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을 향하여 (1)
미영은 끝날 것 같지 않는 한강대교를 거닐고 있었다. 차디찬 1월중순, 칼바람이 그녀의 코끝을 스쳐가고 있었다. 힘없는 걸음으로 그녀는 목적지도 없이 어딘가를 향해 방랑자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대교 중간에 이르렀을 즈음,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있는 한강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얼음장이 되어버린 손잡이를 붙잡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시는 울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더 이상 주저 앉고 싶지 않았던 그녀 였기에... 그녀는 천천히 구두를 벗고 있었다. 얼음같은 시멘트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5분이 흐르고, 그녀는 결국 손잡이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주저앉았다.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녀 자신에게 원망하면서 다시 구두를 신고 남은 대교를 걷고 있었다. 그녀의 외투 안주머니에 있던 휴대폰 벨이 울렸다. 핸드폰을 뚫어지게 보며 입술을 오므락거렸다. 받기싫은 표정이었다. 결국 전화를 받는다. 그녀의 언니였다.
미영 언니 : "얘 미영아, 언니여. 으이구 기집에, 전화 한 통 없더니, 잠수탄거야 뭐야?"
미영 : (힘없이) "무슨일인데?"
미영 언니 : "있잖아.. 네 형부가 기가막힌 사업 아이템 얻었잖니.. 이번엔 너도 마음에 들어할 거야.. 악기 목재회사인데, 전망이 좋다고 하더라구.. 네 형부가 이번 사업아이템 못잡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거라고..네 생각 좀 물어보라고 하더라.."
미영 : (갑자기 울켝하며), " 내 생각을 왜 묻는데, 난 하고 싶은 말도 없고, 할 말도 없어!! 제발 나 좀 가만 내버려둬.. 나 좀 모른척 하란 말이야!! 얼마나 더 사고쳐야 속이 시원한데!!"
(발을 동동 구르며 언성을 높인다.) "다신 전화하지마. 나 죽었대고 찾아오지마!"
그렇게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는 동안 온 문자를 확인한다.
'오늘 7시에 들어가'
남편의 문자였다. 그녀는 병원에 전화를 한다.
미영 : "네, 저예요. 오후 5시 환자들 예약 delay 해주세요. 그리고 6시에 정리하고 퇴근하세요."
그녀는 전화를 마치고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힘없이 택시를 잡는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부엌에 들어가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은 그녀의 특기인 된장찌개 였다. 간을 보고 있던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밑반찬들을 식탁에 올려놓고, 가운데에 그녀가 만든 된장찌개를 올려놓았다. 때마침 서재에 있던 남편이 들어온다. 무언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숟가락을 들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부부에게 어울리지 않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식사를 하고 있던 남편이 아내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꺼내었다.
남편 : " 오늘 무슨일 있었어? 얼굴이 왜 그모양이야?"
미영 : "별일 아니야.. 신경쓰지 말어....."
그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남편은 다시 얘기를 꺼낸다.
남편 (정호) : "토요일에 제주도로 한 3일정도 출장가... 급한일 아니면 전화하지 말구... 왜 대답이 없어..?"
미영 : (한숨을 쉬며) "알았어.."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하루하루가 설레임의 연속이었지만, 10년의 결혼생활이 그들에게 남긴건, 목이 조를 듯 답답한 어색함뿐이 었다. 불임인 그녀에게 실망한 그는 더 이상 미영을 여자로, 아내로 보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남편은 그녀에게 차를 부탁하며 서재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무언가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듯이 천천히 차를 준비했다. 방에 들어온 남편은 결재서류를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통화를 시작했다.
남편 (정호) : "나야... 지금 어디야?..밥은?...토요일정도 출발하자...그래... 잘자고...오래 통화 못해, 끊을게..."
남편은 간단하게 전화를 끊고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서재 문 밖에는 찻잔을 들고 있는 미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노크를 하며 들어갔다.
미영 : "새로 마련한 녹차예요.. 맛이 좀 색다를 거야.."
남편(정호) : (무미건조하게) "고마워.. 잘 마실게.. 이것만 보고 들어갈게.. 먼저 자.."
서재 문을 나가는 순간 갑자기 미영의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면역이 됐을 법도 한데...그녀는 주저앉으며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영 : (속으로) '그래... 놓자.. 놓아버리자... 더 이상은 바보 되지 않을거야....'
그녀는 마음속에 무언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이 었다.
햇빛이 유난히 빛나는 하루였다. 재영의 옥탑방 집은 유난히 햇빛이 잘 들어온다.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들처럼 가방을 정리 하고 서둘러 집을 나가려고 했다. 오늘도 역시 아침을 굶게 되었다. 나가기전 그는 그의 어머니 방에 들어갔다. 술냄새가 진동했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그의 엄마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방문을 다시 닫고 학교로 향했다. 교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그의 어깨에 손이 올랐다. 그의 친구의 소영이었다.
소영 : (밝게 웃으며) 아직 지각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둘러서 가~
재영 : (소영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잖아
소영 : 오늘도 점심시간에 거기에 있을 거야?
재영 : (고개를 끄덕인다.)
소영 : 오케이! 그럼 이따가 음료수 사들고 올라갈게.
그렇게 재영은 소영과 함께 등교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었다. 재영은 학교 옥상에서 의자들을 모아 누울 수 있게 끔 정돈을 하고 편하게 mp3를 듣고 있었다. 따스한 햇빛이 그의 얼굴을 쏘고 있었다. 재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10분후 얼굴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소영이 그의 얼굴에 차가운 음료수를 대고 있었다.
재영 : (깜짝 놀라며) 아!! 뭐야!!
소영 : (크게 웃는다.) 많이 차갑지?
재영 : (소영을 째려보다가 자리에 다시 눕는다.)
소영 : (재영의 옆에 앉는다.) 사과맛 오렌지 맛?
재영 : (소영의 시선을 피하며 아무거나 가져간다.)
소영은 재영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만졌다. 재영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소영은 잠시 그를 보다가 입술을 맞추었다.
소영 : (빤히 쳐다보며) 좋아해…많이…
재영 : (아무런 말없이 소영을 편하게 쳐다본다.)
수업 종이 울렸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중에 소영의 머리에 칠판지우개가 날아왔다. 소영은 머리에 칠판지우개를 맞고 주저 앉았다. 재영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태호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태호 : (뻔뻔하게) 아이구 미안… 니 놈 맞추려다가… ㅋㅋㅋ
재영 : (빠른걸음으로 가다가 태호의 멱살을 잡는다.) 한번만 더 깝치면 갈아버린다.
태호 : 누가 먼저 갈아질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은데..ㅋㅋ 우리 아직 볼일 남지 않았나?
재영 : (태호를 계속 째려본다.)
태호 : (여유있게)오늘 수업 끝나고 옥상에서 보자. 일은 마무리 져야지…
재영 : (태호의 멱살을 놓고 소영에게 돌아가 소영을 부축한다.)
태호와 재영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소영은 안타까운 눈으로 재영을 바라보았다.
(다음편에 계속)
저 하늘을 향하여 (4)
재영은 등이 서늘해지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보며 물었다.
재영 엄마: (재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왜 그래? 맛이 없어? 다시 해줘?
재영 : …..(재영의 시선은 텔레비전에만 향하고 있다.)
재영은 밥 숟가락을 내려 놓고 서둘러 소영의 집으로 향했다. 소영의 집에 도착한 재영의 눈에는 주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과 경찰차들로 가득했다. 불길한 기운이 재영의 뇌리를 지나갔다. 그가 아파트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찰들은 그를 제지했다. 재영은 울부짖으며 소리 질렀다.
재영 : 소영아! 소영아! (목놓아 부르짖으며)
경찰 : 이러면 안돼 학생. 얼른 여기서 나가!
하얗게 덮인 시신 한 구가 보였다. 재영의 눈에는 오직 그 시신 한 구만 보였다. 하얀 덮개 속에 살며시 나온 하얗고 고운 손이 보였다. 시신의 손가락에 있었던 것은 그가 소영에게 전날 밤 선물한 반지였다. 재영은 반지를 보자마자 소영이를 알아차리고 절규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의 범벅이었다. 구석에 있던 소영의 부모님은 이미 실신해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시신을 실은 구급차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떠난 자리에서 주민들과 방송국 기자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비켰다. 유난히 노을이 붉게 진 하루였다.
