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자유 여행은 장점이 많다.
우선, 원하는 순간 모든 방법으로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
나는 아침 10시가 넘어 잠을 깨고, 수영을 하고 밥도 느릿느릿 먹고
해변에 나가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향해 실컷 멍을 날릴 수도 있었다.
또, 필요할 때에 일정을 변경하기 위해 누군가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
가끔씩-물론 대부분 허탈할 때가 많지만-여행지의 로맨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가장 정당한 목적이라고 말하는 그것;
천천히 뒤돌아 지나온 것들과 남겨둔 것들, 돌아가야 하는 세상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간의 고민들을 조용히 하나 둘 풀어 놓고
해결될 것들은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최소한 어떤 휴지기를 가질 수 있는 것.
그러나 어쨌든,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게 길건 짧건 간에 혼자여행은 외로운 일이라는 사실 만큼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도
샤워를 하면서도
수영장에서 책을 보거나
클럽에서 호주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발리 친구들과 사소한 문제로 오해가 생겨 다툴 때도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다.
혼자라는 것은, 그것이 화려하든 아니든
해나, 달이나, 섬처럼
까마득한 것이다.
사실, 외롭다는 표현은 굉장히 조심스런 말이다.
그건, 약자들의 말.
생이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의 투정.
치부를 드러내는 것 처럼 부끄럽고,
누군가 내게 외롭다고 말하는 건 곧
그가 무언가의 부재를 창피한 줄 모르고 쉽게 말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의미.
그러나, 여행이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될 것이다.
매번 나는 홀로 그곳에 있어야하는 필요가 있었고,
다시 가도 똑같은 방식이 되겠지만,
노을을 보다가, 아니면 모래사장에 옷을 깔고 팔을 포개
바다에서 뛰고 합쳐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가,
누군가 내게 가만히 말 걸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문득 알게 되는 걸 보면,
그 순간이 바로 외롭다는 의미일 테니까.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랬지.
신기하게도,
외로워지니까,
사실은 처음부터 외로웠으니까,
그걸 다시 상기하고 나면
그제서야 내가 서 있어야하는 자리가 보이게 된다.
나의 자리.
혼자 떨어져나와 발견하는 나의 집과, 일상.
나의 꿈과 길과,
나의 사람들.
숙소에서 짐을 챙겨나와
랩탑이 깨지는 것도 모른 채 친구와 회사 동료들을 위한
기념품 몇가지를 꾸역꾸역 캐리어 안에 쑤셔 넣고는
그간 고마웠다, 호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좁고 시끌벅적한 거리를 뚫고 지나가는 택시의 창 밖으로
잃어버린 것들이며, 미련하던 일들, 떠나보냈거나 숨겨 두었던 온갖 잡동서니 기억들이
-내려 앉는다;
비처럼 투투툭 어깨에, 얼굴에, 손위에 내린다.
단단해지고 싶었지만, 항상 단단할 수는 없으니까, 가끔 비를 맞으며 축축해져도 괜찮겠지.
물을 먹은 것처럼 말랑말랑하게 풀어지는 오랜 긴장들.
축축해지고 느슨해진 마음의 구멍으로 숭숭숭숭 바람이 들어온다.
아, 바람.
모두모두 들어오시라;
나는 지금 아주 약하고 외로운 물건이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는다는 건 어차피 처음부터 아주 먼 일이다.
내가 찾아야 하는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 아주아주 마지막에 있을 것이다.
2009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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