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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손민홍 |2010.08.19 02:08
조회 254 |추천 0

 

 

 

악마를 보았다

2010

 

김지운

이병헌, 최민식.

 

8.5

 

「악마같은 영화를 보았다」

 

지난 주말 아침, 드넓은 좌석 간격을 자랑하는 신촌 메가박스 M관에서

그다지 많지 않은 관객들로 썰렁했던 상영관의 시큼한 방향제 냄새를 맡으며

찝찝한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최근 논란의 중심거리인 것을 티라도 내 듯

D일보 문화부 기자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관람하고 나온 관객들에게 간단한 설문지를 돌리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한 쪽짜리 설문지에 적힌 질문들은 간단하면서도 특정 이슈를 겨냥하고 있었다.

잔인한 묘사에 관한 질문들에 일관성있게 답변을 끄적이고 있는 동안

나에게 접근한 기자가 작은 녹음기를 꺼내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설문지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질문을 던지기 전에 기자는

'김지운'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은 감독의 의도를 내게 언급함과 동시에

특정한 대답을 원하는 자신의 의도를 덤으로 슬쩍 내보였다.

 

기자의 입을 통해 들은 감독의 의도는 이랬다.

수현(이병헌)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이입되어 영화를 보면서나마

악랄한 범죄에 대한 단죄의 쾌락을 관객들이 간접적으로라도 느꼈으면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혹은 행위의 잠재성이 다분한,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영화를 보고 정신을 차렸으면하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을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악마를 보았다』는 불순한 영화다.

이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얻어 '많은 돈'을 벌어 들이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되어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사실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거다.

이건 아예,

보면서 웃고 있는 관객을 찾아 사이코패스 검사라도 해봐야 할 기세다.

그렇다고 뭔가를 깨닫게 해줄만한 류의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모든건 영화의 만듦새와는 무관하다.

 

설문지에, 그리고 기자의 질문에 나는

영화 속 수현의 행동이 개연성을 얻기 위해서

문제의 잔혹한 장면들의 세부적이고도 노골적인 묘사는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하고 답했다.

지금도 거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분위기에 있다.

영화가 진행되며 수현의 복수가 그 기세를 이어갈수 있도록 해주는

경철의 잔혹하고도 악마성 짙은 범죄행각은 보란듯이 도드라져간다.

치고받기가 예술이다. 그야말로 기가막힌 콤비 플레이인거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있게 밀어붙인

 '김지운'의 깡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어 보인다.

잔혹한 복수를 감행한 남자의 허무한 말로?

가진 것들을 하나 하나 잃어가며 잠재된 악마성을 드러내는 한 남자가

애시당초 잃을 것이 없었던 진짜 악마를 벌하는데

결국 그 끝엔 아무 것도 없더란 말이다.

 

이 영화가 2번 씩이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사실에 대중과 언론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톱 클래스 감독이 메이저 배우와 만나 만든 메머드급 상업 영화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에 영화계에서 말도 많았다.

삭제된 장면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본 몇 안되는, 시쳇말로 쎈 영화들 속 말 그대로 쎈 장면들보다 더하겠나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생각보다 쎄지 않았던 영화 속 장면들을 곱씹어보며

'이 정도가지고 뭘 그래' 하며 영등위를 싸잡아 욕도 했더랬다.

나도 이런데 당사자들은 괜한 트집을 잡는 것 같아 속도 많이 상했을거다.

영등위의 등급판정 기준과 제한상영관의 부재에 관해 얘기하자면

이 문제를 두고 말이 많았던 몇 년전의 어록들을 정리해야 마땅하니 차치하더라도,

예상해보건데, 삭제된 장면들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졌다 한들

영화는 한층 보기 싫어졌을 게 분명하다.

잔혹한 이미지들의 치밀한 세밀화가 대중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어둑한 밤길의 스산함과 잠 못 이루는 밤 밖에 없다.

 

D일보 기자가 물었다.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 속 복수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지는 않았냐고.

영화에서처럼 험한 꼴을 당한다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수현처럼 복수를 해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현은 국정원 직원으로 설정되어 있고,

경철(최민식)이 대놓고 무시하는 대한민국 경찰보다 몇 발이나 앞선 정보력으로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어긋난(?) 응징도 가한다.

'원빈' 아저씨의 T.O.P 급 무술실력은 아니지만 왠만한 형사들도

한 방에 나가떨어질만한 무술실력까지 갖췄다.

이쯤되면 대리만족이라기 보다는 영화적 판타지라고 해야 옳다.

남은건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통렬한 복수가 끝났을 때의 쾌감이 전부인데

그것마저 찝찝하긴 매 한가지.

 

최근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박훈정'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유일하게 다른 부분도 이 결말이라고 하는데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에서처럼 3가지 버전의 결말을 찍었다고 한다.

나머지 두 가지의 결말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찝찝하고 미심쩍은 결말을 선호해왔던 나조차도

스크린에 차고 넘치는 기분 나쁜 이미지들을 2시간이 넘도록 견뎌낸 탓인지

통렬하지 못한 이 못난 결말에 답답함만이 가슴을 조여왔던 것 같다.

수현도 결국엔 경철과 다를 바 없는 범죄자가 되어 잡혀갈 게 뻔하지만

똑같이 잡혀가는『아저씨』의 결말은 그나마 통쾌하기라도 했지.

열대 기후 속에서 하루하루를 짜증으로 버티는 나로서는 

그 꼴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거다.

 

여자들이 보기 힘든 영화라고들 한다.

남자들이라고 뭐 보기 좋을까?

사람이 보기에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닌 듯 하다.

애들이 걱정된다. 정말, 정말 정말 애들만은 못보게 하자.

'최민식'도 걱정된다.

연기를 너무 지나치게, 레알 사실적으로 해냈다.

헌데 이미지가 이래서야 다음 작품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잘 만든 영화가 꼭 좋은 영화는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내가 듣게 된 좋지 않은 소식도 그렇고

참 요새 기분이 그렇다.

 

b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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