윤 간호사 : 선생님 마지막 환자분이 십니다.
미영 :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미영의 마지막 진료가 모두 완료되었다. 간호사들은 황금 같은 이 금요일 날 저녁 약속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영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엄마였다.
미영 엄마 : (전화 받자마자) 빨리도 전화한다. 이 기집애! 엄마 전화 계속 피하니까 좋디?
미영 : ……. (한동안 말이 없다.)
미영 엄마 : (답답한 듯)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미영 : (조용히)…. 나 이혼 할거야….
미영 엄마 : (놀란 듯)….. 뭐를 한다고?
미영 : 김서방도 동의한 내용이야..
미영 엄마 : …. 쥐약 먹었어? 이게 또라이 짓을 해도 유분수지..!
미영 : (답답한 듯) 나도 충분히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야. 나를 좀 이해해 주면 안돼? (미영의 언성이 점점 커진다.)
미영 엄마 : 능력도 없는 게 웬 주제 넘는 이혼이야?
미영 : 김서방 도움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어..
미영 엄마 : 너 그 병원 누가 차려 준거야? 반 이상은 김서방이 대준 거잖아..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미영 : (눈을 부릅뜨며) 충분히 알아.. 엄마 돈 줄 끊기는 거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내 인생이야.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거야… 엄마가 감나라 대추나라 할 자격 이제는 없다구.! 제발 나한테 그런 얘기 좀 안하면 안돼?
미영 엄마 : 그래~ 니 마음대로 해봐 이 기집애야! 누구를 위해 하는 소리인지 너도 뼈저리게 알아야 하니까.. 그런데.. (망설이면서) 하면, 위자료라도 확실히 챙겨..
미영 : 뭐라구? 내가 어떤 심정인지는 전혀 알고 싶지도 않아..?
미영 엄마 : (딴소리) 너한테 얼마나 갈건지 계산기나 두들겨 보란 말이야..
(미영은 일부러 전화를 끊는다.)
미영은 한 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미영은 멍하니 앉아있다가, 서둘러 서류를 챙겼다. 날카로운 종이가 그녀의 손가락을 베었다. 피가 흘렀다. 그녀는 신경질이 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미영은 서류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미영은 무거운 머리를 의자에 기댔다. 그녀는 지혈을 할 기운도 없었다. 핏방울이 계속 바닥에 떨어졌다.
병원 앞에 도착한 재영은 겁이 난 것처럼 보였다. 무거운 발걸음을 지고 급하게 준비된 소영의 영정사진으로 향했다. 흰 소복을 입은 그녀의 어머니가 멀뚱히 서있던 재영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향했다. 그녀는 재영을 보자마자 뺨을 세게 때렸다.
소영 엄마 : (심하게 울부짖으며) 이놈아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네 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너 때문에 우리 소영이 어떡해~ (힘이 빠진 소영 엄마는 주저 앉는다.)
재영 : (아무 말도 없이 서있다.)
소영 엄마 : (힘겹게 말을 꺼낸다) 너는 알꺼 아니여~ 소영이가 왜 이런 봉변을 당했는지! 너는 알거 아니야 (멱살을 잡으며 크게 소리친다).
재영은 무릎을 꿇었다.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재영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재영은 소영의 영정 사진 앞에서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그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소영의 아버지였다.
소영 아버지 : (차분하게) 그만 일어나. 여기 네가 무릎 꿇는다고 너 봐줄 사람 없어…. 어여 일어나.. 올려거든 시간 좀 지난 다음에 찾아오도록 해..
재영은 쓸쓸히 일어나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재영의 뒤를 어떤 차가 따라 붙고 있었다. 차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소영의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었다.
경찰 : 학생이 이재영학생 맞나?
재영 : 누구시죠?
경찰 : (경찰 신분을 증명하며) 나는 이번 정소영학생 사건을 수사중인 형사예요.
재영 : (놀라면서 형사의 팔을 잡는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할게요.. 이번 사건 어떤 놈이 저지른 짓인지 밝혀주세요.. 소영이는 절대로 자기목숨 놓아버리는 애가 아니라구요! (울부짖으며 형사에게 매달린다.)
경찰 : (재영을 진정시키며) 현재 정소영 학생의 시신을 부검 중인데, 시신 주변에 두 남자의 DNA가 검출되었어.. 주변 조사를 해보니까 학생이 정소영양과 가장 친분이 깊었다고 해서… 학생이 도움을 줘야겠네..
재영 : 누구 DNA인지는 밝혀졌나요?
경찰 : 결과는 곧 나오겠지..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으로는 정소영양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었다는 거지…학생 연락처 좀 알려주게나. 결과 나오면 바로 연락 줄 테니까, 우리한테 소영학생에 대한 자세한 내용 좀 진술해 주었으면 좋겠네..
재영 : 무슨 일이든 돕겠습니다.
그렇게 경찰이 자리를 떠난 후, 재영은 미동도 보이지 않고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미영과 남편은 이혼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 가정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에서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사이에 나는 소음은 숨소리 뿐이었다. 2시간 후, 그들의 이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같이 찻집으로 향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미영 : (차분하게) … 결국 이렇게 끝나는 구나…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 줄 알았는데.. 남들 밥 먹듯이 하는 이혼, 나에게도 오는 건가 했는데…
남편 :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컵을 내려놓는다)…..미안해…
미영 : (남편을 편하게 바라보며) 이젠 내가 더 미안해 졌지… 처음에는 당신이 날 천하의 바보 멍청이로 만든 줄만 알았는데…. 당신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살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내가 당신의 발목을 조인 쇠사슬은 아니었는가… 여자를 안을 수 없는 몸인데 날 안으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영도 차를 한모금 마신다.)
남편 : 뭐라 할 말이 없다….
미영 : 그래도 어떤 남편들처럼 아내에게 몹쓸 짓, 못된 짓 안하는 사람이어서 고마웠어. 지금 당신 마음이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봄 날씨처럼 편안해.. 하루빨리 처리 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후회가 된다면, 진작에 처리하지 않은 것일 거야… 당신이 잘못한게 있다면, 당신 스스로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거야… (살짝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남편 : (시선을 피하며) 장모님… 많이 서운해 하시겠다…
미영 : 지금 난리도 아니야… 당신한테 도움 받은게 얼만데, 웬만하면 참고 살지, 왜 모자라게구나며… (남편을 보며) 아버님, 어머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릴거야? 어른들 허락 구하지 않은 이혼인데..
남편 : 시간이 흐르면 차차 말씀드릴거야.. 먼저 이혼했다고만 말씀드릴려구.. 많이 놀라시겠지… (창가쪽을 본다.)
미영 : 병원 돈 빌려준거… 처리해서 돌려줄게…
남편 : 그럴거 없어.. 내가 당신에게 해준 선물이라 생각해.. 더 잘되어서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돌려줘…
미영 : 그래도 당신 때문에 내 꿈도 이루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아온 거 같아.. 사실 모르겠어… 내가 정말 당신을 사랑했었는지.. 아니면 의지하고 싶은 대상으로 삼고 싶었는지는….
남편 : (묵묵히 차를 한모금 마신다.)
미영 :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결혼 할거야?
남편 : 지금 이대로가 좋아… 결혼 할 수 있으면 하는거고… 아직 대한민국엔 동성결혼은 안되니까..
미영 : 전해들은 얘기는 많았지만, 이렇게 내 앞에 현실로 나타날 줄은 전혀 생각못했네…
남편 : 지금 어떻게 내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어.. 돌 맞아도 기꺼이 맞아줄 준비 되어있었는데… 당신… 참 존경스러워…
미영 : 처음에는 던지려고 했었지… 미움을 넘어서 경멸까지 간 단계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여자와 바람난게 아니니까, 당신 선천적이었으니까, 내가 어찌할 방법 없으니까,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남편 : (미영을 편안하게 쳐다본다.)
미영 : 이제 진짜 사랑해보는 거니까, 후회없이 해봐…
남편 : (미소를 지으며) 자주 연락하자구… 얼굴이 좀 그렇네…
미영 : 그래도 이혼인데… 잠이 잘 안오더라구…. (차를 한모금 마시고) 그만 일어나자.
남편 : 그래…
(카페 밖을 나오면서)
남편 :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미영 : (웃으며) 이런 느낌이구나… 게이 남자친구 두는 느낌….
그들은 서로 미소지으며 각자의 갈길로 향했다.
