, 소년의 손을 잡은 소녀의 용기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기억을 선사한 것은 순수한 감정이 바탕이 된 사랑이 었음을 깨닳았다.
오랫동안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잊고 지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순수' 이지만 현실에서 순수한 사랑을 지켜나가고 지속한다는 것은 이세상 어떤 어려움과 비견될 만큼 힘든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덴고와 아오마메의 사랑이야기는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사랑에 대해 다시금 깨닿게 해준 훌륭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사랑의 감정은 오랫동안 지켜보고 바라본다고해서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어느순간 찾아온 바람과 같이 온몸을 한번 휘감아 지나가면서 몸에 스며든 향기처럼 아련한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소년과 소녀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손을 한번 잡은 기억만으로 평생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워 할 수 있을까요?
염원은 기적을 만들며 사랑은 추억을 키웁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사실 전 덴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건장한 신체와 흔들림없이 우직한 사람, 어느정도 융통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모험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은 바로 한 사람을 지독히 그리워했던 그런 순수함 바로 그 부분입니다.
어릴적 창피한 기억을 갖지 않은 어린아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어머니는 2살때 타인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친아버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의해 키워집니다. 덴고의 아버지는 NHK 수금원입니다. 그의 수금 방식은 너무나 직설적이며 야비할 정도로 비추어집니다. 그런 아버지가 싫을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아버지의 삶은 NHK수금원이라는 직업을 갖은 이후부터 시작한 것 처럼 보여집니다. 그 이전의 삶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수금원이라는 자리는 덴고의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죽어서도 수금원 제복을 입고 영면에 들어갑니다. 비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산의 부모에 대한 분노와 부정은 당연한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덴고의 마음이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 그가 겪었던 감정은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통과의례와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오마메의 환경 역시 무척이나 덴고와 닮았습니다. 부모는 증인회 신자(사이비종교)입니다. 광적인 신앙심으로 자신의 자식에게 일방적인 믿음만 강요했습니다. 아오마메는 불과 11살 때 이를 벗어나려 했고 결과적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리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오마메는 킬러입니다. 타인의 삶을 빼앗아 버리는 인간 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는 동시에 정당화 시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타인의 삶을 빼앗는 부분은 우리에게 통괘함을 전해 줍니다.
1Q84의 세계는 비정상적인 세계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세계입니다. 하지만 벗어난 상식은 그 두사람과 일부 몇사람에게만 느껴지는 세계입니다. 타인이 바라볼때 1Q84의 세계는 똑 같은 1984의 세계입니다.
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세계는 누가 생각해도 이상한 세계입니다. 그렇기에 덴고와 아오마메는 그 세계를 벗어나 함게 달을 하염없이 쳐다보는게 아닐까 생각 됩니다.
결국 덴고와 아오마메는 어지럽게 흐트러진1Q84의 세계를 벗어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계라는 틀을 깨뜨렸다는 점 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틀을 만들고 깨뜨리기보다 지속적으로 견고한 틀을 만들고 철옹성같은 방어벽으로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행동은 너무나 대단해 보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존, 자아실현, 희생?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조건이 되지않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우리 현실은 존재에 대한 믿음에 반할 정도로 다른 조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Q84에 존재하는 세계역시 이러한 물음을 던집니다. 아오마메의 가족은 종교, 신앙을 위해 삶을 살았습니다. 보이지않는 내세를 위한 삶. 덴고의 아버지는 NHK를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수금하여 받은 돈을 회사에 상납하는일. 그것이 그의 아버지가 가장 잘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시카와는 자신의 만용을 위해 살았습니다. 똑똑한 머리에 기댔고 너무나 독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아오마메는 누굴위해 살았을까요? 덴고역시 누굴위한 삶을 살았을까요?
작가는 두 주인공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는 바로 자신을 위한 삶이라는 것 말입니다.
아오마메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았고 행동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충분합니다(현실에서는 살인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신념대로 행동했으며 염원을 통해 사랑을 얻었습니다. 덴고는 물욕을 버리고 자신을 위한 야망에 기대어 삶을 살았습니다. 비록 공기번데게 소설을 리라이팅한 점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문학적 극치를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었지만 결과 1Q84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고양의 마을로 들어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닳음을 얻고 사랑도 얻었습니다.
소설은 우리가 살아야하는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진정 자아를 찾는 것은 하늘에 두개의 달이 떠있는 것과 같은 어지러움이 가득하다는 말을 하고싶어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통해 자아를 찾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아오마메는 덴고와 함께 수도고속도로로 거꾸로 돌아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 새, 양을 쫓는 모험 하루키의 색깔이 가득한 소설을 오랫만에 읽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20살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와 24살때 읽었을때 그리고 28살때 읽었을때의 느낌이 각각 너무나 다릅니다.
20살때는 자아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면 24살때는 진지한 생각 28살때는 어렴풋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번 1Q84 역시 그렇게 나 자신과 성장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