하늘에 구름 한점 없는 하루 였다.
재영의 학교에서는 소영이를 향한 전교생들의 추모가 시작되었다. 하나 둘씩 소영의 영정사진 앞에 국화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있던 재영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괴롭혔던 태호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이 있던 반으로 향했지만, 그들은 자리에 있지 않았다. 이틀 내내 결석을 한 그들에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재영은 스스로 경찰서로 향했다. 담당형사가 그를 발견했다.
경찰 : 학생, 마침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여기 않아..
재영 : (긴장한 듯이) 결과는…. 나왔나요?
경찰 : 정소영 학생 시신에서 나온 흔적들을 조사했는데… 이태호와 정찬민의 것으로 나왔어.. 그 학교 학생으로 알고 있는데…아는 녀석들이야?
재영 : (예상한 듯) 네…. 역시 그 새끼들 이었군요…
경찰 : 현재 위치 추적 중이니까, 체포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정소영 학생을 성폭행한 증거가 여기 나와있어…
재영 :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다.)
경찰서를 나온 재영은 두 주먹을 불끈 지었다. 오후 5시 였다. 재영은 혼자 보도를 거닐고 있었다. 매연을 가득 뿜는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다정한 연인들은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며 그의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앞으로 나뭇잎 한 장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재영은 끝내 눈물을 참고 다시 걸었다.
미영은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를 본다는 생각보다, 그의 가족들이 이혼사실을 듣고 나올 반응들이 그녀를 더욱 걱정하게 만들었다. 손에 과일을 들고 아버지가 있는 병실 문 앞에 서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영 :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 : 그래.. 우리 딸.. 뭐하러 여기까지 와, 바쁠텐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미영 : (아버지를 제지하며) 일어서지 마세요 아버지. (망설이며) 사실…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아버지 : (미영을 쳐다본다. 미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헤어진게야?
미영 : ……….(눈물을 흘리며) 정말 죄송해요.. 아버지.. 못난 딸… 용서해주세요…
아버지 : 우리 딸 마음 아파서 어떡하니..? 우리 딸 손 한번 만져보자…
미영 :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한없이 운다.)
시간이 지난 뒤 병실 밖으로 나간 미영의 눈에 걸어오는 그의 엄마와 언니가 보인다.
(병원 및 카페에서)
미영 엄마 : 그래… 헤어지겠다니 어쩔 수 없지.. 왜 그런게야? 정서방 바람이라도 피웠대?
미영 : (시선을 회피한다.)
미영 언니 : 정서방.. 그럴 사람은 아닌거 같았는데…
미영 엄마 : 너 걱정되서 하는 소리야… 정서방이 얼마나 능력있는 남자인데… 그 사람이 있어야 네 가치도 올라가는 거야.. 우리가 정서방 덕을 얼마나 많이 봤니? 그거 무시할 수 없는 거야… 이번에는 눈 감고 넘어가.. 세상에 바람 안피우는 남편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 그래.. 저마다 항상 눈 흘기면서 살아… 미스테이크 하지 말고 그냥 살아..
미영 : 내가 어떤 마음인지 전혀 신경 안쓰지? 내가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전혀 짐작이 안가?
미영 엄마 : 경험자 입장에서 하는 말이야.. 그렇게 어린애 처럼 생각하다간 손해보는건 너야..
미영 언니: 뒷처리는 어떻게 해준대?
미영 : 무슨 뒷처리?
미영 언니 : 위자료 같은거? 얼마나 해줄 수 있대?
미영 : 그런거 안받을 거야..
미영 엄마 : (놀란 눈으로) 이 기집애가 미쳤나? 쥐뿔도 없는게 어디서 허세야 허세는!!
미영 : 엄마!!!
저 하늘을 향하여 (5)
미영 엄마 : 미영아,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데.. 너도 그 집사람들과 상종 할 수 있는 레벨이니까 결혼을 했지…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봐.. 그 자식 확실히 바람핀거야? 기이면 고소라도 해야지…
미영 : (잠시 아무런 말 하지 않다가.) 바람 아니야.. 성격차이라고 해두지뭐…
미영 언니: 무슨 그런 대답이 있어?
미영 : 더 이상 내가 뭘하든 이제 관심꺼.. 위자료 같은거 안받을 거니까..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병원은 지킬거니까.. (미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미영은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구두를 신어서 오래 걸으면 아팠지만, 미영은 그런 고통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한강대교가 생각이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한강대교 중턱을 지날 즈음에 낯익은 얼굴에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재영이었다. 재영은 담배를 피우며 그의 앞에 있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고등학생으로 기억한 미영은 놀라서 재영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미영 : (재영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학생…
재영 : (옆을 슬쩍 보다가 조금 놀란다..)……
미영 :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거, 담배 아니야?
재영 : (말이 없다가 담배 불을 끈다. 사뿐히 즈려밟는다.)
미영 : (조심스럽게) .. 혹시 내 것도 있어?
그들은 서로 대교에서 담배를 같이 피웠다.
미영 : 담배 언제부터 배운거야?
재영 :….. 오늘요….
미영 : (잠깐 놀란듯) 무슨 일 있었니? 담배 까지 피우고…
재영 : (묵묵부답)
미영 : 고민이 있으면 그때 그때 얘기하는게 좋아.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재영 : (묵묵부답,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다.)
미영 : 얘기 하기 싫으면 말고…
재영 : (한동안 말이 없다가) 저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요.
미영 : (놀란 눈으로 재영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재영 : 저 좋아하던 애가 저 때문에 죽었어요.
미영 :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고백했는데 네가 찬거야?
재영 : (말이 없다가,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그 새끼들이 죽였어요… 소영이를 죽였어요… (흐느끼는 목소리를 하며, 고개를 푹 숙인다.)
미영 : (담배를 즈려밟고 재영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재영 :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10분후
미영 : 그 새끼들은 찾은거야?
재영 : 아직요.. 아직 못찾았아요.
미영 : 아직 정확한 상황을 파악 못했으니까, 만나면 자초지종부터 들어야 겠네.. 흥분부터 하지 말구..
재영 : (묵묵부답)
미영 :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저 달리고 있는 차들은 어딜 향해 가는 걸까?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 저 사람들도 속고 있는 게 있을까?
재영 : (넌지시 미영을 바라본다.)
미영 : 너…. 누구한테 10년동안 속아 본적 있니?
재영 : (계속 미영을 바라본다.)
미영 : 속았다는 걸 알고, 그 사람한테 화를 냈지만, 용서해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한숨을 쉰다.)
재영 : (말이 없다가) 사랑이예요?
미영 : (한강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쉬다가) 나한테는 사랑이었지. 물론 지금은 예전같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열병이었어.. 그 사람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런데 그 사람한테는 나와의 사랑이 연기였고 사기극이었지… 나는 그 사람의 여자가 아닌 사기극을 위한 배우였던 거지…
재영 : (시선을 한강으로 돌린다.)
미영 : 차차 생각을 해보니, 나보다.. 나보다… 10여년동안 자신을 숨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그 사람이 더 가엽더라고…
재영 : 아직도 그 분을 사랑하시는 군요…
미영 : (말이 없다가 한강 아래를 보며) 그럴지도….
한강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등이 켜지고 라이트를 켠 차들이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었다.
미영 :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처음 본 사람….애한테 이런 얘기를 하다니… 그래도.. 마음은 편하네…
재영 : 저도 나이 들만큼 들었거든요… 이래뵈도 고3이예요..
미영 : 알았어요.. 고3학생님…근데 이름이 뭐야?
재영 : (미영을 바라보며)…. 재영이예요
미영 : 나는 유미영이라고 해…얘기 들어줘 고맙다… 그 새끼들 꼭 찾길 바래…
재영 : (대답이 없다)
미영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재영은 혼자 남아 계속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하늘을 향하여 (6)
재영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참 올라가 재영의 집이 보였다. 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밤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집에 있어야 할 그의 어머니가 왜 불을 껐는지 의심이 들었지만, 별 생각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집 문을 열자 역시 아무도 없었다. 부엌 불을 켰다. 정말 근사한 저녁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밥상 옆에는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재영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고 안에 있던 편지를 꺼냈다. 그의 엄마의 친필로 써진 편지였다.
- 편지 내용 중에서-
‘ 재영아, 이렇게 편지로 너에게 말을 전하는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줘. 네 앞에서 말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이렇게 편지를 쓴다. 엄마… 이 동네 다시 오지 않을거야.. 엄마 행복하게 해줄 사람 만났어… 직업도 있고 여유 있게 생활 할 수 있을 정도야. 너한테 몹쓸 짓 했다는 건 알지만, 엄마는 이 지긋지긋한 옥탑방 생활이 너무 싫어…네가 있어 행복했지만,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는 걸 알아 주었으면 해. 엄마도 그 사람 많이 좋아해. 옆에 통장과 카드 있어… 엄마가 매달 말에 방세와 용돈 붙일게.. 잠시 떨어져 있는 거라 생각해.. 이 못난 엄마를 욕해도 할 말을 없지만, 이 하루살이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엄마 마음도 알아 주었으면 해.. 몸 조리 잘하고… 또 편지할게… 못난 엄마가..’
재영은 편지를 잡고 한동안 정지 상태로 있었다. 재영은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는 멍하니 앉아 근사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재영은 밥상으로 다가가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여러 반찬을 잡으며 맛있게 먹었지만, 재영의 밥 그릇으로 떨어지는 눈물은 주체 할 수 없었다. 별이 유난히 빛나는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미영의 엄마는 그녀의 전남편과 카페에서 약속을 잡았다. 미영의 엄마가 카페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전남편인 정호가 있었다. 정호는 그의 장모를 보자마자 일어서서 맞이했다.
정호 : (정중하게) 오셨습니까?
미영 엄마 : (무시하고 자리에 앉는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미영 엄마 : (마지못해 말을 꺼낸다) 얘기 해보게.. 미영이 쟤 왜 저러는거야? 자네가 잘못한게 있는 거야? 아님 정말 성격차인지 뭔지 하는 걸로 헤어지는 거야?
정호 : 제가 미영이 한테 잘못했습니다.
미영 엄마 : 미영이 쟤가 자네 집안에 부끄럽지 않는 며느리로 들어온 건 자네가 더 잘알지 않는가?
정호 : 예 그렇습니다. 심려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미영 엄마 : 나한테 솔직히 말해보게.. 자네.. 바람핀거야? 아님, 뭐 숨기는 거라도 있었나?
정호 : (놀라며) 미영이가 얘기 안하던가요?
미영 엄마 : (잠시 생각하다가) 그 기집애가 뭔가 숨기는게 있었구먼…
정호 : (망설이며) 저…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미영 엄마 : 그게 무슨 소리야?
정호 : (망설이며) 저…. 남자를 사랑합니다.
미영 엄마 : (매우 놀라며) 뭐라고?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정호 : 십 몇 년 동안 미영이를 속여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미영 엄마 : (더듬거리며) 그.. 그러니까… 자네…혹시….. 그건가?
정호 : (끄덕거린다.)
미영 엄마 : (너무 놀라서 물을 마시려고 하지만, 정호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
정호 : (가만히 있는다.)
미영 엄마 : 괴물 같은 놈.. 다신 내 앞에, 우리 미영이 앞에 나타나지마..이대로 넘어가진 않을 거야… 그동안 당한거 그대로 갚아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게…
정호 :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있는다.)
미영 엄마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한편 미영은 병원에 있었다. 모든 진료를 마치고, 논문 정리를 하고 있었다. 커피 한잔을 들이키며 조용하게 클래식음악을 듣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미영 엄마 : 너 지금 어디야?
미영 : …. 병원인데?
(미영 엄마가 전화를 끊는다.)
갑작스런 전화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미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밖에서 문이 열릴 때 나는 종소리가 들렸다. 미영은 퇴근하기 위해 겉옷을 입고 있었다. 미영의 엄마였다.
미영: 무슨 일이야?
미영 엄마 : (잠시 미영을 쳐다보다가 미영의 뺨을 때린다.)
미영 : (놀란 듯 엄마를 쳐다본다.)
(다음 편에 계속)
저 하늘을 향하여 (7)
미영 : 엄마!
미영 엄마 : (화난 말투로) 너 제정신이야? 정서방 하자 있었던 거 알면서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해? 남자 좋아한다며.. 그… 그… 뭐냐… 게이인지 뭔지 한다면서.?
미영 : (놀란 듯) 그거 어떻게 알았어?
미영 엄마 : 정서방 만났다.
미영 : (점점 언성을 높이며) 엄마가 그 사람을 왜 만나? 그 사람도 상처 많은 사람이야.. 엄마가 왜 그 사람 아픈 곳을 더 쑤셔 파냐구?
미영 엄마 : (어이 없는 듯) 이 기집애가… 누가 누굴 걱정 하는 거야? 그렇게 드러운 놈을 알면서 모른 척 했다는 거야?
미영 : 그 사람이 전염병 환자야? 그 사람 벌레 취급하지마!!
미영 엄마 : (시선을 돌리며) 이거 간통죄야. 고소장 접수하자..
미영 : 그딴 짓 했다봐.. 나… 다시는 엄마 안봐!
미영 엄마 : 이거 명백한 사기잖아!!!
미영 : 그렇다고 해도 엄마가 나서서 감나라 대추나라 할 일이 아니야!
미영 엄마 : (미영을 계속 째려보며) 한심한 기집애..
미영 엄마는 그렇게 병원을 나갔다. 미영은 핸드폰을 꺼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호 : 여보세요?
미영 : 그런 얘기를 왜 했어? 그냥 성격 차이라고 얘기하지..
정호 : 당신이 이미 말 한 줄 알았어..
미영 : 당신 누구 하고 십 몇 년 산거야? 내가 그렇게 치졸한 사람이었어?
정호 : 부모님이 아셨어.. 우리 이혼 한 것도..
미영 : 분명 우리 엄마 짓일 거야..
정호 :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잖아..
미영 : 정말 미안해…
정호 : 당신이 미안해 하면 난 죽일 놈이게…?
미영 : (한동안 말이 없다가) .. 끊을게
정호 : 끊어
그렇게 그들은 전화통화를 마쳤다. 미영의 마음속은 미안함으로 가득 찼다.
재영은 형사의 전화를 받고 경찰서에 있었다. 조 형사 테이블 앞에 앉아있던 재영은 유치장에 있는 태호를 보고 놀라 일어섰다. 태호의 옆에는 그를 따라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태호는 서둘러 유치장으로 향했다. 가까이서 본 태호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그의 옆 얼굴은 심한 상처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 보였다. 재영이 보았던 건방지고 까불던 모습들은 어디 간데 없고 겁에 질려있었다.
재영 : (유치장 철봉을 세게 치면서) 나와 이 새끼야!!! 죽여 버릴거야!!
형사들 : (재영을 막아서며 재영을 서에서 내보내려고 한다) 학생! 이러면 안돼! 뭐해! 얼른 끌고 나가!!
재영 : (유치장을 발로 걷어차면서) 새끼야!! 죽여 버릴거야!!
태호 : (시선을 다른 곳으로 고정시키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재영은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흥분상태였다. 조 형사는 그의 옆에 앉아 얼음물을 건네주었다.
조 형사 : (조심스럽게 바닥을 쳐다보며) 녀석들이 아니야..
재영 : (조형사의 얼굴을 바라본다.)
조 형사 : 외상의 흔적이라곤 뺨을 몇 대 맞은 거 밖에는 없어..(잠시 쉬다가) 성폭행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정당방위를 하려다가 일이 터진 거 같아..
재영 :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조 형사 : 조금 이따가 그 녀석들 만나게 해 줄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재영 : (시선을 한 곳에만 보고 있었다.)
몇 시간 뒤 면회소에서 그들은 마주치게 되었다. 태호는 계속 재영의 눈을 회피하고 있었으며, 재영은 그런 태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계속 어색한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재영 : (태호를 계속 보면서 차분하게) 네가 본 거 다 사실대로 말해
태호 :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재영 : 그 날, 소영이가 집에 들어갔을 때 너도 그 근처에 있었어..?
태호 :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재영 : (차분히) 말 해 새끼야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태호 :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아래만 응시하고 있다.)
재영 : 니가 죽인거야?
태호 :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난 아니야.. 그년이 혼자 죽은거야…
재영 : 네 더러운 입에 소영이 이름 올리지마. 넌 사람새끼도 아니야..
태호 : 나.. 좀 살려주라… (약간 울먹이면서) 나.. 여기 너무 싫다…
재영 : (한동안 말이 없다가) 나쁜 새끼…
태호 : 걔 혼자 죽은거야.. 난 걔 옥상에서 뺨 몇 대 때린 거 밖에는 없다구.. 자기가 혼자 뛰어 내린거야.. 우린 그냥 겁만 주고 돌아가려는데…그런데 갑자기 그년이…
재영 : (테이블을 힘껏 치며) 니가 뭔데 소영이를 때려 (언성이 높아지면서) 니가 뭔데!!!
태호 : (간절해진 눈빛으로) 나.. 여기서 나가게 해주라… 그렇게 해주면 다신 네 앞에 안 나타날게.. 너 안 괴롭힐게… 제발….
재영 : (일어선다. 한동안 말없이 태호를 보다가) 너무 늦었어 이 새끼야
재영은 조 형사를 만나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집으로 향했다. 태호는 계속 눈물을 참고 있었다. 의도적이 아닌데도 재영의 눈에는 소영의 실루엣이 계속 보였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동안에도,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의 바지를 움켜 지으며 눈물을 계속 참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바닥에 엎드려서 한참 동안 울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저 하늘을 향하여 (8)
다음 날 재영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면담 중이었다. 테이블 위엔 재영의 자퇴서가 놓여있었다. 재영의 담임선생님은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담임선생님 : (한심한 듯, 기가 막힌 듯) 너 이거 처리하려면 부모님부터 모셔와..
재영 : (아무말 하지 않고 계속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담임선생님 : 지금 니가 무슨 짓을 하려는 줄 알아?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이제 고3이야. 점수 신경 써야 할 녀석이..
재영 : (단호한 목소리로) 처리해주세요
담임선생님: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차리네.. 부모님 모셔와!
재영 : 부모님 없어요.
담임선생님 : 무슨 소리야?
재영 :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죽었어요…. 죽었어요…
담임선생님 :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재영은 더 이상 학교에 오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재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조 형사의 전화였다. 조 형사의 전화를 받고 재영은 경찰서로 향했다. 조 형사의 주변에는 연세 지긋하신 허름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태호의 할머니였다. 재영은 조 형사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태호의 할머니는 그를 보자마자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 : (손을 꼭 잡고 사정하며) 학생. 제발 이 못난 할미를 봐서라도 저 놈 용서해주게. 저 녀석이 하는 행실은 저래도, 남에게 해꽂이 하는 녀석이 아니야.. 제발.. 한번만 살려주게나.. (급기야 할머니는 무릎을 꿇는다. 형사들은 그런 할머니를 애써 외면한다)
재영 : (재영도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할머니.. 이러지 마세요…
할머니 : 우리 손자가 학생을 많이 괴롭혔다면서… 이 못난 할미가 대신 용서를 빌게요..
재영 :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할머니가 왜요…?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손잡고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신 후 재영은 경찰서 복도에 앉아 아무런 미동 없이 생각에 잠겼다. 조 형사는 그런 재영을 발견하고는 조용이 옆에 앉았다.
조 형사 : 학생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학생이 꺼내주고 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녀석은 아마 실형 받을 거야
재영 :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조 형사 : 어쨌든 전모는 밝혀졌어. 그동안 수고 했어.
재영은 힘 없는 채로 경찰서를 나오는 길에 태호의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태호를 위해 먹을 것들을 한 가득 싸왔다. 그러나 태호는 할머니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할머니 : 이것 좀 먹어봐.. 배 많이 고팠니?
태호 : (할머니를 째려보며) 쪽팔리게 여긴 왜 왔어? 집에나 쳐박혀 있지..
할머니 : (간절하게) 이것 좀 먹어봐
태호 : (도시락을 걷어차며) 아 진짜! 그냥 가라구.. 진짜 성가시게 하네..
할머니 : (경찰들에게 죄송하다며 반찬을 주워담는다.)
어느 새 재영의 손에는 두 주먹이 불끈 쥐워졌다. 조 형사가 옆에서 그의 손을 잡았다. 조 형사는 재영의 얼굴을 보며 ‘안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재영은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이 유난히 붉게 졌다.
한편 미영은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옷을 벗고 샤워를 마치고 소파위에 편안하게 앉았다. 미영은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렸다.
미영 : 여보세요
장 변호사 : 안녕하세요 저는 장지훈 변호사입니다. 이미영씨 맞으시죠?
미영 : 네.. 제가 이미영인데요
장 변호사 : 송미숙씨께서 어머니 되시나요?
미영 : 네 맞는데요
장 변호사 : 어머니께서 남편분인 김정호씨께 고소장을 접수하셨습니다.
미영 : (매우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네? 뭐라구요?
장 변호사 : 전체적인 이야기는 제가 어머니께 들어서 대충 알고 있습니다. 이미영씨의 동의가 필요해서요.
미영 : 그런거 요청한 적 없어요. 없는 일이니까, 취소 시켜주세요. (도중에 끊어버린다.)
미영은 잠시 패닉상태였다.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한다. 언니가 받는다.
언니 : 어? 미영이니?
미영 : 언니! 엄마 거기 있지? 빨리 바꿔줘..
언니 : 얘! 김서방 얘기 들었어… 엄마 단단히 뿔 나셨던데..
미영 : (귀찮은 듯)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바꿔줘..
언니 : 야! 이거 완전 사기잖아!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 완전 징그러워..
미영 : (성을 내며) 빨리 바꾸라니까!
엄마 : (화를 내며) 뭐야!
미영 : (성을 내며) 엄마 정말 내가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내가 하지 말랬잖아.. 두 사람이 합의 봤다고 했잖아!! 엄마가 나설 일 아니라고 했잖아!!
엄마 : 이 기집애야! 네가 그동안 산 10여년의 결혼생활은 어떡하고? 보상 안받을거야? 정신적인 피해보상이라도 받아야 할거 아니야?
미영 : 그런 거 필요 없댔잖아! 제발 나 좀 가만 내버려둬!
엄마 : 1년에 1억 쳐서 10억 계산했다.
미영 : (놀라서) 엄마 미쳤어? 정신 나갔어? 엄마가 뭔데~~
엄마 : 널 위해서야.. 나중에 나 잘했다고 고마워나 하지마..10억이면 싸게 먹는거지!
미영 : (울면서) 엄마!! 차라리 나 죽이고 싶다면 말해! 죽어줄테니까~~
엄마 : 이 기집애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미영 : (울먹이면서) 이제 그만해 엄마… 돈벌이는 나로 충분하잖아… 욕심부리지 말라구… 그냥 우리 분수에 맞춰 살자…응? 엄마~~
엄마 : (단호하게) 네가 힘들면 엄마가 직접 나서야지 뭐..
미영 : (잠시 전화를 붙들다가 전화를 끊어버린다.)
미영은 소파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저 하늘을 향하여 (9)
미영은 오늘도 환자 진료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편히 쉬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윤 간호사 : 선생님, 손님 오셨는데요.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으시다고.. 성함은 권옥경 님이세요..
미영의 시어머니였다.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미영은 시어머니를 모셨다.
미영 :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어머님
옥경 : (별로인 표정으로) 그래.. 오랜만이구나..
미영 :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옥경 : 차는 필요 없다. 할 얘기만 하고 가마.
미영 :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옥경 : 너희 어머니 다녀갔다.
미영 : (매우 놀란다.) 네?
옥경 : 우리 정호 일 다 알리겠다고 하더구나..지금도 소문이 회사 주변에 퍼진 모양인 거 같구나. 배상을 해주지 않으면 기자들도 부르겠다고 하시는 구나.. 네 시아버지는 이미 정호를 집에서 내보냈다. 정호는 그렇다 쳐도 회사 이미지가 말이 아니라서.. 곧 경영자가 될 아이인데…
미영 : (어머니쪽으로 몸을 돌리며)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희 어머니 일은 제가 해결 할께요. 그러니까… 걱정마세요
옥경 : 이렇게 너에게 부탁하러 왔다.
옥경과 미영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30분 후 옥경은 나갔다. 머리가 아픈 미영은 소파에 누워 눈을 붙였다.
두 달 후
재영은 학교 자퇴 수속을 밟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 보다도 열심히 일한 재영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집에 불을 키고 나간 적이 없는 재영이 이상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대문 밖에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세 달 만에 본 엄마였다.
엄마 : (깜짝 놀라며) 재영아!
재영 : (엄마를 말없이 바라본다.)
엄마 : (재영에게 다가오며)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학교는 잘 갔다 왔어? 재영이 네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해놨어…
재영 : (모른척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 : (들어가는 재영의 팔을 잡는다.)
재영 : (차가운 목소리로) 이거 놔
엄마 : 엄마가 잘못했어. 네 마음 이해해
재영 : 이해 따윈 필요 없어, 내 앞에 나타나지마. 다시는 여기 찾아오지마. 전처럼 방세랑 생활비만 제때 보내.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끝까지 시선을 회피한다.)
엄마 : (우는 목소리로) 엄마 여기 너무 싫단 말이야. 하루하루 일해 벌어먹고 사는 이 인생도 싫고 기회는 없고… 엄마 틈틈히 돈 모으면 다시 같이 살자. 잠깐이면 돼~
재영 : (차가운 목소리로) 잠깐이고 뭐고 다신 여기 찾아오지마. 발도 들여놓지마.. 이제 난 엄마 없어.. 죽었어..
엄마 : (재영의 뺨을 때리며 화난 목소리로)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이 결혼 누구 때문에 한건데!!
재영 :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럼 나 때문에 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엄마한테 난 뭐야! 도대체 내 생각은 한 거냐구!!! 맨날 남자들하고 술 마시고 놀고 집에는 늦게 들어오고 자식은 없는 사람 취급하고! 한번이라도 자식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 그동안 나는 아무 생각 없었는지 알아? 차라리 잘 됐어. 다시는 서로 얼굴 보지 말자구!
엄마 : (애절한 눈빛으로 재영을 껴안는다.)
재영 : (그런 엄마를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잠근다.)
엄마 : (주저 앉아 운다.)
재영은 옆에 있던 베개를 문에 던진다. 소리를 질렀다. 재영은 괴로워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울다 지쳐 잠이 든 재영은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을까 초조해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울로 본 그의 얼굴과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방을 열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재영의 엄마는 이미 가고 없었다. 재영은 밥상 앞에 조용히 앉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 재영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미영은 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호 : 오래 기다렸어? 시간 맞춰온 거 같은데..
미영 : 아니야. 내가 좀 일찍 왔어.
정호 : 우리 얼마만이지..
미영 : 한 3개월 되었나?
정호 : (살짝 미소를 짓다가) 요즘 어때?
미영 : 나야 뭐 그렇지.. 당신이야말로 요즘 어때?
정호 : 아버진 날 사람 취급 안 하셔. 아무래도 회사 물려 받기는 힘들지도 모르지..
미영 : 정말 미안해… 우리 가족이 그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정호 : 당연한 거지.. 요샌 어떠셔?
미영 : 아직 그대로야.. 겨우 진정시키긴 했지만… 정말 못 말리는 분이야. 점점 내 목을 조르고 있어.. 괴로워.. 난 어디서 주워온 아이 같아…
정호 : 당신이 화려해서야..
미영 : (창가 쪽을 보며) 살기 싫어…
정호 : 왜?
미영 : 그냥 허무해… 몇 년동안 짝사랑해온 당신과도 헤어지고, 어렵게 공부해서 의사가 되면 뭐해? 가족들에게 돈 갖다 주는 앵벌이 생활하고 있는데…
정호 : (차를 한 모금 들이킨다.)
미영 : 그만 살고 싶어…. 내가 할 일은 다 한거 같아.. 후회는 없어..
정호 : 왜 그래? 사람 불안하게…
미영 : 괜히 하는 소리 아니야… 기회만 되면 돈으로 나를 괴롭히는 가족들도 싫고, 끙끙대며 아파하는 사람들도 보기 싫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
정호 : (아무 말 없이 미영을 바라본다.)
미영 : (정호를 보며) 그 사람하고는 계속 만나고 있는 거야?
정호 : 얼마 전에 원룸 계약 했어. 같이 살고 싶대..
미영 :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진짜 사랑… 해보니까 어때?
정호 : 사랑…. 정말 있더라…(미소를 짓는다.)
미영 : 살짝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두 사람이 서로 미소 짓는다.)
정호 :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 안 만날 거야?
미영 : 요새 우리 엄마… 정신 없이 알아보고 다녀.. 하지만…. 지금이 좋아.. 편해…
정호 : 당신이 행복한 모습 보고 싶어.. 내가 그래 주지 못했으니까… 누군가 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미영 : (아무 말 없이 정호를 바라본다.)
재영은 점심으로 삼각김밥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영의 잇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통증이 며칠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다. 치과를 가야 하지만, 돈 때문에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갑작스럽게 재영의 머리를 스쳐간 건 미영의 연락처였다. 지갑에 넣어두었던 그녀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재영은 잠깐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미영이 전화를 받았다.
미영 : 여보세요?
재영 : (말이 없다.)
미영 : 여보세요?
재영 : ….안녕하세요? 저 재영인데요..
미영 : 네? 누구요?
재영 : 저………재영인데요?
미영 : 재영?....아.!!! 그 학생!! 어머! 웬일이야?
재영 : 저… 진료 좀 받고 싶어서요
미영 : 어…그래 언제 시간 괜찮아?
재영 : 내일 찾아 뵈도 될까요?
미영 : 그래 그럼! 내일 봅시다.
(전화를 끊는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재영은 잇몸을 부여잡고 하던 일을 계속 하였다.
다음 날 재영은 미영의 병원으로 찾아갔다.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간호사에게 등록을 마치고 호명될 때 까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자신을 호명하자 그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미영이 있었다.
미영 : (미소를 지으며) 어서와! 오랜만이네
재영 : 안녕하세요
재영은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간호사에게 지불을 하려는 순간 미영이 나왔다.
미영 : 아! 낼 필요 없어. 학생 잠깐 얘기 좀 할까?
재영 : (미영을 쳐다본다.)
미영과 재영은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미영 :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요새 어떻게 지내?
재영 : 네?
미영 : 어떻게 지내냐구?
재영 : 뭐… 그냥… 그럭저럭이요
미영 : 그 새끼들은 찾은 거야?
재영 : ….네…
미영 : 만났어?
재영 : …네…
미영 : 어떻게 됐는데…?
재영 : (빈정상한 말투로) 궁금한 거 참 많으시네요
미영 : (약간 당황하며) 그냥.. 학생 걱정한 것 뿐이야..
재영 : 그런 걱정 필요 없어요…
미영 : 알았어.. 더 안 물어볼게..
재영 : (미영을 보며) 선생님은 남편 분 계속 만나세요?
미영 : 응. 종종… 얼마 전에 살림 차렸대…
재영 : 속 안 상하세요?
미영 : 글쎄… 뭐.. 그냥 그래… 나도 내가 신기해.. 이렇게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 줄은…
재영 : 아직도 사랑하세요?
미영 :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 사람은… 영원한 내 짝사랑이야…
재영 :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미영 : 그럼 너는? 너 좋아했던 그 여자친구 아직도 보고 싶니?
재영 : 만나고 싶어요… 만날 거예요… 만나서 혼내 줄 거예요
미영 : 어떻게 만날 건데?
재영 : (말이 없다가 미영을 보며) ……죽을 거예요…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요…..
미영 : (놀란 표정을 짓는다.)
(다음 편에 계속)
저 하늘을 향하여 (10)
미영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재영 : (차를 다 마시고) 먼저 일어날게요.. 감사합니다.
재영은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병원 밖을 급히 나오고 재영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재영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다시 일터로 향했다.
일주일 후 미영은 오후 진료를 마치고 그녀의 아버지가 있는 병원으로 급하게 향했다. 아버지의 병실에는 그녀의 오빠와 언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영 오빠 : 어.. 왔구나!
미영 : (두리번거리며) 엄마는?
미영 언니 : 먼저 들어가셨어.. 머리 아프시다구..
미영 : 아버지는 좀 어떠셔?
미영 오빠 : 회복될 기미가 안보여서 답답해..
미영 언니 : 평생 저렇게 계셔야 한다는 게…
미영 : 그게 무슨 소리야?
미영 오빠 : 마음의 준비 하라고 하네…
미영 : (순간 멍해진다.)
미영 언니 : 며칠 째 혼수상태셔…
미영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산소마스크를 낀 채 잠이 든 상태였다. 미영은 조용이 아버지 옆에 앉아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아버지의 손등으로 떨어졌다.
미영 : (아버지의 손을 붙잡으며) 우리 아버지.. 평생 착하게 일만 하며 사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가시면 안돼요. 못난 딸 혼내주셔야죠! 가시면 안돼요.. 가지 마세요… (울먹인다.)
우리 아버지 불쌍해서 어떡해~ 어떡해~~(울부짖는다.)
그런데 갑자기 미영의 손이 무거워졌다. 미영의 아버지가 미영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손 힘이 매우 셌다. 미영은 마음이 불길 해 졌다.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미영 아버지 : (매우 희미한 목소리로) …미안하다..
갑자기 심장 박동 기계 소리가 심하게 울렸다. 의료진들이 긴급하게 들어왔다. 미영의 가족들은 아무 도리 없이 옆에서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의료진들이 애를 썼지만, 미영의 아버지의 상태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0분 후 모든 상황이 정리 되었고 아버지의 시신에 차디찬 흰 가운이 덮여 졌다. 뒤늦게 찾아온 미영의 엄마도 다른 식구들도 그리고 미영도 모두 울부짖었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 하루였다.
다음 날, 장례식 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미영의 식구들은 조문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영의 엄마와 집의 장손은 영정 사진 앞에서 넋 놓고 있었다. 지켜보던 미영이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다가갔다.
미영 :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 가서 저녁이라도 먹어. 하루 종일 굶었잖아..
미영 엄마 : (미영의 말을 무시하고 일어나 어디론가 간다.)
미영 오빠 : 어머니, 지금 네 얼굴 볼 기분이 아니야..
미영 : (황당한 듯)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미영 오빠 : (말 없이 조용히 어디론가 간다.)
미영 오빠가 나가려는 길에 멀뚱히 서있는 정호를 발견했다. 미영 오빠는 순간 흥분한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
미영 오빠 : (흥분해서) 당신이 여길 왜 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 우리가 우스워? 당신들한테 우스운 사람들이야?
미영 : (오빠를 말린다.) 그만해 오빠!
미영 오빠 : (더 큰 소리로) 꺼져 이 새끼야!! 더러운 새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미영 오빠를 말린다.)
정호와 미영은 결국 병원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미영 : 여긴 뭐하러 왔어?
미영 오빠 : 와야 할 것만 같아서…
미영 :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거 알면서….
정호 : 그래도… 와야 할 것 만 같아서..그런데 어머니는 차마 못 뵈겠다. 당신 어머니 무서워서…
미영 : (살짝 미소를 지으며) 오느라 고생했어… 그만 가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정호 : 일은… 항상 똑같지 뭐…
미영 : 아버님, 어머님은 별 말씀 없으셔?
정호 : 이제 없는 자식 취급하시는데 뭐…
미영 : 후회하는 거야?
정호 : 아니… 후회 따윈 없어.. 내가 예상했던 대로인데 뭘…
미영 :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정호 : 당신은 괜찮아?
미영 : (울먹이며) 사실… 실감이 잘 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지금도 내 옆에 계시는 것 같애…
정호 : (미영의 어깨를 감싼다.) 편한 곳으로 가셨을거야..
미영 : (운다.)
정호와 헤어지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보였다. 재영이었다. 미영은 재영에게 다가갔다. 재영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재영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미영 : (놀라며) 여긴 웬일이야?
재영 : (머뭇거리다)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 분께서…
미영 : (약간 미소를 짓다가) 일단 왔으니까 조문은 하고 가
재영은 미영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절을 하였다. 다른 식구들이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영 언니 : 저 애는 누구야?
미영 오빠 : 누구지?
(미영이 다가온다.)
미영 : 내 친한 동생이야..
재영은 조문을 마치고 미영과 함께 병원 밖을 나가고 있었다.
미영 : 오늘 와줘서 고마워
재영 : 와야 할 것 같아서요..
미영 : 어린 애 인줄만 알았는데, 어른이 다 됐네…
재영 : (머뭇거리다) 괜찮으세요?
미영 : …. 사실… 안 괜찮아… 힘이 없어…. 기운이 없어…
재영 : 어떤 분이셨어요..
미영 : 닮고 싶은 분이었어.. 아버지 같은 성품으로 살고 싶었어…의지하고 싶은 분이었어..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가여운 분이었어..
재영 : 저희 아버지는 저를 버리고 가셨어요.. 누군지도 몰라요…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 분이 있었다는 게 정말 부럽네요.
미영 : (재영을 잠시 보다가) 택시 태워줄게…
(택시가 온다.)
재영 : (택시를 타려다 미영을 보고) 다.. 잘 될 거예요…(택시를 탄다.)
미영 : (택시를 바라본다.)
3일장을 모두 마치고 미영과 가족들은 많이 지쳐있었다. 미영 엄마가 미영을 부른다. 언니와 오빠가 함께 따라 들어온다.
미영 엄마 : 여기 좀 앉아봐..
미영 : 무슨 일인데?
(미영 언니와 오빠도 함께 따라 앉는다.)
미영 : 무슨 얘기를 하려구?
미영 엄마 : (다정하게) 네 오빠가 이번에 정수기 사업을 시작했어…네 의견을 듣고 싶어해서…
미영 : (짜증내며) 내 의견이 뭐가 중요해?
미영 언니 : (다정하게) 이번 건 정말 감 좋아… 오빠도 준비하느라 몇 년이 걸렸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쥐고 있는 게 없잖니.. 네가 좀 도와주면…
미영 : (짜증내며) 지난 번에 빌려준 1억 5천도 못 갚았잖아.. 쫄딱 망해서…
미영 오빠 : 이번에 잘되면 그것 까지 다 갚을 수 있다 니깐..
미영 : 우리 아버지 3일장 치뤘어… 지금 이게 할 소리야?
미영 언니 : (애교부리며) 미영아~ 네 오빠 좀 도와주라… 우리가 기댈 사람이 누가 있어.. 너 밖에 없잖아… 오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와주라..
미영 : 내가 무슨 돈주머니야? 나한테 돈 맡겨놨어?
미영 엄마 : 네가 못해준다면 피해 보상 받은 걸로 하는 수 밖에..
미영 : (놀라며) 엄마!!
미영 엄마 : 네 오빠 우리 집 장손이야.. 장손이 잘 되야 집안도 화목해지지..
미영 : 우리 아버지 너무 가여우시다.
미영 엄마 : 보상받은 돈으로 네 오빠 사업 도와주려고 했던 거야. 이것아! 얘는 알지도 못하면서…
미영 : (기가 찬 듯) 엄마한테 나는 뭐야? 내가 아픈 건 생각해본 적 있어?
미영 엄마: 해줄거야 말거야?
미영 : (지친 듯) 그래.. 소송 걸려면 마음대로 해! 난 죽어도 돈 줄 생각 없으니까… 힘들게 공부해서 번 돈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쓰진 않을 거야.! 나 죽어도 찾아오지마!! (뛰쳐 나간다.)
미영은 혼이 나간 채로, 많이 지친 표정으로 인도를 걷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새 한강 대교 까지 걸어 나왔다. 한강을 보면서 미영은 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암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미영은 갑자기 구두를 벗는다. 그리고는 다리 난관위로 올라섰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세게 잡았다. 재영이었다.
재영 : 그만해요
(다음 편에 계속)
저 하늘을 향하여 (11) ? 완결!
재영 : 그만해요
미영 : (놀라며)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이거 놔!
(재영은 미영을 난관에서 끌어내린다.)
미영 : (화내며)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재영 : 후회할 짓은 하는 게 아니예요
미영 : 후회? 그딴 거 없어..(난관에 다시 올라가려 한다.)
재영 : (소리치며) 그만하세요!!
미영 : (잠시 망설이다가 무릎을 꿇고 서글프게 운다.)
재영은 미영을 진정시키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들고 나왔다. 편의점 앞 의자에서 둘은 서로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재영 : (작은 목소리로) 무슨 일이 예요?
미영 : (계속 훌쩍 거린다.)
재영 : 아버지 때문에 그래요?
미영 : (머뭇거리다) 너… 지난번에… 죽고 싶다고 했지?
재영 : (미영을 바라본다.)
미영 : (차분하게) 나도… 끼워줘….
재영 : 뭐라구요?
미영 : 혼자 쓸쓸하게 가는 거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재영 :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미영 : 무슨 소리인지 너도 잘 알잖아
재영 : 죽는 건 저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미영 : (간절하게) 같이 하자구…
재영 : 무슨일이예요?
미영 : 다 끊어버리고 싶어… 편안해지고 싶어…
재영 : 이 세상엔 끊어버릴 수 없는 것도 많아요.
미영 : (울먹이며) 힘들어.. 너무 힘들어.. 돌이킬 수 없어.. 되돌릴 수 없어…
재영 : (가만히 있다가).. 그래요.. 같이 해요.
미영 : (재영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 떠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 있어… 우리 같이 할까?
재영 : (대답이 없다.)
미영 : 이제 나는 없는 사람이야… 가기 전에 내 마음대로 하고 갈거야..
재영 : (미영의 손목을 잡으며)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해요?
미영 : 너도 힘들잖아… 너도 아프잖아… 너도 살기 싫잖아… 그러니 동정 따위는 하지마.
재영 : 알았어요..
미영 :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며) 너도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
재영 : 저도 선생님과 같은 마음 이예요. 이 세상이 싫어요.. 질렸어요.. 나를 버린 이 세상이 싫어요….하지만, 선생님은….
미영 : (재영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재영 : (미영을 바라본다.) 하지만, 선생님은 안돼요. 선생님은 화려 하시잖아요.
미영 : 껍데기만, 알맹이는 썩고 있지…나 가보고 싶은데 있어…너.. 같이 안 갈래?
재영 :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재영은 미영과 헤어진 후 집으로 향했다. 옥탑방 으로 올라서는 순간, 대문 앞에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여러 가지 반찬과 국이었다. 옆에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재영의 엄마였다.
- 쪽지 중에서 ?
네가 좋아하는 반찬과 국들 여기 놓고 가마, 들어가려고 했지만, 차마 발이 움직여지지 않더구나. 잘 지내고 있는 거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엄마 네 곁에 갈 날 얼마 안 남았어.. 보고 싶구나. 잘 지내거라.. 이렇게라도 너와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엄마가..
재영은 쪽지를 손에 꽉 쥐었다. 주먹을 세게 쥐었다. 눈물이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재영은 반찬 통을 들고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재영의 하루는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 미영은 카페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영의 엄마와 오빠가 들어왔다. 미영은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미영 엄마 : 웬일이야? 밖에서 다 보자고 하구?
미영 오빠 : 무슨 일 있어?
미영 : 별 일은 없어?
미영 엄마 : 별 일은 무슨… (콧방귀) 네 아버지가 남긴 거라도 있어야지.. 아니.. 평생 철도 공무원으로 살았으면서 남은 거 고작 보험금 몇 푼이니… 기가 막히지…
미영 : (약간 화를 내며) 엄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우릴 위해서 평생 희생 봉사하신 분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미영 엄마 : 내 마음은 오죽한 줄 알아? 그럼 우리는 어떡하고? 남은 사람들이라도 살아야 할 거 아냐! 근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미영 : (가방 속에 봉투를 꺼낸다) 넉넉하게는 될거야..
미영 엄마 : (봉투를 순식간에 집어 든다. 내용물을 확인한다.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너…
미영 오빠 : (역시 놀란다.)
미영 : 이번이 마지막이야.. 더 이상 나도 해줄 수가 없어…
미영 오빠 : (미영 손을 잡으며) 정말 고맙다.. 역시 넌 내 등불이야… 너무 고맙다… 오빠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그 동안 빌린 돈 다 갚을게..
미영 엄마 :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모두 우리 가족을 위해서야.. 너도 나중에 현명한 결정이라고 느낄 거야..
미영 : (봉투를 보고 좋아하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본다.) 그만 가봐야 해..
미영 엄마 ; (웃으면서) 그래 조심해서 가고..
미영 오빠 : (들뜬 목소리로) 너무 고맙다…
미영 : (급히 자리를 뜬다.)
운전을 하고 있는 미영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주체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영은 핸들을 놓지 않았다. 미영은 병원으로 돌아가 진료를 시작했다.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편의점에서 옷을 갈아 입은 재영은 매니저에게 부탁을 하고 일을 마무리 했다. 재영의 손에는 여전히 소영이 준 반지를 끼고 있었다. 재영은 옷 가게에서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근사한 정장 한 벌을 샀다. 근사하게 차려 입은 재영은 소영이 편안히 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영의 영정 사진을 보고 재영은 가만히 서있다가 사진 앞에 반지를 올려놓았다.
재영 : (사진을 보며) 많이 춥지는 않았어? 널 보고 싶은 마음이 매일매일 굴뚝 같았지만, 차마 올 수는 없었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너를 보러 와.. 나같이 형편없는 놈 좋아해줘서 고마워..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울부짖으며) 정말… 미안해….보고 싶다… 나 저주 해도 좋아.. 욕해도 좋아… 상관없어… 나도 네 곁으로 가고 싶어… 정말 미안해… 미안해….(서럽게 운다..)
진료를 마친 미영은 간호사들을 불러 병원을 정리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간호사들은 많이 놀라며 미영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렇게 미영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었다.
미영은 와인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문 쪽에서 미영을 반갑게 맞이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미영의 전 애인 상우 였다.
상우 : (반갑게) 오랜만이야 누나! 잘 있었어?
미영 : 여기 앉아..
상우 : 뭐하고 지냈어?
미영 : 그냥 이것 저것 하며 지냈어…너.. 결혼 한다며?
상우 : 응…
미영 : 사랑하는 사람이야?
상우 : 글쎄… 집안에서 맺어 준거라… 누나도 알잖아… 이런 결혼이 어떤지..
미영 : (한 잔 마시고) 나… 이혼 했어.
상우 : (미영을 잠시 보다가) 얼마나 됐어?
미영 : 한 6개월 정도?
상우 : (한 잔 마시고)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서 연락한 거 아냐?
미영 : (잠시 망설이다가) 오늘 밤 나와 같이 있어줘…
상우 : (놀란 표정으로 미영을 본다.)
미영 : 오늘 하룻밤 상대가 되 주었으면 해..
상우 : 무슨 일이야?
미영 : (취한 채로)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그냥… 그래.. 부탁이야…
상우 : (술 한잔 마신다.) 알았어.. 안 물어 볼게…누나..여전하구나…
미영 : (미소를 띄우며 상우를 바라본다.)
상우와 미영은 호텔에 방을 잡았다.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격정적이었다. 서로를 느끼고 탐닉하며 그들은 서로 타 들어갔다. 그들은 예전에 느끼던 감정 그대로 서로를 원했다.
상우는 과감하게 미영을 끌어안았다. 미영도 뜨거웠다. 그들은 예전 연인 그대로였다.
아침이 되자, 깨어난 상우의 옆자리에는 ‘고마워’ 라고 쓰여진 쪽지만 놓여있었다.
미영은 아버지가 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꽃다발을 한 아름 사 들고 아버지의 산소 앞으로 갔다. 그녀는 아버지 산소 앞에 꽃다발과 소주 한 잔을 올려 놓았다. 미영은 산소 앞에 편히 앉았다. 미영은 아버지의 비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미영 : 아버지… 거긴 어때요? 여기 보단 편하시죠? 요새 들어 아버지 생각 자주 나요.. 아버지… 거기 편하면.. 저도 같이 가면 안 되요? 저… 다 귀찮아졌어요… 아버지는 제 맘 아시죠? 제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아버지… 아버지…. 저… 이해해 주실 수 있죠? 쉬고 싶어요… 아버지…(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미영은 하루 종일 아버지 산소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재영과 미영은 약속했던 한강대교에서 만났다. 서로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했다. 휴게소에 들려서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같이 촬영도 하고… 산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미영 :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으면 데려다 줄게
재영 : 이 세상이 싫어요.. 그만 할래요.. 저도 소영이 곁으로 갈거예요..
미영 : 내가 어른이라 너한테 따끔하게 야단 쳐줘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심정이 아니네..
재영 : 지금이라도 그만두셔도 돼요.
미영 : 난 후회 없어.. 사랑하는 사람 만나 행복했고, 아버지 같이 좋은 분도 만나서 행복했어… 미련 따윈 없어..
재영 : 지금이라도 털어 놓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미영 : (소리치며) 난 자유다!!!!!!!
재영 : (웃으며 미영을 바라본다.)
운전하고 있는 미영이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운다. 미영은 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영 : (망설이며) 준비되었니?
재영 : (울먹이며) 준비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미영 : (악셀을 세게 밟는다.)
그들은 그렇게 목적지 없이 전속력으로 질주 하였다…. 그들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